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노테 다이빙 - 2023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노은지 지음 / 마시멜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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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로 혼자 신혼여행을 떠나온 현조의 여정을 따라가는 이 소설은 장소 그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가 되고 주제가 되는, 서사적 완결성을 지닌 작품이다. 우리 시대 사랑에 대한 시의적절한 질문과 함께 안정된 문장과 플롯이 일품이다."

독자는 이 소설을 읽기 전 '카리브해에 있는 리조트' 낭만적 장소 배경에 마음이 닿았다. 누구나 한 번쯤 여행을 꿈꾸고 사랑을 속삭이고 싶은 곳이다. 꿈결에서나 만날 듯한 그곳을 오가는 크루즈선은 덤이다. 서두의 말은 은희경 소설가와 이기호 광주대 교수의 추천평이다. '우리 시대 사랑법'과 '서사적 완결성'을 추천 이유로 밝혔다. 그러나 실제 배경 묘사는 아름다운 분위기가 뭔가 섬뜩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 도입부가 오히려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 끄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이 소설의 도입 부분은 말 그대로 시간이 정지한 듯한 숨 넘어갈 듯 아름다운 배경을 묘사하지만 그 속에서 주인공 현조의 움직임은 진한 어둠이 깔려 있다.

"깨끗한 흰 벽과 상아색 대리석 바닥. 에메랄드와 진홍색, 세련된 나뭇잎 패턴의 포인트 벽지. 두 사람의 것이 될 뻔했으나 한 명으로만 채워진 화사하고 화려한 스위트룸. 현조는 방 열쇠와 숄더백을 소파 위에 던져두고 테라스를 가리기 위해 커튼을 친 뒤 침대로 기어 올라갔다. 방 불을 죄다 꺼버리자 멕시코의 진한 햇살이 비치는 두꺼운 커튼 아랫부분만이 방 안에서 어둠이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곳이 되었다."(p.11)

 


유카탄 반도 카리브해 연안의 한 리조트 <사진출처 : 열정의 대륙 남미 기행>

 

배경 설명으로 묘사되는 서너 개의 단어는 사실 '이국적' 분위기 묘사에 적절한 곳이다. 이 가운데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소한 용어 풀이를 미리 해둔다. 세노테(cenote)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서 발견되는 자연 현상으로, 석회 기반암(基盤岩)이 오랜 세월 빗물에 무너져 내리며 표면을 드러낸 지하수 샘을 말한다. 낮은 저지대, 섬, 해안가 등지의 토양 발달이 견고하지 않은 고생대 지층 석회암 지대에서 발생하는 지질학적 형태이다. 카르스트 지형에서 나타나는 돌리네(doline) 또는 싱크홀(sinkhole)과 동일한 개념이다. 석회암이 용해되어 지표 아래에 공간이 생기면서 동굴이 형성되기도 하고, 연속적인 구조적 붕괴로 위가 뚫려 천연 수영장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물 아래의 석회암 바위는 용해 작용으로 세월이 흐르며 점차 사라진다.

칸쿤(Cancun)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카리브 해안에 위치한 국제 관광 도시로, 아카풀코와 함께 멕시코 해양 관광의 중심지이다. 치첸이트사(Chichen Itza-책에서는 치첸이사로 표기한다) 도시 유적이란 멕시코 유카탄주(州)에 있는 7~13세기 후반의 대도시 유적을 말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700년경부터 도시화가 진행되었으며, 최성기인 900~1000년경에는 유카탄 지역의 광대한 지대를 통괄하는 국제도시로 번영하였다. 도시 면적은 최소한 30km2 이상이며, 삭베(포장 둑길)만 69개소나 되었다. 이는 메소아메리카에서 최다에 속한다.

맹그로브 숲은 열대에서 아열대 지역의 하구 기수역의 염성 습지에 형성되는 삼림의 일종이다. 세계적으로 동남아시아, 남태평양, 호주, 인도 근해, 아프리카, 아메리카에 분포하는데, 일본에도 오키나와현과 가고시마현에 자연 분포하고 혼슈 일부 지역에도 인공적으로 옮겨 심은 맹그로브 숲이 존재한다.

 


 

멕시코 칸쿤으로 혼자 신혼여행을 떠나온 현조. 그녀는 연인과 가족으로 가득한 리조트에 홀로 들어오자마자 직원에게 남편의 행방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현조는 대답한다. 그녀의 연인은 죽었다고. 마야 유적지인 치첸이사 투어에서, 와인을 마시러 간 야외 풀 바에서, 현조는 왜 혼자 신혼여행을 왔는지 묻는 사람들과 계속 마주친다. 그도 그럴 것이 홀로 그 리조트로 여행을 오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멀리서 혼자 여행을 온 동양 여자 현조에게 사람들의 관심은 집중된다. 그리고 체크인 할 때 직원에게 그녀의 연인은 죽었다고 말한 것이 어느 샌가 리조트 전체로 퍼져, 진짜 그녀의 연인이 죽어 혼자 온 것인지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그 궁금증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궁금하다. 작가의 소설 구성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때마다 현조는 굳이 그녀의 연인, 도훈이 죽은 경위를 알려준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현조의 이야기에 따르면 도훈은 결혼식 일주일 전에 총각파티를 하다 실랑이가 붙어 맞다가 넘어져 죽고, 도훈의 여동생을 스토킹하던 전 남자친구와의 싸움 도중 칼에 맞아 사고사하기도 하며, 단순한 교통사고로 죽기도 한다. 연인의 죽음을 때에 따라 여러 이유로 말하는 현조에겐 과연 어떤 진실이 숨어있는 것일까? 이 작품은 놀라운 흡인력으로 독자들을 빠져들게 만드는 구성과 생동감 넘치는 묘사로 심사위원들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실제 독자들이 느끼기에도 소설 도입부부터 두세 페이지를 넘기지 않는다. 작가가 2018년 신혼여행지에서 처음 구상한 이 책은 카리브해로 혼자 신혼여행을 떠나온 주인공 ‘현조’의 여정을 따라가며 전개된다. 특히 작가 특유의 자연 묘사가 인상적인 작품으로, 이국적인 장소 그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가 되고 주체가 되는 작품이다. 그런데 현조는 왜 신혼여행을 혼자 온 걸까?

 


 

현조가 지인 소개로 처음 만나게 된 도훈은 처음엔 그녀의 이상형과는 부합하지 않는 모습에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배려와 이해를 접하며, 현조는 굳게 닫힌 마음이 서서히 열리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둘은 연인 사이가 되었다. 이후 도훈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그가 위험에 처한 자신을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본 현조는 그를 자신만의 유일한 보석 같은 존재이자 진심을 다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행복하게 지내던 어느 날, 도훈은 그녀에게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고백해온다. 그러나 현조는 그런 그를 놓지 못하고 자신을 갉아먹는 선택을 하고 마는데… 이들 사이에 벌어진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도훈의 죽음엔 어떤 비밀이 있을까? 이 소설에서 현조는 신혼여행지로 온 이곳 리조트에서의 궁금증을 계속 쌓아가는 현조는 장(章)을 거듭하면서(이 소설은 모두 12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도훈과의 관계를 풀이해 내고 있지만 독자들이 기대하는 명쾌한 원인과 답은 작가가 직접 내비치지 않는다. 독자들 개개인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죽은 남자」란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저자 노은지는 강렬한 묘사를 쏟아낸다. "눈을 감으면 죽어버린 연인의 눈이 떠올랐다.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자 머리가 아플 만큼 칸쿤의 햇빛이 택시 창문을 뚫고 쏟아졌다. 농도 짙은 카나리아 빛깔의 햇살, 새파란 하늘, 가장자리가 은색으로 빛나는 구름 뭉치, 하늘로 손을 쫙 펼친 채 길을 따라 나란히 서 있는 푸르른 야자수들과 키 작은 관목들. 대기에 스며 있는 물기는 세상의 제도를 높여주었지만, 그를 바라보는 현조의 눈은 흐린 회색이었다." 리조트 체크인 하는 데스크에서 여직원 글로리아 후아레즈가 함께 예약한 도훈의 행방을 묻자 현조는 망설임 없이 답한다. "He's dead." 현조는 그 한마디면 충분하리라고 믿었다.

 


 

책 뒷 부분에 부연한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의 초고는 단편이었다. 하지만 등장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좀 더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원고를 쓰고 지우는 고통스런 시간의 반복 끝에 완성된 작품이 이 책이다. 작가는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거나 길을 바꾼 것들이 많았지만 소설만은 달랐다.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곡괭이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특히 작가가 제일 공력을 들인 부분은 바로 자연과 와인에 대한 묘사다. 칸쿤 특유의 아름다운 경관을 문장으로 그려내기 위해 현지에서 들은 세노테에 대한 설명과 관련 사진을 참고했다고 털어놓는다. 와인 공부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여러 차례 퇴고를 거쳤다고 한다. 그 노력은 고스란히 전해져 소설 속 와인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읽다 보면 금방이라도 그 맛과 향이 입안에 맴도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현조가 세노테를 마주한 부분에서는 마치 고요한 바닷속에 들어간 듯 같이 숨을 죽이게 된다. 이러한 세밀한 묘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에 빠져들게 되는 또 하나의 묘미가 될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내게 있어 소설은 현실에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도피처였다. 이제는 내 소설이 누군가에게 도피처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말처럼 현조와 함께 현실에서 벗어나 소설 속 세노테에 같이 빠져 들게 되길 바란다.(p.193)

 


 

순간 현조는 기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미소, 크고 둥근 눈, 햇살에 반짝이는 짙은 눈썹과 촘촘하고 긴 속눈썹, 도톰한 입술. 무엇 하나만 집어낼 수 없었다. 미구엘의 많은 것들이 그녀에게서 불특정한 감정과 감각을 가닥가닥 살려냈다. 조심스러운 태도와 수줍은 미소, 초식 동물에게서 볼 수 있는 무해한 아름다움과 부드러운 단단함, 도훈을 이루던 조각들. 현조는 그것을 미구엘에게서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닭살 돋은 팔을 쓸어내리고 손목에 걸려 있는 시계를 만지작거렸다.(p.51) - 「3. 순진한 남자, 해리 포터와 치첸이사의 목」 중에서

 

현조의 입술은 어떤 말들을 흘려보내기 위해 살짝 벌어졌으나, 도훈이 눈치 채기 전에 도로 닫혀버렸다. 수많은 단어와 문장과 비명이 점점 쪼그라드는 그녀의 육신 안으로 다시 자취를 감췄다. 현조는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먼저 도훈이 무언가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잠깐,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말들이 있었다. 정적. 숨을 천천히 내쉬자 현조의 어깨가 아래로 떨어졌다.(p.86~87) - 「5. 모르는 남자, 사랑하는 남자, 모르는 여자」 중에서

 

저자 : 노은지

 

1986년 경기도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다. 2023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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