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온도가 전하는 삶의 철학
김미영 지음 / 프로방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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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에 들어가 있는 '기억'이란 단어에 주목해 봤다. 기억의 뜻을 우선 생각해 본다. 기억은 사전에서 크게 세 가지로 풀이돼 있다. ①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② 심리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③ 정보·통신 계산에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시간만큼 수용하여 두는 기능 등으로 분류된다. 의미는 알겠지만 백과사전을 이용해 더 세밀하게 생각해 본다. 생명과학대사전은 인상, 지각, 관념 등을 불러 일으키는 정신기능의 총칭이라고 말한다. 사람이나 동물이 경험한 것을 특정 형태로 저장하였다가 나중에 재생 또는 재구성하는 현상이라는 의미다. 새로운 경험을 저장하는 작용, 기명된 내용이 망각되지 않도록 유지하는 작용, 유지하고 있는 사항을 회상할 수 있는 활동을 기억의 3요소라 한다고 기록돼 있어 더 자세한 의미에 다가갈 수 있었다. 백과사전은 덧붙여 기억은 여러 가지로 분류되는데, 시간적 측면에서 불필요하면 잊게 되는 단기기억과, 장시간, 때로는 평생 동안 유지되는 장기기억이 있다고 쓰여 있다.

이 책 『기억의 온도가 전하는 삶의 철학』에서 저자 김미영은 기억의 온도를 묻는다. 독자 개개인은 자신이 갖고 있는 기억의 온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저자는 기억의 온도를 구체적으로 수치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따뜻하다, 싸늘하다 등 감각적 온도를 말한다. 모든 사람은 흔히 '추억'이라고 표현되는 과거 기억을 갖고 있다. 과거 경험했던 일이나 어떤 현상에 대한 느낌을 뇌의 기억장치에 저장했다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다. 뇌에서 관장하는 일이라고 배운다. 그렇다면 인간의 기억은 '감정'이 동반된 과거의 일이나 현상을 되새기는 것이다.

 


 

기억에 관한 한 우리가 오늘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컴퓨터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감정이 섞인 기억이라면 컴퓨터가 인간을 아직은 따라오지 못한다. 컴퓨터는 기계일 뿐이어서 감정이나 느낌, 이것들이 동반된 기억은 아예 없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일컬어지는 현대에서 인공지능(AI)이 여러 가지 면에서 인간의 뇌를 능가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감성이나 감정, 느낌 등은 인간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이것마저 인간을 뛰어넘을 것으로 관련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긴 하다. 아무튼 지금까지는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가장 특징적인 것이라면 감정이나 느낌 등에 대한 지적 능력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인공지능이 이것마저 뛰어넘을 태세이긴 하지만 말이다. 예술이나 법적 판단 등 고도의 인간 활동은 이미 AI가 정복했다고도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책은 저자가 과거 기억들로 더 풍부한 감정을 기억하고, 그 기억들이 '따뜻한 것'이었다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기능을 한다는 의미에서 쓰인 것으로 읽힌다. 저자는 어렸을 때 엄마가 이불을 풀 먹인 홑청을 시침질해 푹신하게 덮어준 기억을 끄집어 낸다. 여름 내내 덮었던 시원하고 얇은 이불을 다 걷어 내고, 하얀 솜이 도톰하게 들어있는 푹신한 이불을 꺼내 아이들 침대에 각각 세팅을 해준 엄마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젠 저자 자신이 엄마가 돼 아이들에게 뽀송뽀송하고 푹신한 이불을 덮어 주면서 과거 어렸을 때의 똑같은 일을 한 엄마를 추억하고 있다. 그 이불은 따뜻했고, 따뜻함은 '사랑'으로 마음속에 저장돼 있었다는 의미와도 뜻이 통한다. "살아가다 보면 문득, 그 어떠한 기억이 스쳐 지나갈 때가 있는데, 그 당시 엄마의 이부자리는 지금까지도 나에게 따뜻함을 전해주곤 한다."

 


 

이 책은 기억을 끄집어내 그 기억의 온도를 글로 표현하면서 우리 삶에 얼마나 깊게 작용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자 해묵은 일기장이기도 하다. 따뜻하고 행복했던 기억만 남아 있으면 좋으련만 뇌는 그런 선별 작업은 못하나 보다. 기쁨과 즐거운 기억만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슬프로 안타까운 기억도 모두 남아 있기에 하는 말이다. 독자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서로 비교할 수 없지만 이처럼 따뜻했던 기억이나 슬펐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고, 누구나 기억하고 있다. 사람 뇌가 인공지능처럼 기계라면 다 뒤집어 비교해서 누가 더 행복한 삶을 살았나를 비교해 볼 수 있을 텐데...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본다.

저자는 「기억의 소환, 그 온도를 느끼며」란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첫 책을 집필할 당시의 기억을 꺼낸다. "무척이나 설레는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자료들을 찾고, 취재하고,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첫 시작에 대한 순수한 열정!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불안함과 두려움도 있었지만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알아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무척이나 가슴 벅찬 일이었다. 그때 그 열정, 그 끓어오르던 열정에 대한 기억이 가끔은 삶의 매너리즘에 빠진 나를 일으켜 세워주기도 한다.‘그래, 지금 이 나이에도 못 할 게 뭐 있어?’ 그렇게 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힘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 힘으로 계속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기억이라는 것은 문득 스쳐 지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러 소환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될 때도 있다. 특히 마음이 외롭고, 허전하고, 삭막할 때 그런 기억들을 소환함으로써 깊은 사색에 빠지곤 한다. 저자는 남동생에 대한 기억도 끄집어 낸다. 지금은 미국 시민권자가 되어 있는 남동생이 언젠가 나와의 전화 통화에서 자신은 사춘기 때 그 누구에게도 마음 터놓을 가족이 없었다고 했다. 가족이자 누나였던 저자가 그런 동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기억이 저자의 가슴이 아프게 남아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기억들을 소재로 모두 4개의 장(章)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 「따뜻했던 기억들(내 삶의 이유)」, 2장 「열정적이었던 기억들(내 삶의 힘)」, 3장 「싸늘했던 기억들(내 삶의 깊이)」, 4장 「추웠던 기억들(내 삶의 상처)」 등이다. 4개의 장에서 온도를 나타내는 단어들이 등장한다. '따뜻했던, 열정적이었던, 싸늘했던, 추웠던' 등이다. 일년 춘하추동과 맞게 조합했다. 구성 능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것은 삶의 기억들이 우리의 사계절과 같이 다양했다고 볼 수도 있고 계절이 우리에게 삶의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모두 독자들의 몫이고 독자들이 판단하면 될 일이다. 저자에게 봄의 기억은 '삶의 이유'가 되고, 여름의 기억은 '삶의 힘'이 되었다. 또 삶의 깊이는 가을의 싸늘했던 기억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돋보이고 겨울을 '삶의 상처'로 표현해 추위를 연상케 한 것은 저자의 사유가 깊었다고 이해된다.

저자에게 봄은 봄을 상징하는 냄새와 함께 왔나 보다. 봄의 전령사 '쑥국'에 대한 기억이다. 지금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봄이라고 해서 쑥국을 먹는 일은 드물지만(쑥 자체가 도시에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혹시 자연산이 시장에 나오면 굉장히 비싸다고 한다) 어렸을 때 농촌 등 지방에선 봄이면 캘 수 있는 쑥이나 냉이 등으로 국을 만들어 먹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다. 향도 향이지만 건강에도 무척 좋다고 해서 너도나도 쑥을 캤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저자가 이 기억을 소환해 내며 이에 대한 추억이 되살아난 모양이다. "지금도 가끔 어디에서 구수한 쑥국 냄새가 풍겨오기라도 하면 그 옛날 엄마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있다. 엄마와 바구니 끼고 거북산으로 향한던 길, 산꼭대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엄마와 심호흡하던 기억, 메뚜기, 여치가 폴작폴짝 뛰어나디던 드넓ㅇ느 풀밭, 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나무, 습한 지대에 쫙 깔려 있는 탐스러운 고사리, 해가 질 때까지 쪼그리고 앉아 쑥을 캐던 일...(p.25)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느끼는 점이 있다. 사람의 기억에는 즐겁고 기쁜 일보다 슬프고 화나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한때 독자는 기억을 더듬어볼 때 어렸을 때 기억은 즐겁고 좋은 기억이 많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슬프고 아픈 기억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기억이 선별해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면 왜 슬프고 아픈 기억이 먼저 떠오르는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고 생각하게 됐다. 인간의 기억의 총량을 따져 슬픈 일이 많은 것은 어쩌면 삶 자체가 슬프고 언짢은 일의 연속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맞설 방법이 없어서이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모든 악이 튀어나올 때 '망각' 이 마지막 튀어나왔다는 것은 그래도 인간에게 다행이라고 했다는 신화의 해석을 맞다고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만일 망각이 없다면 인간은 삶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도라의 상자에 대한 어느 문학비평가의 해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맞는 말 같아서 여기서 해본 말이다.

저자의 '추웠던 기억' 중에 으뜸은 아무래도 어머니의 건강과 돌아가시기 전의 어머니의 모습 등이 가장 가슴 아프고 눈물 나는 일이었던 것 같다. "아니, 철심도 있었다. 엄마가 고관절 수술을 할 때 철심을 박아 넣었던 것이 그대로 재와 함께 섞여 나온 것이다. 그 순간, 또 오열했다. 가슴을 갈기갈기 찢으며 상상조차 못할 정도의 고통이 뒤따랐다. 나를 낳고 길러주신 엄마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다는 것! 그것은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한없는 슬픔이었다. 그 슬픔 속에서 헤어 나오기까지 난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간혹 엄마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때가 있다."(p.222)

 


 

이 책의 또 하나의 특징은 우리가 한 번쯤 들어봤던 세계의 명언들이 책 곳곳에 적지 않게 등장한다. 저자의 글의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한 장치겠지만 확실한 효과가 있다. 명언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라기보다는 기억의 사실들을 뒷받침하는 데 적절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명언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명언'도 되고 '실언'도 될 수 있는 게 많으니까 말이다. 저자의 글 내용이 워낙 인간 본연의 감정에 대한 기억이라 어떤 명언을 갖다 붙여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독특한 구성을 위한 저자가 글 뒤에 붙인 명언들은 대부분 '신의 한 수'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저자 : 김미영

 

삶을 쓰고…

세상을 쓰고…

희망을 씁니다…

계절마다 느껴지는 분위기, 그리고 그에 따른 온도가 있듯이 내 삶의 기억 속에도 각각의 온도가 전해지곤 한다. 내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삶의 얘기들… 그 진솔한 얘기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내 마음을 비추어 보았고, 그런 내 마음이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얘기해 보고 싶었다. 따뜻했던 기억들! 그러한 기억들은 내 삶의 이유가 되어 주었고, 열정적이었던 기억들! 그러한 기억들은 내 삶의 힘이 되어 주었고, 싸늘했던 기억들! 그러한 기억들은 내 삶의 깊이를 더해 주었고, 추웠던 기억들! 그러한 기억들은 내 삶의 상처로 남겨졌다. 기억이라는 것! 지금껏 살아 보니 이렇듯 내 삶을 참 많이도 지배하고 있었다.

저서로는 PC 바이러스 진단과 치료 함께 하기』, 『대한민국 여자가 아름답다』, 『시험공부 놀면서 100점 따기』 상·하권, 『난 시험공부 맛있게 먹는다』 상·하권, 『사춘기 엄마 처방전』,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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