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곡자 - 장악하고 주도하는 궁극의 기술
공원국.박찬철 지음 / 시공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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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전쟁도 많고 학자들도 많은 시대였다. 수많은 국가의 명멸로 '군웅할거' 시대였다고도 표현된다. 우리가 익히 아는 공자를 비롯, 노자·장자·묵자·순자·손자가 국가 부흥의 토양으로 군주들의 정치를 도왔다. 학문으로서도 거의 모든 토대가 갖춰지고 국가의 틀을 완성시키는 시기였다고 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이들 학자들의 학문과 이론은 국가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자처했고, 또 성숙해졌다. 이 가운데 이 책 『귀곡자』의 저자 귀곡자는 전국시대로 알려진, 2,500여년 전 중국에서 주로 전쟁에 필요한 책으로 알려져 왔다. 다만 손자의 『손자병법』과 다른 점은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재주는 모두 동원된" 전쟁 이론이라고 치부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즉 학문으로서 전수해야 할 정도의 토대가 갖춰지지 않은, 어쩌면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수단까지 모두 동원한다는 점이 학문으로서의 성취감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 책은 실천서이지 이론서로서의 역할은 할 수 없는 책이지 않았나 싶다. 뒤에 사마천의 『사기』 등에 짧게 언급되는 경우에도 정확한 학문적 확립이 없었던 것 아닌가 할 정도로 간단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학문으로서 앞세울 수 없는 이야기들이 들어가 있는 듯하다. 실제로 후학들의 『귀곡자』에 대한 평가는 매우 박하다. 명(明)대의 학자 송렴은 "소진, 장의의 말로 어떠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귀곡자』에 대한 비판을 가했다. 그러나 이는 정통 유학자의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곡자』라는 책이 세상을 어지럽힐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읽는 번역·주석서인 『귀곡자』의 공동 저자 공원국·박진철은 "자신은 읽되 남은 읽히기 싫은 책"이라는 표현으로 대신한다.

 


 

그로부터 2,500년이 지난 현재 우리 시대는 당시에 비해 엄청나게 복잡해지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모두 현실화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빠르게 변할지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급변의 시대'이다. 디지털의 시대로 바뀌면서 과학기술은 우리 삶의 모습을 바꿔놓으면서 뒤따라가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말 그대로 주변인물들로 밀려나는 시기다. 이 시점에서 왜 중국에서 이 책 『귀곡자』의 해석·번역·주석서가 다시 주목되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 역시 『귀곡자』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점검해 볼 필요는 충분하다는 게 공동 저자의 주장이다. 현대의 정치인들은 『귀곡자』에 대해 구양수가 밝힌 바와 같이 "시에 따라서 적절하게 변화하고, 일을 가늠해서 적당한 방책을 내는 바는 족히 취할 바가 있다"라고 평가하는 데 동의할 것이다.

마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한 평가와 기시감이 든다. 1513년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군주론』 역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의 원전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맞지만 그렇다고 『군주론』에 권모술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덕적 견지에서 그를 악마의 대변자로 비난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게 그와 저서에 대한 평가이듯이 『귀곡자』 역시 평가가 변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이 책을 악덕의 책으로 비판하면서도 군주로서는 마키아벨리즘적 정책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유명한 일이다. 마키아벨리즘은 그것으로부터 아무리 눈을 돌리고 싶어도 정치의 현실의 일면을 찌르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리고 종교나 도덕의 세계로부터 독립한 정치의 세계를 발견한 것이 마키아벨리가 근대정치학의 기초를 정립했다고 말해지는 이유이다. 마찬가지로 『귀곡자』에 대한 정확한 주석과 시대의 변화를 감안해 재해석되거나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형국이다.

 


 

공동 저자에 따르면 이 책 『귀곡자』의 요결을 ‘반드시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일의 시작을 결정할 때도, 함께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자 할 때도, 대세를 살펴 방향을 결정할 때도, 일의 마무리를 위해 결단할 때도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주도적인 자세다. 주도적이라는 말은 일에 휘둘리지 않고 일을 장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귀곡자』의 요결은 저자들이 이 책의 재평가를 위해 덧붙인 40여 가지 고사와 조조, 제갈량, 이세민, 오삼계, 서희, 강유, 고선지, 마오쩌둥, 덩샤오핑 등 역사상 중요한 전략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당나라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 당 태종 이세민의 고사에서 주도하고 장악하는 것의 중요성을, 산해관의 문을 열어 명나라를 청나라에 받친 오삼계의 고사에서 장악하지 못하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저자들이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고사와 인물들의 이야기는 『귀곡자』가 제시하는 방법들이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방편이 된다.

그렇다면 괴이한 이름의 소유자 '귀곡자'는 실재한 인물인가? 공동 저자는 「21세기와 귀곡자」라는 '서문(글을 시작하며)'을 통해 중국 전국시대 활약한 종횡가*의 비조(鼻祖-학문이나 기술을 처음으로 연 사람)로 알려져 있다. 그 문하생이던 소진과 장의는 합종책과 연횡책으로 각국의 제후들에게 유세하여 천하에 이름을 날렸다. 『손빈병법』으로 유명한 손빈과 전국시대 군사전략가 손빈과 위나라의 명장 방연도 그의 문하생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사기』에 귀곡자는 기원전 5~4세기경에 실재한 인물로 적고 있으며, 귀곡(鬼谷)에 은거했기 때문에 귀곡자로 불렸다고 적고 있다. 귀곡자는 천문과 수학에 정통하고, 선견지명으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계략을 결정하는 데 능란했다고 기술돼 있다고 한다. 또한 출사(出仕)를 원하는 제자들을 교육했는데, 학생의 특징에 맞추어 각기 유세, 병법, 음양, 술법 등의 학문을 연수했다. 요즘 말로는 쪽집게 과외선생이라 해야 할까?

 

 

실제로 그가 지었다는 『귀곡자』라는 기이한 책은 춘추전국시대의 다른 제자백가서들과는 달리 출사를 원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포부를 펼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실제적인 원칙과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공동 저자들은 말한다. 유명한 합종책과 연횡책은 소진과 장의가 귀곡자에게 배운 바를 그대로 적용해서 얻은 전략이다고 설명한다. 앞서 언급한 '종횡가'란 명칭도 그래서 얻은 것이란 독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귀곡자』는 마치 정치적 책략의 교과서로 알려져 왔고, 그동안 명분과 도덕을 중시하는 유가들에 의해 '세상을 어지럽히는 책'으로 홀대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동 저자에 따르면 책의 내용은 오히려 일을 정확하게 정의하고, 주변의 객관적 상황을 파악하며, 항상 형세글 잘 살피고, 같이 일할 사람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식 등 오늘날의 정치, 외교, 군사, 경제 분야에서 꼭 필요한 내용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귀곡자』는 하나의 큰일을 이루어 나가는 단계를 설명한 책이다. 특히 일을 수행하는 주체의 입장에서 일을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진행하여 마무리할 것인지를 설명한다. 누가 일을 하는가? 물론 내가 한다. 그래서 귀곡자는 항상 남에게 제어당하지 않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고 말한다.

바로 '주도권을 가진 주체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을 어떻게 이루는가?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도면밀하게 준비해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일을 '일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다.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가는 가운데 자연스레 큰일을 진행하는 것이 바로 귀곡자가 밝히는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젝트란 일을 정의하고, 상황을 분석하여, 전략을 세우고, 의사 결정권자들의 동의를 얻어, 실행하는 과정이다. 『귀곡자』는 중국 고전 중에서 이러한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지혜와 방략을 제시하는 거의 유일한 책이다.

 


 

이 책은 모두 4부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총론〉, 2부 〈준비 단계〉, 3부 〈실행 단계〉, 4부 〈최종 단계〉다. 각 부는 1장 「패합(?闔)」, 2장 「반응(反應)」, 3장 「내건(內?)」, 4장 「저희(抵?)」, 5장 「오합(?)」, 6장 「췌마(?摩)」, 7장 「비겸(飛?)」, 8장 「권(權)」, 9장 「모(謀)」, 10장 「결(結)」 등이다. 제목에 쓰이는 한자는 지금 우리가 상용하는 한자에 포함된 것보다 그 이외의 것이 훨씬 많다. 이 책은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그 제목부터 해석을 해서 달아 놓았다.

1장 폐합이란 상황을 분석한 뒤 시작을 결정하라는 뜻이고, 2장 반응은 주변의 진심을 파악하라는 의미다. 3장 내견은 마음을 열어 굳게 결속하는 뜻으로 쓰였으며, 4장 저희는 틈이 생길 가능성을 미리 제거하라는 의미로 쓰인 문자다. 5장에 보이는 오합은 비교적 쉬운 한자이지만 뜻은 대세슬 살피고 방향을 결정하라는 의미로 쓰였다. 또 6장 췌마는 정보에 우위를 차지할 것을 주문했고, 7장의 비겸은 상대를 높여 장악하라는 의미이다. 8~10장은 각각 한 자씩 돼 있지만 뜻은 명확하다. '권'은 말의 힘으로 상황을 주도하라는 뜻이고, 모는 사람에 따라 쓰는 방법도 다르다. 마지막 결은 결단으로 성과를 얻는다라는 의미다. 이처럼 각 장의 주제를 일렬로 주욱 세워놓고 보면 이 책이 담은 뜻이 점점 명확해진다. 일을 만들어,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따라 꾸준히 성공을 만들어가서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일을 성사시켜라라는 의미로 집약된다.

중국 전문가인 공동 저자가 중국의 40여 가지 고사와 조조, 제갈량, 이세민 등 역사상 위대한 전략가들이 일을 이루기 위해 사용했던 전략을 덧붙여 전국시대 전략서인 『귀곡자』를 풀이하고 현대에도 활용할 수 있는 메시지로 재해석한 이유도 함께 드러난다. 저자들에 따르면 일을 정확하게 정의하고, 주변의 객관적 상황을 파악하며, 형세를 살피고, 같이 일할 사람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식 등을 이야기함으로써 일의 시작부터 준비, 진행, 문제 해결, 결단, 일을 잘 마무리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중견 기업의 임원이나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담당자라면 계획을 세우고 인력과 자원을 배치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작은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담당자라면 실행 방법을 수립하고, 주변을 설득해 필요한 자원을 얻고 조직 내에서 성과를 이루는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한자가 쓰인 6장 「췌마(?摩)」편을 옮겨본다. 앞선 장에서 큰 추세를 읽고 거기에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6장은 '적극적으로 능력을 쓸 단계'라고 공동 저자는 말한다. 지금껏 전체적인 정황을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내가 공략하려는 상대를 직접 파악해야 할 차례라고 풀이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그의 의지를 파악하는 테크닉이 췌(?-재다)와 마(摩-갈다)다. 공동 저자의 주석으로는 췌란 헤아린다, 즉 추측한다는 뜻이다. 물론 추측을 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하다. '마'란 추측을 하기 위한 방법인데, 그 본뜻은 만져본다는 것이다. 이 장은 마치 귀곡자가 옆에서 이야기를 속삭이듯이 생동감이 넘치고, 같은 내용이 정도를 더해가며 반복된다. 상대에게 지혜를 쓰기 전에 상대를 면밀하게 탐색하는 것이 이 장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들은 정치학, 경제학에서 한때 유행이었던 '게임이론'을 예로 들면서 말한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상대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혹은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할 때 나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 등을 분석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기업 활동이든, 외교 정책이든 협상 전 사전 정보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상대방이 나를 예측하지 못하고, 내가 상대방을 예측한 상태라면 게임의 결과는 명백하다는 것이다. 상대가 게임을 주도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 내가 주도하는 게임이라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게 현대 게임이론의 핵심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6장의 의미를 강조한다. 그래서 귀곡자는 말한다. 상대의 패를 미리 알고 술책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고전적이지만 당연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귀곡자』 원문에는 '췌'와 '마'가 나뉘어 있으나 두 편을 같이 보는 것이 의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므로 한데 묶었음도 밝히고 있다.

 


 

저자 : 공원국

 

탐험하는 인류학자이자 작가. 10년간의 대장정 끝에 『춘추전국이야기』 11권을 집필했다. 장대한 역사 이야기를 끝내고 오랫동안 품고 있던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유라시아 대륙을 오고가면서 만나고 겪은 사람과 세상, 비현실적인 현실을 견뎌내는 현실의 인간이 가장 비현실적으로 느껴진 학자이자 작가에게 진실을 좇는 작업은 소설이어야 했다. 티베트 고원 가상의 시한부 도시를 무대로 무심한 문명의 힘에 짓밟힌 삶과 사랑, 거대한 자연 앞에 선 인간의 운명에 대해 썼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중국지역학을 공부했으며, 중국 푸단대학교에서 인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역사인류학자의 시각으로 대안적 세계사를 제시하기 위해,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유라시아 초원 지대에서 현지 조사를 진행하며 《유목, 세계사의 절반》(가제)을 집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10년간의 대장정 끝에 집필한 《춘추전국이야기》(전 11권), 《인문학자 공원국의 유목문명 기행》, 《굴욕을 대하는 태도》(공저), 《옛 거울에 나를 비추다》, 《유라시아 신화 기행》, 《통쾌한 반격의 기술, 오자서 병법》, 《여행하는 인문학자》, 《인물지》(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하버드 C.H. 베크의 세계사 1350~1750》, 《조로아스터교의 역사》, 《말, 바퀴, 언어》, 《중국의 서진》 등이 있다.

 

저자 : 박찬철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출판기획사 Culture Map을 운영하며 중국 관련 콘텐츠를 개발, 번역한다. 동양 고전을 비롯한 역사 인물과 사례 등을 통해, 진지하지만 다른 시각을 담은 담론과 교훈을, 때로는 실재하는 우리 삶에 유용한 메시지를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굴욕을 대하는 태도》(공저), 《인물지》(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나를 지켜낸다는 것》, 《세계사를 바꾼 15번의 무역전쟁》, 《주역의 정석 1》, 《참모의 진심, 살아남은 자의 비밀》, 《운이 스스로 돕게 하라》, 《사람을 품는 능굴능신의 귀재, 유비》, 《판세를 읽는 승부사, 조조》, 《자기통제의 승부사, 사마의》, 《마음을 움직이는 승부사, 제갈량》, 《격탕 30년: 현대 중국 탄생의 드라마와 역사》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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