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사 1 - 송수한 대본집
송수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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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대행사』는 드라마 〈대행사〉 대본집이다. 드라마 〈대행사〉는 작가 송수한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대행사〉는 JTCB에서 지난 1월 7일부터 16회에 걸쳐 방영된 오피스 드라마다. '대행사'는 광고 대행사를 뜻하며 광고 기획부터 제작까지 광고의 전부를 맡아 해주는 곳이다. 이 때문에 광고 대행사에는 사람의 욕망을 귀신같이 알아채는 꾼들이 모여 있다고 한다. 욕망이 없다면 욕망을 만들어 내서라도 소비하게 만드는 곳이 바로 광고 대행사다. 이 드라마는 전 작품 〈재벌집 막내아들〉의 엄청난 흥행 후속으로 나오는 바람에 적잖은 우려가 있었다는 방송가 후문이다. 한 방송국에서 연이은 드라마 히트는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미신 같은 속설이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드라마 1, 2회 방영 때는 시청률 4%라는 저조한 실적으로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곧이어 대반전이 시작된다. 꾼 중의 꾼 ‘고아인’이 전쟁보다 치열하다는 광고 업계에서 ‘지방대, 흙수저, 여자’라는 한계를 차례차례 깨부수고 ‘VC그룹 최초 여성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는 내용이 본격 시작되고서부터다. 이 드라마의 최종 시청률은 경이롭게도 16%까지 뛰어올랐다고 한다. 드라마 인기가 식기 전에 대본집이 선보인다.

저자(작가)는 ‘광고 업계 카피라이터 출신’ 송수한이다. 드라마 대본은 처음 썼다는데 광고업계의 실상을 워낙 잘 알고, 카피라이터 출신이어서인지 매회 명대사를 만들어 내며 드라마 팬들에게 ‘어록 제조기’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 대본집에는 저자가 뽑은 ‘드라마 속 명대사’와 캐릭터 설정과 전사(前史)가 담긴 작가 제공 ‘기획안’, 방송에는 공개되지 않은 ‘또 하나의 엔딩’까지 함께 수록됐다. 독자들에게는 '종합선물세트'이다.

 


 

앞에서는 우아한 백조처럼 살지만 뒤에서는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대행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과 그들, 연애질과 코미디로 뒤범벅된 대학교 동아리 수준의 오피스 드라마가 아닌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태로워 보이는 프로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하이퍼리얼리즘 드라마이다. 정점에 서기 위해 전쟁 같은 삶을 사는 이들의 일상과 타 업종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업계의 뒷 이야기 등을 통해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욕망이 혜성 간의 충돌처럼 폭발하며 성공과 좌절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등장인물에는 여주인공인 고아인 역에 이보영, 최창수 역에 조성하가 맡았으며, 강한나 역에 손나은, 박영우 역에 한준우, 조은정 역에 전혜진이 출연한다. 저자 송수한은 이 책 『대행사』 「프롤로그」에 이 드라마의 속내를 썼다.

 

남루한 복장의 소녀 앞에

명품 정장을 입은 남자가

백마를 타고 나타난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소녀가 수줍게 미소를 건네면

백마 탄 남자, 거만한 표정으로 소녀를 내려다본다.

그떼, 섬뜩한 기운을 느낀 백마가 리어링을 하자 소녀가 허리에서 장검을 뽑아 백마의 목을 단칼에 벤다.

공포에 질린 남자의 얼굴을 보고

해맑게 한마디 내뱉는 소녀.

"왜 다른 여자애들이랑은 달라서 놀랐니?"(p.10)

 


 

이 책은 드라마 대본집답게 「등장인물」을 책의 맨 앞에 위치시킨다. 등장인물의 성격은 그 드라마의 성패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리라. 이 드라마가 꽤 성공할 것이라는 예감은 어쩌면 저자 혼자뿐이었을지 모른다. 저자가 창출한 인물들이 어떤 캐릭터이고, 드라마 내에서 어떤 활약을 하는지, 드라마의 스토리에 어떻게 작용하고 스토리를 이끌지 등 모두를 알고 있는 사람은 저자 혼자뿐이었으니까. 주요 등장인물을 대본집에 따라 살펴본다. 주인공 고아인은 미혼에 지방 국립대 졸업이다. 성공 지상주의자이고 '돈시오패스'로 VC기획 제작 2팀장이다. 실력으로는 훌륭했지만 학벌 부족으로 팀장까지가 한계인 줄 알았던 고아인이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VC 임원으로 발탁된다. 하지만 자신이 얼굴마담 임원이라는 걸 알게 되는데...

남자 주인공은 한국대 경제학과 공채 출신으로 VC기획 기획본부장이자 상무인 최창수로 배우 조성하가 연기했다. 냉정하고 수 싸움도 능한 그는 단 한 번의 실패 없이 회사에서 승승장구한다. 차기 대표 자리를 위해 회장의 눈에 띄어야 했고 회장의 딸을 임원으로 출근시키기 위해 쓰고 버리기 좋은 카드로 고아인을 추천한다. 발바닥부터 올라온 주인공 고아인과,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사람을 도구처럼 사용하는 정치력 만랩인 최창수와의 사내 전쟁이 그려지며 특히 회장의 딸이 임원으로 들어오다보니 금수저와 흙수저의 대결 구도도 예상된다. 이 대결 구도를 만드는 과정이나 진행이 자연스러워 시청자들의 인기몰이에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강한나는 28세로 VC그룹 재벌 3세다. SNS 스타 인플루언서이고, 단군 이래 재벌가 최강 미모를 자랑한다. VC기획 SNS본부장이다. "부모 덕에 사람 노릇하는 돌대가리들, 걔들이 사람이야? 울산바위지! 자수성가한 놈이랑 살 거니까 신경 꺼주세요."(p.18) 대사도 억양이나 내용 모두 시원시원하다. 재벌 3세답게 거침없는 부분과 안하무인 관점이 공존한다. 저자는 강한나를 '성공은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인물로 그리고 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는 서양 격언을 동원해도 한나는 왕관은 쓰되 무게를 견딜 생각은 없다. "내가 왕이 되면 가벼운 왕관 만들어서 쓰면 되지, 왜 그걸 견뎌?" 강한나식 화법이다. 재벌가 역대급 미인이라는 평 덕분에 혼사가 줄을 잇지만 싹 다 거절했다. 남들이 왜 내 인생을 결정해!! 라고 말하지만, 사실 마음에 둔 남자가 있다. 문제는 그가 '머슴'이다.

'머슴'은 30대 중반의 VC그룹 본사 비서실 차장 박영우다. 출세를 위한 자신의 처지를 낮추는 전형적인 출세 지향적 인간이다. 그는 재벌 3세의 강한나에게 언제나 저자세뿐만 아니라 아첨이라 보일 정도의 아부하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임은 분명하지만 유학시절부터 한나의 과외교사이며 오른팔이다. "한나 상무님은 상무님답게 앞장서서 1등 하세요. 저는 저답게 상무님 뒤에서 1등 머슴 할 테니까."라는 아부성 발언을 아끼지 않는다. 박영우는 성공을 위해 마음을 숨기는 스타일이다.

조은정은 VC기획 제작2팀 카피라이터다. 34세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동분서주 아주 바쁜 인물이다. "남들이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하고 노래 불렀을 때 난 '텔레비전에 내 카피 나왔으면' 하고 노래 불렀다!"고 주장하는 돌격형 스타일이다. 극중에서는 약방 감초 같은 분위기 해결사다. 착하고, 예쁘고, 똑똑하고, 사랑받고 자라 구김살 없는 성격. 성인 남성보단 많고 먹방 유튜버보다는 적은 식사량을 가진 '육식러'다. 입만 열면 적재적소에 꽂히는 감각적인 개드립이 마구 튀어나오는 트렌디하고 말랑한 카피를 잘 쓰는 10년 차 카피라이터이다. 저자 자신의 재림이 아닌가 싶다.

 

 

저자 송수한은 대본집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이 대본집을 쓰기까지의 과정과 심정을 담담하게 기술한다. "몰락한 명문가의 자제들이 소설가니 극작가니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명문가인 적도 다행스럽게도 몰락한 적도 없기에 헛된 꿈 꾸지 말고 '월급 받으면서 사람 구실하고 살자' 싶어서 대학 졸업하고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한 십여 년. 밥 벌어먹고 사다가 40살이 코앞에 와 있던 어느 날 문득 '남은 인생은 이야기를 써서 먹고 살아볼까?' 하는 오래전에 푹 묵혀 두었던 생각이 들어서 한 달쯤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백날 천날 고민해 봐야 답 안 나올 거 같아서 '그래, 한 번 써보자' 싶어서 쓰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공모전에도 당선되고 또 어떻게 편성도 받고 또 또 어떻게 캐스팅도 하고 또 또 또 어떻게 온에어까지 하게 되어 이렇게 극본집 작가의 말까지 쓰고 있습니다." 구절구절 틀린 말은 없다. 그렇다고 본받아볼 만한 멋진 생각이나 치열한 열정의 과정도 없다. 없는 게 아니라 저자가 일부러 생략한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그래도 마지막 인삿말은 시청자들의 몫이라는 걸 아는 걸 보니 말이다. "여성 원탑물에 (하필이면 날카롭고 예민한) MZ 세대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오피스 장르(그것도 사내 정치) 거기에 러브라인도 없는 (한나+박차장 제외) 드라마를 주말 밤 10시 30분까지 기다리며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이 책 『대행사 1』은 16부작 중 1~8부까지가 담겼다. 9~16부는 『대행사 2』에 분재됐다. 1부 「백조는 물 밑에서 쉬지 않고 발버둥친다」, 2부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미친년처럼 행동한다」, 3부 「사자가 자세를 바꾸면 밀림이 긴장한다」, 4부 「기쁨은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약점이 된다」, 5부 「밤에는 태양보다 촛불이 밝은 법」, 6부 「바보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라」, 7부 「배고픈 짐승에게 먹이를 주는 법」, 8부 「준비된 악당은 속도가 다르다」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드라마가 주인공 ‘고아인’이 ‘지방대, 흙수저’라는 자신의 한계를 깨부수고 VC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이 된다는 통쾌함이 인기의 원인이겠지만, 경쟁에서 열세에 있는 ‘언더독’이 질 것이 뻔한 싸움이라도 도망치지 않고, 처절하게 발버둥쳐서라도 살아남아 언젠가 승리하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한 번쯤은 회심의 일격을 날려주기를 기대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주말 밤 TV 앞에 시청자들이 모인 이유일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단순한 재미를 넘어 공감과 울림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또 매회 드라마 팬들의 심중을 꿰뚫던 『대행사』의 날카로운 카피와 명대사의 덕도 클 것으로 예측된다. ‘드라마보다 회화적이고 소설보다 글맛 있는’ 대본집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역시 송수한 작가의 오랜 카피라이터 생활을 통해 나온 ‘글맛’의 힘이 아니겠는가. 주말 저녁 팬들을 감탄케 했던 명대사와 드라마 방영 시에는 다 하지 못했던 캐릭터들의 숨은 이야기, 그리고 고아인의 또 다른 행보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팬들은 『대행사』의 상승세에 이끌려 가든가, 따라가든가, 그것도 아니면 비켜서서 선망의 눈초리로 지켜보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자 송수한이 대본집 『대행사』를 통해 털어놓은 것이 눈길을 끈다. 바로 〈관전 포인트〉다. 드라마 대본 작가가 TV 방영 전에 〈관전 포인트〉를 풀어놓을 수는 없을 터, 대본집에만 독자들을 위해 끼워넣은 것으로 읽힌다. 〈관전 포인트〉〉는 저자의 드라마 대본 쓰는 취지와 의도가 담겨 있기에 어쩌면 비밀스러운 이야기일 수 있다. 이 〈관전 포인트〉에 따르면 저자는 드라마 구도를 기득권(남성, 서울대) VS 비기득권(여성, 지방대)로 짰다. 낙하산 재벌 3세 딸 VS 자수성가 흙수저 여성의 갈등과 협업을 보여줌으로써 대결 구도의 선명성을 올리고, 때로는 타협과 협력을 하는 모양새를 보여줌으로써 현실성을 가미했다. 정치, 경제, 연예 등 전방위로 연계된 광고대행사의 뒷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앞에선 백조처럼 우아함을 보여주지만, 뒤에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대행사 사람들의 피말리는 삶을 극적으로 묘사했다.

 

"최초를 넘어 최고가 되는 것

처절하지만 우아함을 잃지 않는 것

나를 버리면서 나를 지키는 것이

목적인 그녀의 이야기가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을 터이니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빠져 살거나

달달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한 분이라면

지금 당장

채널을 돌리시길···"이라며 과장된 엄포도 잃지 않는다.

 


 

이 드라마를 끌고 가는 원동력은 누구나 동의하듯 고아인(이보영 분)이다. 고아인의 과거는 어둡고 초라하다.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7살부터 얻어먹은 눈칫밥으로 세상을 일찍 알았을 인물이다. 어렵게 공부해 한국대 경제학과 합격증을 받았지만 세상은 개인의 오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IMF로 아수라장이다. 지원받기로 예정된 장학금도 취소되고, 고모의 경제 사정도 여의치 않아 결국 전액 장학금의 지방 국립대에 입학한다. 광고계는 금융권에 비해 연봉도 높은 편이고 성차별도 적어서 승진 기회가 많다고 들은 고아인이 국내 1위의 광고대행사에 입사한다. 이후 아인은 19년간 감정 없는 기계처럼 일만 했다. 오직 숫자만이 그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돈과 성공에 미친 '돈시오패스'라는 오명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언제나 하이힐에 풀 착장을 했다. 복용하는 약의 종류는 늘어만 간다. 고아인 역에 이보영을 선택한 것은 연출자이지만 어쩌면 대본 작가에게도 물을지도 모른다. 독자가 잘 모르는 부분이어서 거론하기 힘들지만. 고아인 역의 이보영이 2021년 tvN 〈마인〉에서 서희수 역으로 나온 이후 1년 반이라는 휴식기를 가진 뒤 JTBC 〈대행사〉로 드라마에 복귀했다. 평소에 늘 하던 헤어스타일이 아닌 짧은 단발이라는 점부터 이미지 변신이 돋보인다.

"‘성공’이 〈대행사〉의 서사를 이끄는 키워드라면 ‘주체성’은 중심을 잡아주는 키워드이다." 이 말은 드라마 사전 인터뷰에서 저자가 했던 말인데, 그 당시에는 스포가 될 수 있어서 하지 못했던 중요한 말이다. 〈대행사〉를 주인공 중심으로 보면 ‘그냥 워커홀릭 고아인이 건강한 워커홀릭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건강한 워커홀릭. 이것이 〈대행사〉라는 드라마를 풀어내야만 하는 화두였습니다. 워커홀릭과 건강함이 한 문장 안에 존재할 수 있는 단어인가? 이건…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내야 하는 거 아닌가? 라고 밝힌 저자의 언급에서 이보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저자 : 송수한

드라마 <대행사>로 데뷔.

ChatGPT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노력 중.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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