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보자기
도광환 지음 / 자연경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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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미술-보자기』는 그림 감상에 대한 글이다. 더 쉽게 표현하자면 그림 감상법이다. 저자 도광환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그렇다고 도슨트나 미술 평론가도 아니다. 미술이나 그림과 관련 있는 공통점을 굳이 말하자면 사진기자다. 사진도 예술 사진을 찍는 작가로서의 사진 전공자가 아니라 보도 사진으로 25년을 현장을 누빈 기자다. 여기 있는 글들은 사진기자의 '미술 감상문'이다. 저자는 "사진과 미술은 ‘이미지’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다른 점도 뚜렷하다. 찍는 일과 그리는 일, 기계적인 수단과 수공예적인 수단, 완성 시간 등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현장에서 수많은 보도사진을 찍으며 ‘사진의 문법‘에 익숙한 사진기자가 왜 미술 감상에 몰입하고 책으로 출간했을까?

이유는 단순했다. 연합뉴스 사진기자인 저자는 미술에 관해 무지함을 넘어 무식한 사람이었다고 털어놓는다. 2014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우연히 레오나르도의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관람한 뒤 미술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후로 틈만 나면 미술 관련 서적은 물론 미학, 문학, 철학 책들을 탐독하며 심미안을 키워 나갔다. 저자는 1년 6개월 전, 지인의 권유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술이야기를 썼다. 이틀에 한 건꼴로 썼다고 한다. 예상 외로 독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미술이야기’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 연재물을 다시 편집한 뒤 묶은 책이 이 책 『미술-보자기』다. 보자기는 ‘보는 일, 자신을, 기억하는 힘’이라는 뜻의 머릿글자로 만든 조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나'를 찾아가는 미술이야기를 마치 보자기를 풀듯이 하나하나씩 독자들의 눈앞에 펼친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는 바는 미술사나 작가들의 화풍, 에피소드 등이 아니다. 작품마다 그가 느낀 사람들의 모습과 살아가는 이야기, 작가와 시대의 고민 등을 자신의 사유로 걸러 풀어나간다. 제목처럼 보자기에서 뭔가를 하나하나 꺼내듯이 톡톡 던지는 이야기들이다. ‘나는 누구인가’부터 시작해, ‘나를 둘러싼 사람들’, ‘나를 만든 정신과 물질’, ‘나와 예술적 사유’라는 대제목 아래 ‘자화상’, ‘가족’, ‘친구 및 이웃’, ‘엄마’, ‘여성’, ‘신화’, ‘종교’, ‘역사’, ‘도시’, ‘자연’, ‘상상’, ‘표현’, ‘최초’ 등으로 작품을 분류해 다시 117개의 소항목에서 222편의 작품들을 펼쳐 놓는다.

독자도 최근 미술 관련 서적을 꽤 많이 읽어봤지만 미술 교양서적 중 이렇게 많은 작품을 제시했던 책은 드물다. 감상문은 짧지만, 강한 울림이 있다. 작품의 수가 전혀 소란스럽게 하지 않는다. 저자가 쓴 글들의 방향과 작품들이 가리키는 종착지는 결국 ‘나’다. ‘나에 대한 고찰’로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약속, 나를 찾는 일’로 끝난다. 저자는 미술 평론가 이진숙이 언급한 “이야기는 힘이 세다”라는 짧은 문장을 강조하며, 미술 작품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물론 이야기의 목표는 ‘나를 찾는 일’이다. 저자는 서문 「책을 내면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평면에 그려진 그림과 조각의 입체미를 통해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으로 얽힌 세상과 인간을 알고, 그 속에 서린 차별을 지워나가면서 종국엔 ‘나’를 더 알고 싶다. 나는 내가 소중하게 간수하는 ‘예술의 힘’을 믿는다. 그건 ‘자유와 해방으로 향하는 출구를 가리키는 나침반’이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1장 〈‘나’는 누구인가〉, 2장 〈‘나’를 둘러싼 사람들〉, 3장 〈‘나’를 만든 정신과 물질〉, 4장 〈‘나’와 예술적 사유〉, 5장 〈다시, ‘나’ 는 누구인가〉이다. 각 장은 각각의 「들어가며」란 별도의 서문을 갖고 있다. 각 장의 성격에 대한 개요다. 대부분 저자의 그림 감상이나 제시한 언어에 대한 사유의 말들이다. 저자는 서문 「책을 내면서」에서 자신만의 미술관(觀)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더한다. "시각 예술인 미술은 고유의 매력이 있다. 문학이나 음악에서처럼 비유적인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선이 있고, 색이 있고, 표정이 있다. 보이는 것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다. 또는 전해지는 이야기를 상상해서 그리기도 하며, 변혁을 꿈꾸는 이미지를 창출하기도 한다. 보이는 것을 보는 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하는 일, 그것이 미술이다."(p.7)

저자의 미술관을 알기 위해 긴 서문을 읽어본다. 이 서문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저자의 미술관이다. 저자는 미술 감상의 방법을 두 가지로 나눈다. '보고 느끼는 일'과 '보고 읽는 일'이다. 저자는 미술 에세이스트 최혜진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가 막연히 정론이라고 여기는 관점도 어떤 누군가의 주관일 뿐이다. 전문가들로부터 선택된 것이다. 객관적인 시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에 대조적인 일본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나카노 교코는 그림이 그려진 배경이나 뒷이야기, 역사적 사실을 알아야 그림을 감상하는 일이 즐거워진다면서, '보기'보다 '읽기'를 주문한다고 저자는 설명해준다. 저자는 배우는 자세로 두 사람의 말에 동조한다. 둘 다 일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신화화나 역사화, 초상화의 경우는 그려진 인물들이 누군지, 왜 그림에서 그런 행동이나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알고 나면 이해의 폭과 재미가 배가되는 게 사실이다. 반면 인상주의 작품들이나 추상화 등 현대 미술은 각 개인마다 느끼는 감성이 중요하므로 굳이 정해진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저 바라보는 일'이 더 소중하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미술은 보는 일이다. 그리고 감동하는 일이다. 그로부터 바꾸는 일이다. 아무 지식도 없이 접한 그림이 마음을 떨리게 할 수도 있고, 처음엔 스쳐 지나갔던 조각품이지만, 여러 배경을 알고 나서 작품 앞으로 다시 다가서면 한없이 바라보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래서 항상 작품을 보는 '나'를 중시하려고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 책은 각 장의 각 항목별 제목이 대부분 짧은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되는 1~3음절의 단어가 대부분이다. 이를 테면 1장 〈‘나’는 누구인가〉는 두 개의 소제목으로 분류된다. '나'에 대한 고찰과 자화상, '응축된 나를 담는 일'이다. 이 가운데 '나'에 대한 고찰에서 다섯 개의 단어가 등장한다. 「죽음」, 「참회」, 「성찰」, 「고독」, 「환희」이다. 모든 단어들이 함축적이며 오래 생각해도 실체에 접근하기 힘들다. 우리 삶은 그렇게 어렵게 이루어져 있나 보다. 또 자화상 부분에서는 「자부심」, 「방황」, 「고통」, 「운명」, 「불안」, 「자랑」, 「혼돈」이 이어진다. 각 항목마다 그림이 등장하며 저자의 사유를 담은 그림의 해석도 있다.

 


 

「죽음」 항목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삶에 대한 탐구를 위해 화가들은 '죽음'에 대한 문제부터 고찰했다. 누구나 죽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존재에게 가장 평등한 대면은 죽음이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지만, 나 자신과 작별해야 하는 시간은 반드시 온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영국의 근현대를 대표하는 작가인 E M 포스터의 말을 인용한다. "죽음 자체는 사람을 파괴하지만, 죽음에 대한 관념은 사람을 구원한다."

르네상스 시기, 독일의 한스 홀바인이 그린 〈그리스도의 죽음〉(1521)은 죽음을 대표하는 시선이 이전과 크게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죽은 예수의 거무튀튀한 얼굴빛과 손과 발, 눈을 뜨고 입을 벌린 표정, 흐트러진 머리, 가녀린 몸, 살짝 돌린 고개 등이 성스럽거나 신비하지 않다. 디테일한 표현이 주변의 이웃이나 이름도 모르는 어떤 이의 죽음을 그린 것 같다. 관 속에 누운 사람이 그리스도임을 알게 되면서, 종교와 세상을 바라보는 줏대가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오래 바라보기 쉽지 않다.

 


 

「고독」에서 저자는 20세기 초중반 미국 최고의 작가, 에드워드 호퍼가 줄곧 관통한 주제도 '고독'이었음을 밝힌다. 폭발적인 미국 자본주의의 발전 속에 관게의 중요성은 커지고 얽히지만, 고독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된다고 말한다. 그의 그림 〈모닝 선〉이 제시된다. 밝은 햇살이 비치는 어느 침실, 한 여인이 침대 위에 앉아 바깥을 보고 있다. 표정 탓인지, 실내외 정경 탓인지 무척 쓸쓸하다. 방은 환하지만 그림의 분위기는 어둡다. 호퍼의 다른 작품을 보면 대부분 이런 고독이나 공허의 애수가 묻어 있다. 호퍼는 그림에 대한 세인의 평가와 관련해, 자신은 딱히 고독의 주제를 의도적으로 추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호퍼 내면에, 우리 내부에 이미 잠복해 있는 응어리진 고독에 대한 확인으로 이해된다고 한다. 7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호퍼의 그림에 공감하는 이유는 여전히 공허와 고독이 우리 삶에 가까이 때문일 것이라고 감상문을 적는다.

「불안」 역시 저자는 포착해 낸다. 고갱은 추운 겨울 한 가운데 서 있다. 쓸쓸한 나무들이 냉담함을 더한다.(〈안녕하세요, 고갱 씨〉) 고흐와 결별한 뒤에도 고갱의 삶은 갈팡질팡했다. 말년에 이르러서야 투정이나 강박을 벗어던진 듯, 서양미술사에서 명징한 철학적 사유가 담긴 작품으로 인정받는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완성했다. 실패와 좌절이 반복되고, 가족도 내팽겨 친 삶을 이어갔지만 고갱이 끝내 인류의 유산을 남길 수 있었던 건 자신 내부에 내재한 예술혼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고갱의 예술혼을 읽어낸다. 뒤늦게 화가의 길로 들어섰던 '초심'의 발현이었다는 것이다. 사후에는 '종합주의'라고 불리는 새 지평을 열었다. 기존 인상주의의 '주관성'이 오히려 대상을 해체시킨다고 여겨, 인상주의가 소홀히 한 색채의 단편들을 '객관화'시켜 강한 윤곽선이 만든 면으로 '종합'했다. 고난 속에서 예술혼을 잃지 않는 대표적인 예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3장 〈‘나’를 만든 정신과 물질〉에서 저자는 「들어가며」를 통해 '이야기'에 대해 말한다. "세상에는 무한한 이야기가 있다. 공동체마다 사람마다 시대마다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는 정신이고 물질이며 삶이다. 문학도, 철학도, 과학도, 미술도, 음악도 모두 이야기다. 이야기가 쌓여서 문화가 된다. 고고학적 유물부터 문자, 문학, 그림, 음악 등이 이야기를 전한다. 사람들은 항상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간단하고 짧은 글이지만 의미는 '삶은 이야기'라고 응축시킬 수 있다. 저자의 「들어가며」란 글은 네덜란드의 기이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그린 기이한 그림, 〈세속과 쾌락의 정원〉에 맞춤한다. 저자는 이 그림을 죽음에 대한 경고, 즉 '메멘토 모리'에 대한 '기독교적 설화'임과 동시에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 앞에서 죽어나가는 공동체 민중들의 모습을 극단적인 은유와 상징으로 그려낸 것으로 해석한다.

 


 

신화는 그 자체가 이야기고 인간의 모든 감정이 신화 속에서 되살아났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인류가 살아온 만큼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기 실린 222편의 그림들 중에는 매우 유명하고 잘 알려진 그림들이 많지만 독자로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림도 꽤 있다. 저자가 그림을 먼저 선정하고 거기에 대한 해석이나 이야기를 곁들인 것이 아니라 '나'와 '우리', 그리고 '삶'이라는 명제에 맞춰 그림을 선택했다는 점이 뚜렷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특히 엄숙하고 장중한 신화 속 이야기 중에 웃음을 짓거나 미소를 머금게 하는 그림이 있어 여기에 저자의 이야기를 옮긴다. 17세기 이탈리아 볼로냐의 화가 귀도 레니의 〈술 마시는 바쿠스〉다. 책에 따르면 그는 대부분의 작품을 신화와 성경 속에서 찾아 그렸다. 신과 성인들을 차분하게 그린 그였지만, 이 그림에서는 진지함이나 엄숙함보다는 장난스러움이 앞선다. 음주하는 표정, 자세, 배뇨, 신체 묘사가 옆에 놓인 술통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바쿠스는 인간 세멜라와 신 제우스 사이에 태어난 존재다. 알크메네와 제우스 사이에 태어난 헤라클레스처럼 정실부인, 헤라의 분노를 샀다. 세멜레는 헤라의 계략에 타 죽고 만다. 제우스는 아기를 요정들에게 맡겨 키운다. 바쿠스가 술의 신이 된 건 장성해 포도를 재배하고 포도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그림처럼 '아기 바쿠스'는 은유다. 술은 인간에게 구원 혹은 도피 같은 물질이다.

 


 

수많은 그림 중에 기대하지 않던 한국화가 등장해 독자의 눈길을 끈다. 박수근처럼 이미 대단한 인기(그림값으로) 있는 화가지만, 현대 화가는 미술학도나 미술 전공자가 아니면 잘 알지 못한다. 우리 미술 교육의 문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비전공자인 독자의 민족적, 국가적 마인드에 의한 것이란 비난을 감당할 수 없기에 주장하지는 못하지만 감상 표현은 쓰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정영주의 〈사리지는 풍경〉 연작 중 한 작품이다. 빈곤과 연민, 결핍과 음습이 먼저 떠오른다는 저자와 달리 독자에게는 아늑함과 아날로그적 훈훈한 느낌의 감성이 앞선다. '달동네 작가'로 불린다는 정영주는 최근 〈어나더 월드〉라는 전시회도 열었다는 데 독자는 금시초문이다. 또 독자는 판자촌이나 산동네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중년의 세대여서 그런지 이런 그림이 오히려 더 감성을 자극한다. 직접 살지는 않았더라도 감성적으로 같은 시대를 살았단 이유만으로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이라. 저자는 그림에서나마 주민들의 지친, 하지만 가족으로 향하는 경쾌한 귀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독자에게는 이 시절 골목길은 추억이고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이다. '가난했지만 행복한 시절'이라는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이 책에 실린 222편의 그림에 대해 다 설명할 수 없어 독자의 눈에 띈 몇 작품만 대상으로 서평을 썼다. 독자들의 양해 바라고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저자 : 도광환

 

1993년 연합통신(현재 연합뉴스) 사진기자로 입사해 약 25년 동안 수많은 현장에서 보도사진을 찍었다. 미술에 별 관심이 없었으나, 2014년 10월, 출장지였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벽화, <최후의 만찬>을 본 뒤 ‘영혼의 떨림’에 가까운 감동을 얻었다. 이후 미술 서적은 물론 미학,문학, 역사, 철학, 음악 등의 책들을 꾸준히 탐독했다. 현장을 떠난 뒤로는 연합뉴스 사진부장, DB부장, DB출판국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연합뉴스 ‘글로벌 코리아 본부’ 산하 ‘K컬처기획팀장’을 맡고 있다. 팀에서 운영하는 문화 아카데미인 <여행자학교> 강좌를 기획함과 동시에 ‘보도사진과 서양미술’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도 하고 있다. 팀 내 영문 기반 한류 문화 사이트인 ‘K-ODYSSEY.com’도 관리한다. 또한 연합뉴스에서 [미술로 보는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매주 한 편씩 미술칼럼을 쓰고 있다. 이 책을 쓴 계기가 된 페이스 북을 통해 글쓰기도 활발하게 하는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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