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 위도우 : 죽음을 삼킨 여자 1
쟈오 재이 시란 지음, 심연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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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아이언 위도우』는 중국 고대, 시대를 호령했던 영웅호걸들이 등장하는 SF 소설이다. 오늘날 중국의 국호 'China' 가 있게 한 진(秦), 한자와 종이를 비롯해 세계적 발명품이 쏟아졌던 한(漢)과 중국 역대 최고의 문명 국가를 이룩했다는 당(唐)나라 때의 영웅호걸이 한데 모여 자웅을 겨룬다면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이는 서양 문명의 태동이 됐던 그리스·로마 문명을 뛰어넘은 우수한 문무의 대결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 작품에 당 태종 이세민(599~649)과 측천무후(624~705)는 동시대 인물은 아니다. 출생연도가 당태종이 한 세대 앞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다른 세대의 중국 영웅들이 등장하기에 독자가 상상해본 것이다. 책의 저자 쟈오 재이 시란은 중국계 미국인이다. 그는 책의 서두에 이 소설이 역사 판타지나 대체 역사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 역사의 문화적 요소에서 영감을 받아 창조한 이야기로, 완전히 다른 세계를 배경으로 한 미래의 시점을 그리고 있다고 밝힌다. 이 책의 목적이 특정 시대를 정확하게 서술하는 목적이 아니고, 책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은 전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다시 상상하여 창조된 캐릭터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역사적 인물을 다시 상상하는 과정에서 가족 관계나 작중 인물 간의 나이가 바뀌는 등, 창작의 자유에 기반해 수많은 변형이 이루어졌다는 점도 미리 알리고 있다.

이 소설은 출간 즉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오른 화제의 SF 소설이다. 『아이언 위도우』가 표제이고, 「죽음을 삼킨 여자」가 부제이다. '죽음을 삼킨 여자' 중 1권이 이 책이다. 위도우(widow)란 '미망인', '과부'를 의미하는 영어이다. 표제어를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철의 미망인'일 터 소설의 등장인물 중 측천무후를 가리키는 것. 고대 중국의 시대상과 공상 과학을 적절히 엮어 낸 이 작품은 2021년 보스턴 글로브 베스트북, 북라이엇이 꼽은 ‘역대 최고의 공상 과학 소설 20권’에 선정되었다. 미국 SF 판타지작가협회가 시상하는 네뷸러상 작가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아이언 위도우』의 매력에 푹 빠진 독자들이 세심히 그려 낸 팬아트와 작품에 대한 열정적인 찬사로 화답하고 있어서 올해 하반기에 출간될 후속작도 기대할 만하다. 소설의 시작은 판타지 소설의 신기원을 연 『해리포터』 시리즈를 능가한다. 독자들이 시리즈물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프롤로그」로 문을 열고 있다. "'혼돈'이 다가온다. 짙은 먼지 폭풍을 밤새도록 일으키면서, 거대한 혼돈 떼가 울부짖으며 황야를 달려오고 있다. 반달이 쏟아내는 은빛과 찬란한 별빛이 가득한 하늘 아래, 기(氣) 금속으로 이루어진 얼굴 없는 투실투실한 몸체가 반짝였다. 오늘 놈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전장으로 나가는 조종사는 평소보다 적었다. 하지만 양광은 당황하지 않고 만리장성 바로 바깥에 있는 자신의 망루에서 행동 개시 명령을 내렸다. 바로 자신의 '크리살리스' 구미호에게. 새파랗고 진한 초록빛을 띤 구미호는 7, 8층 건물만큼이나 몸집이 커서, 금속 발톱이 바닥을 쿵 밟을 때마다 땅이 흔들렸다."(p.9)

화하의 남성 조종사들은 거대 병기 ‘크리살리스’에 탑승하여 전쟁에 참여한다. 그 병기는 ‘첩 조종사’라고 불리는 여성들의 기를 소모하여 움직인다. ‘다 쓴’ 배터리처럼 소진된 여성들은 한 줌의 재가 되어 버려지고, 그녀의 가족들은 배상금을 지급받는다. 첩 조종사였던 측천의 언니 역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언니의 복수를 꿈꾸며 탑승한 첫 번째 크리살리스 전투에서, 측천은 압도적인 ‘기력’으로 남성 조종사를 파괴하고 홀로 살아남는다. 조종실의 문이 열리고 남성 조종사의 시체가 떨어진 순간, 듣도 보도 못한 강력한 여성의 등장에 세상은 혼란에 빠진다. 남성보다 강하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힌 측천. 그러나 아무도 측천을 막을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을 짓밟으려는 모든 시도를 부숴버리고 여성을 쓸모없는 존재로 치부해왔던 가부장제를 산산조각 낼 것이다. 이제, 화하의 백성들은 새로운 황제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 황제의 이름은 측천무후다.

 


 

실제 중국의 고대 역사에서 '측천무후'라는 호칭은 당(唐) 고종의 황후로서의 지위를 나타내지만, 690년 당의 국호를 주(周)로 고치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15년 동안 중국을 통치했던 사실에 비추어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무측천(武則天)’이라는 호칭이 더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름인 ‘조(?)’는 ‘비출 조(照)’의 뜻을 나타내는 측천문자로서 해와 달이 하늘에 떠있는 모양처럼 세상을 비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무후는 637년 당 태종(이세민, 재위 626∼649)의 후궁으로 입궁했으며, 4품 재인으로서 태종에게 ‘미(媚)’라는 이름을 받아 ‘무미랑(武媚娘)’이라고 불렸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649년에 태종이 죽자 무후는 황실의 관습에 따라 감업사로 출가하였다. 그러다 651년 고종(재위 649~683)의 후궁으로 다시 입궁하였고, 이듬해에 2품 소의가 되었다. 무후는 고종과의 사이에서 4남 2녀를 낳았으며, 655년 왕황후와 소숙비(蕭淑妃) 등을 내쫓고 황후가 되었다.

위 사실은 역사에 기록된 측천무후에 관한 내용 중 극히 일부를 인용한 것이지만 그에 관한 기록은 정사와 야사를 불문하고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다만 독자들이 소설을 더 재미 있게 읽을 수 있도록 독자가 역사적 사실을 인용했다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당초 저자가 주의를 주었던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역사에 기록된 인물과 이름을 같이 하지만 실제 역사와는 무관하다고 책 서두에 저자가 밝힌 사실을 염두에 두고 소설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독자가 임의로 추서한 점을 밝힌다.

『아이언 위도우』의 배경이 되는 ‘화하’는 가부장제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곳으로, 여성들을 그릇되고 쓸모없는 존재로만 취급한다. 사람이 탑승할 수 있는 거대한 병기 ‘크리살리스’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화하에서, 남성 조종사들은 어린 소녀들의 기를 배터리로 이용하여 적들을 물리치고 명예를 얻지만, 죽은 소녀들은 이름 없는 한 줌의 재가 될 뿐이다.

 


 

이 사실은 유교 사회에 억눌리고 고통받았던 수많은 고대 중국 여성들을 떠올리게 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영혼들이자, 남성이 누린 삶의 단역 배우로서 생을 마감한 여성들 말이다. 뒤틀린 가부장제의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 찬 공간인 화하에 변혁의 피바람이 불어닥친다.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중국의 유일무이한 여황제, 측천무후는 온화한 민생 정치와 권력에 오르기 위해서 가족까지 버렸던 잔혹한 성정으로 칭송과 비난을 동시에 받는 인물이다. 당돌하고 무자비하며 분노하는 여성 영웅을 그리고 싶었던 저자가 이렇듯 명과 암이 뚜렷이 존재하는 측천무후라는 인물에 끌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많은 이들을 짓밟은 악녀이면서도 유교 사회의 억압을 이겨 낸 강인한 여성 주체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그려낸 새로운 ‘무측천’은 언니의 복수를 꿈꾸며 크리살리스의 ‘첩 조종사’가 되기를 자원한다. 그녀의 복수는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성공하게 된다. 첫 전투에서 남성 조종사보다 월등한 기력(氣力)으로 그의 정신체를 죽여버리고 만 것이다. 크리살리스의 뚜껑을 열었을 때 보인 측천의 모습은 미친 사람과 다름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언니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을 농간하고 죽인 남성의 시체를 바닥에 떨구고 꽃신을 신은 발로 짓밟는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복수의 서막을 알린다. 모두가 측천을 비난하고 가두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여성이 가진 무한한 힘으로 스스로를 황제의 자리에 올릴 측천의 여정이 궁금한 독자라면 이 작품을 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양광'이라는 인물은 프롤로그에서 자세히 표현된다. 현존하는 조종사 중 가장 강한 정신력으로 혼돈 떼를 격파하기 때문이다. 그의 무용(武勇)은 참혹할 정도로 강인하다. 그는 첩의 정신이 다시 육체로 돌아가지 못하리란 걸 알아고도 무의식적으로 첩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었다. 심지어 심장 박동까지도. 그가 연결을 끊는 순간, 첩의 모든 신경이 끊어지고 심장은 뛸 힘을 잃게 된다. 그렇게 첩은 이 세상을 떠난다고 알고 있지만 전투에 나서는 순간, 자비란 없다. 양광은 냉정한 이성으로 기를 잃을 모든 생각을 애써 떨쳐버린다. 이제껏 양광을 거쳐간 첩 조종사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런 걸 일일이 떠올렸다간 정신이 흐트러지고 말 것이다. 그의 전투 목적은 조국의 힘없고 선량한 백성들을 지킨다는 명분이다.

 


 

측천을 둘러싼 두 남자의 로맨스 또한 『아이언 위도우』를 읽는 재미를 크게 높여준다. 측천과 이치, 세민으로 이루어진 세 사람의 사랑은 읽는 이의 마음을 간질이고 애달프게 한다. 측천과 이치는 숲속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은 모습으로 측천의 눈앞에 등장한다. 그 모습을 본 측천은 세상에 저토록 하얗고 부드러운 옷이 있으며, 그 옷보다 더 섬세하고 우아한 사람이 존재함을 처음 깨닫는다. 이치는 측천의 힘과 가능성을 처음으로 인정해 준 남자로, 측천의 든든한 조력자다.

반면 세민은 거칠고 위험한 남자다. 그는 화하에서 가장 높은 기력을 지닌 조종사로, 그와 함께한 첩들은 전투 당일 모두 죽고 만다. 측천과 함께 크리살리스에 올라탄 날도 세민은 아무 기대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투가 끝난 후 그의 품 안에 있던 측천이 멀쩡하게 걸어 나가자 세민은 충격에 빠진다. 마침내 기다려왔던 자신의 짝을 만났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측천은 처음엔 이치와의 관계 때문에 세민을 거부하지만 그의 내면에 들어찬 갈등과 고통을 이해하게 되면서 측천은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연다.

측천은 두 남자 중 누구에게로 기울게 될까? 작중 측천의 캐릭터를 독자들이 알아낼 수 있는 대목이다. 작품 속에서 이러한 질문은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을 뿐이다. 이 작품은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다. 측천은 도망치자는 이치에게 자신은 사랑에 안주하지 않을 것이며, 세상을 바꾸려는 본인의 의지를 막지 말라며 소리친다. 세민에게는 소녀들이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전투에 참전한 일을 큰 소리로 꾸짖는다. 그녀는 고분고분하지 않으며 함부로 자신의 것을 내어 줄 생각이 없다. 또한 그녀에게 사랑은 나누는 것이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어떤 모양이든 가능하며 어느 곳으로든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에 등장하는 사랑은 동성애와 이성애, 다자연애를 모두 포함한다. 그러므로 세 사람 앞에는 새로운 선택지가 등장하고, 그들의 사랑은 더 넓은 곳으로 흐르게 된다.

 


 

거대 전투 병기 ‘크리살리스’는 ‘혼돈’이라는 침입자에 맞서 싸우기 위해 개발된 무기이다. 혼돈은 여섯 개의 다리를 가진 이목구비 없는 생명체로, 200년 전 주 지방을 빼앗고 중국을 폐허로 만든 전력이 있다. 이후 ‘신’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등장하여 국가를 재건하였다. 화하의 사는 모든 이들에게 혼돈은 혼란을 일으키는 무법자이자 반드시 해치워야 할 주적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전투를 거듭하며 측천은 혼돈의 슬픔과 분노를 감지한다. 그리고 의문에 빠진다. ‘신’이라는 자들은 대체 누구이며 혼돈은 언제부터 이곳에 존재하였는가. 우리가 혼돈에게 준 것은 무엇이길래, 이 생명체는 더 이상 빼앗길 것 없는 피해자들처럼 거세게 저항하고 싸우는가. 혼돈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가. 과연 한 세상을 움켜쥘 만한 그릇의 인물이다.

『아이언 위도우』에서 측천은 끊임없이 질문하는 인물이다. 스스로가 세상에 속아왔으므로, 화하에 사는 모든 이들이 사회의 거짓말에 기만당해 왔으므로. 측천의 질문은 너무도 당연한 세상의 질서에 물음표를 던진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 우리는 당장 어제도 아무런 의문 없이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세상의 말에 순응하면서 하루를 살아나가지 않았는가. 삶은 질문하는 만큼 살아지기에 독자들은 측천과 함께 질문하며 이전과 다르게 살 기회를 얻는다. 저자는 화하가 숨긴 것은 곧 세상이 우리에게 숨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 그것을 들춰낼 시간이다.

 

저자 : 쟈오 재이 시란

 

쟈오 재이 시란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중국의 작은 마을에서 캐나다로 이주해 온 이민 1세대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에서 보건학을 전공했으나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생화학적 회로에 대한 공부보다는 공상 과학과 판타지 소설을 쓰는 데 관심이 많았다. 그녀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녀가 운영하는 유튜브 계정에는 중국의 영상과 문화를 설명하는 재미있는 영상이 가득하니, 꼭 들어가 보기를 바란다. 『아이언 위도우』는 그녀의 첫 소설이다.

 

역자 : 심연희

 

연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독일 뮌헨 대학교(LMU)에서 언어학과 미국학을 공부했다. 영어와 독일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소설 『덤플링』 『어둠의 눈』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마쉬왕의 딸』 『미드나잇 선』, 그래픽 노블 『인어 소녀』 『스냅드래곤』, 시리즈물로 『이사도라 문』 『인더게임』 『캡틴 언더팬츠』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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