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어웨이
장세아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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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어웨이(run·away)'란 ① 달아난, 가출한 ② 제멋대로 가는, 제어가 안 되는, 고삐 풀린 ③ 도망자, 가출자(특히 청소년)의 뜻을 지닌 영어다. 이 책 『런어웨이』는 동거중인 남자 현욱의 폭력에 시달리던 여주인공 재영이 우발적으로 현욱을 죽이고 도망자 신세가 되면서 시작된다. 제목과 함께 첫 문장 ‘인생을 리셋할 수 있을까?’는 묘하게 삶으로부터 도피 중인 한 여자와 어스름한 새벽 열차 안이라는 분위기로부터 비장함이 묻어난다. 저자 장세아는 「작가의 말」을 통해 "'어스름한 새벽 첫차 안, 화장실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는 초췌한 여자의 모습'. 모든 것은 그 이미지 하나에서 출발했다"고 밝힌다. 잠 못 들고 뒤척이는 밤, 머릿속을 이리저리 떠가는 생각들 가운데 유독 선명하게 떠오른 이미지였다고 말한다. 여자는 겁에 질려 있었으며, 손을 씻다가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한참 들여다본 뒤 떨리는 손으로 물을 끼얹는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쫒기던 참이었고, 어서 벗어나고 안달하고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꿈에서 빠져 나온 모습이긴 한데 여자의 이미지가 점점 강해지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또다시 기묘한 상황에 빠지고 만다. 저자가 소설의 인물(캐릭터) 창조를 위해 고민하던 모습을 설명하는 듯한 이 말들은 도망자 신세가 된 재영이 서울로 향하던 어스름한 새벽 첫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이 쪽지만 남긴 채 아이를 버리고 사라지는 장면에서 고스란히 재현된다. 그 여자와 잠시 기차에서 나눴던 대화를 통해 그녀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고, 살길이 막막하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시댁'을 찾아 가는 중이었음을 알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쪽지에 남긴 집을 찾아 재영은 아기를 데려다 준다. 주소지로 찾아간 재영의 눈앞에는 어마어마한 대저택이 기다린다. 재영이 아기가 이 집의 손자라고 밝히자 그 집 사람들은 당연히 재영을 아기의 엄마로 착각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흥미진진한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가 펼쳐지면서 이야기 속 주인공은 물론, 독자들도 역시 손에서 책을 놓치 못하게 만든다. 이처럼 강한 흡입력을 가진 『런어웨이』는 고전 고딕 소설의 감성을 한국 정서에 맞게 풀어낸 K 고딕 미스터리 스릴러로서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앞서 언급한 「작가의 말」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수록 일이 더 안 풀려서 절망하던 경험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문제 해결의 방법이 마냥 착하고 도덕적인 방법이 아니라 지극히 사악하고 현실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모습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만들어 내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스토리와 캐릭터의 성향 등을 주도면밀하게 구상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도 곤경에 빠지거나 낯선 환경 속에 내던져질 경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느냐에 이 소설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저자의 말은 읽힌다. 저자의 의도는 이 세상에는 마냥 착하기만 한 사람도, 마냥 나쁘기만 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란 항변이라고 독자는 읽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인간의 욕망'에 관한 것인지도 모른다. 재영도, 효진도, 현욱과 수현 형제도, 형제의 아버지인 회장마저도 모두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을 열망했고, 그것을 갖기 위해 저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애를 쓰다가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기 때문이다.

‘나 대신 아기를 꼭 데려다 달라’는 쪽지 속 그녀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대신 시가를 찾아간 재영은 처음엔 아름다운 서양식 저택의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그리고 그녀를 며느리로 오해하고 반겨 주는 식구들과 풍족한 집안 분위기에 흔들린 나머지 그만 자기가 아기 엄마라고 말해 버린다. 호화로운 환경, 편안한 생활, 다정하고 잘생긴 시동생까지··· 뜻밖의 행운에 도취된 재영은 자신의 처지를 잊고 부잣집 맏며느리 역할에 적응해 나간다. 그러나 번듯해 보이는 이 가족이 숨기고 있던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씩 드러나는 추악한 비밀과 진실 앞에서 그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저자는 이 소설 『런어웨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갔던 인물은 의외로(?) 수현이었음을 고백한다. 하얗고 창백한 얼굴의 여리여리한 미청년. 이유 없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뿌리 깊은 애정 결핍 때문에 누군가에게 비틀린 방식으로 집착하는 찐한 인간(어떤 이유도 그의 행동에 결코 면죄부를 줄 수는 없겠지만). 저자는 또 마지막 장면, 수현이 비참한 최후를 맞는 장면을 쓰던 밤을 잊을 수 없다는 말도 한다. 그 장면을 끝낸 뒤 왠지 울컥하는 바람에 깊은 밤 오랫동안 혼자 방 안을 서성이며 이 아련한 서글픔의 실체가 무엇인지 가만히 되짚어 보았다고 한다. 지금껏 저자가 창조한 가상의 등장인물에게 그 정도로 감정이입을 했던 적은 처음이어서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되뇌인다. 저자의 이같은 독백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인간의 욕망의 뒷편에 자리잡은 추악함, 욕망을 향하는 무절제한 집착, 욕망을 이루려다 실패했을 때의 좌절에 따른 잔인함 등을 고려하면 저자의 의도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독자의 생각이다.

교보 스토리 영상화 추진 프로젝트로서, 웹 소설를 포함해 다양한 장르의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장세아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장세아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억압받는 인간의 강한 생명력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기구한 운명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강해져야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이다. 또한 등장인물 모두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등 누구도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입체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현실적인 흥미를 더한다.

 


 

등장인물을 살펴보면, 재영이 사랑했던 남자는 여자에게 고통만 주는 사람이었다. 동거중이긴 했지만 보육원에서 자란 재영에게는 유일한 사랑이었다. 잘 생기고 섬세했던 남자는 의처증이 심했고, 폭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사건 당일도 남자에게 맞던 재영은 프라이팬으로 남자의 머리를 우발적으로 내리쳤고 남자는 죽었다. 재영은 도망쳤다. 역에 숨어 있다가 제일 먼저 떠나는 첫 기차에 올랐고 거기에서 아기를 안고 기차에 오른 여자를 만난다. 재영이 찾아간 아기의 집은 대저택인데다 주인인 할아버지는 몸이 성치 않지만 거부였다. 아기 아빠의 동생이라는 남자는 여자에게 형수라고 부르면서 살갑게 굴었다. 여자는 어차피 갈 곳도 없는 신세였다. 요새 같은 이 대저택에 숨어 있으면 시간을 벌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여자는 아기엄마가 되기로 하고 부잣집 며느리로 남기로 한다. 시동생이 된 남자는 친절했다. 다시 사랑의 마음이 솟아오를 정도로.

부잣집 며느리 노릇도 점점 재미가 붙었다. 하지만 자신이 죽인 남자가 발견되면 모든 게 끝이다. 여자는 살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죽은 남자가 사라졌다. 집은 깨끗했다. 누가 치웠을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기엄마가 나타났다. 시아버지의 간병인으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오래전 그 집에서 간병인으로 일했던 여자는 어떻게 아이를 낳고 자신을 이 집으로 끌어들였을까. 이 집에서는 이해할 수없는 사건 사고가 연이어 벌어졌다고 한다. 자신과 살았던 장남이 집을 떠났고, 그의 어머니는 알레르기로 급사했다. 일하던 가정부는 도둑질을 하다가 쫓겨나고 이후 자살을 했다. 그 사고는 모두 우연이었을까. 여자는 오래전부터 자신들을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 그리고 기차에서 만난 여자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이 모든 사고와 사건의 뒤에는 양의 탈을 쓴 악마가 있었다는 사실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을 중간에 멈출 수가 없을 만큼 압도적인 흡인력이 있다. 소시오패스의 악랄함과 사랑에 대한 갈망이 살인에 이르게 되는 스토리에 아마 독자들은 멈추지 못하고 빠르게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의 구성에 있어서도 꽤 안정적이고 유기적 관계를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작가로서 천부적 소질인지, 오랫동안 습작과 창작을 통해 획득한 재능인지 독자야 모르지만 훌륭한 구성과 스토리의 소설이라는 점에 크게 공감한다. 이 소설은 전반부는 재영, 후반부는 '효진'이라는 여자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어찌 보면 둘다 안타까운 피해자이고 가해자이다.

 

나는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그가 침대로 걸어와서 내려다보는 것을 느끼면서도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었다는 건 알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일들을 겪었는데.

그러니까 앞으로 나아가는 데 망설임 같은 건 없다.

멈출 생각은 없다.

그만한 각오가 없었다면 시작도 안 했지.(p.417)

 


 

그제야 내가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이 달랑 어린애 하나만 안고 찾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무슨 증표 같은 것도 없이, 아기 엄마의 이름이나 그 여자의 남편 이름도 모르고 무작정 찾아온 것이다.(p.33)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잘생기고 다정한 나의 연인 대신 또다시 괴물이 나타났다는 걸 깨닫는 순간, 모든 게 지긋지긋해졌다. 지금부터 벌어질 모든 일들이 여러 번 반복해서 돌려 본 영화처럼 익숙하게 머릿속을 흘러갔다. 어떻게 끝날지 너무 뻔해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p.120)

 

이 손에 잡혀 있는 동안은 누구도 날 해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 단단히 잡아야 한다. 절대 놓치면 안 된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까.(p.191)

 

끝도 없이 이어지는 시커먼 터널 속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뒤로 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이 갇혀 있는 기분. 이 고통에 끝이란 게 있을까? 어느 한쪽이 사라져야 끝나는 게임일 텐데 그게 내가 될 확률이 크겠지.(p.194)

 

저자 : 장세아

 

명품 브랜드 홍보 담당자로 오래 일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북리뷰 채널 ‘취향타는 독서 처방전’을 운영 중이다. 웹 소설부터 유명 스타일리스트의 패션북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서로 다른 필명으로 쓰고 있다.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 출품했던 단편소설이 주목받아 교보문고 추천작으로 장편 『런어웨이』를 출간하게 되었다. 고전 고딕 소설의 감성을 더한 한국형 고딕 스릴러 『런어웨이』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인정받아 영상화 등 2차 콘텐츠로의 확장을 추진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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