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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여인들 - 지나 오의 오페라 이야기
지나 오 지음 / 모요사 / 2023년 5월
평점 :
이 책 『오페라의 여인들』은 ‘글 쓰는 성악가’ 지나 오가 그동안 오페라를 노래하며 직접 겪은 오페라의 뒷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특히 자신이 노래하는 아리아의 여주인공들이 작곡가별로, 나라별로, 시대별로 달리 해석되는 것에 흥미를 느껴 그녀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풍성하게 엮어냈다고 한다. 성악가이지만 스스로 오페라 ‘덕후’임을 자처하는 저자는 오페라라는 종합예술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문학과 역사, 미술 분야까지 오페라와 관련된 것이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섭렵해 나갔다. 그러는 동안 노래할 때와는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느꼈고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오페라를 좀 더 입체적이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도록 오페라의 배경 지식과 뒷이야기를 글로 담아내고, 팟캐스트와 유튜브까지 운영하며 오페라 인문학을 전파했다. 이 책은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현재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거주하는 저자 지나 오는 독일 언론으로부터 ‘버터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메조소프라노’라는 찬사를 받았다. 또한 오페라 공연뿐만 아니라 노래를 곁들인 인문학 토크 콘서트 ‘사계’와 오페라 클래스를 통해서도 꾸준히 대중들과 만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작곡가들의 뮤즈가 된 열 명의 여인들을 선정해,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와 가곡 등 음악 이야기를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함께 버무려 세심하게 그려냈다.
이 책은 오페라의 주인공 역할을 하는 가수보다는 오페라의 여주인공이 된 여성들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오페라 가수란 우리가 많이 듣는 말 '프리마돈나(prima donna)'란 뜻이지만 이 책의 여주인공은 오페라의 실제 주인공을 의미한다는 풀이다. 프리마돈나란 이탈리아어로 '제1의 여인'이란 뜻이다. 원래는 18세기 오페라의 기본이 되는 배역(配役)의 명칭으로 주역 여성가수를 프리마돈나, 제2의 여성가수를 세콘다 돈나(seconda donna)라고 불렀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프리마돈나는 보다 넓은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예를 들면 뽐내고 질투심 많으며 변덕스러운 오페라의 주역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오페라 이외의 분야에서도 사용하게 되었다. 오페라에서 프리마돈나는 가장 중요한 소프라노 가수인 경우가 많다.
이 책에는 모두 10명의 오페라 실제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우리가 역사나 걸작 문학작품의 여주인공이 많다. 이 열 명의 여성들이 각각 한 개의 장(章)으로 나뉘어 책은 모두 10장으로 이루어졌다. 이 10명의 여인을 저자가 구성한 순서대로(번호는 독자가 임의로 붙였다) 나열해본다. 일반 독자들에게도 모두 익숙한 인물이지만 오페라를 많이 감상했거나 취미를 가진 분들에게는 수십 번, 수백 번씩 들었을 이야기다. 이 인물들은 역사 속에서도 무수히 등장하며, 문학 작품에서도 수시로 등장한다. ① 「줄리엣 : 집안의 반대를 사랑의 이름으로 넘다」 ② 「메리 스튜어트 : 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갖지 못한 여인」 ③ 「엘리자베스 튜더 : 여왕의 비밀스러운 사생활」 ④ 「로지나 : 당신의 몰락은 누구 책임인가요?」 ⑤ 「신데렐라: 한 여인의 인생 역전 이야기」 ⑥ 「잔 다르크: 성녀인가, 마녀인가」 ⑦ 「로렐라이 : 나를 끌어당기는 라인 강의 전설」 ⑧ 「마르가레테와 그레첸: 파우스트의 하나이자 둘인 여인」 ⑨ 「마농: 당신을 위해서라면 내 모든 것을!」 ⑩ 「미미 & 무제타: 〈라 보엠〉의 두 여인이 가진 것」 등이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이 〈줄리엣〉이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는 영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이 희곡의 배경을 왜 이탈리아 베로나로 정했을까? 사실 독자로서는 한 번도 의문을 가진 적이 없는 점에 저자는 주목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두 어린 여인의 이야기가 이탈리아에서 처음 기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작은 루이지 다 포르토가 쓴 『새로이 발견된 두 고귀한 연인 이야기』다. 이를 원작으로 한 최초의 오페라는 니콜로 징가렐리의 〈줄리에타와 로메오〉이고, 그 뒤로 니콜라 바카이의 〈줄리에타와 로메오〉 그리고 빈첸초 벨리니의 〈카풀레티 카와 몬테키 가〉가 이어졌다. 특히 벨리니가 그리는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바탕을 둔 샤를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과는 사뭇 다르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구노의 줄리엣이 올리비아 핫세처럼 상큼하고 청순하다면, 벨리니의 줄리엣은 이성적이고 침착하다. 그녀는 로미오를 사랑하지만 가족과 조국을 져버릴 수 없다며 함께 야반도주할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각기 다른 매력의 로미오와 줄리엣 오페라를 즐기고 싶다면 구노의 작품으로 입문해 벨리니, 바카이, 징가렐리 순으로 감상할 것을 권한다. 또 기구한 여인들의 운명과 역사 이야기가 연이어 뒤를 잇는다. 특히 영국 튜더 왕가의 두 라이벌 여왕 스코틀랜드의 메리와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는 엇갈린 운명으로 수많은 소설가와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실제 소설의 주인공이 되거나 영화, 연극 등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도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 인물들이다. 그중 독일의 극작가 실러는 참수형으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메리 스튜어트의 편에서 쓴 희곡 『마리아 스튜아르트』를 남겼다. 작곡가 도니체티는 실러의 희곡을 바탕으로 〈마리아 스투아르다〉라는 오페라를 작곡했다.
책에 따르면 『마리아 스튜아르트』는 총 5막으로 이루어져 있고 메리는 과거의 숱한 과오를 참회하고 죽음을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또 엘리자베스는 메리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에 가득 차 있고, 급기야 자신의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고 교활하게 메리의 사형을 집행하게 만드는 역할로 설정돼 있다. 극적인 재미를 더하기 위해 실러는 몇 가지 역사 왜곡을 감행했는데, 그중에서도 두 여왕이 3막에서 설전을 벌이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이다.(실제로 두 여인이 서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 시대에도 많은 영화나 드라마가 역사를 왜곡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런데 이런 일은 과거에도 비일비재했다. 실러는 역사책을 쓸 정도로 역사 분야에 정통했지만, 극작가로서는 철저히 드라마에 충실했다. 엘리자베스가 훗날 대영제국의 초석을 놓은 위대한 성군으로 칭송받았음에도, 실러는 철저히 역사의 패자인 메리 편이었다.
저자가 실러가 역사를 왜곡했고, 철저히 메리 편이었다고 하는 부분에서 독자는 조금 생각이 다르긴하다. 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을 정식 역사서도 아닌 문학 등 예술 작품에 비틀거나 주제를 바꾼다고 역사 왜곡으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 엄격한 잣대를 예술에 들이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지금의 우리 한일 관계처럼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고 주장하고 교과서에 싣거나 국제적으로 주장을 펼친다면 역사 왜곡이 마땅하다. 오페라를 한 번도 못 보고 저자의 주장에 반대한 점이 무례하지만 실러가 역사를 왜곡할 목적으로 희곡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란 독자의 의견을 내놓을 뿐이니 양해바란다.
지금은 〈세비야의 이발사〉 하면 로시니를 먼저 떠올리지만 당대에는 앞서 조반니 파이지엘로가 작곡한 〈세비야의 이발사〉가 훨씬 인기를 끌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로시니가 초연을 올릴 때는 파이지엘로의 열성 팬들이 몰려와 훼방을 놓는 바람에 결국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첫 공연은 실패로 막을 내려야 했다. 지금은 파이지엘로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이들이 많지만, 당대에는 가장 성공한 작곡가로 모차르트에게도 영향을 준 거장이었다. 이 책에는 〈세비야의 이발사〉와 그 후속편인 〈피가로의 결혼〉이 탄생하기까지 원작을 쓴 시대의 풍운아 피에르 보마르셰의 일생도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유적지가 풍부한 로마에는 역사나 유서 깊은 극장들도 많다. 그중에서 '아르젠티나 극장'은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가 초연된 곳이다. 1731년 개장해 18세기 내내 로마에서 가장 중요한 극장으로 여겨졌다. 이 극장을 세운 이는 스포르차 체사리니 가문으로 로시니 시절의 극장장은 프란체스코 스포르차 체사리니 공작이었다. 그는 오페라를 무척 사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의 재정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1816년 2월 20일은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가 아르젠티나 극장에서 초연된 날짜다. 그런데 초연 4일 전에 체사리니 극장장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개막 공연을 코앞에 둔 극장의 분위기가 얼마나 어수선했을지 충분히 상상이 될 것이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초연 당일에 파이지엘로의 제자들과 열성 팬들이 조롱과 야유를 퍼붓고 소란을 피우며 훼방을 놓았다. 새파랗게 젊은 로시니가 대선배 파이지엘로의 작품과 같은 제목의 오페라를 작곡한 것을 괘씸하게 여긴 때문이었다.
현대의 엄숙한 오페라극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20세기 중반까지도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는 이탈이아 무대에 섰을 때 라이벌 소프라노인 레나타 테발디의 팬들이 보내는 야유나 그들이 시든 꽃다발을 던지는 모욕을 견뎌야 했다. 물론 마리아 칼라스는 꽃다발을 발끝으로 살짝 차버릴 정도로 담대하게 응수했지만. 아무튼 중요한 점은 그런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사정으로 인해 〈세비야의 이발사〉의 첫 공연이 실패로 막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적으로 신데렐라(Cinderella) 스토리는 무려 345개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래동화 〈콩쥐팥쥐〉도 비슷한 동화라고 보면 될 듯하다. 가장 유명한 신데렐라 이야기는 프랑스작가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의 동화와 그림 형제 버전이다. 동화로는 그림 형제 버전이 유명할지라도 해피 엔딩으로 기억하는 이야기는 거의 샤를 페로 버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당시 주인공 상드리용(Cendrillon :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민담으로 전해내려오던 것을 프랑스의 동화작가 샤를 페로가 1697년 그의 동화집 『옛날 이야기(Histoires ou Contes du Temps Passe)』에 수록하면서 처음 출판이 되었다. 이후 다른 언어들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바뀌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며, 흔히 알려져 있는 영어명 신데렐라(Cinderella)도 '재를 뒤집어 쓰다'는 뜻으로 항상 부엌 아궁이 앞에서 일을 하는 데서 붙여진 별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가장 유명한 오페라는 단연 로시니의 〈라 체네렌톨라〉(신데렐라의 이탈리아 이름)이다. 그런데 로시니의 오페라에서 신데렐라는 왕자가 선택해줄지 말지 모르는 운명에 기대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는 상대를 직접 선택하는 자기 주도형 여인으로 그려진다. 또 최근에야 서서히 부활하고 있는 프랑스의 쥘 마스네가 작곡한 〈상드리용〉은 신데렐라의 상대 역인 왕자 역으로 팔콘 스타일의 여성 가수를 설정하고 있다는 게 재미있다. 과연 그의 의중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심지어 상드리용과 왕자 역할은 '적절한 체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외모에 대한 요구 사항까지 악보에 적어두었다. 작곡가가 가수의 외모에 대한 언급을 적는 것은 오페라사에서 매우 드문이이라고 한다. 이 정도이니 악보 위의 어떤 음표도 그냥 쓰인 것은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런 마스테를 상상하며 오페라를 감상해볼 것을 저자는 권유한다.
오페라 〈로렐라이〉에 들어서서 저자는 클라라와 리스트, 당대를 대표하는 두 피아니스트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하이네의 시 〈로렐라이〉에 곡을 붙여 각각 다른 가곡을 남겼다는 사실을 묻기 위해서다. 클라라의 가곡은 비록 그녀 생전에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화려한 반주부가 돋보이며 극적인 구성도 훌륭하다. 리스트의 가곡은 짧은 오페라를 보듯 드라마틱한 면모가 두드러진다. 두 사람은 왜 로렐라이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저자는 두 사람의 〈로렐라이〉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음미해보길 권한다. 이것이야말로 클래식 마니아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니까.
오페라에 관한 푸치니의 이야기가 빠진 곳이 없다. 그만큼 오페라사에서는 베르디 못지 않은 영향력과 대중적 인기를 끈 작곡가는 드물었으니 더욱 그럴 것이다. 〈마농 레스코〉는 푸치니 오페라로 유명하지만 원작은 프랑스 작가 아베 프레보의 소설 『마농 레스코와 슈발리에 데 그리외 이야기』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당시의 사회적 가치를 전복시키는 여성상으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는 것. 청순하고 아름답지만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고, 욕망 앞에 솔직한 여인! 바로 마농이다. 캐릭터 역시 뚜렷한 가치관이 있으니 생명력이 길 수밖에 없을 터다. 마농의 이야기는 쥘 마스네를 비롯해 여러 작곡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여러 버전의 〈마농 레스코〉가 탄생한 이유다. 그중에서도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가 가장 유명하다. 그런데 이 오페라의 대본은 처음에 루제로 레온카발로가 맡았다는 것을 아는가. 물론 푸치니의 집요한 요구에 지쳐 일찍이 대본 작업에서 빠지지만 이후 두 사람의 악연은 〈라 보엠〉으로 이어지며 희대의 스캔들을 불러온다. 결국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는 루이지 일리카와 주세페 자코자에 의해 완성된다. 이 두 명은 〈라 보엠〉, 〈토스카〉, 〈나비 부인〉의 대본을 함께 써서 푸치니가 불멸의 작곡가로 등극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물론 이들의 작업 과정이 순탄할 리는 없었다. 이들의 티키타카를 관전하는 것도 이 책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라 보엠〉은 푸치니의 곡으로 익히 잘 알려져 있지만, 당시 루제로 레온카발로의 〈라 보엠〉도 이에 못지않게 유명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오히려 초연에서는 푸치니가 혹평을 받았고, 레온카발로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역사는 푸치니에게 완벽한 승리를 안겨주었다. 그런데 두 개의 〈라 보엠〉이 무대에 올려지기까지 사회적인 이슈가 될 정도로 엄청난 스캔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바로 두 사람 간의 표절 논란이다. 과연 푸치니는 어떻게 〈라 보엠〉의 원작 소설을 알게 됐을까. 이 책에서는 작곡가들의 오페라 열전 외에도 원작 소설의 두 여주인공 미미와 무제타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미술 작품을 함께 실어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훌륭한 예술과 위대한 예술가를 둘러싼 이야기는 그들의 삶보다 몇 배나 증폭해서 우리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준다. 우리가 예술을 좋아하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해본다.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여인이건만 그녀에 대한 평가는 야박했다. 셰익스피어는 『헨리 6세』에서 영국군의 입장에서 본 잔 다르크를 마녀로 묘사하고 있고, 광신을 혐오한 프랑스 계몽주의자 볼테르?그는 영국 예찬론자였다?는 「오를레앙의 처녀」라는 미완성 풍자시에서 잔 다르크의 애국적이고 종교적인 희생을 평가절하하고 비난했다. 이처럼 마녀 혹은 광녀로 취급받던 잔 다르크에게 인간성을 부여한 사람이 바로 프리드리히 실러였다.(p.157)
자코모는 딸의 사랑을 방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딸을 악마에게 홀렸다며 마녀로 몰아세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부정(父情)을 깨닫고, 딸을 화형 직전에 구출해 전쟁터에서 순교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악당과 따뜻한 아버지라는 두 역할을 한 작품 안에서 소화하느라 동분서주하지만 극의 개연성은 무대 위를 떠난 지 오래다. 오페라계에서는 종종 천재적인 연출가가 죽은 오페라도 다시 살려내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부디 탁월한 연출가가 등장해 메스를 잡고 이 엉성한 얼개를 잘 수술해주길 바랄 뿐이다.(p.161)
저자 : 지나 오
메조소프라노 지나 오는 서울대학교에서 성악을, 독일 쾰른 음악대학교와 마인츠 음악대학교에서 오페라를 전공했다. 2013년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의 타이틀 롤로 마인츠 국립극장에서 데뷔했다. 바로크, 모차르트 및 로시니의 오페라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녀는 독일 언론으로부터 “버터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았다. 2017년 국립오페라단 프로덕션 <오를란도 핀토 파쵸> 중 티그린다 역으로 고국의 무대를 찾아 호평을 받았으며, 같은 해 <신데렐라>와 이듬해 <코지 판 투테>로 국내의 오페라 팬들을 만났다. 2018년에 성악 전문 팟캐스트 ‘노래에 살고 독일에 살고’를 시작했으며, 2019년부터는 월간 『객석』의 독일 통신원으로 활동하며 유럽에서 열리는 오페라의 리뷰를 써왔고, ‘오페라 속 여인의 삶과 사랑’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살면서 연주 활동 외에도 인문학 토크 콘서트 시리즈인 ‘사계四季’, 오페라 클래스 등을 통해 오페라의 매력을 대중들에게 전파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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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