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일라이저의 영국 주방 - 현대 요리책의 시초가 된 일라이저 액턴의 맛있는 인생
애너벨 앱스 지음, 공경희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미스 일라이저의 영국 주방』은 요리책에 관한 소재를 다룬 소설이다. 이 책의 저자 애너벨 앱스는 영국 최초의 현대 요리책인 일라이저 액턴의 삶과 요리, 요리책 발간을 담담하게 소설로 써내려 간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일라이저는 실존 인물이고 1835년 영국. 런던이 무대이다. 당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란 별칭을 얻은 대영제국 시대였다.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해 영국 런던에는 막대한 부가 쌓여 있었다고 한다. 이는 역사적 팩트로서도 확인된다. 특히 산업혁명이 이미 시작된 런던의 부(富)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했다는 점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인쇄술도 이미 15세기에 금속활자본을 찍어냈으니(우리보다는 늦지만) 책으로 요리 레시피를 만드는 일이 어렵지 않았을 터, 당시까지 현대 요리책이 없었다는 사실은 의아하다. '며느리도 안 가르쳐준다'는 요리법이어서인가.

이 책은 『미스 일라이저의 영국 주방』은 영국 현대 요리책을 처음으로 펴낸 일라이저 액턴이란 인물의 전기처럼 쓰였다. 이 소설 저자 애너벨 앱스에 따르면 이때는 요리책을 어떻게 쓰는지 아무도 몰랐다. 이 소설은 요리책이 쓰여진 것을 재밌는 상상력을 더한 픽션이지만 지금의 요리 레시피 책의 시초를 소재로 삼은 것은 분명하다. 저자는 일라이저의 요리 레시피 책이 쓰여진 후 많은 요리사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고 말한다. 특히 당시 요리책 집필자인 일라이저 액턴은 실존 인물이고,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앤 커비라는 인물과 함께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는 등 픽션을 가미했다고 밝힌다. 당시 일라이저 액텬은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시인으로 성공하진 못하고 현대 요리책이 성공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번 것은 상상력 범위 내의 일이다.

 


 

이 책의 저자 애너벨 앱스는 오늘날 최고의 역사소설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책의 뒷 부분에 「부록」으로 ① 작가 소개(애너벨 앱스를 만나다) ② 작가의 말 ③ 역사 속 이야기 ④ 등장인물과 공간적 배경 ⑤ 일라이저 액턴가의 레시피를 따로 첨부했다. 이에 따르면 앱스는 자신의 시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옛 요리책에서 일라이저 액턴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을 만났다. 앱스는 여성들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제약받은 시대에 통념의 벽을 무너뜨리는 독립적인 여성으로서, 그리고 시인이자 희곡 작가로서의 길을 걸은 일라이저의 삶이 남다르게 와닿은 데다 일라이저가 쓴 요리책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단연 발군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일라이저 액턴이 레시피를 쓴 것은 거의 200년 가까이 지났지만 ‘젊은 가정주부’ 독자들에게 준 메시지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판단되었다. 절약, 낭비 금지, 건강에 좋은 영양가 있는 음식, 간단한 조리법 익히기, 신선한 재료로 신중하게 조리하기, ‘다른 나라’에서 배우기, 모두가 먹을 수 있는 좋은 음식을 만드는 중요성 등은 19세기 중반 못지않게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소설의 집필이 시작되었다.

또 저자는 이 소설은 시인이자 선구적인 요리책 저자였던 일라이저 액턴의 생애와 그녀의 조수 앤 커비에 대한 서너 가지 사실에 기초한다고 밝히고 있다. 1835~1845년에 일라이저와 앤은 켄트 주 톤브리지에 살면서 최고의 현대 요리책을 펴냈다. 그 책은 당대 영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30년간 꾸준히 판매되었다. 일라이저는 후대의 요리사와 저자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주었고 존경받았다. 영국에 요리 붐을 일으킨 1세대 요리사 델리아 스미스는 일라이저를 ‘영어권 최고의 요리책 저자’로, 음식 작가 빌 윌슨은 ‘위대하다’라고 평했으며 영국의 유명 요리 작가 엘리자베스 데이비드는 ‘의심할 바 없는 가장 위대한 영어 요리책’이라고 말했다.

 


 

일라이저 액턴의 요리책은 완성하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1845년에 출판된 『현대 요리』는 몇 주 만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지금은 일반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쓰인 최초의 요리책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일라이저의 가장 큰 혁신은 각 레시피의 재료를 나열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책은 최초로 정확히 측정된 재료의 목록을 담았으며, 이 개념은 이자벨라 비턴에 의해 확장되었고, 이제는 모든 요리책 작가가 규범처럼 따르고 있다. 『현대 요리』는 각 요리법에 재료의 목록을 포함시켰을 뿐만 아니라 조리 시간과 결과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관찰(Obs)’이라는 제목으로 덧붙였다. 하지만 비턴 부인이 일라이저의 레시피 중 3분의 1 이상을 표절했는가 하면, 일라이저가 생존해 있을 때에도 다른 이들이 도용을 일삼았다. 이에 그녀는 『현대 요리』 1855년판의 서문에서 ‘내 노고의 공과 이익을 냉혹하게도 타인들이 사취한다’고 비난했다.

일라이저의 이야기는 전례 없는 사회 변혁기에 펼쳐졌다. 초기 빅토리아 시대에 영국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산업혁명, 중산층의 부상, 거대한 부와 더불어 상상을 뛰어넘는 빈부의 격차,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촉발 등. 새로운 식재료가 시장에 넘쳐나고 중산층은 음식과 식사 시간을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또한 엄격한 청도교적 관습을 강요당하는 시대에 여성은 대부분 익명으로 남아 있었고 일라이저 같은 깨어 있는 여성만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애쓸 뿐이었다. 일라이저가 글을 쓴 시기에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는 분말 커스터드에서 수입 냉동육, 패스트푸드와 간편식이 등장했고, 그에 대한 반감(영양 부족에 대한)이 그녀의 요리책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소설은 더 풍요롭고 강렬한 맛이 나는 시대를 표현하고 서술의 흐름을 위해서, 일라이저가 요리책을 집필한 10년간 일어난 사건을 더 단기간으로 압축했다.

 


 

이 소설에서 또 하나의 축인 앤 커비는 일라이저와 10년간 매우 가깝게 지냈고 주방에서 함께 일했다. 그녀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고 별다른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현대 요리』 출판 이후 그녀가 갑자기 떠나버렸기 때문에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1851년 인구조사에 ‘왕립 그리니치 병원’의 약제사인 홀아비의 하인으로 런던에 거주한다는 기록은 남아 있다. 따라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앤의 이야기는 그 기록을 일부 차용했을 뿐 대부분은 허구라고 저자 앱스는 밝히고 있다.

이 소설은 30대 중반의 숙녀 일라이저와 사춘기의 하녀 앤이 번갈아가며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이 소설은 다른 한 축으로 여성의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시대적 통념에서 벗어나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그 속에 빼곡히 박힌 여러 식재료와 입맛을 다시게 하는 요리들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일라이저와 앤을 둘러싼 이들과 남에게 쉽사리 내보일 수 없는 비밀들이,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레시피의 요리와 대비되면서 소박하고 대중적인 맛으로 와닿는다. 일라이저와 앤이 만들어가는 요리책 또한 일반 가정에서 구하기 쉬운 식재료로 정확히 계량하여 만들 수 있는 영양가 높은 음식 레시피를 목표로 삼고 여성의 자유와 독립적 지위, 창의적인 요리의 즐거움, 다양한 요리와 어우러지는 시와 삶에 대한 열정을 진지하게 탐구한다. 단순히 요리(먹거리)를 즐기는 것을 일부 왕족이나 귀족, 또 신흥 계급만이 지닌 특권이라는 인식을 깨뜨리기 위해 요리책을 냈다는 견해는 역사 사실에서도, 이 책에서도 전혀 언급되지 않아 독자들의 상상력으로 대체될 것 같다.

 


 

소설에서 인용되는, 일라이저가 쓴 시들은 자신 속에 내재한 슬픔과 사랑의 고통을 여실히 보여주며 하나하나의 요리가 때론 든든한 위안이 되고 때론 극복의 과정으로 뜨겁게 달구어진다. 이는 저자 앱스의 소설 구성 능력에 따른 것이지 얼라이저의 시가 탁월한 문학적 소양을 말해주는 도구는 아니다. 아무튼 소설 속 인물 일라이저는 첫 시집의 성공에 한껏 기대하며 출판사를 찾아갔지만 시는 숙녀의 영역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요리책 집필을 요구받는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가 접한 아버지의 부도 소식과 뿔뿔이 흩어지게 된 가족들, 이사 후 어머니와 하숙집을 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요리책 집필, 그리고 집안과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늙은 남자와의 결혼, 이후 드러나는 그녀의 과거와 깊은 상념들. 아마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나 싶다.

정신병에 시달리는 어머니와 전쟁터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10대 소녀 앤 커비는 미스 일라이저의 주방 하녀로 일하게 되면서 가난에 짓눌린 자신의 인생에서 가녀린 희망의 끈을 발견하고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며 성장해간다. 런던의 사교 클럽 주방에서 일하는 오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품게 된 요리사의 꿈, 신분을 뛰어넘은 일라이저와의 우정, 다채로운 레시피를 실험하면서 쌓아가는 요리 실력,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시련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더욱 굳건해지는 마음자세, 그리고 일라이저와 헤어진 이후에도 여전히 함께 만든 요리책으로 이어지는 두 사람만의 각별한 관계 등은 소설적 구성에 힘입어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두 여성의 이야기가 유연하게 버무려지는 묘미 외에도 이 소설에서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신분과 배경이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여성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시대에 두 여성이 주방이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자신의 성취를 이루어나갔는지, 전통적인 요리책의 틀을 깨뜨리고 일반인을 위한 요리책을 어떻게 만들어갔는지 등이다. 또한 이 책은 저자 앱스가 당대의 시대상과 주방의 모습을 감각적이고 밀도 있게 그려냄으로써 어느덧 따뜻하고 정감 넘치고 두 여성의 손맛이 흘러넘치는 주방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소설 속에서도 귀띔하지만 당시 유럽의 귀부인들은 주방엔 얼씬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은 유모에게, 주방은 요리사에게 맡기고, 자신을 가꾸며 사교모임에 준비하느라 신경이나 썼을까 싶다. 여성 역시 남편의 소유물로 대우받고, 남편의 지위에 따라 여성의 삶도 결정되는 시대였다. 앞서 언급한 대로 어 점 때문에 일라이저 액턴은 그 당시의 통념을 다 깨부수는 여성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독자는 보고 있다. 더욱이 귀족 중에서도 예술을 사랑하고 문학을 알고, 멋과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영국의 특권층에 대항하기 위해 결국 요리책 속에 그녀의 시를 끼워 넣는 시도를 감행하기도 한다. 동료이자 하녀인 앤 커비를 통해 영국의 비참하게 사는 삶에 대해 알게 되고 그녀를 진심으로 아끼고 잘 대우해 준다. 힘없는 자를 대변해주고 가난한 자들에 관대한 것이 유럽 문화에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른바 '영국 신사' '프랑스 관용(톨레랑스)' 말이다. 물론 앤 커비에 대한 일라이저의 보살핌은 여성들끼리지만.

 


 

이 책은 제대로 된 낭비가 없는, 선율이 흐르는 요리책을 만드는 여정이 그려진다. 그와 더불어 영국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국의 상류층 부인들은 요리를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삶이었다. 프랑스의 요리사를 집에 두는 집들 또한 있었다고 한다. 영국 음식의 도태를 가지고 오지 않았나라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액턴 일라이저는 부인들이 읽고 음식을 만드는 행복하고 창조적인 기쁨을 다시 살리고 싶었다. 그리고 또한 로맨스적인 분위기도 나온다. 푹 빠지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그렇지만 가볍지 않다. 역사의 진실을 아우르고 있으며 실존 인물의 삶의 흔적을 상상력을 가미해 풍부하게 구성했다. 영국의 역사 속으로, 영국의 음식들이 궁금하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나름 두꺼운 책이었는데 챕터가 짧고 사건의 흐름이 빨라서 좋았다. 분개하는 순간, 안타까운 순간, 마음이 찡한 순간들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저자 : 애너벨 앱스(Annabel Abbs)

영국의 소설가이자 작가. 이스트앵글리아 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위를, 킹스턴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6년에 출간한 첫 소설 『조이스 걸(The Joyce Girl)』은 칼레도니아 문학상, 바스 소설상, 2016년 웨이버턴 굿 리드상 후보에 오르는 등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고 현재 희곡으로 각색되고 있다. 2018년에 출간한 두 번째 소설 『프리다(Frieda)』는 여러 일간지에 소개되고 <타임스>의 ‘올해의 소설’로 선정되었다. 또한 2021년에 출간한 『바람이 닿는 곳 : 선구적인 여성들의 길을 걷다(Windswept: Walking the Paths of Trailblazing Women)』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장거리를 걸으며 야생에서 위로를 찾은 여성 여덟 명의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스 일라이저의 영국 주방』은 작가가 물려받은 옛 요리책에서 찾은 일라이저 액턴의 초기 판본들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현재 브라운 재단 회원으로 런던에 살면서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요리를 하고 있다.

 

역자 : 공경희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번역TESOL대학원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서울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대학원에서 강의했다. 소설, 비소설, 아동서까지 다양한 장르의 좋은 책들을 번역하며 현재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드니 쉘던의 『시간의 모래밭』으로 데뷔한 후, 『호밀밭의 파수꾼』, 『비밀의 화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파이 이야기』, 『우리는 사랑일까』, 『마시멜로 이야기』, 『타샤의 정원』, 『엔조』 등이 있으며, 에세이 『아직도 거기, 머물다』를 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