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 그 높고 깊고 아득한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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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순례』는 작가 박범신의 등단 50주년을 맞아 펴낸 두 권의 에세이 중 한 권이다. 저자는 산문집 『두근거리는 고요』와 『순례』를 한꺼번에 냈다. 온전히 새로 쓴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쓴 것과 지금 펴내려는 책의 성격을 감안해 합쳐서 손색이 없고, 오히려 깔맞춤이 되니 민망함이 다소 덜어진다는 저자의 고백(〈글쓴이의 말〉)을 듣고 보니 사실이다. 「산타이고 가는 길」과 「폐암 일기」가 새로 쓴 글이고, 히말라야와 카일라스 순례기는 삼분의 1로 압축해 끼워 넣으니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이 책을 쓰기 위한 전편처럼 안성맞춤으로 보인다. 〈글쓴이의 말〉에서 저자는 자신의 지향은 '두근거리는 고요', 혹은 고요한 파동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목숨이 애당처 거기에서 왔을 터, 지난날 순례 또한 언제나 그를 좇아 걷는 일이었을 거라 말한다. 더러 에푸수수한 적도 많았으리라고도 털어놓는다. 여기서 '에푸수수한'이란 '정돈되지 아니하여 어수선하고 엉성한'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그조차 살아서 짐 지고 갈 부끄러움이라고 여기고 모두 용서하고자 했다.

이 책은 저자의 뜻에 따라 앞 두 개의 장(章)은 기존 발표한 글을 압축한 것이고 뒤의 두 장은 새로 쓴 것이다. 이 책은 4장으로 나뉘어 있다. 1장 「비우니 향기롭다」, 2장 「카일라스 가는 길」, 3장 「그 길에서 나는 세 번 울었다」, 4장 「새로운 순례길의 황홀한 초입에서」 등이다. 1, 2장엔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사색 편지〉, 〈영혼의 성소를 찾아서〉란 부제가 붙어 있고, 3, 4장엔 〈산티아고 순례〉, 〈폐암일기〉란 부제가 각각 제목을 받치고 부연 설명한다. 독자는 이 책 『순례』에서 쓴 시기가 다른 것을 통해 저자의 나이듦을 느낀다. 히말라야 순례기는 힘이 있고, 의지가 불쑥불쑥 드러나는 반면 산티아고 순례길에선 용기보다는 희망을, 미래보다는 회한을 자주 드러냄을 본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경쟁, 자학적 수준에 도달한 정신적 분열, 효율성의 구호 아래 일사불란하게 서열화를 이룬 생명의 가치, 실패하면 죽는다는 불안…. 저자의 마음 상태가 그렇다고 쓰는 말 같지만 사실 독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 대충 이렇다는 생각이다. 육체와 정신이 서로 다른 곳을 배회하니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지경이지만, 이것만은 알겠다. ‘산다는 게 이건 아니지’. 저자는 걸핏하면 짐을 쌌다. 짐은 헐거웠지만, 가슴은 열망으로 가득했다. 초월에 대한 열망이었고, 신성에 대한 열망이었으며, 순수에 대한 열망이었다. 매년 떠난 히말라야에서 고산증으로 정신이 가물거리기도 했고, 킬리만자로 허리에 엎드려 울기도 했고, 캅카스산맥 삼나무 그늘이나 시베리아 자작나무숲에서 술에 취해 쓰러져 잠든 적도 있었고, 산티아고로 향하는 멀고도 텅 빈 길에서는 또 여러 번 울었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히말라야든 킬리만자로든 피레네산맥이든, 그곳이 돌밭길이든 진창길이든 길은 모두 같았다.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소용이 없으니 빨리 가고 늦게 가는 것이 별반 차이가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위아래가 없고 사람과 당나귀 사이에도 높고 낮음이 없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게 공평하게 열려 있을 뿐이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걷는 것뿐이다. 두 다리 외의 어떤 이동수단도, 편리를 제공하는 물건도, 시중을 들어 줄 사람도 없으며 오직 내 앞에 놓인 길만이 나를 도울 뿐이다. 그러니 이 길 위에 흐르는 존재들은 몸은 고될지언정 불안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영혼은 분열하지 않는다.

 

 

저자는 순례는 사실 걷는 게 아니다고 단언한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아득바득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길 위에 올라선 채 길이 흐르는 대로 나를 가만히 맡겨두는 일이다. 돌아올 날을 완주의 성취를 기약하는 것이 아니다. 설령 먼 곳에서 바람으로 떠돌다가 혹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영영 잃어버리더라도 주저하지 않는 것, 그것이 흐르는 길에 대한 예의이며 참 순례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생도 그렇다. 인생도 결국 하나의 순례이니까. 열심히 살았다는 표현일 터다. 열심히 글을 썼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작가니까. 아등바등하지 않았지만 한날 한시도 허튼 일로 시간을 허투로 보내지 않았다는 자기 만족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저자는 순례길에서 또 다른 삶의 지혜를 얻어낸다. 어쩌면 진리일지도 모른다. "길 위에선 아무도 가면 뒤에 숨을 수 없고, 누구도 불안에 떨지 않는다." 자신이 본래 그 텅 빈 본성으로부터 걸어 나왔다는 충만감으로 마음속이 환해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숨결을 정밀하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으며, 자신의 숨결이 본래의 자신과 일치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는 마치 자신 안에 깃든 신이 숨 쉬는 것만 같다. 살을 파고드는 배낭끈이 속살 자체가 되는 듯한 고통마저 신비한 기쁨으로 다가온다. 비로소 ‘고통은 업장을 쓸어내는 가장 커다란 빗자루’라는 말을, 뜨겁게 고통을 바친 순례자들의 비밀스런 축복을 알 것만 같다.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 순례길을 걷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온 사람은 거의 같은 느낌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저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폐렴을 얻었고 돌아와 폐암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이제까지 가본 적 없는 새로운 길이 그 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묵묵히 병고의 순례길을 걸었다. 흩어진 마음을 모아 진심 어린 기도를 드리며…. 〈산티아고 순례길〉이 병을 얻는 길이 되고 말았지만 저자는 개의치 않는다. 물론 후회하지 않는다. 삶의 한 길이었고, 병을 얻은 것도 살다가 죽기 전까지 과정 중의 하나일 뿐이다.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해도 순례길을 후회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것은 〈산티아고 순례길〉이 아니고, 다른 순례길 혹은 아예 칩거했어도 결과는 죽음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순례길에서 얻은 삶의 지혜이다.

“만약 내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고 해도 사랑하는 이여, 나의 죽음을 결코 차갑게 여기지 마소서. 내가 태어날 때와 내가 죽을 때를 구별하지 마소서. 혹 슬플지라도 ‘환하고 따뜻한 슬픔’으로 나를 느끼소서. 내 평생 따뜻한 물로 흐르며 살기를 간구했으니, 갓 낳은 달걀을 두 손으로 쥐었을 때처럼, 탄생처럼, 죽음으로 떠나는 나의 영혼도 부디 따뜻한 파동으로 느끼소서.”

저자의 아내에 대한 심정을 글로 옮긴 것이다. 죽음에 초연하고 의연하지만 나를 사랑한, 내가 사랑한 아내에 대해서는 한없는 연민이 가는 모습이다. 꼭 아내가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누구에게나 같은 마음을 느끼리라 독자는 생각한다. 인간 박범신의 모습이니까. 어쩌면 사랑하는 아내는 물론 독자들에게도 마음을 전하는 글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본다.

 


 

저자의 말이 독자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라는 독자의 추측은 막연한 것이 아니다. 이 책 1장 「비우니 향기롭다」 중 다섯 번째 글 〈우유의 강을 건너면서〉에서 "작가이므로 그때 우리의 욕망은 모두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겠지만, 그러나 작가 생활 수십 년을 해왔는데도 솔직히 나는 좋은 소설이 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좋은 인생'이 뭔지 모르는 것처럼요. 아니, 글쓰기가 나의 정체성에 따른 참 욕망에서 비롯된 것인지, 삶의 환경에 따른 우연의 발현으로 시작된 것인지도 나는 알지 못했습니다."며 익명의 K형에게 편지 형식을 글을 쓴다. 이어 저자는 작가로서 다루어야 하는 '인물'의 사유와 감정이 세계의 모든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어야 나의 소설 쓰기는 시작됩니다. 고유성과 보편성의 두 마리 토끼를 한 손으로 잡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고유하다고 믿었던 것이 어떤 독자에게는 상투성으로 읽히고 내가 보편의 진리라고 암시했던 것이 어떤 독자에게 가짜 담론으로 치부되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오해와 오류는 필연적이지요. 그 오류를 넘어서고자 더 많은 문장과 수사를 동원하고, 더 많은 수사를 동원하면 할수록 더 깊은 오해와 오류에 빠지는 오류의 반복이 내 작가 생활의 전부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성찰한다.

이곳에서 저자는 사색을 통해 문장이불러오는 오해와 오류의 함정이 독자와 나 사이에 언제나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고통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오해와 오류의 함정을 피해를 피해 그리운 당신들에게 갈 수 있을까요. 그런 길이 있기는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올려다보고 있는 저 설산들과 나 사이엔 아무런 오해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설산들과 최상의 정직성으로 마주하고 있습니다."(p.35)

 


 

저자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길'에 대한 사유는 인상적이다. 저자가 본 길은 늘 두 갈래다. 세상이 가리켜 보여주는 보편적인 길을 눈치껏 살피면서 가장 무난한 길을 선택해 걸어갈 수도 있고 자신의 정체성에 따른 특별하고 고유한 길을 선택해 걸어갈 수도 있다는 게 저자의 시선이다. 보편적인 길을 따라 무난히 걸으면 안정적이지만 무미건조하고 쉽고, 정체성에 따른 고유한 길을 선택하면 존재의 의미는 얻을지 몰라도 위험하거나 세계로부터 유리돼 고독하다. 순례길에 들어선 지 한 달여, 길가 카페의 와이파이에 의지해 서울의 친구들 모임인 단톡방에 들렀는데 서울의 풍경에 아연실색한다. 도로를 점령한 시위대의 스크럼과 피켓들, 그리고 답답하게 차들이 정체된 거리들이 두서없이 저자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늘 봐왔던 풍경이라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으리라. 그런데 이곳(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들으니 '시위'라는 말 자체가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스크럼과 피켓의 풍경은 우리만 가진 긍정적 역동성의 한 상징인가, 아니면 불안한 미래의 현몽일까.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선 주말이면 사람들이 집단으로 도심으로 몰려나와 노래하고 연주하고 춤추는 모습을 흔히 연출하는데, 시위가 아니라 축제가 일상적이라는 데 이질감이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의 국민소득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유럽에선 겨우 중위 그룹에 속한다. 한때 제국으로서 세계를 경영했던 스페인 아닌가. 오늘날 스페인은 자학적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낙천적인 정서와 자유로움은 한껏 올라간 느낌이다. 저자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자주 만났던 회한은 '그것'이었다고 밝힌다. 욕망에 사로잡혀 원하지 않았던 소모적인 일에 낭비한 시간들. 남의 행복을 들여다보고 질투하는 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을 소비하는가. 내 중심의 잣대로 남을 재고, 남을 비판하는 데 복무한 시간은 또 얼마나 긴가. 단지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 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알량한 승리감에 따른 가짜 자부심을 얻기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이나 잔짜 하고 싶은 말을 줄기차게 참거나 뒤로 미루면서.

 


 

어스레한 삶의 뒤란에서 당신 역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무엇인가를 떼어 내주며 살아왔다는 거, 알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늘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며 순하게 웃는 당신, 당신은 참 놀라운 사랑이에요.(p.306)

 

저자 : 박범신(朴範信)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78년까지 문예지 중심으로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ㆍ단편을 발표, 문제작가로 주목을 받았으며, 1979년 장편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등을 발표, 베스트셀러가 되어 70~8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활약했다. 1981년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빛나는 상상력과 역동적 서사가 어우러진 화려한 문체로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밀도 있게 그려낸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며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그의 작품 중 70년대와 80년대에 발표된 작품들은 폭력의 구조적인 근원을 밝히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또한 도시와 고향이라는 이분법적인 대립구조를 통해 가치의 세계를 해부하려는 시도로 인해 대중작가라는 곱지 않은 평을 듣기도 했다.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던 중 1993년 돌연 절필을 선언하고 문학과 삶과 존재의 문제에 대한 겸허한 자기 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가졌다. 사유의 공간으로 선택한 곳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멀게 느껴지던 히말라야였다.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를 여섯 차례 다녀왔으며 최근에는 킬리만자로 트레킹에서 해발 5895미터의 우후루 피크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1996년 유형과도 같은 오랜 고행의 시간 끝에 [문학동네] 가을호에 중편소설 「흰소가 끄는 수레」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재개한 후 자연과 생명에 관한 묘사, 영혼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작품 세계로 문학적 열정을 새로이 펼쳐보이고 있다. 명지대 교수, 상명대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비우니 향기롭다』는 더욱 더 소유하고자 하는 물질 만능주의 현실에서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나'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안내서이다. 내면의 깊이가 더욱 확장된 저자가 히말라야에서 깨달은 바는 진정한 삶의 행복은 가지려는 마음보다 비우려는 마음에 있다는 것. 이는 바로 불교 철학의 '무소유'와 직결된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만 살아가는 기쁨이 더 줄어든 시대. 이 책은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 소설은 또 무엇인가. 젊음이란 무엇이며, 늙음이란 또 무엇인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풀어내는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은 최근에도 『비즈니스』, 『빈방』, 『외등』, 『힐링』,『소소한 풍경』등을 발표하며 꾸준히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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