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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인 1
제인도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4월
평점 :

'대리인'은 법률 용어이다. 민법상 대리를 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대리인(代理人, agent)이라고 한다. 대리는 본인을 대신하여 의사표시를 하는 제도이다. 대리인의 행위는 효과만이 본인에게 귀속하므로 법인의 행위 그 자체가 되는 법인의 대표와 다르다. 대리인은 스스로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의사능력이 있어야함은 물론이지만 행위능력은 없어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대리행위의 효과는 직접 본인에게 귀속하고 대리인 자신에게는 미치지 않으므로 대리인은 능력자임을 요하지 않는다(민법 제117조). 즉 대리인이 무능력자로서 대리행위를 하더라도 무능력자의 이익이 침해될 염려는 없기 때문이다.
무능력자의 대리행위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요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리인이 무능력자였다는 이유만으로는 본인이나 대리인은 물론 법정대리인도 그 대리행위를 취소할 수 없다. 다만 민법은 본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무능력자가 법정대리인이 되는 것을 금지하는 특칙을 정하는 경우가 많다(예 : 민법 제937조)[『법률용어사전』].
이 책 『대리인』은 소설 작품이다. 저자는 제인도 작가로 이미 전작 웹소설 〈죽은 남편이 돌아왔다〉와 〈어나더: 또 다른 너〉가 큰 인기를 끌어 잘 알려진 작가이다. 다만 웹소설을 잘 읽지 않는 독자로서는 처음 만난다. 제목 '대리인'은 최근 새롭게 떠오른 직종 '대리운전 기사'처럼 사용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자동차 전문잡지사 기자 유찬은 아르바이트로 대리운전을 하다 슈퍼카를 어느 날 맡게 된다. 슈퍼카는 일반적으로 고출력, 고성능, 고가의 차가 성능, 디자인, 상품성을 종합적으로 인정받았을 때 자동차에 부여하는 칭호다. 즉 자동차 경주에 출전하는 레이싱카 이상의 성능(시속 300㎞ 이상)을 갖춘 채 일반 도로 위를 달릴 수 있도록 만든 양산용 최고급 스포츠카로, 영화 제작 등을 위해 특별히 몇 대만 제작된 차처럼 소장가치가 있는 '희귀한 차'를 가리키기도 한다.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만한 대표적인 슈퍼카 메이커로는 람보르기니, 페라리, 포르쉐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이들은 1950년대부터 보다 뛰어난 성능을 갖춘 차를 앞다퉈 선보이며 지금까지 슈퍼카 경쟁을 이어오고 있다. 여기에 맥라렌, 부가티 등 슈퍼카 전문 메이커들도 가세, 세계 최고의 차를 만들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가격은 수억 원부터 수십 억원에 이르는 등 다양한 옵션을 장착할 수도 있는 주문제조 방식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찬이 가끔 몰아본 경험이 있는 슈퍼카 대리 기사로 부족한 급여를 충당하는 '용돈벌이'로 대리 운전을 해주기도 한다. 이날 유찬이 대리 기사를 해주기로 한 차는 슈퍼카여서 오랜만에 슈퍼카를 몰게 돼 기분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에 가벼운 즐거움에 흥분감마저 감돈다. 슈퍼카의 주인은 〈헬시코어〉의 대표이자 유찬의 초등학교 동창인 정이준이었다. 먼저 이준이 유찬을 알아보고 살갑게 굴며 그의 초대로 집에 가서 술을 마신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이준은 죽어 있다. 때마침 나타난 윤조와 또 다른 동창 도원(최도원)은 유찬을 살인범으로 확신한다. 살해 혐의로 억울하게 구속된 유찬. 유치장에서 절망에 빠져있던 중 준혁을 만나 위로를 받고 다행히 기소유예로 풀려난다. 하지만 다니던 회사에서도 잘리고, 취업도 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맞는다. 그렇게 2년의 백수 생활을 보내던 중, 친한 형 성재의 도움으로 IT기업인 〈위너〉 이한경 사장의 수행 기사로 취업한다. 위너의 근무 환경은 좋지만, 우연히 전 수행 비서들 모두가 사고사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마음 한구석에 불안함을 감출 수 없다.

특히 2년 전, 자신을 범인으로 몬 윤조가 사장의 연인이라는 사실도 달갑지 않다. 우연히 준혁을 회사에서 마주치는데, 그는 위너의 상무이자 사장의 형이다. 그는 2년 전의 만남을 상기하며 유찬에게 여전히 호의를 베풀며 정신적인 지주가 된다. 그는 동료이자 사장의 비서인 민가영과 사랑에 빠지고, 과거 자동차 잡지 기자 경력을 살려 준혁이 이끄는 회사의 새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어두웠던 과거에서 벗어난 자신의 앞날을 꿈꾼다. 사장의 개인적인 심부름으로 파란 쇼핑백을 전달받고 전달하던 중, 우연히 유명 바이크 브랜드의 새로운 모델인 아이콘 MTT의 회원들이 연관된 것을 알고 흥미를 느낀다.
어느 날 오전 업무를 담당하는 수행 기사 영태가 갑자기 잠적하여, 두 배로 바빠진 유찬. 재미교포 투자자인 손영익을 잘 보좌해 준혁의 프로젝트에 1조 원이라는 거대 투자를 유치하는 데 일조하며, 이 공로로 유찬은 홍보팀 발령을 약속받고 준혁은 새로운 법인을 만들어 나간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한경이 약물 과용으로 쓰러지며 유찬의 상황은 180도 바뀌게 된다. 한경의 계속된 의식불명 상태로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자, 기다렸다는 듯 유찬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기 발령까지 내려지며, 규진은 〈헬시코어〉와의 합병을 조작하는 등 주변 상황은 점점 악화한다.

사장이 쓰러진 집 거실에서 발견된 파란 쇼핑백. 이 모든 상황이 파란 쇼핑백과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한 유찬은 연인 민가영과 비밀리에 조사를 시작하지만, 민가영이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오전 시간에 근무하는 동료 수행 기사인 박영태 실장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때마침 알게 된 윤조와 이한경 사장과의 스캔들, 드러난 준혁의 정체. 그리고 정이준의 사건 현장에 함께 있던 최도원과의 만남. 유찬은 자신을 둘러싼 모두가 의심스럽기만 하다.
이 책 『대리인』은 1권, 2권으로 분재돼 있다. 페이지 수가 모두 합쳐 800페이지가 넘는다. 1장부터 28장까지 이루어져 있다. 1장 「사건에 연루되다」, 2장 「새로운 시작」, 3장 「최고의 직장」, 4장 「소문을 모으는 여자」, 5장 「거듭된 만남」, 6장 「납득할 수 없는 일」, 7장 「박 실장의 실종」, 8장 「궁금증」, 9장 「파란 쇼핑백」, 10장 「돌발」, 11장 「기회일까」, 12장 「드디어, 결국」, 13장 「예상하지 못한 사고」(이상 1권) 14장 「내가 몰랐던 이야기」, 15장 「낯선 듯 낯익은」, 16장 「수행 기사의 덕목」, 17장 「우연히 잡은 기회」, 18장 「블루 블러드」, 19장 「진실에 한 발 더 가까이」, 20장 「그들의 속내」, 21장 「추측의 주인공」, 22장 「사장의 이면」, 23장 「복수의 다짐」, 24장 「누군가의 위협」, 25장 「마침내 드러난 정체」, 「에필로그_레드 라이트」, 「에필로그_그린 라이트」 등이다. 소설의 장(章) 구별은 소설 전개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가끔은 장면 전환이나 사건의 또 다른 전개, 시점의 변화 등에 주로 사용되지만 독자는 이 소설의 장 구분은 소설의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하는 목적이 컸다고 생각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 소설은 기업에서 경영권을 잡기 위해 벌이는 권력 다툼과 비리를 다루고 있다. 이 경영권 전쟁터에 정의란 없다. 힘없는 자는 누군가에게 이용당할 뿐이다. 말 그대로 약육강식의 세상이다. 주인공 유찬은 자신이 대리인인 줄도 모른 채 전쟁터의 한가운데에서 피를 묻히며 온몸으로 사건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배경만 바뀌었을 뿐 지금 우리의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힘없는 자, 대리인이 될 것인가, 대리인을 만들 것인가. 저자는 우리 일상과 절대 떼어 놓을 수 없는 자동차, 그리고 흔히 볼 수 있는 대리기사를 소재로 하여 사회적 약육강식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첫 문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빠른 전개와 몰입감으로 두 권이라는 분량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읽히면서도, 마지막 한 장면까지 절대 긴장을 놓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출판사 측은 소설 분량이 길기에 자칫 독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등장 인물」 소개도 내놓고 있다. 독자 생각으로는 인물의 성격을 미리 아는 것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한 번 음미해본다는 차원에서 서평 뒷 부분에서 다루고 있으니 처음 책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등장 인물」 부분은 독서 후에 읽기를 바란다. 풍자나 사회 비리 폭로 소설의 경우 인물 관계도나 인물의 성격을 미리 말해주는 것은 사건이 복잡하고 다수의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이 대부분이다. 자칫 스토리를 즐기는 독자들에게 스포일러를 본의 아니게 제공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사회 소설이긴 하지만 범죄 추척이나 미스터리 소설보다는 장르소설에 해당되기 때문에 출판사 측에서 미리 소개한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 김유찬: 자동차 잡지 기자 출신. 자동차를 좋아하고 운전을 즐긴다. 아르바이트로 슈퍼카 대리운전을 하다 살인사건에 휘말린다. 그 사건으로 기소유예를 받고 자신감을 많이 잃었으나, 바르고 성실해 도와주는 이들이 주변에 많다. 회사 법인카드까지 아껴 쓸 정도로 정직하고 은혜는 꼭 갚으려 한다. 불안할 때마다 다리를 떠는 버릇이 있다.
* 정이준: 유찬의 초등학교 동창. 세계적으로 거대한 제약회사인 〈케미콜론〉 집안의 아들로 〈헬시코어〉의 사장이다. 부유하게 자라 돈을 흥청망청 쓰는 편. 사고수가 있다는 윤조의 점괘에 쌍꺼풀 수술을 했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 이한경: IT기업 〈위너〉의 대표. 회사의 일을 집에 가져와서 할 정도로 워커홀릭이다. 사람들에게는 친절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엄격한 완벽주의자. 피로와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프로포폴을 애용하다 중독된다.
* 이준혁: 사람 좋아 보이지만 구치소에 여러 번 다녀온 미스터리한 인물. 한경의 이복형이다. 직원들에게 잘 베풀고 친절하며 권위 의식이 없어 회사에서 인기가 높다. 덩치가 크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반면 항우울제인 프로작을 복용하고 있다.
* 민가영: 고아인 자신을 후원하고 취업까지 시켜준 한경에게 팬심을 갖고 있다. 겉으로는 잘 꾸미고 외모에 관심이 많아 보이지만, 이것은 모두 한경을 위해 상류층의 소문을 모으는 방편일 뿐. 감정에 솔직한 편이며 분위기를 잘 띄워 누구와도 쉽게 친해진다.
* 윤조: 특급 호텔 비즈니스 센터에서 상류층을 대상으로 사주와 타로를 봐주고 수백만 원의 복채를 받는 것으로 유명한 미모의 명리학자. 이준의 전 애인이자 한경의 현 애인이다. 기업과 기업을 연결하는 로비스트 역할도 겸한다. 공과 사가 뚜렷하다.

난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 했다. 그런데 저 배우, 여자 주인공을 향해 활짝 웃는 모습이 너무나 친숙하다.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씩 웃는 입가에 입동굴이 보인다.
저것은……? 아니다. 저건 최도원이 아니다. 저 웃음은 부가 티에서 봤던 정이준의 웃음이다. 소름이 쫙 끼쳤다. 2년 전 그날, 내가 봤던 사람은 과연 정이준이었을까? 설마…… 최도원은 아니겠지?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영화 속 배우의 얼굴이 정이준, 최도원과 번갈아 가며 겹쳐 보여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보면 볼수록 닮았다. 최도원의 얼굴에 선글라스를 씌우는 상상을 한다. 닮았다. 역시 닮았다. 말도 안 되는 억지일지라도 한번 의심이 생기니 생각할수록 확신이 된다. 내가 그날 봤던 게 정이준이 아니라 최도원은 아니었을까? 정이준은 나와는 대면한 적도 없고 어쩌면 그 시간에 이미 약에 취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최도원은 왜 정이준인 척 한 걸까? 일부러 다른 사람의 눈에 띄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걸까? 설마…… 알리바이나 증인이 필요했던 건 아니겠지. 그가 실제 범인이라면 말이다.
의혹은 의혹을 낳는다. 내 의심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날 대리 기사로 불렀던 것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고의였을까?
- 2권, 「15. 낯선 듯 낯익은」 중에서
저자 : 제인도
영화 잡지에서 시작해 라이프스타일 잡지 에디터를 거쳐 광고·홍보 기획자로 일했다. 생일에 맥북을 선물 받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여, 《대리인》을 포함해 총 다섯 편의 웹소설을 발표했다. 《죽은 남편이 돌아왔다》와 《어나더: 또 다른 너》는 현재 영상화 제작 준비 중이다. 미스터리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