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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뇌 안에 - 타인 공감에 지친 이들을 위한 책
장동선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4월
평점 :
우리는 SNS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번 '공감'을 표현하고 또는 말하며 산다. 공감이라는 말은 한 SNS에서 '좋아요'로 표현되기도 하고, '엄치척' 모양의 그림으로 자신의 의사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공감'이 차고도 넘치는 세상이다. 과연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과의 제대로 된 공감을 나누고 있을까? 공감이란 감정을 말하는데 감정을 '옳고 그름'으로 표시하지 못하는데 제대로 공감하는지 알아볼 수나 있을까? 비슷한 표현으로 '좋아요' 이외에 '동감'도 있고, '동의'도 있다. 독자는 이 책에서 주제로 논의되고 있는 공감에 대한 의미를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책을 읽고 싶어 백과사전의 뜻을 빌려본다.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공감(Empathy, 共感)이란 대상을 알고 이해하거나, 대상이 느끼는 상황 또는 기분을 비슷하게 경험하는 심적 현상을 말한다. 1909년 미국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티치너(Edward B. Titchener)가 도입한 용어로, ‘감정이입’을 뜻하는 독일어 'Einfuhlung'의 번역어이다. 요한 헤르더(Johann Herder), 노발리스(Novalis)와 같은 18~19세기 철학자들은 자연이나 예술 작품에 대한 감정이입을 주로 다루었다. 그러나 '감정이입'은 '공감'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개념으로, 근대 과학이 자연을 해부하고 나누는 방식으로 다루는 태도에 반발하여 나온 테제였다. 독일의 철학자 로베르트 피셔(Robert Vischer)는 그리스어 'empatheia'를 근거로 'Einfuhlung'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자신의 논문에서 처음 사용하였으며, 이 개념이 철학적으로 분석할 만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후 심리학자 테오도어 립스(Theodor Lipps)는 '공감'이야말로 미적 대상을 감상하는 데 꼭 필요한 역할을 맡을 뿐만 아니라, 의식을 지닌 생명체로 서로를 인식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고 주장하였다. 20세기 초 '공감'은 해석학(hermeneutics)에서 특히 행위, 예술 작품, 문헌 등의 의미와 의의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방법으로 채택되어, 이해(Verstehen)라는 개념과 깊은 연관을 맺게 되었다.
누구나 자신이 현재 어떠한 마음 상태에 있는지는 알기 쉽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거나 무엇을 인식하는지는 자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가진 심적 상태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를 심리철학에서는 '타자 마음의 문제'(The Problem of Other Minds)라고 한다. 심리학자 립스는 '타자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내 마음이 상대방의 마음을 모방하는 것, 곧 '공감'에 있다고 보았다. 립스의 이러한 생각은 1980년대의 모사이론가(Simulation Theory)들이 받아들였다. 모사이론은 타자의 마음을 이해할 때 지각적 차원으로 이해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타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법은 우선 타자의 입장이나 상황으로 나 자신을 투사한 후 나의 심적 상태가 어떠할지를 상상한다. 이후 내 심적 상태를 유비추리를 통해 타자에게 투사한다. 이는 공감이라는 심리적 능력을 중점적으로 하여, 다른 행위자를 인과적으로 해석·설명·예측하는 것이다.
인간의 어떤 도덕적 행위가 옳거나 그를 수 있다는 규범성이 어디에서부터 도출되는지에 대한 철학적 설명은 '공감'을 통해 제시되기도 한다. 규범적인 규칙들은 행위자가 따라야만 하는 의무를 표현하는데, 이 규칙은 또한 행위자의 의도와 동기를 반영하기도 한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순수이성을 통해 사유된 도덕 규칙을 따르는 의무적 행위만이 윤리적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지만,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다른 이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자연적 능력을 통해 행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기적이지 않은 도덕적 동기라고 반박한 바 있다. 현대에 들어 공감과 도덕 발달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는 발달심리학자 마틴 호프만(Martin Hoffman)으로, '공감'이란 이타적인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생물학적인 성향이기 때문에 인간이 도덕 행위자로 성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고 보았다.
또 동감(sympathy, 同感)은 타인의 사고나 감정을 자기의 내부로 옮겨 넣어, 타인의 체험과 동질의 심리적 과정을 만드는 일. 일체화나 동일화와는 다르며, 주위 사람들이나 현상, 즉 동감대상과 자기(동감자) 사이에 차별이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대상과 자기의 심리적인 동일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동감의 일종에 ‘동정’이 있다. 이것은 18세기 이래 영국의 D.흄이나 J.A.스미스 등에 의하여 근대사회의 인간관계를 설명하는 원리로서 채택되어 왔는데, 엄격한 의미에서 동정과 동감은 구별되어야 한다. 동정은 타인의 사고 ·감정을 승인하고 상대에게 적극적인 감정을 지니는 것으로, 거기에는 보다 깊은 인간관계가 엿보인다. 그러나 동감은 무생물에 대한 경우에도 체험하는 것으로, 저물어 가는 가을빛이 서글프게 보이거나, 빛나는 한여름의 태양이 힘차게 보이는 것 등이 그것이다. T.립스는 도덕적인 행위나 미적 감정도 동감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밖에 동의(同意)란 타인의 행위에 대하여 인허(認許) 내지 긍인(肯認)하는 의사표시다. 승인과 비슷하나 동의는 사전의 의사표시이고, 승인은 사후의 의사표시인 점에서 구별된다. 법률상 행위자의 단독행위로는 완전한 법률효과를 발생시키지 않고 그것을 보완하는 타인의 의사표시를 요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동의라고 한다. ① 공법상의 대표적 예는 헌법 제60조에서 대통령의 중요 조약체결이나 선전포고 등에 관하여는 국회의 동의를 요하게 하고 있는 것과 같다. 행정법상으로는 인가 ·허가 ·승인 ·인허 ·인증 등의 용어를 쓰고 있는 경우에, 성질상 동의에 해당하는 것이 많다. 예컨대 법인설립의 인가, 사업양도의 인가 등이다. ② 사법상으로는 민법상 미성년자나 한정치산자 등 행위무능력자가 재산적 법률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법정대리인이나 후견인의 동의를 얻게 하고(5 ·10조), 미성년자가 혼인을 하려면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과 같다(808조).
우리 사회는 불평등과 양극화, 사회적 갈등이 점차 심해지면서 ‘공감’이라는 키워드는 어느 때보다도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공감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을까? 그 주목도에 비해 공감은 쉽게 오해되거나 공허하게 남용되기 일쑤라고 이 책 『행복은 뇌 안에』는 지적한다. 책의 공동 저자 장동선, 박보혜, 김학진, 조지선, 조천호 등 5명이 이에 대한 견해를 내놓고 있다. 각자 다른 분야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공감'을 다룬 것이다. 어떤 이들은 공감을 편협하게 그리고 맹목적으로 중시함으로써 오히려 폐쇄적인 공동체를 만들기도 하며, 동시에 어떤 이들은 공감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혐오와 폭력을 재생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그런 문제의식 아래 2021년 개최된 티앤씨재단의 ‘우공이산’ 콘퍼런스 내용을 엮은 결과물이다. 이들 다섯 저자는 각자의 전문적인 분야에서 공감을 연구하고 통찰했다. 뇌과학, 인지과학, 심리학, 심지어 기후과학까지, 그들의 전문성에 힘입어 공감은 다양한 관점에서 재해석된다. 저자들은 공감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정보를 전해주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고 의미 있게 공감능력을 계발할 수 있는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기도 하며, 우리 삶에서 실제로 어떻게 공감을 다루어야 하는지 그 길을 일러주기도 한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서는 이유다. 이 책은 공감에 관한 과학책이기도 하고 자기계발서 혹은 심리 안내서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책을 읽고나면 좀더 풍성하게 공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실제로 진행된 Q&A와 저자들 간 대담이 수록되어 있는 것 또한 이 책을 깊이 있으면서도 어렵지는 않게 만드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뇌과학자 장동선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공감의 뇌과학적 원리를 쉽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과학적으로 공감은 뇌의 진화 과정 속에서 생존을 위한 도구로서 발달해온 능력이다. 자연의 적대적인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옛날부터 인간은 다른 개체를 잘 살피는 능력을 길러왔다. 특히 사회를 이루면서부터는 단순히 타인을 살피는 것 이상으로 타인의 생각과 감정까지 가늠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의 공감이다. 뇌과학적으로 타인에 공감하는 활동을 가능케 하는 건 거울신경세포로, 이 세포는 타인의 감정과 행동을 ‘시뮬레이션’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농구 선수들은 농구공이 슛 하는 사람의 손을 떠나는 순간을 딱 0.5초 정도만 끊어 보고서도 슛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p.26) 몸에 새겨진 경험으로 미루어 타인의 슛 동작을 자기도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조지선은 거울신경세포 외에도 ‘마음 이론’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는 공감을 위한 사전 장치를 소개한다. 마음 이론은 다른 사람의 상태를 추론하고 행동을 예측하는 인지적 능력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타인의 숨겨져 있는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저마다 마음의 작동 원리에 관한 ‘이론’을 품고 사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우리가 쉴 때도 사람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인간이 타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뼛속까지 사회적인 존재임을 드러내는 요소다. 조지선 교수는 공감이 인간에게 이롭기 때문에 뇌가 이렇게 설계되어왔다는 점, 공감은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공감을 더 잘할수록 집단에서 인정받고 발전할 여지가 많아진다. 물론 타고나는 것 이상으로 공감능력을 계발할 수도 있는데, 조지선 교수는 ‘유재석 따라하기’ ‘협상 전문가 따라하기’ 등 독자가 따라하기 쉽고 내용도 간단한 공감능력 계발법을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점도 있다. 의외의 사실은, 공감이 자기중심적인 행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사회신경과학자 김학진은 최신 뇌과학을 통해 공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인간이 타인의 감정을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다 해도, 결국 자신의 상태가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연구에 따르면 운동을 한 직후 갈증을 느끼는 사람은 타인도 갈증을 느낄 거라고 더 쉽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 자기 경험과 상태에 따라 공감 방식은 달라지며, 이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집단이 생겨나는 원인이 된다. 공감의 자기중심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감정을 잘 인식해야 한다. 자기 감정을 인식함으로써 ‘감정 목록’이 정교하고 풍부해진 사람들은 공감을 위해 사용할 재료도 더 많아진다. 타인과 깊이 공감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에게로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다.
공감교육자 박보혜도 비슷한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 타인에게 공감하려면 ‘자기와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느낌’과 ‘생각’을 구분해야 한다. ‘느낌’은 내 욕구가 총족되었는지 아닌지를 알리는 신호다. 이는 그저 중립적인 메시지일 뿐, 판단이 한 차례 들어간 ‘생각’과는 다르다. 이 차이를 파악하고 느낌을 섬세하게 바라보아야만 자기 ‘욕구’를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스스로와 가까워지고 나면 타인의 내면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여기서 공감의 가능성이 생긴다. 그리고 공감은 내면에서 외부로, 자기에서 타인에게로 끊임없이 확장된다.(p.74~75) 박보혜가 인용한 마셜 로젠버그의 말처럼, “내면의 평화를 만드는 일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일”인 것이다.
다섯 저자 중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조천호 교수의 글은 독자에게는 인상적이다. 공감과 기후위기가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공감이야말로 기후위기 시대에 모두에게 필요한 자질임을 알게 된다. 텀블러나 에코백을 쓰고 일회용품은 줄이는 등 ‘개인의 선한 감수성’을 발휘하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실제로 닥쳐온 지금, 그것만으로는 상황을 개선시키기 어렵다. 무엇보다 변화를 실현해낼 정치체를 구성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연대하고 집단을 꾸려야 한다. 바로 여기서 공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후위기에 취약한 지구 반대편 사람들, 실제로 기후위기의 피해를 입기 시작할 다음 세대, 기후위기에 관련된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제대로 된 공감이 이루어져야만 구심력 있는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해지는 것이다.(p.196)
이렇듯 이 책에서 공감은 개인의 자질이나 능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다섯 저자는 저마다 조금씩은 다른 방법으로 공감을 이야기하지만, 하나같이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려면 바로 공감이 관건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공감은 사적인 것이 아닌, 공적인 것이다. 한 사람의 행위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다. 결국 좀더 행복한 사회와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상상하는 것이 공감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그간 너무도 쉽게 소비되어왔던 공감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다시금 제대로 들여다봄으로써 과거와는 다른 세계로 나아갈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장동선
뇌과학 박사. 궁금한뇌연구소 대표.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성장했다. 독일 콘스탄츠대학교와 미국 럿거스대학교 인지과학연구센터에서 석사를 마친 뒤, 막스플랑크 바이오사이버네틱스연구소와 튀빙겐대학교에서 인간 인지 및 행동 연구로 사회인지신경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4년 독일 과학교육부 주관 과학 강연 대회 ‘사이언스 슬램’에서 우승하여 이름을 알렸고, 독일 공영 방송 NDR, ZDF 등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과, 한국 tvN 〈알쓸신잡〉 시즌2에 출연하면서 뇌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입지를 다졌다. 현재 유튜브 채널 〈장동선의 궁금한 뇌〉에서 뇌와 과학 기술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펼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 《뇌는 춤추고 싶다》 등이 있다.
저자 : 박보혜
(주)앤파씨 대표이자 공감교육자.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으며, 플로브 CCO, 마리몬드 브랜드 스토리 실장을 거쳐 현재 한양대학교에서 사회혁신공감실습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저자 :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석사학위를, 위스콘신주립대에서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거쳐 현재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fMRI를 사용해 인간의 경제적, 사회적 의사결정과 관련된 뇌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으며,‘공정성 판단’과‘이타적 선택’의 신경학적 기제를 밝히는 연구들을 진행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