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아웃 특서 청소년문학 32
하은경 지음 / 특별한서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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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에 대한 동경은 어릴 때 특히, 여자아이들은 한 번쯤 가져보는 듯하다. 즐겁게 보여서일지도 모른다. 독자는 남자아이라서 전쟁놀이나 자동차 장난감 등에 더 매력을 느끼고 만화책도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을 주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동작은 예술로서의 가치가 엄청나게 높은 것은 확실하지만 직업으로서의 발레리나는 무척 힘든 것 같다. 우리가 예상하기로는 스포츠 선수들처럼 몸을 단련시키고 몸무게만 가볍게 유지한다면 누구나 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그러나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 공개되었을 때 놀라고 가슴이 저리는 존경심도 들었다. 유명한 발레리나가 되는 길이 얼마나 험한 길인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발레리나가 무대에서 하는 어렵지만 가장 많이 하는 동작 중 하나가 '발끝으로 서기'이다. 토 슈즈가 아무리 좋아도 힘이 송곳처럼 곧추 세운 발가락 한 군데로 모일 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강수진의 발은 고통 그 자체를 드러내주는 바로미터 역할을 독자에게는 했다.

이 소설 『턴아웃』도 발레 용어인 줄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발레 공연은 서너 번 갔지만 동작을 보고 어떤 동작인지 나타내는 용어까지는 몰랐다. 무용사전에는 '턴 아웃(turn out)'이 발과 다리를 엉덩이 관절(hip joint)에서부터 바깥쪽으로 향하게 하는 것을 일컫는다고 풀이돼 있다. 미국 발레의 창시자 링컨 커스타인(Lincoln Kirstein)은 턴 아웃 동작이 발레의 가독성(legibility)을 더욱 높여주는 결정적인 특징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 소설은 유전자 조작과 나노칩 시술이 성행하는 시대, 가까운 미래를 배경 시점으로 설정하고 있다. 발레리나의 과학 시술(?)을 금지하는 서울시립발레단의 제나, 제나와 절친한 사이였지만 재능의 차이를 느끼고 열등감과 질투에 빠진 소율이 주인공들이다. 두 사람이 꿈을 향해 각자 흔들리며 나아가던 어느 날, 죽은 수석 무용수 송라희가 나노칩 시술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녀의 핸드폰에서 의문의 파일이 발견된다. 이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부터 언급되는 발레리나의 고통스러운 동작은 소설과 직간접적으로 이용되지만 주제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은 청소년이 직접 뽑는 비룡소 제2회 틴 스토리킹 상을 수상하면서 전국 청소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하은경 작가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성장소설이다.

턴 아웃 동작 때의 고통, 그리고 무대에 서기까지의 발레리나들의 눈물 겨운 훈련과 노력 등이 군데군데 등장하지만 근미래를 다루면서 유전자 조작과 나노칩 시술이 성행하는 근미래 배경과 어울려 SF소설로 분류되는 것 같다. 어쩌면 작가의 당초 계획에서 벗어나지 않았을까 독자로서 추측해본다. 예술인들이 빚어내는 신선한 세계관 속 아름다운 예술작품 속에 경쟁의식과 첨단 기술이 들어가며 첨단 기술에 초점이 맞춰졌다기보다 과열된 경쟁 의식에서 비롯된 비극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사건들도 펼쳐진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 뛰어난 친구에게 느끼는 열등감 등 청소년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가까운 미래에 맞닥뜨릴 과학시술(유전자 조작, 나노칩 시술 등)을 등장시킨 것은 주제를 흩어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진정한 예술에 대한 신념과 같은 생각할거리를 독자들에게 던지는 작품이라고 출판사 측 평을 보면 예술은 첨단 기술이 적어도 당분간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인간의 극한의 노력으로 얻어낸 산물이라는 점에서 첨단 기술이 끼어드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특히 인간의 고도의 정신 작업의 산물인 예술에 기계가 끼어든다면 그야말로 예술은 설 자리를 잃고 말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지나친 경쟁 의식도 예술을 발전시키는 데 걸림돌이겠지만, 인간 작업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본능에 가까운 경쟁의식을 없지는 않을 터다. 다만 선의의 경쟁을 유도해야 하는 것이지 승부를 해서 줄세우기 식의 성적을 매긴다면 이 역시 예술의 획일성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에 지양해야 할 사항이다. 예술에 '경쟁'이 끼어든다면 그것은 이제 예술보다는 기능으로 흐르기 쉽다는 사실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이 소설에서 조금 더 부각시켜 주기를 마음에서다. 저자가 이를 의식해서 조금 더 스토리를 열등감, 우월감, 경쟁의 승자에 대한 스포트 라이트를 비추는 관행부터 깨야 할 듯하다.

특히 대부분의 유럽 발레단이 발레리나의 유전자 조작이나 나노칩 시술을 허용하지만 한국은 이를 철저히 금지하는 얼마 남지 않은 나라 중 하나라는 설정은 예술 본연의 자세를 견지한다는 의미로 풀이되지 않은가. 그걸 마치 기계에 맡기듯이 방치한 유럽 발레단이 그만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소설 속 서울시립발레단이 유럽발레단에 비해 호평을 받는 부분도 조금 더 부각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시립발레단의 ‘제나’는 과학적 시술 없이도 그 어려운 턴아웃 동작마저 완벽하게 해내는, 발레리나로서의 재능을 타고난 아이다. 천문학자인 아빠처럼 광활하고 먼 우주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인 엄마 ‘수연’의 집착과 밀착 코칭을 받으며 발레리나로서 날개를 펼쳐간다. 유전자 조작과 나노칩 시술이 성행하는 시대, 발레리나의 유전자 조작이나 나노칩 시술을 허용하지 않은 한국의 서울시립발레단이 발레리나 제나는 이를 철저히 금지하는 얼마 남지 않은 나라 중 하나다.

그런 서울시립발레단의 ‘제나’는 과학적 시술 없이도 그 어려운 턴아웃 동작마저 완벽하게 해내는, 발레리나로서의 재능을 타고난 아이다. 천문학자인 아빠처럼 광활하고 먼 우주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인 엄마 ‘수연’의 집착과 밀착 코칭을 받으며 발레리나로서 날개를 펼쳐간다.

너무나 완벽한 제나의 능력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같은 발레단의 단원 ‘소율’은 어느 날 이상한 일을 겪게 된다. 같은 발레단의 ‘라희’가 죽기 얼마 전, 자신에게 의문의 파일 하나를 전달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제나의 메디컬테스트 기록이었다. 소율은 제나의 메디컬테스트 기록을 생명과학 연구원인 사촌 오빠에게 보내며 해독을 부탁한다. 〈지젤〉 오디션에서 주연 지젤 역을 제나에게 빼앗긴 소율은 곧 놀라운 사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제나는 숙련된 발레리나도 완벽하게 해내기 어려운 턴아웃을 흠잡을 데 없이 해내는 천재 발레리나지만, 마음속으로는 엄마의 강요로 선택한 발레가 아닌 별과 우주를 동경하고 있다. 제나와 달리 오직 발레만을 사랑하지만 타고난 재능과 환경의 차이로 영원히 2인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열등감에 괴로워하는 소율.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해 있지만, 결국 똑같이 진심으로 원하는 꿈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십대들이이다. 두 사람은 부모에게 강요당한 꿈이 아닌, 남을 이기기 위한 꿈이 아닌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길을 찾아나간다. 이 여정 끝에는 궁극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과연 제나는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소율은 ‘제나를 이기기 위한’ 발레가 아닌,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발레를 향해 갈 수 있을까? 『턴아웃』은 하루하루 자신의 진정한 꿈이 무엇인지, 또 자신이 누구인지 답을 찾아나가는 청소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마치 발끝으로 땅을 딛고 높이 뛰어오르는 발레리나처럼.

"〈백조의 호수〉 3막이다. 제나는 숨을 크게 내쉬고 나서 무대로 뛰어들어갔다. 흑조 오딜이 왕자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장면이다. 홀릴 듯한 미소를 지으라고 서 단장이 수십 번 가까이 다그쳤던 장면이었다. 토슈즈를 신은 발끝이 심상치 않았다. 뭔가 이물질이 들어 있는 것처럼 걸리적거린다.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쓰며 푸에테 동작을 시작했다. 한쪽 다리로 중심을 잡은 채 다른 쪽 다리를 놀리며 서른두 번의 회전을 시도하는 순간이었다. 발끝이 아팠다. 유리 조각이 순식간에 엄지발가락 한 마디를 관통하더니 두 번째 마디를 푹 쑤셨다. 아프다……. 아프다……. 너무 아파 쓰러질 것 같다."(p.7~8)

 


 

저자는 「창작노트」에서 "이 글은 가까운 미래 청소년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전자 조작 시술이 만연한 사회, 예술에 대한 신념이 다른 소녀들이 끊임없이 고민하며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할까. 문제는 최고의 발레리나 주인공 때문에 글을 쓰는 내내 고민에 빠졌다. 과학 시술로 이미 최고 발레리나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데, 굳이 다른 꿈을 찾으려고 할까? 그러나 발레리나의 꿈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나 타인의 강요에 의해 만들어진 꿈이라면, 그건 가짜일지도 모른다고. 과학의 힘을 빌어 맞춤형 아기가 태어나는 현실은 솔직히 좀 섬뜩하다. 그 맞춤형 아기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창조주를 원망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건 큰 축복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꼭 밀고 나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재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때로는 자신의 꿈이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에 좌절할 때도 있겠지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행복한 자신과 마주할 거라고 믿는다."(p.230)

 

저자 : 하은경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이다. 추리문학의 세계에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고 뚜벅뚜벅 성실하게 걷고 있다. 장편동화 『안녕, 스퐁나무』로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받았으며, 『추리왕 강세리』, 『마지막 책을 가진 아이』, 『백산의 책』, 『나는 조선의 가수』, 『나리초등학교 스캔들』, 『아버지를 구해야 해』, 『공주의 배냇저고리』(공저), 『달려라, 바퀴』(공저) 등을 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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