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_0419
달빛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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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 시작 부분이다. 여기에 4·19혁명의 이념이 들어가 있다. 불의에 항거해 분연히 들고 일어난 시민 정신을 담고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큰 축의 하나로 4·19를 기린다는 의미다. 이 책 『#축제_0419』는 1960년 4월 19일에 벌어진 소시민의 봉기로서 한반도 역사에서 몇 안 되는 ‘혁명’으로 지칭된다고 저자 달빛은 밝히고 있다. 독자는 우선 저자가 표현한 대로 소시민의 봉기란 말에 주목해 본다. 〈소시민〉이란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용어인데 굳이 저자가 '소시민의 봉기'로 표현한 것은 그 시절에 가장 합당한 세력이라고 본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소시민〉이란 부르주아(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노동자)의 중간에 있는 소생산자나 영세 상인, 봉급생활자 등을 두루 일컫는 용어다. '중간계급'이라고도 한다. 이는 주로 사회구조를 계급적 구도로 보는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나온 개념이지만 현대에는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고 두산백과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이 책 『#축제_0419』는 해시태그를 통해 오늘의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1960년 4월 19일’에 대한 시도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저자는 소시민으로서 그 시절을 힘겹게 살아냈던 ‘장지유’란 인물을 통해 들여다보는 그날의 이야기와 4·19혁명을 ‘축제’라는 담론을 이끌어냄으로써 ‘4·19 문학’에 대한 본격적인 성찰이라 표현해도 될 듯 싶다. 무엇보다 이를 엄숙하고 무겁지 않은 따뜻한 이야기로 마무리해낸 것은 저자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의 발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한 집안의 3대의 삶을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있다. 우리 나라는 뼈아픈 일제강점기를 보내고 해방된 지 불과 5년 만에 6·25 전쟁을 맞는다. 이 전쟁은 한국인들간, 남북간 전쟁으로 이념의 차이에서 벌어진 것이다. '동족상잔', '골육상쟁'이란 표현이 드러내듯 우리 민족간 전쟁이다. 무려 3년 이상 한반도에 내전 상태에서 주변 강대국들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한반도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다. '국가 경제'란 표현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과 기아에 빠져든다.

허허벌판 속에 맞이한 휴전은 잠시 전쟁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남북으로 갈린 채 이념 대립의 소모전 양상으로 바뀐다. 그 속에서도 경제 발전을 이루고 '한강의 기적'을 만들고, 지금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했으니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 대한민국을 되돌아보면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국민의 피땀과 사람밖에 없는 전쟁의 폐허에서 이렇듯이 민주주의를 완성시켜가고 경제적 자립을 넘어 당당한 나라로 만들어온 그 과정을 대한민국 국민 한 명 한 명에 가슴 깊이 뿌리박혀 있다. 어쩌면 유전자화돼 이제는 '강한 나라' 만들기의 교과서적 길을 걸어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 소설은 그렇게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뒤돌아볼 수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 장지유는 일본인 어머니와 조선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할아버지는 일본인 며느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유가 자라면서 엄마가 일본인으로 집에서 쫓겨난 것을 알고 찾으러 가지만 재회도 잠시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그렇게 지유는 홀로 남겨지고 17살에 연탄 공장에서 일을 한다. 서울대생인 세헌은 군대를 다녀온 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못해 일용직 현장에서 막노동 일꾼으로 일한다. 그 일용직 현장도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하청을 받는 곳이었다. 세헌은 아버지를 떠나 독립하기 위해 미국으로 간다. 그곳에서 일하다가 식당에서 일하던 엘을 만나 딸 민서를 낳지만 엘은 곧 죽는다. 엘은 죽기 전 친구인 나오코에게 딸 민서를 키워달라고 부탁한다.

당시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은 아니라 하지만, 그대로 서울에 자리를 잡은 채 ‘서울 사람’이 된다. 소설 속 또 다른 소시민인 현미도 마찬가지였다. 마산에서 상경해 외교부에서 일하며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한다. 그렇게 홀로 서울에 자리 잡은 현미는, 그의 인생 자체가 대한민국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랬던 현미에게 오늘이 공포로 돋아났다. 어제와 다를 바 없이 평소처럼 자고 일어났다. 가뿐하게 레지던스에서 하루를 시작했을 뿐인데 5년을 건너뛴 날짜가 컴퓨터에 나타났다. 어떻게 된 것일까? 사라진 5년.

 


 

현미는 자신을 치매라고 단정한다. 자칫 절망하거나 좌절할 만한데도 현미는 외교부에서 유리 천장을 뚫어내던 의지를 오늘에 투영하며 사라진 5년을 찾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다. 그 5년의 추적을 통해 현미는 자신이 잊었거나 때론 비겁했거나 아니라면 외면했던 과거와 마주하며, 현미 자신이 바로 대한민국이었음을 자각한다. 그 중심에서 비로소 직면한 한 남자의 순애보가 현미에게 ‘과거가 아닌 오늘’을 선물한다.

실상은 비겁했지만, ‘정의’라는 이름과 ‘상식’이라는 일반론으로 자신을 포장했던 남자 세헌. 그가 살아왔던 서울대학교 학생 시절은 딱 세 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운동권이거나 수긍하거나 아니라면 비겁하게 외면하거나. 세헌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1980년대의 현실을 피해 미국으로 도망쳤다. 그곳에서 멋진 박스에 담긴 부유한 선물처럼 자신의 인생을 애지중지 넣으려 애썼다. 사실 멋진 인생일지도 모른다. 세헌의 인생, 이를 통해 작가가 규정한 1980년대의 지식인은 세 부류였다. 운동권이거나, 수긍하거나, 비겁하거나. 세헌은 바로 비겁자에 속한다. 현실을 외면하고 오로지 자신을 위해 출세의 길을 택하는 부류를 말한다. 이들은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민서는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세대의 후손이다. 일본인 엄마와 한국인 아빠를 둔 특이한 이력의 그가, 어머니의 가출로 가족에 대해 되돌아본다. 언제나 자신을 지지해줄 것 같던 엄마, 아무것도 하지 말고 돈만 주면 되는 존재인 아빠. 늘 그럴 것 같았던 두 사람의 균열이 민서의 인생에도 파열을 가한다. 나에게 엄마는, 또 아빠는 무엇이었을까. 생각 끝에 한국으로 무작정 와버린 민서. 그녀에게 한국의 2000년대는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소용돌이였다.

 


 

1980년대를 비겁하게 살아왔음을 자각하게 된 세헌, 처음 겪는 2000년대의 소용돌이를 마주한 민서. 이들의 엇갈림은 어떻게 2020년대에 안착하게 될까. 이들 개인의 역사는 그 자체가 이 땅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최근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던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가 이를 잘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역사라는 거대 담론은 결국 대척에 있을지 모를 개인의 소소하고 미진한 이야기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역사가 사실에 입각한 기본적인 줄기라면, 소소하고 미진한 개인의 역사는 가지이자 잎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의 역사는 창작물로 꽃 피울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 『#축제_0419』는 미츠코, 지유, 현미, 세헌, 민서를 통해 다루어지는 개인의 이야기다. 이들의 사연이 모여 하나의 역사로 기능하는 서사를 만들어내며 4·19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파문이 커지면 파도가 되고 파도가 커지면 너울이 되며 너울은 결국 바다를 뒤집는다. 『#축제_0419』에서 1940년대와 1960년대, 1980년대, 2000년대, 그리고 2020년이라는 80년을 관통하고 살아온 개인을 반추해 미래를 짚어보는 일은 작은 파문에 불과할지 모른다. 비록 한 편의 소설일지라도 그 파문이 결국 바다를 뒤집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 소설이 한 개인에게 소소한 파문의 시작점이 된다면, 소설은 그로써 생명을 다해낸 것이 아닐까. 저자 달빛이 독자들에게 묻는 것 같다.

 


 

또 다른 인물 박현미는 친구 화숙이 소개해 준 레지던스에 있다. 레지던스에서 컴퓨터 수업을 받고 있지만 현미에겐 지난 5년 간의 기억이 없다. 그 기억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고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그래도 현미는 잃어버린 5년의 기억을 되찾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민서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미국인이다. 하지만 민서는 미국에서 오직 돈을 많이 벌어야 인정받는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한국에 가면서 엄마에 대한 빈자리를 느끼고 엄마를 찾아 한국에 온다.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민서는 조금씩 자신의 생각을 바꾸게 된다. 『#축제_0419』는 장지유 가족의 이야기이지만, 그 가족이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유와 현미는 1960년 4월 19일을 겪은 세대로 아들과 손녀, 손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들에게 1960년 4월 19일은 인생에 있어 다시 없을 축제와도 같은 날이었다.

 

저자 : 달빛

 

20년을 아나키스트로 살았다. 그사이 현장 운동가, 영화사 직원, 변호사실 사무장, 출판 기획자, 작가 에이전트, 웹소설 플랫폼 관리자 등으로 지냈다.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다짐처럼 그리고 바람처럼, 단 하루도 글을 쓰지 않은 날이 없었다. 11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했으며 14편의 영화 작업에 참여했다. 많은 일을 했고 많은 이들과 협업했다. 온전히 아나키스트로 사는 것과 관계를 이으며 사는 대척점에서, 2020년 한국인으로 ‘다시’ 살기를 택했다. 미래와 다음 세대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유기견 만두와 만두 엄마를 만난 일은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음을 고백한다. 2020년 콘텐츠 회사를 설립했다. 독립영화 두 편을 제작, 감독했으며 개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10여 편 시나리오의 영화화와 기획한 드라마, 웹소설의 진행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기치로 내건 ‘콘텐츠가 꿈꾸는 행복한 세상’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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