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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MBTI - 명작 속에서 나를 발견하다
임수현 지음, 이슬아 그림 / 디페랑스 / 2023년 3월
평점 :
이 책이 인문학 책으로 분류되는 것을 책을 펼쳐보고서야 알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MBTI』란 표제어만 봐서는 자기계발 서적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최근 열풍처럼 번지는 유명한 성격 유형을 알아서 자신이 무엇을 보완하고, 무슨 일에 집중할 수 있는지 등을 알아내는 'MBTI'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서든 소설이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MBTI 테스트를 해봤을 것이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이를 소재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할 정도니 말이다. 독자는 MBTI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는 알았지만 한 번도 테스트를 해본 적은 없다. 원래 심리학이나 정신의학 등에는 문외한이고 잘 믿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구성을 보고 나서야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이 책을 읽어가다가 한 번쯤 해볼 생각이다.
MBTI 유형이 자신의 실제 모습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MBTI 테스트는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독자는 대강이라도 무엇인지 알아야 했기에 백과사전을 들춰보았다. MBTI(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란 일상생활에 활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자기보고식 '성격유형지표'라고 두산백과에는 설명돼 있다. 이에 따르면 '마이어브릭스 유형지표(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어이다. 칼 융(C.G. Jung)의 심리유형론을 근거로 하는 심리검사이다. '마이어브릭스 성격진단' 또는 '성격유형지표'라고도 한다. 1921∼1975년에 브릭스(Katharine Cook Briggs)와 마이어(Isabel Briggs Myers) 모녀가 개발했다. 개인이 쉽게 응답할 수 있는 자기보고 문항을 통해 각자가 인식하고 판단할 때 선호하는 경향을 찾아낸 후, 그 경향들이 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파악하여 실생활에 응용한다고 풀이돼 있다.
개발 기간도 놀랍다. 굉장히 장기간 연구돼 단계별 유형이 차근차근 완성돼 왔다고 한다. 1921년부터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여 A∼E형이 개발되었고 F형은 1962년 미국 ETS(Educational Testing Service)에서 출판했다. 1975년에는 G형이 개발되었으며 이후 K형·M형 등이 개발되었다. 한국에는 1990년에 도입되어 초급, 보수, 중급, 어린이 및 청소년, 적용프로그램, 일반강사 교육과정이 개발되었다. 성격유형은 모두 16개이며 외향형과 내향형, 감각형과 직관형, 사고형과 감정형, 판단형과 인식형 등 네 가지의 분리된 선호경향으로 구성된다. 선호경향은 교육이나 환경의 영향을 받기 이전에 잠재되어 있는 선천적 심리경향을 말하며, 각 개인은 자신의 기질과 성향에 따라 각각 네 가지의 한쪽 성향을 띠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1990년 대 도입됐다는데 왜 독자는 처음 알게 됐을까. 벌써 30년이 지났는데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학교 졸업하고 단 한 번도 성격 유형 테스트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는 점을 인지하고 새삼 스스로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실제로 상대방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데 있어 MBTI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었는지, MBTI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 수 있는지, 저자 임수현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문학 작품 속 등장인물의 언행과 심리를 분석함으로써 MBTI가 개인의 성향에 어떻게 발현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작품의 완결성이 뛰어나고 인류에게 널리 읽혀 온 고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선택했다. 극의 전개에 기여하는 나름의 역할과 함께 창조되었기 때문에 현실 인물보다 MBTI 유형의 특성을 뚜렷하고 일관되게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라는 데 착안한 것이다. 저자의 순발력도 놀랍다.
이 책에 나오는 작가들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문학 거장들이다. 저자는 레프 톨스토이, 헤르만 헤세, 조지 오웰, 장폴 사르트르, 마르셀 프루스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밀란 쿤데라, 스탕달, 마크 트웨인 등 위대한 작가들의 대표작에서 모두 32인의 등장인물들을 선별하였다. 각 유형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이 어떠한 언어습관과 행태, 정서와 심리 상태를 드러내며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야기하는가를 살펴봄으로써 타산지석의 깨달음은 물론 자아 성찰의 계기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 역시 「나는 고전 속 어떤 인물일까?」란 제목의 책 프롤로그에서 MBTI 테스트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풀이해 놓고 있다.
책에 따르면 MBTI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어 왔다. 심리학 비전공자가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한 지적에서부터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론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인기와 관심은 식지 않고 있다. 융은 철학자 니체의 ‘디오니소스형/아폴론형(Apollinisch)’ 인간 유형 분류에서 인사이트를 얻어 고유의 심리 유형 이론 체계를 발전시켰다. 따라서 MBTI의 기반은 과학이 아닌 철학에 가깝다. 엄밀하고 객관적으로 개인의 성격을 진단하는 과학적 도구로서보다는,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고 삶의 방향을 바로잡는 철학적 길잡이로서의 가치를 더 크게 가질 수 있다. 최초로 MBTI를 만든 마이어스-브릭스 모녀는 ‘주변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존중할 수 있는 수단을 찾도록 돕기 위해 MBTI 검사를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가 MBTI를 통해 각자의 타고난 성향과 선호를 인정하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MBTI의 기본적인 존재 의의라는 의미다. 저자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MBTI를 통해 나 스스로를 제대로 이해하는 작업이다고 말한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성향과 선호를 가지고 있는지, 내 무의식 속에 어떤 열등감과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있는지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더 나은 판단과 선택의 자양분으로 삼는다면 더욱 현명하고 지혜로운 삶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문학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에 비추어 스스로를 성찰하고 타인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소중한 시간 가져 보길 권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MBTI를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한 핵심 작업은 바로 각 유형별 기본 4기능(주기능, 부기능, 3차기능, 열등기능)을 이해하고 응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MBTI의 기본 4기능은 자신이 어떤 기능에 특히 강점이 있고, 어떤 기능에 취약하고, 어떤 기능을 보완해 나가야 하는지, 또 어떤 기능은 포기하는 게 오히려 나은지 등에 대한 치트키*를 제공해 준다고 밝힌다.
* 치트키 : ① 게임의 유리함을 위해 만들어진 일정한 프로그램 또는 문장, 대표적인 예로는 스타크래프트나 에뮬게임에 많이 사용된다. ② 치트(cheat)는 ‘속이다’라는 뜻으로, 컴퓨터 게임에서 ‘치트키’란 제작자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키 또는 속임수를 의미한다. 즉 게임상에서 건물을 빨리 짓게 한다든지, 유닛의 수를 몇 배로 불리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게임 개발자들은 프로그램을 테스트할 때 정상적인 환경에서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 같은 치트키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인들에게 팔기 위한 최종 완성판에는 치트키와 관련된 것들을 모두 삭제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치트키가 하나의 마케팅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즉 일반 사용자들이 하나의 게임에 질려 갈 때쯤 치트키를 공개해서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흥미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독자 주)
이 책은 모두 16개 장(章)으로 구분돼 있다. 16개 장은 첫 번째 「ENFJ」 유형으로 『레 미제라블』의 장 발장으로 '척박한 땅 위에 정의의 싹을 틔우고 인류애의 꽃을 피운 위대한 성인(聖人) 형의 인물이다. 또 『주홍글씨』의 헤스터 프린 또한 이 유형의 인물이다. 내면의 죄의식을 약자를 위한 사명감으로 승화시킨 강철 멘탈의 소유자이다. 2장 「ENFP」 유형은 『돈키호테』의 돈키호테는 부딪히고 깨져도 지치지 않고 직진하는 뜨거운 가슴의 이상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다. 또 『크눌프』의 크눌프는 내키는 대로 살면서도 더욱 격렬하게 자유를 갈망하는 방랑자 유형이다. 세 번째 「ENTJ」는 『1984』의 오브라이언이 이에 속하는 인물로 저자는 분류한다. 오브라이언은 최선의 작전을 치밀하게 이행해 목표물을 포획하는 용의주도 전략가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멋진 신세계』의 무스타파 몬드 역시 저항할 수 없는 힘과 논리로 사회를 통제하는 냉혹한 독재자의 모습으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네 번째 「ENTP」에는 『적과 흑』의 쥘리엥 소렐은 불합리한 체제에 도전하며 권위를 비웃는 반항기 충만한 야심가 청년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토파시는 미탐험 지대를 향한 호기심의 추동으로 세상을 누비며 즐기는 자유인의 모습을 보인다.
다섯 번째 「ESFJ」 유형. 『위대한 유산』의 조 가저리, 『허클베리핀의 모험』에서의 짐이 해당된다. 가저리는 진정 위대한 유산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고귀한 마음의 소유자로, 짐은 함께라면 유쾌한 따뜻하고 다정한 친구의 이미지로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여섯 번째 「ESFP」에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와 『전쟁과 평화』의 나타샤가 전형적인 인물이다. 조르바는 내일이 없는 오늘을 불사르는 극단적 낙천주의자로 그려지며, 나타샤는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드라마 퀸으로서 딱 알맞은 유형의 인물로 등장한다. 일곱 번째 「ESTJ」유형에는 『리어왕』에서의 리어왕,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의 일리치가 각각 해당되는 인물들이다. 리어왕은 자신만의 기준과 원칙을 밀어붙이는 성취지향적 행동가로 보이고, 이반 일린치는 사회적 기준에 맞춰 스스로를 영혼 없이 연마하는 완벽주의자이다. 여덟 번째 「ESTP」 유형에는 『롤리타』의 돌로 레이즈와 『톰 소여의 모험』에서의 톰 소여가 각각 선정됐다. 돌로레스 헤이즈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영악하고 짓궂은 요정 혹은 악마형 인간이다. 톰 소여는 번뜩이는 재치와 센ㅅ로 무장한 사고뭉치 문제아로 나타난다.
아홉 번째 「INFJ」에서는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알렉세이가 이에 해당하는 유형의 인물들이다. 라스콜니코프는 추상적 사고와 내적 성찰에 치열하게 파고드는 광기 어린 영혼의 소유자며, 알렉세이는 맑은 눈에 깃든 신기(神氣)로 진실을 밝히고 박애를 실천하는 예언자이다. 열 번째 「INFP」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베르테르는 끓어오르는 내면의 격정에 못 이겨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슬픈 청춘이며,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은 자신만의 철학과 세계관의 정립을 독려하는, 진정성 충만한 괴짜 스승으로 그려진다. 열한 번째 「INTJ」에서는 『구토』에서 앙트완 로캉탱은 세계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의미에 집요하게 천착하는 실존주의자의 모습을 띠며, 『위대한 개츠비』에서 제이 개츠비는 자기 자신이 주인공인 시나리오를 현실화하는 목표에 인생을 바친 행동주의 몽상가로서 그려진다. 열두 번째 「INTP」는 햄릿과 홀든 콜필드가 주목된다. 햄릿은 『햄릿』의 주인공으로 생각이 너무 많아 행동력이 부족한 충동적 이상주의자의 모습을 보이며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는 세상의 가식과 위선을 경멸하며 순수성을 지향하는 삐딱한 사색가로 묘사된다.
열세 번째 「ISFJ」 유형에는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는 추억을 곱씹으며 현실의 비극을 감내하는 희생과 헌신의 아이콘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르셀은 예민한 감수성과 풍부한 상상력을 타고난 티테일의 최강자로 군림한다. 열네 번째 「ISFP」 유형은 『데미안』의 에밀 싱클레어,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기벤라트가 각각 호출된다. 에밀 싱클레어는 유약한 소년에서 주체적인 인간으로 알을 깨고 나오는 데미안의 분신으로 해석할 수 있고, 한스 기벤라트는 억압적인 체제의 바퀴에 짓눌려 희생된 온화하고 섬세한 영혼이다. 열다섯 번째 「ISTJ」 유형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카레닌과 『오만과 편견』에서 다아시가 여기에 해당한다. 카레닌은 이성으로 판단하고 원칙대로 행동하는 엄숙, 근엄, 진지의 아이콘이다. 다아시의 경우 무심한 듯 시크한 겉모습 뒤에 따뜻한 배려와 자상함을 숨겨 둔 사랑꾼으로 묘사된다. 마지막 열여섯 번째 「ISTP」에는 『노인과 바다』에서의 산티아고, 『향수』의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가 각각 저자에 의해 선별됐다. 산티아고는 실패에 굴하지 않고 담담하게 현시에 맞서는 바다 장인(匠人)으로 그려지며, 그르누이는 고도로 발달된 감각과 비상한 기억력을 지닌 혐오스러운 천재의 모습이다.
전반적인 소설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된 동력은 주인공 마르셀의 기억력이다. 과거의 경험과 상황의 디테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곱씹는 경향은 ISFJ의 주기능인 내향감각(Si)에서 비롯된다. 심리학자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가 언급했듯 강한 내향감각은 ‘고도로 예민한 사진건판(寫眞乾板)’과 같아서 사람이나 풍경의 세밀한 빛깔과 형태의 세밀한 부분까지 꼼꼼히 지각하고 기억하게 한다.(p.325)
저자 : 임수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정치학과에서 정치사상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SERI)에서 리서치 애널리스트로 근무했고, 대한민국 국회에서 비서관으로 재직하며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경제 전공)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MBC 교양 프로그램 「내 손 안의 책」을 진행하며 다양한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대중에 알리는 역할을 했으며, 현재 유튜브 채널 「써니피디아 SUNNYPEDIA」를 통해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 도서 리뷰 및 국제정치 시사 이슈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이투스닷컴 인문학, 사회과학 교양 강의, 클래스101 「장르별 독서법」 강의를 통해 문해력과 교양 수준을 높여 주는 흥미롭고 유익한 강의들을 선보이고 있다. 저서로 『임수현의 친절한 인문학』(2022), 『임수현의 친절한 사회과학』(2023)이 있다.
그림 : 이슬아
일상의 순간들에서 사유하게 되는 삶의 모양을 포착해 그림으로 기록한다. 순간의 모습을 포착하는 행위는 아름답지만, 곧 사라짐을 인정함과 동시에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이라는 쓸쓸하면서도 따듯한 안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숨은 의미를 찾으며 삶의 순간들을 표현하는 작업을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