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 - 악기로 마음을 두드리는 음악치료사의 기록 일하는 사람 12
구수정 지음 / 문학수첩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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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치료(music therapy)란 치료적인 목적으로 정신과 신체 건강을 복원, 유지하며 향상시키기 위해 음악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는 명시하고 있다. 독자는 이 책 『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를 읽으려다 음악 치료사인 저자가 썼다고 해서 처음으로 정확한 뜻을 파악하려고 앞서 밝힌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를 찾아보았다. 주위에 이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없고,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가끔 TV를 통해 〈노래교실〉 같은 곳에서 일반 주부들이나 노인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함께 부름으로써 힐링도 되고 삶의 활력도 북돋우는 것을 본 적은 있다. 그런 목적의 동호회나 〈노래교실〉에서 하는 일과 이 책의 저자 구수정 음악 치료사가 하는 일은 크게 다르다는 것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알게 됐다.

〈의학정보〉에 따르면 음악 치료는 즐거움만을 목적으로 하거나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것과는 다른 개념으로, 어떤 필요를 파악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단계적인 과정을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음악 치료는 소수의 제한된 인원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행한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기간을 필요로 하며, 음악 치료사는 장단기 치료의 목적을 내담자(client)와 의논하면서 진행한다. 병원의 정신의학과에서 공식적인 치료 행위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현재 행해지고 있는 근대 음악 요법은 20세기 초 미국이 그 발상지이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정신병원의 격리된 병동에서 황폐한 삶을 살아가는 환자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만성 정신 질환자들은 때때로 찾아주는 독지가들의 위문을 통해서만 사회와 연결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자선적인 위문 음악 활동의 하나에 성 토마스 길드가 했던 ‘치료 음악회’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로부터 근대 음악 치료법의 큰 흐름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음악 치료사로서 청진기 대신 악기를 가방에 넣고, 환부를 살펴보기보다 사람의 눈을 먼저 바라보며, “환자 분”이라고 크게 호명하는 대신 여러 번 그 사람의 이름을 읊조리는 것. 바로 ‘음악치료사’의 생활이자 일이다고 말한다. 의사는 아니기에 많은 사람들이 정신질환 치료에 도움이 될지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음악으로 정말 병이 나을 수 있는 것인지, 낫는다면 무엇을 낫게 하는지 등 음악 치료에 대해 모르는 일반 사람들이 가질 만한 당연한 의심일 터다. 저자 역시 상처 위에 바른 ‘빨간 약’처럼 병이 호전되는지 선명하게 보이지 않고, 처방전에는 기다란 의약품명 대신 〈반짝반짝 작은 별〉이 적혀 있으니, 음악치료사에 관해 잘 알지 못했다면 당연한 질문일 수 있다고 밝힌다. 문학수첩 ‘일하는 사람’ 시리즈의 열두 번째 책 『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는 이러한 물음에 대답한다. 이 책은 악기를 두드리듯 마음을 톡톡 건드리는 음악치료사의 생각과 생활을 담아냈다. 때론 슬프고, 때론 잠잠해지며, 때론 주체할 수 없이 신나는 음악치료실 속 기쁨과 슬픔이 지금 연주된다.

저자에 따르면 음악치료사의 보이지 않는 치료는 겉으로 살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한다. 음악은 귀를 통해 내시경도 닿지 않는 심장 한구석까지 닿아, 그곳에 들러붙은 우울과 불안을 조심스레 혹은 강렬하게 건드린다. 저자는 ‘세션’을 통해 ‘내담자’가 좋아했던 노래를 함께 불러주어, 현실에 치여 뭉툭해진 사람의 감정을 끌어낸다고 말한다. 또 답답함에 힘들어하는 사람에게는 징채를 쥐어주곤 “꽝!” 소리가 나도록 힘껏 징을 울리게 한다. 그리고 폐쇄 병동의 돌담을 지나 그보다 더 높은 마음의 벽을 지닌 이들을 만나 이야기하며, 안아주면서 그들이 쌓아왔던 단단한 마음의 벽을 허물어트린다. 음악치료사의 일이고, 보람이다.

 


 

저자가 직업과 관련한 책을 출간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저자는 전작 『가끔은 혼자이고 싶은 너에게』를 이미 출간한 바 있다. 『가끔은 혼자이고~ 』는 음악 치료사로서의 책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혼밥, 혼술에 이어, 요즘에는 혼자 영화 관람하는 것을 뜻하는 ‘혼영’이나 혼자 여행하는 것을 뜻하는 ‘혼행’이라는 말이 쓰일 정도로 급변한데 따른 안타까운 마음에서 위로와 위안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책을 썼다. 혼자 여행할 때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유익함도 강조하고, 바로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도 부각시켰던 것이다. 사실 일상에 치여 살다보면 정작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것을 제대로 마주하고 있지는 않은가? 등 부적응하는 사람들을 위해 위안을 전하고 그것이 결국은 자신이 위안을 받은 데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가끔은 혼자이고~ 』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음악치료사가 잠시 일상을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보낸 기록이다.

이에 비해 이번 책 『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는 음악치료사의 일터에서 벌어지는 일, 만났던 많은 환자들 속에서 진실이 무엇인가를 알아갈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사유 등을 묶어 쭉 매일 써내려간 글 중에 독자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내용들만 묶어서 책으로 냈다. 음악을 전공했던 저자의 꿈은 '음악 치료사'가 아니었다. 긴 시간을 연주자로 살아왔던 저자는 자신이 가장 빛나기 직전의 시기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손의 이상을 느낀다. 그리고 그 병으로 인해 더는 연주자로 지낼 수 없었고, 생활을 위해 다른 일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직업이 음악치료사다. 저자는 음악을 버리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돈을 벌기 위해 음악치료사 일을 가볍게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꿈이 부셔졌다고 해서 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때론 깨졌지만 반짝이는 조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꿈을 발견할 수도 있다."

 


 

특히 내담자 스스로도 외면했던 그의 안부를 매일매일 물어보고, 삶의 무게에 눌려 굽은 등을 천천히 쓰다듬어 그의 유일한 관객이 되기를 자처하는 배역이 저자가 삶의 연극 마당에서 맡은 임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연주하고, 이야기를 경청하며,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따스함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는 역할.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함으로써 사람에 관해 골몰하고 알아가야 하는 직업. 저자는 오늘도 “축축하게 젖은 마음들을 정성스레 꺼내 따스한 볕에 쬐기 위해”(p.14) 악기를 챙긴다. 타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화음을 얹히는 음악치료사의 모습은 미처 들리지 않았던 아름다운 ‘사람 소리’를 다시 우리 귓가에 들리게 한다.

“음악치료사가 되었어도 여전히 음악은 완성되지 못한 나의 언어”(p.13)라는 저자의 고백은 직업적인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의 발언은 아니다. 세션을 주도할 정도로 노련한 음악치료사임에도 저자의 태도에는 직업에 대한 유의함이 묻어있다. 특수 학교에서의 음악치료가 망했다며 자책하거나 ‘연대감’ 항목이 낮게 나온 자신의 심리 검사 결과를 마주하고 직업에 끼칠 영향을 걱정하는 등 음악치료사로서의 저자의 모습은 단단히 매듭져 있지 않다. 그렇기에 저자는 무수한 사람을 만났음에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어떤 언어를 썼는지 곱씹어 보고 반성”(p.152)하면서 자신의 직업적인 모습을 끊임없이 되돌아본다. 또 완성됨으로 닫혀있지 않기에 “가끔은 예상치 못한 내담자의 포옹”이 주는 “위로”(p.48)가 마음의 틈새로 들어오곤 한다.

 

 

특히 내담자 스스로도 외면했던 그의 안부를 매일매일 물어보고, 삶의 무게에 눌려 굽은 등을 천천히 쓰다듬어 그의 유일한 관객이 되기를 자처하는 배역이 저자가 삶의 연극 마당에서 맡은 임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연주하고, 이야기를 경청하며,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따스함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는 역할.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함으로써 사람에 관해 골몰하고 알아가야 하는 직업. 저자는 오늘도 “축축하게 젖은 마음들을 정성스레 꺼내 따스한 볕에 쬐기 위해”(p.14) 악기를 챙긴다. 타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화음을 얹히는 음악치료사의 모습은 미처 들리지 않았던 아름다운 ‘사람 소리’를 다시 우리 귓가에 들리게 한다.

“음악치료사가 되었어도 여전히 음악은 완성되지 못한 나의 언어”(p.13)라는 저자의 고백은 직업적인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의 발언은 아니다. 세션을 주도할 정도로 노련한 음악치료사임에도 저자의 태도에는 직업에 대한 유의함이 묻어있다. 특수 학교에서의 음악치료가 망했다며 자책하거나 ‘연대감’ 항목이 낮게 나온 자신의 심리 검사 결과를 마주하고 직업에 끼칠 영향을 걱정하는 등 음악치료사로서의 저자의 모습은 단단히 매듭져 있지 않다. 그렇기에 저자는 무수한 사람을 만났음에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어떤 언어를 썼는지 곱씹어 보고 반성”(p.152)하면서 자신의 직업적인 모습을 끊임없이 되돌아본다. 또 완성됨으로 닫혀있지 않기에 “가끔은 예상치 못한 내담자의 포옹”이 주는 “위로”(p.48)가 마음의 틈새로 들어오곤 한다.

 


 

맞잡은 손의 떨림은 때론 쥐고 있는 손을 더욱 꽉 붙잡게 한다. 저자에게 “음악치료사를 정규직으로 쓰는 병원, 센터, 요양원, 학교는 손에 꼽을 정도”(p.220)인 환경은 지금, 이곳의 사람을 보다 소중히 여기는 계기가 된다. 저자는 세션이 끝나고 내담자들이 건네는 “잘리지 마라”는 말에서 직업인으로서 음악치료사의 면면을 매만져 본다. 음악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은, 재계약에 대한 걱정과 비정규직에 관한 서러움을 감각하면서도 저자는 “사람이 하는 일”(p.228)의 다정함을 믿으며 불안해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끔 직장 혹은 생활에 관한 불안으로 현재의 소중함을 놓치곤 한다. ‘지금’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저자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음악은 끝내기 위해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고, 당장의 음악에 충실히 귀 기울여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리라고 기대한다.

저자는 이 책의 에필로그 「실패해도 괜찮아」를 통해 “한 시절의 도화지를 넘기며 그때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p.244~245)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힌다. 연주자로서 빛나던 시기로 돌아가려고도, 음악치료사로서 좌충우돌을 겪었던 시절을 부정하려고도 하지 않으려는 자세다. 그렇게 저자의 음악은, 음악치료사라는 직업은 완성되지 않은 채로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온전한 완성을 욕심내지 않고 과정을 사랑하면서, 과정 중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눈빛을 주고 손을 건네는 저자의 세션은 언제까지나 ‘진행 중’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이 아무렇지 않았던 건 아니다. 음악치료를 공부하러 온 사람들은 다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자기 상처가 없는 사람들이 타인의 아픔을 알아채고 공감하기란 쉽지 않지. 교수님은 치료사 스스로가 음악치료로 인한 정화 단계가 없다면 진정한 치유자가 되기 어렵다고 했다. 맞다. 내가 경험해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건 썩 내키지 않는다.(p.218) - 「자기가 다 치유받고 싶은 사람」 중에서

 


 

원래 자신이 꿈꿨던 직업은 아니지만 음악치료사로 발을 내딛고,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경륜을 쌓아 올렸지만 사람 만나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저자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 부적응 상태의 입원 환자, 또는 삶의 활력마저 잃은 내담자 등이 대부분이지만 성심을 다하여 음악치료사의 역할을 수행하면 그들이 다시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오늘도 음악치료사의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리라. 저자가 「폐쇄 병동으로의 첫 실습」을 적은 내용이 매우 공감이 가고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재인식할 수 있다. 저자는 이때의 저자의 심정을 상세히 글로 적어(일지에 남기는 일은 음악치료사의 일이다. 몸짓, 표정은 물론 기분 상태, 심지어는 어느 단어에 어떤 표정으로 반응하는가도 일지에 기록해야 한다) 잘 모르는 폐쇄병동 내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낡고 오래된 건물, 하얀 칠이 벗겨진 창문에는 견고해 보이는 창살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마치 여기서는 한 번 들어오면 아무도 나갈 수 없다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바랜 복도를 지나 막다른 곳, 굳게 닫힌 정문 앞에 네 명의 음악치료사가 멈춰 섰다. "철컹!" 열쇠를 가진 간호사가 철문의 자물쇠를 열었다. 드디어 문이 열린다. 이 시대에 자물쇠라니, 누군가 열어주지 않으면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곳,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때 리러 선생님이 말했다. "괜찮아요. 앞만 보고 가요." 복도에 들어서자 환자복을 입은 흐릿한 사람들이 모두 정지한 채 우리 일행을 쳐다봤다. "외부인이 들어왔다!" 갑자기 냉동고 문을 연 것마냥 뒷목이 서늘해졌다. 발걸음이 얼어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약에 취해 눈빛이 공허한 사람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갑자기 시간이 느려지면서 모든 장면이 멈춰졌다."(p.54~55)

세션이 끝날 때쯤이면 그들의 눈빛에 조금은 생기가 돈다. 마른 입술을 떼어 노래를 부르고 나면, 내 입가에도 웃음기가 묻어있다. 나도 그들도 따뜻하게 데워져 있다. 내가 왜 음악치료를 할까 생각해 보면, 이때 느꼈던 짧은 시간 동안의 변화를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매개로 마음에 아름다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p.59)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는 자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했던가. 어른은 아이처럼 단순하지 않고, 경험에 따른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지나온 세월과 개인의 서사를 단 몇 시간 안에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또 워낙 삶에 치이고 닳은 사람들이 오게 되니까, 한마디로 정답이 없다. 나는 거짓말을 서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거짓말이 어떤 신호인지 읽어야 했다.(p.67) - 「켈리의 거짓말」 중에서

 

악기들을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해서 사람들을 만물과 연결해 주는 것도 우리 음악치료사의 일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악기들이 나의 세션에서 소리를 내고 있다. 다양한 소리가 다양한 사연과 만날 때, 그 진동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때 기분이 묘하면서도 뿌듯하다. 내 악기 가방에는 동생 부부가 가나에서 보내준 아프리칸 쉐이커, 아슬라투아가 짤랑거리고 있다. 이제 이 악기는 누구의 마음을 두드릴까.(p.114) - 「음악치료사의 악기 수집기」 중에서

 

저자 : 구수정

 

음악과 글쓰기, 두 가지가 적절히 조율된 음악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손의 감각을 잃기 전까지 20년 넘게 연주자로 살아왔다. 갑자기 텅 빈 시간을 어떻게든 살아내고자 애쓰던 때 글을 쓰면서 따스한 위로를 받았다. 소외되고 외로운 것에 마음이 가고,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아낸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아픈 인생을 음악으로 토닥이는 한편, 치유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첫 책으로 치유 에세이 《가끔은 혼자이고 싶은 너에게》를 썼다. 어쩌다 보니 음악 교육자로 살고 있으며, 보다 본질에 다가가고 싶은 욕망에 음악 연구자로도 활동 중이다. 음악 안에서 인생을 자유롭게 변주하며 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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