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 - 대한민국 클래식 입문자&애호가들이 가장 사랑한 불멸의 명곡 28
최지환 지음 / 북라이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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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의 저자 최지환의 클래식을 만난 순간은 독자와는 완전 다르다. 그러나 클래식을 만나는 순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인지, 클래식에 빠진 지점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의 문제일 뿐이다. 독자는 클래식을 오랫동안 좋아하다가 빠지기 시작한 것은 관심을 가진 지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에 비해 저자는 클래식과 사랑에 빠진 첫 순간의 강렬했던 감정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독자는 클래식과의 인연은 대학 시절부터다. 그때는 팝송, 포크송 등이 유행하던 때이고 클래식은 음악대학 학생들이 하는 전유물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팝송 포크송만 대학 내내 듣고 부르고 한 것은 아니다. 학교 앞 다방 같은 곳에서 강의가 빈 시간 휴식 겸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은 어김없이 클래식을 하루종일 들려주었기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 클래식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직접 콘서트나 초청 공연에는 엄두도 못낼 때였다. 비싼 티켓 때문이다.

저자는 클래식을 한 번쯤 마음에 품어 본 사람이라면 저마다 클래식과 사랑에 빠지게 된 첫 순간이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클래식과 만남의 순간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 낸다. "첫사랑처럼 온몸과 마음을 사로잡아 밤새 잠 못 들게 했던 그 운명 같던 만남…." 어느 날, 벼락같이 불현듯 내 삶에 들어와 설렘을 선사하기도 하고, 삶의 역경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해일처럼 덮치는 날엔 지친 마음을 위로받기도 한다.

 


 

저자는 "하지만 왜 사람들은 클래식을 어렵고 지루한 ‘엘리트 음악’이라고 생각할까?"라는 의문을 품는다. 어렸을 때를 떠올려보자. 동네 피아노 학원 선생님의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에 한 번쯤 홀렸던 적은 없는가? 클래식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계〉를 한 번쯤 들어본 적은 없는가? 심지어 피부과나 서점, 백화점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클래식이다. 이처럼 우리는 클래식에 알게 모르게 자주 노출되지만, 클래식과 나의 그 스파크 튀는 접점을 찾지 못해 클래식과 사랑에 빠지지 못한 것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독자가 그랬다. 그냥 그렇게 좋아하게 되었지 강렬한 감정의 흔들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이후에 클래식을 듣다가 감정이 복받쳐 오른 적은 한두 번 있었던 것 같다. 클래식 음반 컬렉터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 최지환은 클래식 음악이 마음을 두드렸던 그 순간을 「음악의 속삭임에 마음을 열고 영혼이 숨을 쉰다」란 제목의 '저자의 글'을 통해 이렇게 표현한다.

"그것은 아마 제 고교 시절 예고 없이 찾아왔던 진실의 순간에 대한 잊지 못할 경험 때문일 겁니다. 그날 오후 어머니는 늦은 점심을 준비하고 계셨고 저는 거실에서 클래식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1980년 12월부터 클래식 음악 전문 채널로 변모한 KBS 제1FM은 의욕적으로 좋은 연주들을 찾아서 들려주곤 했습니다. 그날 방송에서는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중략) 음악이 끝나고 나서도 심장은 계속 쿵쾅거렸습니다. 그 위대한 지휘자의 이름은 푸르트벵글러였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습니다."(p.6~7)

 


 

이 책 『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은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기는 세상에 거리를 두며 한 번쯤 음악의 속삭임에 마음을 열어보라고 지친 영혼을 안내하는 책이다. 살면서 우리는 욕망을 '쉬지 않고 휘둘러야 하는 양날의 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잘 쓰면 효과가 두 배이지만 잘못하면 자기 손을 베기도 한다. 자꾸만 불안하고 조급해지는 이 시대에 더욱 클래식 같은 고전적인 영혼의 양식이 필요해지는 이유다. 지금이야말로 ‘음악의 힘’이 가장 필요한 때이다. 저자의 주장에 힘이 실리고 공감이 간다. 저저의 말대로 "클래식이란 게 완전히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있어도, 한번 알게 되면 마침내 사랑하게 되고 더 알고 싶어지기 마련"인가 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독자도 몇 년간 무의미하게 무의식적으로 접하다 어느 날 콘서트장에 직접 가서 감상하다가 울컥했으니, 저자의 지적은 독자를 두고 한 말처럼 신기하게 잘 들어맞는다. 클래식에 진심이거나 클래식을 모르는, 누구든지 클래식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은 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사전 주의를 준다. 수많은 악보와 음악가, 곡 등 평소에 익숙지 못한 것에 관심을 갖고 앞으로 계속 친분 관계를 지속하려면 세부적인 것보다 전체를 조망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먼저 보아라는 격언과 비슷한 조언으로 들린다. 클래식이라는 음악은 사실 생겨난 지 300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작곡가의 수도 50명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독자도 깜짝 놀랐다. 너무 많고 외국 이름들이라 쉽게 적응이 안 돼 외우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복잡하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단순성에 깜짝 놀랐고, 그 단숨함이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했는지 새삼 경이롭다는 생각이다.

 

 

이유는 클래식 음악의 경우 한 곡에 많게는 수백 종이 넘는 연주 음반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베토벤 교향곡' 5번(우리가 흔히 운명교향곡이라고 말하는 교향곡)의 경우를 보더라도 국내에 들어온 음반의 종류가 300종이 넘는다는 것. 이 책을 눈으로 읽고 귀로 듣고 음악과 교감하며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5성급 호텔에서 잘 차려진 최고의 만찬을 먹은 것처럼 충만한 만족감이 들 것이라고 저자는 기대한다. 저자는 음악을 감상하는 것은 멜로디를 듣는 것 이상의 일이라고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소리가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며, 그 희열과 감격을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범위가 넓지 않는 클래식 음악을 교양으로 배우고 익히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저자는 교양 수준의 공부로는 진짜 음악을 들으며 겪을 수 있는 신비로운 경험들, 감동, 위로, 환희를 제대로 만날 수 없다고 밝힌다. 요컨대 교양 이상의 클래식 수준이 마땅히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문 예술가들처럼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는 실제 연습이나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단순히 '많이 들어라'고 조언한다.

바쁘고 복잡한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은 음악을 듣는 일에 여가 시간을 다 쓸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저자는 오랜 기간 음악을 들으면서 깨달은 방법과 주변 분들을 가르치면서 찾아낸 '지름길'을 이 책에서 보여준다고 언급한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클래식의 끌림에 매료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 내용의 일부를 살짝 내비치기도 한다. "가장쉽게 음악을 이해하는 방법은 음악 듣기를 일종의 소통으로 생각하고 자신에게 익숙한 분야를 통해 접근하는 일이라고 지름길의 방향을 제시한다. 세상을 이해하는 '나만의 창'을 통해 음악을 접하면 클래식 음악 역시 보다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 「클래식을 온몸으로 느끼다」, 2장 「클래식을 그림처럼 보다」, 3장 「클래식을 이야기로 읽다」 등이다. 이를 묶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저자의 말대로 소통의 방식이 될 것이고, 독자의 이해로는 '3다(多) 전략'이다. 독자가 새로 표현은 '3다'는 많이 듣고, 많이 보고, 많이 느끼는 것이다. 저자의 말을 독자만의 방식으로 표현했으니 독자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한다. 저자는 앞서 작곡가 50명의 300년의 짧은 역사를 이야기했듯이 이 책에서 등장하는 클래식 곡은 모두 28편에 불과하다. 거의 대부분 독자도 작곡가는 물론 제목도 들어봤고, 일부는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곡들이다.

저자 최지환의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선별한 명연주들로 구성하였기에 기대할 만하다는 책 소개글도 독자의 느낌으로는 부족하다. 클래식 입문자라도, 혹은 애호가라도 그 매력에 충분히 빠져들 만한 보물 같은 선곡과 곡 중심의 감상 포인트, 전체를 감상하는 법 등을 각 곡마다 정확한 지점을 설명함으로써 클래식에 대한 이해를 곁들일 수 있도록 씌어졌다.

독자들은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좋다. 알던 곡은 새롭게 들리고, 모르던 곡은 절로 들어보고 싶어지도록 다양한 매력의 곡들이 잘 차려진 만찬처럼 소개되어 있다. 그러니 끌리는 감정대로 찾아서 읽어보고 저자의 섬세한 감식안으로 선별한 QR코드를 통해 서로 다른 연주자별로 연주되는 불멸의 명곡을 비교 감상해 보길 추천한다. 깊이 있고 품격 있는 해설과 클래식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 난 매혹적인 명강의를 한 권으로 만나볼 특별하고 독창적인 기회다.

 


 

저자에 따르면 음악은 감정적인 예술이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 일상적인 삶이나 이성적 사고에서 벗어나 그 이상의 초월적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클래식을 ‘소리로 쓰는 시’라고 하는 이유는 음악이 인간의 내면을 어루만지고 감싸 안으며 치료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가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을 과연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영역에 바로 ‘클래식’과 시가 있다. 클래식은 시와 같이 운율과 구절이 있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통해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감정적 성숙이 이루어지고 내면을 다스릴 수 있다면 인격적 성숙도 자연스레 따라오게 될 것이다. 클래식이 주는 가치는 그뿐만이 아니다. 두뇌가 안정되고 상상력과 창의력이 풍부해지며 감성지수가 향상된다.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생활의 활력이 되고 삶이 윤택해진다. 무엇보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를 극복할 힘을 준다.

이 책이 다른 클래식 교양서와 차별화되는 네 가지 이유을 책에 차근차근 씌어 있다. 클래식 입문자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단계적이고 쉬운 말로 쓰였다. ① 먼저 문학, 미술, 서예, 영화, 와인, 건축 등 우리 주변의 친숙한 분야를 클래식 음악에 접목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낙엽이 뒹굴 때 듣는 제철 음악’, ‘음악에도 마리아주가 있다’ 등의 흥미로운 주제가 가득하다. ② 저자의 재미난 입담으로 어려운 클래식을 흥미진진하게 풀어간다. ‘전장에 울려 퍼진 베토벤의 울부짖음’, ‘BTS 이전에 정경화가 있었다’, ‘텍사스 시골뜨기가 쓴 반전 드라마’ 등의 글이 대표적이다. ③ 클래식에 대한 색다른 관점과 통찰력으로 음악을 감각적으로 풀어간다. ‘고양이로 둔갑한 바로크의 호랑이’, ‘입안에 흙먼지가 씹혀야 제맛이다’를 추천한다. ④ 지금까지 클래식 교양서에서 금기시하고 피했던 주제를 다루며 신선한 문제 제기를 한다. ‘꼭 들어야 할 명반인가?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할 똥반인가?’, ‘꺼이꺼이 운다고 슬픈 것은 아니다’ 등의 글에서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주제를 거침없이 다루고 있다.

 


 

이처럼 알수록 멋진 클래식 28곡을 친절하고 다정하게 소개한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음악이 들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미처 몰랐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오늘 하루, 시끄러운 세상과 분리되어 음악이 주는 아름다움에 오롯이 집중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더욱이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이 아닌가. 클래식 듣기 좋은 계절이다.

 

"와인과 음식에만 마리아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음악 역시 시나 소설과 좋은 마리아주를 형성합니다. 그 상호작용은 음악의 감정을 더 선명하게 하고 글귀의 표현들을 살아 움직이게 합니다. (중략) 김훈의 『자전거 여행』 「꽃 피는 해안선」의 마지막 구절 “봄의 꽃들은 바람이 데려가거나 흙이 데려간다. 가벼운 꽃은 가볍게 죽고 무거운 꽃은 무겁게 죽는데, 목련이 지고 나면 봄은 다 간 것이다.”라는 자연의 법칙에 대한 다소 무심한 언급은 마지막까지 생상스 소나타와 동행하고 있습니다. 매년 목련꽃이 피고 지는 봄날이 오면 자연스레 레지날드 켈의 생상스 음반을 들으면서 마리아주를 느꼈던 그날의 감동을 되새깁니다. 음악의 마리아주는 문학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과 가능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늘 가까이하며 지내다 보면 여러분도 이렇듯 우연히 음악의 마리아주라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p.137~140)

 

저자 : 최지환

 

45년간 클래식 음악과 함께한 클래식 음반 컬렉터 겸 칼럼니스트. 중앙일보 격월간지 <스테레오 뮤직>의 필진으로 활동하며 클래식 음반의 리뷰와 비평을 연재했다. 대표적 리뷰로는 피에르 앙타이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보로딘 4중주단 <차이콥스키: 현악 4중주 전곡>, 할리우드 현악 4중주단 <쇤베르크: 정화된 밤> 등이 있다. 또한 건축가, 디자이너 등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이 들리는 강의’를 10년째 진행해 오고 있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스트라디움 공연장의 클래식 공연기획을 맡아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클래식 공연기획 커뮤니티 ‘M.Ora’의 음악 감독을 맡아 한국의 클래식 공연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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