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슬퍼할 것 - 그만 잊으라는 말 대신 꼭 듣고 싶은 한마디
하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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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의 뇌는 이성적 판단을 하는 부분과 감정을 느끼는 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살아가면서 희로애락애오욕이라는 '감정'을 모두 느끼며 살게 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질과 가깝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때문에 즐겁고 기쁜 감정이 많은 사람은 행복할 것이고, 반대로 슬프거나 분노를 많이 느끼는 삶은 불행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의 얼굴이 다르듯 뇌 안의 '감정뇌'도 똑같은 상황을 보고 경험하는 사람에 따라 감정의 폭이 다를 것이다. 그렇다고 정반대의 감정을 느끼지는 않기에 굳이 감정의 크기를 따질 필요는 없을 터다. 그런데도 어떤 일을 닥쳤을 때 우리는 가장 큰 슬픔을 느끼느냐는 여론 조사 결과가 한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이 설문조사는 슬픔을 느낄 때 인간은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어느 학자의 논문에 따른 것이라고 미리 밝히고 조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단연 압도적 1위는 '배우자의 죽음'이었다.

이는 사람의 삶 중에서 가장 큰 충격을 주는 일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듯하다. 뿐만 아니라 조사결과 2, 3위 역시 가족이었다. 자식의 죽음과 부모님의 죽음이 각각 뒤를 이었다. 굳이 조사하지 않더라도 이 결과는 똑같이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좀더 깊게 생각해보면 배우자의 죽음보다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더 슬퍼하고 주위 사람마저 더 공감과 위로가 많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니 독자 입장에서 직접 한 번도 느껴보지 맞이하지 못한 상황이라 그 슬픔의 크기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다. 막연히 듣고, 책에서 읽은 것만으로는 슬픔의 크기를 상상하기에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배우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위로하는 법이 서투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경우 소리내어 울거나 그냥 앉아만 있어도 가서 위로하고 슬픔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유교를 통해 관습처럼 이어져온 부모님에 대한 '효'에 관한 문제여서 우리들에게 대체로 익숙하다. 그래서 부모님의 죽음으로 가장 슬퍼할 사람은 당연히 자녀일 것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배우자의 죽음에 맞닥뜨린 당사자가 엄청난 슬픔과 스트레스 상태에 있겠지만 어떻게 위로하고 함께 슬퍼해야 하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만일 친구의 죽음에 부닥친다 해도 그 배우자를 위로하는 것에 익숙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배우자의 죽음이든 부모의 죽음이든 슬픔의 크기에 관계 없이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충격이고, 슬픔인 것은 분명하다. 누가 죽어야 가장 크게 우느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 『충분히 슬퍼할 것』은 저자 입장에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고 있다. 너무 큰일이라 슬퍼하기는커녕 슬픈 마음인지조차 자신이 못 느낄 정도로 충격적이다.

그러나 부모님의 죽음을 부여잡고 언제까지나 슬픔에 잠겨 있는 것도 부모에 대한 도리는 아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유교적 관습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 대처하는 방법에 익숙하기 때문에 조문을 가거나 위로의 말을 전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더 수월하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쉽게 정리되지 않는 이유가 슬픔의 크기가 얼마나 컸기에 그럴까 하는 점에서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당사자는 위로가 될 것이다. 이 책 『충분히 슬퍼할 것』은 표현하지 못한 슬픔을 가슴 한편에 묻어둔 채 살아가는 당사자가 그것을 지켜본 우리에게 먼저 겪은 이가 전하는 깊은 공감과 따스한 위로가 담겨 있는 책이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단숨에 입소문을 타며 독립출판 독자들의 호평이 쏟아졌던 그림에세이가 올컬러 버전으로 정식 출간된 것이다.

 


 

이 책은 슬픔을 추스르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용기와 희망을 선사한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상실 이후의 세계를 그림으로써 슬픔을 응축시키고 용해한 후 독자들에게 미리 삶의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쓰인 책이다. 책 속의 내용이 단편적인 에피소드이고 내용도 서로 다르지만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 딸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말없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그림의 행동이나 제스처만 보아도 마치 자신의 일처럼 독자들에게는 기억이 있다. 조금씩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어머니의 자식 사랑, 희생적인 삶이 없었다면 자신의 존재마저 없었을 터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지탱해 주던 존재를 잃는다는 건, 두 발을 딛고 서 있던 땅이 한순간 무너져 내리는 듯한 경험과도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평소의 나다움은 사라지고 자책과 후회 속에 상처를 곱씹는 동안 일상은 서서히 폐허가 된다고도 말한다. 그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 한 더는 이전의 삶을 되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비탄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에세이는 떠나간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삶을 다시 살아가기 위해 충분히 슬퍼하기로 한 사람의 이야기다. 저자는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 안겨 준 크나큰 슬픔을 소화해 내고, 천천히 일상을 회복할 힘을 기르고, 마침내 오롯이 홀로서기까지의 과정을 세밀히 펼쳐 보인다. 감정을 절제한 담담한 문체와 귀여운 그림체가 이야기를 끌어가기 때문에 어느 순간 몰입해 읽게 된다. 그러다 문득, 지금 내 삶에서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지 떠올리게 만든다. 세상에 하나뿐인 ‘의미 있는 타인’을 잃고 나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저자에 따르면 어떤 종류의 상실을 겪었든,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갖지 못하면 삶의 다음 단계를 밟아 나가기 어렵다. 가슴속 상처를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한 이에게 그만 잊으라고, 바쁘게 살다 보면 괜찮아진다고, 섣불리 재촉하는 말을 해선 안 되는 이유다. 저자는 아무에게나 쉽게 꺼낼 수 없었던 내밀한 이야기들을 그림에세이로 엮은 이 책을 세상에 내보이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밝힌다. 현실을 회피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상실의 아픔을 명징하게 마주하며, 애도의 끝에서 무르익은 생각들을 바탕으로 쓴 책이기에 “충분히 슬퍼한 후 다시 살아가자”는 다짐이 묵직한 감동을 준다.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고 싶은 독자,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이별을 감당해야 했던 그래서 속수무책으로 아파할 수밖에 없었던 독자,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독자, 그들 곁에서 위로할 방법을 찾는 독자, 충분히 슬퍼할 시간이 필요한 모든 이들의 마음을 차분히 어루만지는 책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실의 아픔과 형언하기 어려운 슬픔을 딛고 일어선 용기와 삶에 대한 희망을 되찾기까지는 쉽지 않은 여정이다. 책에 따르면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에서 엄마가 사라졌다. 그날 이후 시간이 멈춰 버렸다. 슬픔에 표류한 채 그냥 흘러가는 삶이었다. 엄마는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는 법, 인생을 즐기는 법 등 살아나가면서 필요한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었지만, 슬픔을 마주하는 법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처음 겪는 일이기에 그 무게를 어떻게 감당하고 언제까지 슬퍼해도 될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라 오랜 시간 방황했다. 바쁘게 살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믿고 한동안 무심히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애써 억누른 감정은 이따금 불쑥 튀어나와 또다시 일상을 뒤집어놓곤 했다.

저자는 그러다 문득, 더 늦기 전에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사소하고 행복하고 괴로웠던 순간까지 모두 다, 글로 쓰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을 다독였다고 고백한다. 그러는 동안 슬픔은 서서히 물러나고 아름다웠던 지난날을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혼자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다시 일어서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만큼, 온몸으로 부딪히며 겪어 낸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답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는 게 저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떠나간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내 인생을 살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10년에 걸친 긴 애도의 끝에서 갈무리한 그림에세이 『충분히 슬퍼할 것』은 그렇게 탄생한 책이다.

 


 

출판사 측의 소개글은 이 책의 성격에 대해 깔끔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떠나보내며 살아간다.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도 있는 법.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다양한 애도 반응을 긍정하고, 상실의 슬픔을 다스릴 줄 아는 것은 인생을 건강하게 살아내기 위한 치유와 성장의 핵심이다. 이 책은 표현하지 못한 슬픔을 가슴속에 묻어둔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상처를 마주하고 단계적 애도를 계속해 나갈 때 조금씩 단단해지는 마음의 변화를 보여 준다. 사랑받았던 기억은 절망의 순간에도 자신을 지켜 내는 보호막이 되고, 심리상담가였던 엄마가 생전에 들려준 위로의 말들은 혼자 살아나가면서 힘들 때마다 앞길을 밝혀 주는 등불이 된다. 감정의 물꼬가 터지도록 슬픔을 밖으로 쏟아 내며 표현하는 법,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며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마음의 구멍을 채워 줄 소소한 행복을 새롭게 발견해 가는 과정 등 일상을 회복해 나가는 데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다양한 방법들도 이 책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잠깐 같이 바람 쐬고 올래?”

“크게 소리 지르면 속이 후련해져.”

“내일부터 다시 힘내는 거야.”

내가 기운 없어 보이는 날, 엄마가 해 주던 말들. 그렇게 당신이 사랑했던 나를 사랑해 보기로 했다.

 


 

이 책의 출간에 부쳐 세 분의 작가들이 추천사를 썼다. 책 출간은 아마도 작가들의 공감을 사고 또 다시 삶에의 용기를 갖고 일어설 때까지의 과정에도 공감대가 형성된 듯하다. 그들의 추천사 중 일부를 발췌해 독자들에게 미리 알려주는 일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우리는 아직 슬픔을 제대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못하다. 남 앞에서 슬픔을 표현하면 뭔가 큰일이라도 날 듯이 두려워하는 우리들에게, 이 눈물겨운 책은 수줍게 속삭인다. 더 많이 슬퍼해도 괜찮아요. 더 오래, 더 깊이 슬퍼해도 괜찮습니다. 슬픔은 마침내 당신을 더욱 당신답게 만들어 줄 테니까요. 표현하지 못한 슬픔이 우리 마음을 안으로부터 찌르기 전에 글과 그림과 노래와 춤과 요리, 그 모든 적극적인 표현의 몸짓으로 슬픔을 표현해 보면 어떨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의 심연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침내 ‘참 나’와 만나게 될 테니까요. 슬픔을 제대로 표현할수록, 우리는 그 사람은 떠나도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테니까요. 슬픔을 잘 느끼는 사람일수록, 그는 약한 사람이 아니라 더 깊고 아름다운 사랑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니까요." - 정여울(『문학이 필요한 시간』,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저자)

 

"책장을 넘기는 동안, 한 슬픈 사람의 오래달리기를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더러 그가 넘어질 때면 숨죽여 응원하는 마음이 되곤 했는데 이상하지, 그러면서도 걱정은 되지 않았다. 사랑받은 기억이 끝내 그를 일으킬 것이므로. 어떤 사랑 앞에서 우리는 행복해질 의무가 있다. 그 사랑을 헛되이 만들지 않기 위해. 이것은 상실과 애도에 대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용기와 행복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먼저 슬펐던 사람이 다음에 올 슬픈 사람에게 남기는 긴 엽서이기도 하다. 충분히 슬퍼할 것. 그리고 다시 살아갈 것. 이 삶은 이제 떠난 사람이 남긴 사랑의 증명이기도 하므로." - 김신지(『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평일도 인생이니까』 저자)

 


 

"양념이 겉도는 깍두기, 오래된 노래방 녹음테이프, 토끼풀 반지 같은 소소한 것을 통해 저자는 엄마와 함께한 순간들을 구석구석 추억한다. 사랑스러운 그림체로 그려진 모녀의 알콩달콩한 이야기들을 미소 지으며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눈가가 시큰해진다. 그는 혼자 남겨졌다. 큰 슬픔 앞에 용기 있게 마주 선 그가 자기 자신과 만나고,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게 된다. 혼자 힘으로 어려울 때는 주변에서 건네는 손길을 붙잡으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감동을 준다. 슬픔을 딛고 비슷한 슬픔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은 따뜻한 공감대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충분히 슬퍼할 것”이라고 소리 내어 말해 주어서, 애도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주어서 고맙다. 슬픔에 표류하지 않고 당차게 헤엄쳐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안도의 숨을 내쉴 것 같다. 넘어졌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서는 힘이기에. 간절히 그리워하는 사람은 결국 내 곁에 있는 것이기에." - 엄유진(『어디로 가세요 펀자이씨?』, 『외계에서 온 펀자이씨』 저자)

 

저자 : 하리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어디서든 상상의 세계로 떠나곤 했다. 사회에 나와 디자이너가 되었지만, 내가 좋아서 그리던 그림을 계속 그리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다. 현재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다람쥐 캐릭터가 등장하는 일상툰을 연재하고 있다. 이 책을 마무리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고 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이 시작된다. 오래 방황하는 동안 펜을 들고 그리다, 멈추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이미 구멍 난 가슴에는 어떤 위로도 와닿지 않겠지만, 이런 길도 있다고 전하고 싶다. 그때의 나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냥 흘러가고 있을 누군가의 삶에 이 이야기가 닿았으면 한다.

인스타그램 @ha_ri_ha_ri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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