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다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 20대에 얻은 지견
F 지음, 박진희 옮김 / 레드스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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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죽고 싶다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겠지만』은 제목이 듣기에 따라서는 섬뜩하다. 부제로는 「20대에 얻은 지견」이라는 전제로 "인생은, 잊을 수 없는 몇 개의 파편을 만나 얼마나 마음이 요동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애매한 표현이 뒷받침한다.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쉽게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독자들의 궁금증을 더욱 부채질하는지 모르겠다. 독자 개인적으로는 '지견'이라는 단어도 생경한 느낌이다. 저자 F는 이 책에서 필명을 쓰고 있다. 책 앞 부분에 '시작하며'를 읽은 후에야 서서히 책과 저자의 정체에 접근해 본다. 저자는 서문의 시작부터 우리가 사는 현 시대를 '최악의 시대'로 규정한다. '외로운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도, '이간질의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어디선가 들은 말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에 혼자 있는 것이 새로운 정의가 되었단 글이 뒤를 잇는다. 여전히 거리로 뛰쳐나가 경제를 회전시키는 정의도 있다. 두 개의 정의는 평행을 이루며 대립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어느 쪽으로도 선을 넘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언제부턴가 즐거운 일이 있어도, 힘든 일이 있어도 타인에게 말하기 힘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주장이라기보다 되뇌이는 것 같다.

저자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데다 출판사에서 낸 소개글에도 작가란 사실만 일려줄 뿐 전혀 저자의 신상을 알 만한 정보는 없다. 책의 내용을 읽다보면 20대란 것은 알 것 같다. 그리고 출판사 소개글로는 소설 『한밤중의 소녀 전쟁』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책 『죽고 싶다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겠지만』도 저자와 출판사가 직접 만나 원고를 건네거나 출판을 결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이 인터넷을 통해 일본 SNS를 뒤집어놓은 '익명의 작가 F'라고만 소개될 뿐이다. 일본의 작가이다 보니 독자로서는 더 이상의 신상을 알아내기에는 힘에 부친다.

 


 

물론 작품을 읽기 위해 저자의 신상을 자세히 알 필요는 없다. 특히 인터넷은 필명이든 익명이든 가능한 공간이고, 종이책으로 인쇄해도 필명을 사용해 이름을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에도 필명을 쓰는 작가들은 얼마든지 있고, 심지어는 일부러 필명을 내는 경우에도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더욱이 18만 부가 판매되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니 어떤 분인지 관심을 갖는 것은 독자로서 당연한 일이기에 써본 이야긱다. 아무튼 저자가 격언인지, 사유의 단상인지, 아니면 그냥 평소에 느낌을 글로 풀어쓴 것인지 어느 것이든 책 내용을 읽어보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하다. 때로는 침묵이 더 많은 말을 한다는 격언에도 잘 들어맞지 않지만 말이다. 갑자기 코로나 팬데믹으로 소통을 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인지, 원래 밖에서의 활동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분인지 모르지만 생각을 많이 하는 분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그래서 고독이란 단어와 친하지 않을까는 생각을 해본다. 깨닫기는 했지만 무엇이 옳은지 아무도 알 수 없는(p.6) 이유를 밝히지 않고, 앞서 언급한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말 "20대는 본래 '최악의 시기', '외로운 시기', 이간질의 시기'가 아니었는가 하고 되묻는다.

앞서 언급한 20대를 정의한 것은 누구한테선가 들은 이야기라면, 이번에 저자는 어느 책에 쓰여 있는 문장을 인용한다. "20대 인생의 질은, 우연히 만난 말로 정해진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는 책을 본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다. 생각해 보면 인생에 고품질, 저품질 같은 게 있을 리 없다고 단언한다. "사실 미래고 나발이고 없다. 그러나 당시 나는 젊었고, 어리석었고, 오만했다"고 털어놓는다. '인생의 질을 높일 수만 있다면'이란 생각으로 수만 권의 책을 읽어댔다고 하니 뭔가 기대감이 더 커지는 느낌이다.

 


 

저자는 서문을 정리하며 끄집어냈던 말들을 하나씩 주워담는다. 독자들의 궁금증의 일부분이라도 풀어주려는 듯, 하나씩 짚어간다. "20대의 인생은 잊을 수 없는 편린과 만남, 언제 마음이 움직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나는 그 편린들에 '20대에 얻은 지견'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누구라도 하나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결정한, 화사하고 사치스러운 비밀이 있는 법이다. 혹은 덜 마른, 애처로운, 상흔과 같은 교훈, 이야기가······. 그리고 그런 것들은 인터넷에는 올라오지 않는다." 자신의 편린과 수백 명에게 질문을 해 얻은 답변인, 그들의 편린을 모은 것이 이 책이라고 말한다. 이 책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된다면 저자 자신에게 큰 영광이고,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면 더욱 영광이라는 말을 남기며 서문을 급하게 닫는다.

이 책은 일상, 특히 20대 저자의 일상에서 사색을 통한 단상들로 이루어진 글들의 묶음이다.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불완전으로부터의 출발」, 2장 「현실에 관한 몇 개의 노골적인 사실」, 3장 「안티 안티로맨틱」, 4장 「사랑에 관한 몇 가지 끄적임」 등이다. 각 장을 통해 모두 183개의 단상을 적었다. 1장에는 〈절망하지 마, 그러나 서둘러야 해〉 〈20대에 자신감은 필요 없다〉 〈가장 아픈 추억이 그래도 가장 아름답다〉 〈성격은 고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 〈계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택지〉 〈꿈 따위 없어도 사람은 될 수밖에 없는 존재〉 등 모두 50가지의 보편적이고 실용적인 단상이 수록되어 있다.

 


 

2장에는 이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44가지의 단상이 게재되어 있다. 〈고독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속았다고 생각하고 해본다〉 〈안됐지만, 이 세상에 운이란 건 엄연히 존재한다〉 〈인생을 통째로 착각하지 않으려면〉 〈진지하게 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에 걸린다〉 〈미움받는 것도 사랑받는 것도, 아무렴 어때〉 등이 일상에서 흔히 부닥치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 인간의 단상이 시니컬한 문체와 곡선과 직선적인 비유, 깊음과 얕은 생각들이 교차적으로 나타나는 곳에 대해 생각의 확대를 통해 문학의 영역으로의 접근을 시도한다.

〈우리가 천재를 대하는 자세〉에서 "우리는 천재를 좋아한다"고 말머리를 꺼낸다. 노력하는 천재, 노력을 모르는 천재, 어느 쪽이든 세상이 숭배하다 버리는 건 흔한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나도 하면 할 수 있어!"라고 소리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인간은 빠르게 말라버린다. 그야말로 기원정사의 종소리, 사라쌍수의 꽃잎 색, 봄밤의 꿈과 같다"고 표현한다. 그런데도 초등학교 미술 선생님은 야외 그림 수업 시간에 나무 그늘 아래세서 학교 건물과 하늘을 그리려고 했지만, 색도 선도 구도도 구제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서툴러 멍하니 바라만보고 있을 때 선생님이 소리도 없이 옆에 와 앉으며 그렇게 말씀하셨단다. 평범한 사람이면 된다고. 저자는 건방지게도 이렇게 반박했다고 털어놓는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림을 그리는 건 재능이니까, 재능이 있는 애가 잘 그리는 거죠. 재능이 없으니 못 그리는 건데, 이걸 끝까지 해내야 하는 의미를 모르겠어요." "괜찮아, 못 그려도. 못 그려도 재미있잖아." 선생님은 저자의 생각을 날려버린면서 조용히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할 필요는 없어. 잘하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훌륭한 물건을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돼. 자신의 평범함을 완벽하게 받아들이렴. 못 그리면 못 그리는 대로 끝까지 완성해서 내게 큰 웃음을 주렴. 잘 그리려 한다고 해서 잘 그릴 순 없지만, 바로 거기에 헤어 나오기 힘든 매력이 있는 거니까." 물론 저자의 그림에 헤어 나오기 힘든 매력 따윈 없었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저자는 나름대로 생각 끝에 이렇게 적는다. 평범하니까 오히려 강하다. 천재가 되지 않아도 된다.(p.114~116)

 


 

3장에는 〈슬픔과 애절함과 외로움의 차이〉 〈만약 우리가 겨울 별자리에 기관총을 쏠 수 있다면〉 〈외로움에 완벽하게 패배하다〉 〈100만 명에게 사랑받은 인플루언서의 우울〉 〈나이를 먹으면 할 수 없어지는 세 가지 일〉 등 마음을 울릴 만한 50가지 단상이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 4장에는 〈사랑이란 온힘을 다해 쥐어짤 수 있는 모든 것〉 〈동거 정도는 경솔하게 시작해도 된다〉 〈함께 사는 행위의 본질은 괴롭힘〉 〈연애 따위 하기보다 고양이를 키우자〉 등 사랑과 관련된 41가지의 단상이 있다. 이 책의 단상들은 사실 윗 세대인 독자로선 한 번 읽고 쉽게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많다. 국적이 다른 부분이나 관습의 다른 부분에서 오는 몰이해 때문이 아니라 문화적 감수성이 다른 탓으로 느껴진다. 이는 일본과 우리나라가 문화적 차이를 느낀다는 것이 아니라 50대와 20대의 세대 차이에서 오는 현실 인식이 다르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독자는 이해된다. 만약 우리나라 20대 작가나 현실 인식과 문화적 수용성이 비슷한 우리나라 젊은 작가가 쓴 글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험을 독자는 해봤기에 감수성에 대한 세대 차이, 현실 인식에 대한 세대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오늘 제 생일인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인터넷을 통해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이런 종류의 말을 자주 듣는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파도가 치는 물가에서 울고, 맨손으로 케이크를 먹고, "나님의 생일을 축하하라!"며 친구에게 소리를 쳐도 좋다. 자위든 섹스든 좋을 래도 하면 된다. 앞으로 1년 후엔 죽는다고 가정하고, 버킷 리스트를 대폭 갱신하는 것 또한 하나의 여흥이 된다. 이런 것도 다 생일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면, 좀 더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도 있다. 우리들은 사실 365일을 생일로 사는 게 맞다."(p.358) - 4장 중 〈365일 생일로 삼자〉 일부

 


 

대부분의 세상사에는 다섯 종류의 인간이 있다.

예를 들어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 자격증을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 자격증 보유자를 고용하는 사람, 자격 자체를 만들어 내는 사람, 그 자격이 규정하는 지식과 지혜의 의표를 찔러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

맨 처음 예를 든 사람부터 순서대로 뒷사람에게 이용당하며 산다.(p.64) - 1장 중 〈세상에는 다섯 종류의 인간이 있다〉 일부

 

저자 : F

F는 11월에 태어났다. A형이고 머리카락이 까맣다.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 도쿄타워와 영화, 현대 시, 산책, 겨울, 페르시안 고양이를 좋아한다. 혜성처럼 나타나 젊은 독자들의 폭발적인 공감을 받으며 일본 SNS를 뒤집어놓은 익명의 작가 F. 그의 에세이 『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는 출간되자마자 일본 아마존 에세이 분야 1위에 올랐다. 18만 부 이상 판매되며 전국 서점에 품귀 현상을 일으킨 화제의 책이다. 이는 익명의 작가로는 이례적인 현상이다. 다른 책으로는 소설 『한밤중의 소녀 전쟁』이 있다.

 

역자 : 박진희

가톨릭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했다. 게이오대에서 일본어를, 동경외대 대학원에서 일본문화(지역문화 연구과 일본 전공)를 공부하고 돌아와 현재는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엄마, 죽고 싶으면 죽어도 돼』, 『사이코패스, 정상의 가면을 쓴 사람들』, 『살아간다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아이에게 맡겨라』, 『표현의 달인』 외 다수, 지은 책으로는 에세이집 『나른한 오후의 마들렌』과 일본 에서 출간한 『한류스타와 한국어』, 『홀로 떠나는 한국여행과 회화』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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