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史記 100문 100답
김영수 지음 / 창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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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동양의 고전'이라 하면 『논어』, 『사기』, 『삼국지』가 아닌가 한다. 이 가운데 논어는 학문의 시작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사기는 역사의 전범(典範)으로서의 가치 때문에, 삼국지는 흥미로운 인물과 스토리의 매력 때문에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이라고 독자는 생각해본다. 독자는 논어는 여러 차례 읽었고, 삼국지도 분재된 축약본을 여러 번 읽었지만, 사기는 단 한 차례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아마 어렵기도 하고 방대한 분량 때문에 깊이 연구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일 것 같다는 생각이다. 가끔씩 인용되는 사기로서는 전체를 들여다볼 수 없고 저자 사마천의 특이한 이력 때문에 자주 언급이 됐기 때문이다.

이 책 『사마천 사기 100문 100답』은 사마천과 『사기』 전문가인 역사학자 김영수가 좀 더 쉽게 사마천과 사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문답 형식으로 풀어쓴 사마천과 사기 해설서이다. 저자는 「100문 100답 사연」이란 제목의 〈서문〉을 통해 책의 내용을 압축해 설명한다. "사마천은 역사가이다. 중국 사람들은 그를 역사학의 성인이란 뜻의 '사성(史聖)'이라 부른다. 사마천은 기원전 145년 서한이란 왕조에서 태어나 국가 기록 등을 담당하는 태사령(太史令)이란 벼슬에 있으면서 중국 역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역사서인 『사기』를 완성하고 기원전 90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56세 무렵에 세상을 떠났다. …(중략)… 이 정도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 이제부터 우리는 바로 역사가 사마천과 그가 남긴 『사기』라는 역사책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보고 이 역사가와 역사서가 중국에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을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풀어나간다."

사마천이 살았던 나라는 5,000년 중국 역사 속에서 명멸해간 80여 개 왕조들 중 가장 번영을 누렸던 한(漢)이었다. 역사서에는 대개 서한(西漢)이라 부른다. 이 왕조가 기원전 202년 유방에 의해 건국되어 200년 가까이 지속됐다가 기원후 8년 왕망에게 잠깐 망했다가 25년 유수가 다시 회복하여 220년까지 역시 약 200년 동안 유지됐다.

 


 

저자는 한(漢)은 그 이름에서부터 오늘날 중국인의 정체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 왕조라고 말한다. 중국의 글ㄹ자와 말을 한자(漢字)나 한어(漢語)로 일컫는 것을 비롯하여 중국 민족 스스로를 한족(漢族)으로 부르는 것만 보아도 넉넉히 알 수 있다고 언급한다. 한은 오늘날 중국을 있게 만든 가장 가장 중요한 왕조였고 또 그만큼 많은 것을 남겼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책 『사마천 사기 100문 100답』은 〈사기〉, 〈사마천〉, 〈한성시〉의 3부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분량은 6 : 2.5 : 1.5 정도가 된다. 3부의 각 이야기들은 저자의 입장에서 중복을 피하려고 애를 썼지만 불가피하게 재등장해 중복되는 부분이 있음을 말하고 있지만 이 책의 '옥에 티'로서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그러나 꾸며낸 이야기나 강조하기 위해 억지로 첨언한 것이 아니기에 큰 탓을 할 필요는 없으리라. 특히 이 책의 출판과정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서문〉에 귀띔)을 들어보면 그럴 수 있는 일이란 생각도 든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모두 3부, 100장(章)로 이뤄져 있다. 각 장에는 질문과 답변이 있다. 물론 사기나 사마천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문답법으로 다루었다. 각 부의 정식 제목은 〈130권 52만 6,500자의 『사기』, 어떤 책일까?〉, 2부 〈사마천, 위대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역사가〉, 3부 〈사성(史聖)이 잠들어 있는 곳을 찾아〉로 돼 있다. 1,2부는 사마천의 일생과 사기의 내용, 사기를 쓴 이유 등 사마천과 사기의 모든 것을 증명된 사실을 중심으로 해석 설명했다. 3부는 사마천의 고향이자 사마천이 묻힌 유적지를 찾은 저자의 탐방기를 남겼다. 저자가 〈서문〉의 마지막 부분에 남긴 *뱀의 다리(蛇足)라고 덧붙인 변명 형식의 글에서 코로나 여파 등으로 원고가 또 늘어진 점과 앞으로 '백문백답' 시리즈는 『중국지최(中國之最)』, 『삼국지』로 이어진다고 밝혀 기대를 갖는다.

 


 

각 부에는 각각 서문이 따로 시작된다. 1부의 서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기』는 5,000년 중국 역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역사서로 꼽는다. 3,000년이란 시간을 다루고 있는 통사이자 한반도 넓이의 약 15배에 해당하는 약 3000만제곱킬로미터의 공간을 섭렵하는 당시로서는 전무후무한 세계사다. 『사기』는 객관적 사실만을 기록한 기록물이 아니다.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관통하여, 일가의 말씀을 이룬* 아주 주관적인 역사서이다. 사실의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추구하려 한 역사가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서이다. 『사기』는 또 사마천이 발로 쓴 현장 보고서이자 그의 극한 고통이 수반된 비극적인 저술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기』는 슬픈 책이다. 이제부터 『사기』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아본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관련 대목으로부터 궁금증을 풀어간다. 아울러 『사기』가 후대에 미친 영향에 대한 내용도 함께 살펴본다. 『사기』의 매력과 정신세계를 좀 더 깊이 감상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구천인지제(究天人之際) 통고금지변(通古今之變) 성일가지언(成一家之言) : 저자 주

먼저 서한의 동한의 명칭 문제를 놓고 교과서에서의 혼돈을 질문한다. 이에 저자가 답변을 하며 바로잡고 있다. "사실 이 교과서의 해당 부분을 확인하고 좀 놀랐고 실망도 했다. 중국에서의 공식 호칭은 서한과 동한이 맞다. 우리도 한때 전한, 후한 이렇게 부른 적이있었는데 일본의 영향이 크다. 반고 이후의 역사가로 범엽이 편잔한 『후한서』의 영향이기도 한데 『전한서』가 있으면 모를까, 그런데 『전한서』라는 책은 없다. 중국의 공식 호칭에 따라 서한과 동한으로 쓰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 장(章)에서는 역사서 기술방법에 따른 부분도 다룬다. 본기의 '기(記)/와 열전의 '전(傳)', 두 글자를 합쳐 기전체라 한다. 핵심으로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진 이 기전체라는 역사 서술 체제가 사마천에 의해 창안되어 『사기』의 서술 체제가 디었고, 그 뒤 2,000년 동안 중국 공식 역사서의 기본적인 서술 체제가 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말하자면 『사기』의 기전체 체제가 2,000년 동안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과 비엣남에까지 영향을 주었다.(비엣남=베트남)

 


 

'사기의 다섯 체제'에 대한 문제도 1부에서 다뤘다. 『사기』의 형식상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사기』는 전체 130권에 52만 6,500자로 이루어져 있다. 12권으로 이루어진 본기는 제왕을 중심으로 그 업적과 각 방면의 주요 사건을 기록한 체제다. 그래서 흔히 제왕들의 기록이라고 하는데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제왕이 아니었던 항우와 유방의 아내인 여태후도 본기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후대 보수적인 학자들에게 심한 욕을 먹었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서한의 경우 제왕의 범주는 〈고조본기〉부터 〈효무본기〉까지의 기록이고, 〈진시황본기〉 역시 그 범주에 든다. 하지만 진시황 이전 시대는 나라별로 되어 있다. 〈하본기〉부터 〈진본기〉까지가 그렇다. 그런데 첫 권인 〈오제본기〉는 또 다르다. 다섯 제왕을 한꺼번에 기록했는데 이는 남아 있는 기록의 양 때문으로 보인다. 항우, 진시황, 여 태후, 그리고 한나라 제왕들에 관한 기록이 상대적으로 많고 진시황 이전 시대는 제왕을 따로 떼어 기록할 만큼 양이 풍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표는 흔히 연표라고 설명하는데 이 역시 딱 들어맞는 설명은 아니다. 1년 단위로 하는 연표도 있지만 한 달을 단위로 한 상세한 표도 있고, 저 멀리 상고시대는 년으로 남은 기록도 없기 때문에 세대별이라는 더 큰 단위로 남겼다. 아무튼 이 표는 사마천의 천재성이 번득이는 체제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다른 곳에서 기록하지 못한 인물이나 역사 사실들을 이 표를 통해 보충하여 이를 함께 살피면 보다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인물과 사건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8권으로 된 서는 대개 문화와 제도로 소개하는데, 그정도로 알고 있으면 된다. 30권으로 이루어진 세가는 흔히 제후나 왕들에 관한 기록으로 설명하곤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역시 충분치 않다. 본기와 마찬가지로 제후나 왕이 아닌 인물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춘추시대 유가를 창시한 공자와, 중국 역사상 최초의 농민 봉기군 우두머리였던 진승(陳勝)이 이 세가에 들어가 있다. 또 한나라 이전 시대인 춘추전국시대는 인물이 아닌 나라별로 되어 있다. 끝으로 130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70권의 열전이다. 대부분 인물들의 기록이라는 점은 맞지만 소신을 가지고 살았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왕자, 귀족, 공신, 관리, 개혁가, 유세가, 군인, 점쟁이, 의사, 상인, 코미디언 등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사기』의 백미로 불린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조선열전〉이다. 권115이며, 고조선 명망사 기록이다.

 


 

『사기』는 역사적 정설만 기록한 게 아니다. 서술 체제를 달리해 인물 중심의 서술에는 춘추시대 한 여성의 남성 편력, 섹스 스캔들도 나와 있다. 〈진기세가〉에 등장하는 하희(夏姬)라는 여성을 거쳐 간 여러 남자들의 행태, 그리고 그것이 남긴 후유증 등이 서술돼 있어 흥미를 자극한다. 요즘 말하면 드라마 각본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이에 따르면 중국사 5,000년을 통틀어 600명 가까운 제왕들이 존재했다. 춘추시대 제후들까지 넣으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제왕 559명 중에서 제 명에 죽지 못한 자들이 무려 3분의 1에 가깝다는 통계도 있다. 이들 3분 1의 제왕들의 사망 원인을 따져보면 여성이 개입된 경우가 적지 않다. 제명에 못 죽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나라를 잃은 제왕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경국지색이란 말이 떠오른다. 그러나 망국의 책임은 정작 여성이 짊어졌다. 춘추시대 정나라 목공의 딸로 태어난 귀한 신분의 하희라는 여성은 여러 남자를 망친 것은 물론 여러 나라를 시끄럽게 만든 희대의 요부, 요즘 하는 말로 '팜므 파탈'이었다. 이 대목에서 조선의 '어우동'이 떠오르기도 하낟. 일차적 책임은 그녀에게 홀린 남자들에게 있겠지만, 그 과정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이 스캔들을 기록한 『사기』의 내용을 따라가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사건이 하희가 시집간 진나라의 내부 문제를 벗어나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함으로써 당시 국제 정세의 미묘한 변화를 이 추문의 과정을 추적하면서 확인하는 묘미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절면한 필치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하희의 스캔들은 워낙 떠들썩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여러 군데에 기록을 남기고 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은 대의명분을 중시하던 춘추시대 초기와 대의명분이 변질되기 시작하는 춘추 후기인 오·월 시대를 완전히 구별 짓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남자들이 하희를 농락한 것이 아니라 하희가 남자들을 농락한 희대의 사건이었고, 대의명분보다는 실리를 위해서는 앞뒤를 가리지 않은 오월동주 시대와 조금 멀리는 전국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전주곡과도 같은 기가 막힌 섹스 스캔들이었다. 간단하게 말해 하희는 적어도 '네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고 일곱 남자의 혼을 뺀' 여성이었다. 기록에 남은 여성 가운데 하희만큼 큰 파문을 불러일으킨 여성은 없었다.

 


 

『사기』를 쓴 사마천을 '사성(史聖)'이라고 표현하고, 한편으론 '위대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역사가'로 불리워진다. 저자가 만든 조어가 아니라 실제 그의 고향이나 중국에서 그렇게 추앙되고 있는 것이다. 사마천은 보통 사람이라면 겪지 않을, 겪을 수 없는, 겪지 않아도 될 고난을 겪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이 저청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남아 역사서를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고 하고 싶은 말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그는 시대가 부여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회피할 수 있었고 그런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었다. 그가 당한 고난과 고통에 비추어본다면 그는 모든 책임을 면제 받을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숨지도, 도망치지도 않았다. 그러기에 그의 고귀한 정신과 업적은 위대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는 55년을 살았다. 47세 이후의 후반 10년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 '지옥 속'에서 그는 값지고 소중한 유산을 인류에게 남겼다. 그 유산은 그의 피를 먹고 태어났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구에 회자되는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말이 있지만 소신과 신념에 의한 죽음을 절실하게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싶다. 저자가 2부 〈사마천, 위대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역사가〉의 〈서문〉에 남긴 말이다. 이 말의 숨은 뜻은 『사기』의 가치보다 『사기』를 완성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죽음이나 어떠한 형벌도 감내하한 사마천의 위대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웬만한 사람은 사마천이 어떤 형벌을 받아 목숨을 보전했는지 알 것이다. 저자는 사마천이 걸었던 길, 즉 삶과 죽음 그리고 사색의 길을 주목하며 그의 정신세계를 더듬는다. 이 장(章)은 그렇게 쓰여진 것이다. 시작 부분만 독자들에게 전한다. 사마천이 한무제로부터 받은 형은 역적 두둔죄 '사형'이었다. 저자는 궁형을 자청한 장면으로 돌아가본다. 시간순으로 중요한 대목만 언급한다. 때는 기원전 99년. 사마천의 나이 47세였다. 그래 5월 부제는 한 해 전인 기원전 100년 대완 정벌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이광리에게 3만의 기병을 주어 흉노를 공격하게 했다. 결과는 3만 기병 대부분을 잃는 처참한 패배였다. 무제는 음식을 거부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답답했던 무제는 사마천에게 의견을 물었다. 사마천은 황제의 노기를 조금이나마 가라앉히려고 충정으로 '항복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훗날을 기약하기 위해 벼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패장을 두둔하려 했던 것은 다소 의아하다. 흉노 정벌을 위해 후발로 보낸 공손오란 자가 이릉이 흉노에게 군사 훈련을 시키고 있다고 보고를 올렸다. 무제는 사형을 선고했고, 사마천은 궁형을 자청함으로써 사형을 면했다.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궁형왕법(宮刑枉法),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 것은 법을 잘못 적용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한마디로 ‘억울하다!’는 것이다. 이 패방(牌坊, 패루牌樓라고도 한다. 우리의 홍살문과 비슷하다)에 그런 뜻이 숨겨져 있었구나! 모두들 무릎을 치면서 감탄했고 내 속에선 그 무엇이 치밀어 올랐다. 사마천의 고향 마을로 가는 입구에 버티고 선 ‘법왕행궁’ 패방은 그렇게 내 마음을 쥐어뜯어 놓았다. 하지만 누가 정말로 사마천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세웠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이것이 사마천과는 전혀 상관없는 유지이고, 또 멋대로 글자의 의미를 왜곡한 것이라도 해도 사마천이 당한 궁형의 억울함을 너무나 절묘하게 대변하고 기가 막히게 표현해준 것이 아닌가! 사마천 고향 마을 곳곳에 이런 기막힌 사연들이 남아 있었고, 이 패방 또한 단 네 글자를 통해 사마천의 억울함을 함축적이면서도 비통하게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p.427)

 

저자 : 김영수

 

김영수(金瑛洙)는 지난 30여 년 동안 사마천(司馬遷)과 『사기(史記)』, 그리고 중국을 연구하고 25년 동안 중국 현장을 150차례 이상 탐방해 온 사마천과 『사기』에 관한 당대 최고의 전문가이다. 저자는 지금도 사마천과 중국의 역사와 그 현장을 지속적으로 답사하며 미진한 부분을 계속 보완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와 역서로는 『완역 사기』 시리즈를 비롯하여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모든 것 1 : 사마천, 삶이 역사가 되다』 『절대역사서 사기 -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모든 것 2』가 있고, 최근에는 『리더의 망치』 『리더의 역사 공부 - 사마천, 우리에게 우리를 묻는다』 『리더와 인재, 제대로 감별해야 한다』 『사기, 정치와 권력을 말하다』 『사마천 다이어리북 366』 『인간의 길』 『백전백승 경쟁전략 백전기략』 『삼십육계』 『알고 쓰자 고사성어』 등을 펴냈다. 이 밖에 『오십에 읽는 사기』 『제왕의 사람들』 『난세에 답하다』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제자백가의 경제를 말하다』 『사마천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기를 읽다』 『1일 1구』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 새털보다 가벼운 죽음』 『백양柏楊 중국사 1, 2, 3』 등이 있다. 영산 원불교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사단법인 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집필과 강연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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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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