모성 - 죽을 만큼, 죽일 만큼 서로를 사랑했던 엄마와 딸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진환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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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모성』이 던지는 메시지는 강렬하고 충격적이다. "모성은 본능일까, 만들어진 신화일까?" 『고백』의 작가 미나토 가나에가 이번에 낸 소설도 독자들에게 쉽게 마주하기 힘든 질문을 던진다. 전작 『고백』에서는 ‘아이들의 학교폭력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과제를 남겼다. 이번에 출간한 『모성』에서는 인간의 위대한 본성이라는 ‘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모성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신화에 불과한 건 아닌지, 애초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주입된 감정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다. 책 속에서 '고백하는 어머니' 역할의 학교 교사이다.

소설 『모성』은 한 여학생의 추락으로부터 시작된다. 10월 20일 오전 6시경, Y현 Y시의 공영주택 화단에 17세 여학생이 쓰러져 있다. 신고자는 여학생의 어머니. 경찰은 여학생이 4층의 자택에서 추락한 것으로 보고, 사고와 자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면밀히 조사 중이다. 신고자안 여학생의 어머니는 "모든 걸 바쳐 애지중지 키워온 딸이 이렇게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라고 말해 주위를 숙연케 한다. 소설은 사건의 시작과 함께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 엄마의 고백과 딸의 독백이 번갈아 가며 과거로 돌아간다. 엄마의 고백은 남편의 만남을 시작으로 딸을 낳고 기르는 과정과 친정엄마의 죽음을 시작으로 벌어지는 시집살이의 고충을 이야기한다. 힘든 시절에 딸과의 유대관계에 집중하는 듯하면서도 어정쩡한 모녀관계로 결말을 보여주기도 한다. 딸의 독백은 엄마와 같은 상황에서 엄마의 고백과는 다르다.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며 엄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딸의 마음은 엄마에게 닿지 않는다.

저자 미나토 가나에는 대담하고 충격적인 전개, 강력한 흡인력, 허를 찌르는 반전 등으로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의 한 명이다. 독자들이 그녀의 글에 빠져드는 이유도 그저 흥미와 자극만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치밀한 구성으로 수백만 독자에게 충격을 안겼던 전작 『고백』 역시 '학교 폭력'이란 묵직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졌다.

 


 

우리는 감히 모성을 의심하려 들지 않는다. 아이를 낳은 엄마에게는 당연히 모성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나의 성역처럼 모성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갖는다. 잊을 만하면 모성이 없는 듯한 부모가 영아 유기, 자녀 학대 같은 사건을 일으키는데도 말이다. 도대체 ‘모성이란 무엇인가? 본능인가, 만들어진 것인가?’ 모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모두 자신은 엄마가 낳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때문에 모성은 신성불가침의 어머니의 사랑의 표상으로 받들여졌다. 그러나 모성에 대한 천착으로 독창적인 이론을 폈던 시몬 드 보부아르의 탐구부터 퀘스천 마크를 붙였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1960년대 초반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억압과 어머니로서의 자질 및 사회적 위치를 선천적이거나 자연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의 연관성을 비판했다. 그들은 사랑, 결혼, 출산, 양육에 반대한다기보다는, 여성이 아내와 어머니로서 해야만 하는 역할에 반대했다. 낸시 초도로우는 『모성의 재생산』에서 어떻게 여성이 자신을 이성애자라고 믿게 되고 그리고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는지 남성 지배적인 사회 구조, 여성 심리 그리고 어머니와 딸의 관계의 분석을 통해 제시했다.

또한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임신이 여성의 육체를 기생충의 서식지로 만들고 훼손시키며, 여성을 수동적인 짐승으로 만들어 짐승처럼 육체의 필요에 종속되게 만든다고 주장하면서 여성 억압적인 모성을 비판했다. 1970년대 중반의 페미니스트들은 모성을 남성 지배적인 사회로부터 탈환하여 긍정적으로 재해석하고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에이드리안 리치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모성을 토대로 한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에서 가부장주의의 지속을 위한 하나의 사회적 제도로 작용하고 있는 모성의 역사를 살펴보고, 이로 인해 결국 약화된 모성의 지위를 비판했다. 그는 여성의 것인 모성을 남성의 지배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가부장주의를 파괴해야 하며, 임신, 출산, 양육 등을 통한 모성의 경험이 여성적 힘과 창조력의 근원으로서 여성 문화의 토대를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이 소설 에서 미나토 가나에는 그녀 특유의 집요한 심리 묘사와 흡입력 있는 전개로 독자의 마음속을 뒤흔든다. 사랑받고 싶은 딸, 그리고 외면하는 엄마의 교차되는 시선, 독백체의 서술이 위험하고 위태로운 속마음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자살로 치부되던 그 사건에 그녀의 엄마가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닌지 의혹이 쏟아진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통해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은 진실이 드러난다.

“아이를 낳은 여자가 전부 엄마가 되는 건 아니에요. 모성이란 게, 여자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는 그냥 낳을 수 있으니까요.”

모성은 우리에게 종교보다 더 근원적인 믿음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부정한다면 이 세계를 지탱하는 어떤 가치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지만 세상 곳곳에서는 오늘도 이를 부정하는 듯한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그 잔혹한 결과를 차마 직시하지 못하고 애써 외면할 뿐이다. 이렇게 도망만 치는 우리 대신 저자의 운명을 걸고 쓴 이 책 『모성』으로 읽는 재미는 물론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당신은 모성을 믿는가?’라며 무책임한 세상과 우리를 도발한다.

소설은 본격적으로 모녀의 관계가 불편해지기 시작한 11년 전 그 날의 일을 더듬는다. 산사태로 동화 속 그림 같던 집에 불이 난 그 날 밤, 불시에 찾아온 위기 상황에서 엄마는 친정엄마를 살려야 할지, 자신의 딸을 살려야 할지 인생 최대의 선택을 강요받는다. 결국 딸을 구했지만 그날 밤 실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오직 엄마만 알고 있다.

신부님, 행복했던 시간에 대해 이제 다 적었는데도 저는 아직 답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왜 딸을 애지중지하며 모든 걸 다 바쳐 키웠는지. 정말로 답이 존재하긴 할까요? 답을 찾는 게 목적이 아니라, 신부님은 단지 저의 마음에 평안을 되찾아주기 위해 이 노트를 건네주신 게 아닌가요? 아니면 신부님은 여기까지만 읽고도 답을 알아내셨을까요? 아니면 신부님은 처음부터 답을 알고 계시면서 제가 스스로 찾아낼 수 있도록 유도하며 기다려주시는 걸까요? 노트를 돌려드릴 테니 만약 답을 알고 계신다면 알려주시길 바랍니다.(p.39~40)

 


 

그 사고 이후 사랑만을 주던 외할머니와 아름다운 집을 모두 잃은 엄마는 혹독한 시집살이에 시달린다. 이런 엄마를 지키려는 어린 딸의 마음은 엄마에게 가닿지 않고 오히려 엄마와 관계는 어그러진다. 딸은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은데, 엄마는 상황이 힘들수록 친정엄마의 빈자리를 느낀다. 그날 친정엄마는 마지막까지 딸을 구하라고 당부했지만, 엄마는 후회한다. “불이 나던 그날 아무래도 딸을 구하지 말 걸 그랬습니다.”

자신의 친정엄마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의지했지만 정작 딸에게는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애원하는 딸의 고통스러운 평행선을, 미나토 가나에는 그녀 특유의 치밀한 구성 속에서 숨겨진 진실과 기막힌 반전을 통해 묘사한다. 엄마와 딸의 고백과 회상이 이어지다가 각 장의 끝부분에 나오는 그들의 감정이 응축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아름다운 싯구가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가 과연 타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 따윈 없다. 그걸 깨닫는 데 몇 년이 걸렸더라? 아니, 상당히 이른 시점부터 깨달았을 것이다. 단지 그게 당연한 일이라 믿었기에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을 뿐이다.(p.130)

 


 

엄마이기 전에 딸이었던 엄마는 자신의 엄마와 딸 중 누구의 생명을 선택해야 옳았을까? 모성으로 포장된 엄마의 가식을 아는 딸은 어떻게 해야 진정한 엄마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 딸을 자살로 내모는 엄마의 죄는 진정 그녀만의 잘못일까? 이 모든 질문은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독자가 답해야 할 몫이다. 저자는 화제의 데뷔작 『고백』을 뛰어넘는 후속작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 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작가의 운명을 걸고 이 책을 완성했다. 독자들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나토 가나에가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독자의 가슴에 지우지 못할 흔적을 남겼다고.

 

세상 사람들이 제가 딸아이를 자살로 몰아넣었다고 오해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적었던 대로 딸아이가 저에게서 행복을 계속 앗아갔기 때문이 아니라, 역시 자살미수와 동시에 타도코로가 자취를 감춰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히토미 씨까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지요.(p.249)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전하자 “외할머니가 기뻐하시겠다.”라고 눈물을 흘리며 정원의 수양벚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엄마는 어떤데?’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아이에게 내가 엄마에게 바랐던 일을 해주고 싶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면서 내 모든 걸 줄 생각이다. 하지만 ‘모든 걸 바쳐서’ 같은 말은 절대 하지 않으리라. 어쩌면 아이는 그런 나를 귀찮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사랑이 충만한 증거다.(p.302)

 

 

저자 : 미나토 가나에(,みなと かなえ,湊 かなえ)

 

1973년 히로시마 현에서 태어나,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 에도가와 란포와 아카가와 지로의 소설을 읽는 ‘공상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의류 회사에서 일했지만 일 년 반 만에 퇴사하고 남태평양의 오지 통가로 떠났다. 그곳에서 청년 해외협력대 대원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귀국 후에는 효고 현의 고등학교에서 근무했다. 결혼하고는 무언가 형태가 남는 일에 도전하고자 글쓰기라는 새로운 영역의 문을 두드렸다.

낮에는 주부로, 밤에는 방송대본부터 소설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는 전방위적인 집필 활동에 들어간 결과, 2005년 제2회 BS-i 신인각본상 가작 수상을 시작으로, 2007년 제35회 창작라디오드라마대상을 수상하는 등 방송계에서 먼저 주목받으며 스토리텔러로서 역량을 드러냈다. 같은 해 단편 『성직자』를 발표, 제29회 소설추리신인상을 수상하며 정식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첫 장편 『고백』을 출간하면서 일본 문단에 ‘미나토 가나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고백』은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치밀한 복선과 탄탄한 구성으로, 각종 미스터리 랭킹을 휩쓴 것은 물론, 제6회 서점대상까지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며 일본에서만 350만 부가 판매되는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후, 『야행관람차』, 『왕복서간』, 『경우』, 『꽃 사슬』, 『백설 공주 살인사건』, 『여자들의 등산일기』, 『N을 위하여』, 『조각들』 등, 데뷔 이래 성실한 문학적 행보를 쌓아왔고, 거의 모든 작품이 영상화되어 또 한 번 미나토 가나에의 저력을 확인시켰다. 2016년에는 『리버스』 출간을 기념하여 서울에서 한국 독자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같은 해 『유토피아』로 제29회 야마모토슈고로상을 수상했고, 2018년에는 영미권 최고 추리소설상인 에드거상(최우수 페이퍼백 오리지널 부문) 후보에 『속죄』가 선정되는 등 전세계 독자와 평단의 진심 어린 갈채를 받고 있다. 특히, 2016년 『리버스』 출간을 기념하여 한국을 첫 방문했던 미나토 가나에는 2019년 『여자들의 등산일기』의 출간 및 연극 [왕복서간] 개막을 기념하여 또 한번 서울을 찾아 한국 독자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대담한 소재 선택과 충격적인 전개, 독자를 사로잡는 간결하고 매력적인 필력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다.

 

역자 : 김진환

 

단국대학교 일본어학과를 졸업하였으며, 현재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더 뉴게이트』1~13권, 『일본소설(라이트노벨) 라이징X라이딘』1~9권, 『우리 집 더부살이가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1~12권, 『신성한 늑대와 보이지 않는 손 -도둑 길드』, 『신식의 엑스마키나 1』, 『명옥의 알메인2』, 『조디악 위치스 1』,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붙잡힌 살인귀』, 『살인귀』1,2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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