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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10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이승훈 외 지음 / 마카롱 / 2023년 4월
평점 :
이 책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2023』은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문학 공모전이다. 교보문고 측이 지난 2013년 장르에 상관 없이 우수한 스토리를 갖춘 작품을 선정해 '스토리 작가'로서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시작한 지 10년을 맞았다. 선정할 때 기존 문학 작품 공모전에서 작품성과 예술성, 그리고 형식 등의 기준보다는 어떤 스토리인가에 더 초점을 맞춘다. 심사위원들도 작품의 완벽성보다는 스토리의 현실성과 재미, 그리고 참신성에 기준을 둔 것으로 심사평을 통해 밝혔다. 이 공모전은 회를 거듭할수록 작가 지망생의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단일 공모전 중 가장 많은 지원작이 몰린다고 한다. 이 공모전에 입상한 작가는 신예 작가로의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할 기회를 여러 경로를 통해 지원할 방침이다.
이 공모전은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짓지 않고 독창적인 스토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독자들로부터도 큰 호응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책은 신예 작가의 기회 제공이라는 차원에서 수상작품 5편을 묶어 책으로 발간했다. 10회 공모전 수상작은 이승훈의 「야구규칙서 8장 ‘심판원에 대한 일반 지시’」, 김단한의 「울다」, 고반하 「인간다운 여름」, 함서경 「too much love will kill you」, 그리고 강솟뿔의 「여보, 계(Hey, chicken!)」 등 5편이다. 이 책 뒷 부분에는 이번 공모전 심사위원 정해연(소설가), 차무진(소설가)의 「심사평」을 실어 지망생과 독자들의 작품 이해를 돕고 있다. 심사위원들에 따르면 이번 응모작은 SF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수상작 중 첫 작품 「야구규칙서 8장 ‘심판원에 대한 일반 지시’」는 AI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나’는 최후의 인간 야구 심판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AI심판으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자신보다 더 인간다운 미소를 지을 줄 아는 AI심판 ‘FF-001’이 자신을 ‘선배’라고 부를 때마다 어색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그러하듯, FF-001 또한 진심으로 야구를 사랑하길 바란다. AI심판이라면 공정하고 정확한 판정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인간 심판으로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던 중, ‘나’는 어떤 낌새를 눈치채고 만다. 바로 AI심판 중 하나가 승부조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현 KBO 총재이자 전 프로야구 선수였던 동기 ‘염윤석’을 의심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FF-001과 특별한 작전을 펼친다. 심사위원 정해연은 "소재가 참신하고 서사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점이 독자로 하여금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특히 후반부의 반전은 스릴을 높여 밀도 있는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고 심사평을 내놓았다.
FF-001은 전에 없는 단호한 목소리로 나의 말을 막았다.
“에러를 남발하고, 욕하고, 다투는 와중에도 선수들이 웃음을 잃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상을 벗어나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나는 분명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내가 야구를 떠나지 못하는 단 하나의 이유와 같았으니까.
나는 야구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리고 FF-001도 나와 같기를 진심으로 바랐다.(p.41)
이어 김단한의 「울다」는 바다 생물이 멸종된 섬마을에 홀로 남은 우리나라 마지막 해녀 ‘순향’과 AI 인어공주이자 ‘최초의 수중 로봇’으로 불리는 ‘울다’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 순향은 어린 시절 바다에서 부모님을 잃고, 이후 생계를 위해 해녀가 된 언니를 도둑맞는다. 행복을 앗아간 바다를 미워했지만, 순향은 자신을 사랑하고 믿어주는 해녀 삼촌들과 함께하고 싶어 해녀가 된다. 몇십 년을 해녀로 산 순향은 2032년 섬 바다의 바다 생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걸 목격한다. 해녀 삼촌들이 모두 떠난 뒤 홀로 외롭게 지내던 중, 사회복지사 ‘예진’이 순향에게 뜻밖의 제안을 해온다. AI 인어공주 울다가 순향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 ‘로봇’이라면 질색이었지만, 순향은 언니가 늘 이야기하던 인어공주라는 말에 끌려 울다를 만난다. 바다로 가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하며 울다는 순향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순향은 울다를 도와 사라진 바다 생물을 되찾으려 한다. 심사평에서 소설가 정해연은 "따뜻하고 밀도 높은 문장 실력이 독자의 몰입을 도왔다"고 말했다. 특히 인공지능화되는 세상 속에서 인간이 점점 기계적으로 변하고, 오히려 기계가 인간적으로 보이는 대비가 좋았다고 심사평을 제시했다.
“이름이 왜 울다인가요?”
울다를 향한 순향의 첫 물음이었다. 울다는 진수를 한번 보더니 순향을 바로 보고 말을 이었다. 깨끗한 목소리였다.
“제가 처음으로 느낀 감정이라서요.”
“감정을 느꼈다고요?”
“네. 저는 감정을 배우고 느낍니다.”
“……당신은, 로봇이잖아요.”(p.74)
세 번째 작품인 「인간다운 여름」에서 주인공 ‘지나’는 로봇을 사랑하게 된 친구 ‘유리’를 위해 편의점 휴머노이드 ‘도현’을 만난다. 도현의 시스템을 해킹해 연애 기능을 활성화시켜 유리를 이상형으로 등록하기 위해서였다. 지나는 유명 스트리밍 사이트 ‘NOON’ 콘텐츠 기획팀의 핵심원으로, 모두에게 에이스라 불린다. 기획 회의 중 팀장은 지나에게 휴머노이드를 아이템으로 한 아이디어가 있는지 묻고, 지나는 자연스럽게 도현을 떠올리고 자기도 모르게 휴머노이드와 인간이 연애하는 다큐멘터리를 찍자는 의견을 낸다. 덥석 제안을 받아들인 유리 덕분에 촬영은 신속하게 진행된다. 그런데 분명 유리를 이상형으로 등록했는데도 도현은 유리에게 반하지 않았다. 지나는 이를 수상스럽게 여기고, 도현의 프로그램을 다시 해킹해 ‘인간 외’와 연애 모드를 설정한다. 항상 ‘진짜’ 인간다운 인간이라고 동경해왔던 유리의 정체와 마주하게 된다. 심사위원 차무진 소설가는 심사평을 통해 "모든 게 좋았다"는 극찬을 했다. 흔히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의 감정과 그것을 허하려는 인간, 또는 그것을 외면하려는 이야기를 다루는데 이 작품은 로봇이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로서 몹시 신선한 전개 능력을 보여주었고, 불쾌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진짜 인간미를 느끼게 해준다고 언급하며 '설명하지 말고, 보여라'라는 작법의 룰이 고스란히 적용되어 좋은 점수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말 로맨스 영화처럼 찍어?”
유리는 사랑을 좇는 만큼 로맨스에 목말라 있었다. 언젠가 자신에게도 로맨스 영화 같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믿었다. 지나는 유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빛나는 순간만을 모아 이어 붙인다면 누구라도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
“몸에 멍든 건 며칠 지나면 나아. 늘 마음이 문제야.”
유리가 말했다.(p.121~122)
지독하고 치명적이며 순수하고 절박한 사랑을 다룬 함서경의 「too much love will kill you」은 정해연 소설가로부터 “흥미로운 설정과 섬세한 감정 묘사,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좀비 바이러스 시국을 배경으로 한다. 약사였지만 약국에 불이 나 전소해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옆집 남자를 좀비를 착각하고 총을 빼 든다. 옆집 남자의 왼쪽 뺨이 살점이 떨어져 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옆집 남자는 좀비 바이러스가 완치된 ‘치료자’였다. ‘나’는 처음엔 미안함을 갖다가 점점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동거하던 여자친구를 좀비에 의해 잃은 옆집 남자에게 빠져든다. 살아 있으면서도 죽어가는 것처럼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는 옆집 남자. 원래 미술학원 강사였던 그는 치료자가 된 후 생계를 위해 좀비 페티시가 있는 사람들이 찾는 불법 업소에서 일을 하고 있다. 치료자를 살해하는 집단 ‘디케’에게 언제 타깃이 될지 모르는 상황을 곁에서 지켜보며 ‘나’는 옆집 남자가 끝내 살아남아, 삶다운 삶을 살기를 염원한다. 그러던 그들에게 파란 단발머리 여자가 나타나고 ‘나’와 옆집 남자 두 사람은 새로운 위험에 처한다.
“좀비가 되면…… 어떤 느낌인지 아세요?”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몸이 아픈 것도 아픈 건데 너무 무섭고 외롭고 슬펐어요. 그래서 이 좁은 집 안을 끊임없이 걷고 또 걷고. 그래도 떨쳐지지 않았어요. 속이 타는 고통을 그만 끝내고 싶은데 죽지도 않고. 정말 너무 화가 나서 눈에 보이는 건 전부 찢어 죽이고 싶고. 나 자신까지도…….”
(……)
“그걸 혼자 버텼어요?”
“그래도 어느 순간부터는 형이 있었거든요.”(p.205)
마지막 작품 강솟뿔의 「여보, 계(Hey, chicken!)」는 병아리를 통해 삶의 구원을 받은 한 남자의 분투기이다. 주인공 ‘준규’는 유학을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전 여자친구가 두고 간 푸들, ‘아롱이’와 살고 있다. 아롱이가 죽으면 나도 죽으리, 하며 지내던 준규에게 그날이 찾아오고 만다. 노견 아롱이가 끝내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이다. 영화감독으로 겨우 입봉작 하나만 찍고 8년을 버티듯 살아온 준규는 삶을 등지려 준비를 시작한다. 그러다 길가에서 한 마리에 500원에 팔리는 병아리들을 만난다. 갑자기 내린 비를 맞은 병아리들이 다 죽고, 준규도 따라 죽으려던 그때, 삐약 소리가 들린다. 병아리 한 마리가 살아 있었던 것이다. 준규는 자신이 찍은 영화의 조연 배역이었던 ‘현 선생’의 말을 따라 병아리에게 ‘여보 계’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여보게’도 되고 ‘헤이, 치킨’도 되는 여보 계의 이름을 부르며 준규는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때마침 인기 배우도 준규의 시나리오를 보고 영화를 찍겠다고 하고 일이 술술 풀리는 것 같던 준규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온다. 이 작품은 단정한 문장과 유쾌한 이야기의 흐름으로 흡인력이 상당한 작품성과 함께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전기도 죽고, 가스도 죽고, 아롱이도 죽고…… 다들 잘만 죽는데…….
바닥에 대자로 누운 준규는 눈물 번진 얼굴로 소리 질렀다.
―나는 왜! 나 같은 건, 왜! 죽는 것조차 난, 왜! 왜!
그때였다. 희미한 병아리 소리가 들린 것은. 삐약!
준규는 콧물을 훌쩍 삼키며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죽은 병아리 사이에서 한 마리가 고개를 들었다. 삐약.
준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대로 기어가 산 병아리를 고이 두 손 위에 올렸다. 절로 웃음이 삐져나왔다.(p.234)
올해 응모작은 SF 작품이 압도작으로 많고, 그다음은 드라마 작품이 주를 이뤘고, 로맨스와 미스터리 스실러 작품 수가 적어 다양성 면에서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물론 장르에 연연하지 않고 단편소설만의 재미와 감동을 주는 작품, 전제척인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추리고 열띤 심사를 통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가진 다섯 작품을 뽑았다. - 심사위원 정해연(소설가)
모든 작품이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모든 작품이 매력적이었다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힘들었다. 흔히 장르문학은 '재미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재미'라는 단어에도 많은 요소가 숨어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 정교한 플롯, 매력적인 캐릭터, 잘 짜인 반전만이 과연 '재미'라고 할 수 있는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이번 공모전은 '재미'와 '휴머니티'를 함께 갖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평가했다. - 심사위원 차무진(소설가)
저자 : 이승훈
영화 〈써니〉를 시작으로 상업영화 조감독 생활을 오래 했다. 틈나는 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썼고, 직접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창작자가 되고 싶다.
저자 : 김단한
나의 마음에 자리한 ‘사랑’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늘 고민했지만, 이미 쓰는 것으로 하여금 나름의 표현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복잡한 마음을 아주 짧은 단 한 문장으로 쓰는 것을 좋아한다. 쓰는 글 중에 사람과 사랑이 등장하지 않는 글이 없다. 사람과 사랑이 지겹다 말하면서도 이 두 가지에서 꽤 많은 이야기를 얻고 있다. 독립출판으로 『나는 오늘도 부지런히 너를 앓고』, 『연못 산책』, 『구시대적 사랑』을 출간하였고, 2022년에는 에세이 『나이롱 시한부』를 출간했다. 수상 내역으로는 제10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에서 『울다』로 단편 우수상을 받았다.
저자 : 고반하
주4일제를 꿈꾸는 직장인이자 프리랜서 번역가. 현재는 ‘STORYUM × NOVEL 소설 발굴 프로젝트’에 후보작으로 선정되어 장편 작업 중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