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 - 경험이 글이 되는 마법의 기술
메리 카 지음, 권예리 옮김 / 지와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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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책을 쓴 적은 없지만 글쓰기를 동경해서 꼭 한 권의 책을 쓴다고 결정하고 버킷리스트에 올려놓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꽤 많이 읽은 편에 속할 정도로 적지 않은 책을 읽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중단했던 책 읽기를 팬데믹으로 남는 시간을 보충하려 맹목적으로 다시 책 읽기를 시작했다. 읽는 책마다 글쓰기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각인하고 읽었기에 어느 정도 글쓰기에 자신감이 붙을 줄 알았지만 그런 희망사항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읽기와 쓰기는 한몸처럼 묶였다고 생각했다. 많이 읽는 것이 잘 쓰는 것에 도움이 되리라고 나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독자의 오판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다고 좌절하지 않고 책 읽기는 계속됐고, 가끔은 글쓰기를 통한 자기계발서, 글을 쓰면서 마음의 치유까지 한다는 힐링서 등도 여러 권 읽었다. 워낙 문재(文才)가 부족한 탓인지 글쓰기 자신감은 최근까지 올리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 책 『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를 만났다. 이 책은 앞 부분에서 「이 책을 펴내며」란 서문부터 독자를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출판사 측에서 썼는지, 역자가 썼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내용은 독자에게 '글을 써 책을 낼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은 물론 버킷리스트를 꺼내 책 한 권 쓴다는 사실을 빨리 실행에 옮겨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이 글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를 묻는다면 단연 '자전적 글쓰기'라고 자신하고 있다. 이제까지 사람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주는 훌륭한 문학 작품들은 대부분 '픽션'이 차지해왔지만, 그 경계는 이미 모호하다고 단언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는 내용도 인용, 증언해준다. 그의 작품은 픽션처럼 읽히지만 그 내용이 진실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란 말도 첨부해 자전적 글쓰기의 시대임을 강조한다.

 


 

이 책의 저자 메리 카가 알려주는 '자전적 글쓰기'는 남다른 특별한 이야기가 책이 된다는 생각부터 버리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어려움에 대한 말도 덧붙인다. "누구나 가끔 생각합니다. '내 인생도 글이 될 수 있을까?' 솔직히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드는 게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평범한 경험에서도 가치를 발견하고, 숨기고 싶은 자신의 내면을 끝까지 대변하며, 타인과 깊이 공감하려는 태도가 있다면, 오직 나만이 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p.7)

이렇게 이 책은 독자에게 다가와 자전적 글쓰기의 이모저모를 알려준다. 저자 메리 카는 「삶을 견뎌낸 이들에게는 이야기가 있다」란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버킷리스트의 책 한 권의 장르를 확신하게 해주었다. "이 책의 프롤로그는 내가 몇 년이고 만지작거리고 물어뜯은, 끼익 끼익 소리 나는 고무 장난감이다. 자전적 글쓰기 장르는 바야흐로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이 장르는 기인과 성인, 정치인과 영화배우 등 아웃사이더의 예술이었다. 내가 대학원생일 때 누군가가 자전적 글쓰기란 쌀 한 톨에 주기도문을 써넣는 것이라고 말했다."(p.10)

메리 카는 이 장르의 글쓰기에 애착을 갖는 한 가지 이유는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라도 인생록을 쓸 수 있다는 민주주의적인 성격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소설에는 얽히고설킨 플롯이 있고, 시에는 음악적 형식이, 역사책과 전기에는 객관적 진실이 있다고도 한다. 인생록에서는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으로 이어진다. 주인공이 태어나고 사춘기가 되고 성에 눈을 뜬다. 이런 사건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묶어주는 요소는 우연과 테마, 그리고 한 사람이 지난날을 이해하려 애쓰는 데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하고 설득력 있는 서정성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글을 쓸 때면 언제나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펜을 든다고 한다. 작은 진실을 말하려고 하면 좋은 말만 듣고 싶어 하는 괴물 같은 자아가 자꾸 겁을 준다고 비유한다. 그래도 괜찮다. 바로 그 때문에 무한히 현명한 신께서 우리에게 딜리티 키를 내려주셨으니까라는 확신을 가진다고 토로한다. 솔직하게 쓰는 게 최선임을 암시하는 말로 읽힌다. 저자 메리 카는 친한 동료 교수가 수십 년 동안이나 학생들엑 자전적 글쓰기를 가르쳐왔고 그 일을 즐겼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바람에 얼떨결에 이 책을 구상하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사실 강의에서 자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이 장르를 아끼고 사랑해온 열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은 이렇게 썼다는 글도 여기에 소개한다. "나중에 커서 절반은 시, 절반은 자서전을 쓸 것이다." 어렸을 때 헬렌 켈러와 마야 안젤루의 이야기를 읽으며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떨칠 수 있었다고 밝히고, 미신 같지만 나는 그들이 '나에게만' 말한다고 믿었다고 언급한다.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일인칭 시점의 신화를 읽을 때마다, 언젠가는 자신도 자라나 엉망진창인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잇다는 희망을 키워갔다고 자신의 글쓰기 처음 시절로 돌아가 회고한다. 이에 따르면 저자는 절망적인 가정생활의 혼란에서 벗어나고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루에 몇 시간씩 책을 읽으며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현실 도피에 열중했다. 흑인민권운동 이전의 아칸소에서 태어난 안젤루, 가엾게도 보지도 듣지도 모산 켈러, 이런 사람들도 각자 지옥 같은 고통을 견디고 누구나 우러러보는 작가가 됐다면, 어쩌면 나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삶을 견뎌낸 사람들은 누구나 할 이야기가 있다. 그들이 살아남은 사연을 읽으며 자신은 마약이라도 주입받은 것처럼 희망이 차오르고 설렜다. 비슷한 줄거리의 소설도 읽어봤지만 자전적 논픽션을 읽을 때만큼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저자의 진솔한 이야기는 일반적이지만 강한 흡입력으로 독자를 설레게 한다.

 


 

저자는 이런 말도 덧붙인다. 허구의 문학도 더러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진실한 내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소설을 읽는 중에 일인칭 화자에게 홀릴 때도 많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닌 허구라서 그런지 현실의 저자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 작가에게는 신비하고 강렬한 동질감을 느끼지만, 아무리 훌륭한 소설을 읽어도 소설가에게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도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기가 부끄럽지만, 책이 팔리면 돈을 버는, 만나본 적도 없는 작가에게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은 너무 고지식하게 들리기 때문이란다. 마치 스트립쇼 댄서들이 자기를 진짜 좋아하는 줄로 착각하는 남자 같다고 말이다.

책에 따르면 논픽션이라고 해도 그 내용이 거의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착각으로 여겨지곤 한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는 인위적인 요소가 끼어들 수밖에 없다. 제대로 쓴 모든 글은 예술, 즉 인간이 창조한 것이다. 있었던 일을 그냥 줄줄 적어놓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당신이 여러 사건들 중 하나를 골라서 쓰기로 하는 순간, 어떤 식으로든 과거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것은 도덕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자전적 글쓰기에서는 녹취록 없이 대화를 재구성하는 소설적 장치를 사용한다고 저자는 밝힌다. "이 과정에서 독특한 목소리를 빚으려면 시인만큼이나 정교한 작업을 해야 한다. 훌륭한 인생록은 연구할 가치가 있다. 자신의 인생을 글로 쓴다는 것은 독자를 위해 어떤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독자자가 잠시 스치는 감흥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나의 지난날을 생생하게 불러오는 것이다. 당신은 독자와 함께 긴 여행을 떠난야 한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자신에게서 짜낼 수 있는 모든 진실을 보여줘야 한다. 따라서 인생록은 인간이 빚어낸 경험이기는 하지만, 빼어난 인생록은 자신만의 이유로 과거의 진실을 찾아다니는 인간의 영혼에서 우러나온다."(p.16~17)

 


 

인생록을 쓰는 일은 어떤 면에서 자기 주먹으로 자기를 자빠뜨리는 것이다. 특히 제대로 잘 썼을 때 더욱 그렇다. 물론 감정적으로 관여할 수밖에 없는 작업은 즐겁기도 하다. 자기 이야기에 관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인생록을 써낸 사람은 깊은 심리적 변화를 겪게 마련이다. 그러지 않고는 못 배긴다. 인생록만큼 사람을 뒤흔드는 창작 분야는 또 없을 것이다. 또한 작가는 이제는 곁에 없는 사람들과 다시 만날 수 있다. 글을 쓰는 동안 수십 년 동안 그리워했던 시간과 장소가 눈앞에 뚜렷하게 다시 나타난다.

하지만 빼어난 인생록을 쓴 작가들은 하나같이 쓰는 과정이 고약하고 끔찍했다고 전한다. 과거에 대한 망상과 실제로 일어난 일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고 할 때마다 고통에 몸부림쳐야 한다. 나는 다른 사람의 글을 고쳐주거나 방향을 제시해줄 때 영화 〈플래툰〉에 등장하는 못된 하사관이 된 기분이 든다. 영화에서 하사관은 배에서 내장이 빠져나와 비명을 지르는 병사 위로 몸을 구부려 이를 악물고 쉰 목소리로 계속 말한다. "통증을 받아들여." 병사가 입을 다물고 내장을 주섬주섬 배 속으로 밀어 넣기 시작할 때까지.

자기를 아무리 잘 아는 사람이라도 인생록을 쓰다 보면 속이 다 뒤틀리기 마련이다. 이미 틀을 잡아놓은 자아, 깔끔한 분석과 흠잡을 데 없는 변명을 내세운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이 자주 하는 뼈 있는 농담이 하나 있다. "상대가 반격해오자 문제는 심각해졌다." 소소한 믿음과 무의식적인 가식이 어김없이 우리의 발을 걸고 넘어지는 것이다. 이 장르의 글쓰기가 주는 카나르시스 효과는 정신과 치료의 효과와 비슷하다. 다른 점은 돈을 내고 치료받을 때와 달리 돈을 받는다는 것이다. 치료사는 엄마, 환자는 아기 역할을 한다. 인생록을 쓸 때는 작가가 엄마, 독자가 아기다. 그리고 독자가 작가에게 돈을 낸다.

 


 

이 책은 모두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 〈인생은 어떤 가치를 품고 있나〉와 2부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법〉이다. 이 책은 1, 2부에서 각각 12장(章)씩 나뉘어 모두 24장으로 구성돼 있다. 각 장의 제목만 읽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대체적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자칫 안다고 생각하고 안 읽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각 장에도 몇 개씩의 금과옥조로 삼을 만한 많은 자전적 글쓰기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 줄 지어 서 있기 때문이다.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전부 써야겠지만 자칫 책 한 권을 옮겨적어야 할지 모른다. 제목만 여기에 나열한다.

1부는 「나의 기억을 의심하라」,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을 자신」, 「불행을 억지로 욱여넣지 말라」,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라」, 「아름다움은 세계관 위에 존재한다」, 「육체적 감각을 키워라」, 「구체적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화려한 거짓보다 소박한 진실이 힘이 세다」, 「인생의 적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남도 존중하지 않는다」, 「우리 인생의 신화를 발견하기」, 「사랑하는 이들을 대하는 법을 배워라」 등 12개 장이다. 이어 2부에는 「재미없는 사실을 흥미롭게 만들려면」, 「각각의 기억이 먼저, 줄거리는 나중에」, 「꾸며낸 사실은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과장은 지옥으로 가는 길을 닦는다」, 「가짜 자아가 아닌 진짜 자아에 눈을 맞춰라」, 「개인의 진실은 어떻게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되는가」, 「현재의 욕망을 과거에 덧씌우지 않기」, 「글쓰기가 막힌 초심자를 위한 기법들」, 「글 속에서 변화하고 성장하라」, 「인생 이야기를 쓰기 위한 체크리스트」, 「내 이야기가 누군가를 구원할 수도 있다」, 「많이 고칠 수 있다면 성공한 것이다」 등 12개 장이 들어 있다. 모두 글쓰기에 대한 신조로 삼아도 될 만한 내용들이다. 또 글 자체의 기술 방법까지 신경 쓰고 읽어낸다면 어쩌면 문장 쓰기와 기술 방법에 대한 영감도 충분히 얻을 것이란 독자의 판단이다. 이는 독자가 이 책을 텍스트로 삼아 글쓰기, 책 쓰기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최악의 사건이나 극적인 승리에 대해 쓴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주 진솔한 체험을 다룰 때, 훌륭한 목소리와 작가의 열정이 담긴 이야기를 절묘하게 배합할 때 좋은 글이 나온다. 기억하라. 나보다 당신보다 더 암울한 상황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이 수없이 많다.(p.241) - 「과장은 지옥으로 가는 길을 닦는다」 중에서

 

저자 : 메리 카(Mary Karr)

미국 시러큐스 대학교 영문과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텍사스 남동부의 거친 문화에서 자라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쓴 인생록 『거짓말쟁이들의 클럽』은 출간 후 1년 넘게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머물고 전미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전미 대륙에 자전적 글쓰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이어서 쓴 두 권의 책 『체리』와 『리트』도 연이어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평단의 수많은 찬사를 받았다.

인생록 작가로서만이 아니라 시인으로서의 명성도 높아, 구겐하임 지원금을 받고 시와 산문으로 각각 푸시카트 문학상을 수상하며 다섯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메리 카는 작가일 뿐만 아니라 작가들의 선생으로도 유명하다. 그에게서 배운 이들 중에는 셰릴 스트레이드, 키스 게센과 같은 유망한 작가들이 있으며, 훌륭한 교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는 30여 년 동안 대학에서 작가 지망생들에게 ‘인생 글쓰기’를 가르친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책으로,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과 함께 작가 지망생들의 필독서로 사랑받아왔다. 모방과 허구의 글쓰기보다 ‘진실’의 글쓰기를 고집스럽게 추구하라고 요구하는 그의 조언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인 자전적 글쓰기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알려줄 것이다.

 

역자 : 권예리

『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의 번역자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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