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한 여자들 - 최고의 쌍년을 찾아라
멜라니 블레이크 지음, 이규범 외 옮김 / 프로방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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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는 TV가 대중적으로 보급되면서 시청자의 가장 사랑받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래서 TV는 '안방극장'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우리나라도 1960년대 TV방송국 개국 때부터 드라마는 역사를 같이 했다. 아마 뉴스와 스포츠 중계가 드라마와 함께 가장 인기를 끌던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연속극'이라는 별도의 명칭으로 제작 방영됐다. TV 연속극은 매일 저녁 온 식구가 모여 앉아 한 방에서 TV를 함께 관람하던 진풍경을 연출한 주역이었다고 한다. 60년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도 나이 드신 분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드라마 제목이 두 개나 독자의 기억에 남아 있다. 〈여로〉, 〈아씨〉다. 얼마나 인기를 끌었는지 가늠이 될 정도다. 당시 미국 등 선진국의 드라마는 연속극이라는 명칭은 없었고, 대개 한 편의 영화처럼 단편만 방영했다는 말도 들은 기억이 있다. 당시 TV 드라마 비평가는 우리 국민의 정서(인내심) 때문에 매일 연속극이 가능했다고 분석했다고도 한다. 아무튼 드라마는 TV 시대를 이끌던 큰 역할을 했던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고, 그 인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일일연속극보다 주말 연속극으로 인기가 조금 변화한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아침 저녁으로 일일연속극은 유지되고 있다.

이 책 『무자비한 여자들』은 TV 방송국을 둘러싸고 방송국에 관계하는 사람들 사이에 욕망에 얽힌 원한, 복수 등을 그린, 우리식으로 얘기하면 '막장 드라마'를 글로 쓴 듯한 느낌을 주는 스릴러 소설이다. 스릴러지만 호러는 아니고, 원한과 복수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인간의 욕망으로 얽히는 인간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책의 저자 멜라니 블레이크는 책의 시작인 「프롤로그」에서 자세히 소개된다. 서문을 작가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작가 소개로 사용되는 드문 경우의 하나인 셈이다. 이에 따르면 멜라니 블레이크의 첫 소설 『썬더 걸스(The Thunder Girls)』는 극본으로 각색되기 전에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들었다. 멜라니는 정기적으로 중앙지에 칼럼을 썼고, 40시간이 넘는 신디케이션(방송 네트워크를 거치지 않고 텔레비전 쇼 및 라디오 프로그램을 방송할 수 있는 권리를 여러 텔레비전 방송국 및 라디오 방송국에 임대하는 관행) 텔레비전 방송을 공동제작했다. 그러나 멜라니는 연예계에서 ‘드라마의 여왕’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런던에 본부를 둔 멜라니의 연예 기획사는 흥행에 성공했던 드라마의 대표 여배우들과 계약을 맺고 있으며 현재 멜라니의 고객에는 전설적인 미국 드라마 ‘다이너스티(Dynasty)’와 ‘코로네이션 스트리트’, ‘이스트 엔더스’, ‘에머데일’, ‘홀리오크’ 에 출연했던 스타들이 있다. 진정한 내부자로서 저자 멜라니는 연예계의 모든 속사정을 보아왔다. 그리고 이제 멜라니는 이 소설을 통해 그 비밀들을 파헤치고 있다.

이 책은 표제어부터 심상찮다. 번역서이니 원문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정도다. 혹시 호러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원제는 'Ruthless Women'이라고 한다. 단어뜻 그대로 '무자비한', '인정사정 없는'이라는 의미다. 그러니 제목은 직역한 셈이다. 무언가 스스로 성에 차지 않았는지 부제에 「최고의 쌍년을 찾아라」라는 문구를 버젓이 사용했다. 우리 출판문화에서는 욕설을 직접 표기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특히 생식기 표현이나 동물을 표현하는 것들은 대개 'X', 'XX', 'XX놈' 등으로 X로 표기하기도 한다. 우리식으로 이 책의 부제를 쓰려면 「최고의 XX을 찾아라」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대로 표기한 것을 보니 욕설로 사용되었다기보다 책의 내용 중의 문구를 그대로 옮기거나 응용한 듯하다.

 


 

이 책은 저자의 작가적 역량이 탁월한 능력에 의해 '뻔한 스토리'를 흥미롭게 전개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너무 뻔한 복수극의 전형이라는 점에서 작품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살 수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드라마 〈팔콘만〉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연속극(드라마를 주마다 연속으로 이어 방송하기 때문에 연속극으로 표현한 것 같다)으로 작고 목가적인 섬에서 촬영되었다. 그러나 시청률이 떨어지자 방송국의 새 소유주인 아름답고 매혹적인 매들린 케인이 드라마를 1위로 되돌리기 위해 회의를 소집한다. 지금 일하고 있는 작가인 파라, 39년동안 드라마의 스타였던 캐서린, 프로듀서 아만다는 모두 〈팔콘만〉이라는 드라마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 했던 유능하고 열정 넘치는 여성들이다. 그러나 세 소유주는 남성중심적인 방송국에서는 파라 대신, 남성 작가에게 라이브 쇼 진행의 기회를 주고, 캐서린조차 드라마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한다. 작중 인물들은 남녀간의 전투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질투와 복수심과 야심이 그들의 우정을 갈라놓을까? 아니면 더욱 결속시킬까? 이 점은 소설의 성패를 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독자들은 이 점에 주목해 읽어볼 것을 권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40년을 이끌어올 정도의 방송 프로그램이라면 그동안의 인기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팔콘만〉은 최고의 전성기도 있었고, 드라마로 꽤 오랜 시간을 시청자들과 함께했지만 이젠 시청률이 반토막이 난 상태다. 프로듀서 아만다, 작가 파라, 배우 캐서린 역시도 드라마와 동시에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사람들이다. 새 소유주 케인의 남자 중용책에 따라 세 사람은 방송국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다. 회의를 거듭하면서 〈팔콘만〉을 살리기 위해 의견을 낸 결과, 상상하지도 못한 대책이 나온다. 그것은 최고의 악역 여자 캐릭터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것이 부제로 채택된 「최고의 쌍년을 찾아라」이란 슬로건이자 목표다.

 


 

이 책은 작중 인물들의 독특한 성격이 상승 작용을 한다. 저자의 글쓰기 역량이 탁월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또 자극적이고 외설적인 표현이 많아서 호흡을 끌어당기는 바람에 독자들은 손을 놓을 수가 없고 읽는 속도도 빨라진다. 소설에서의 외설적 표현 논란은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외설 표현을 받아들이는 정도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독자로서 쉽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눈살을 찌푸릴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과연 〈팔콘만〉은 그들의 노력으로 과거의 전성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복수의 과정에서 보여주는 거침없는 표현, 다소 외설적인 정사 장면의 묘사 등은 이들 여성의 복수극에 맞춰져 읽기 거북하지 않다는 점이 작품의 우수성을 반증하기도 한다. 남성중용책을 내놓은 새 소유주와 방송국의 〈팔콘만〉 제작자들의 노력, 복수 심리 등이 저자의 스토리 전개에 따라 독자는 호흡이 거칠다 평온하다를 오가며 끝까지 내리 읽도록 잘 쓰인 소설이다.

이 책은 저자부터 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이 여성인 여성 서사적 작품이다. 초반부터 위기의 세 주인공은 새 소유주가 발탁하려는 남성에 밀려 커리어가 중단되어야 할 위기를 겪는다. 그들이 대안으로 내세운 새로운 '쌍년' 캐릭터도 여성이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여성 캐릭터들이 소설을 막장으로 끌고 가는 듯하지만 자신의 자리와 권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점에서는 서양 여성들의 적극성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들의 욕망과 분투가 우리들의 정서와 관점으로만 본다면 보통의 상식을 넘어선 것도 있긴 하다. 우리 사회에서도 방송가의 이야기가 책으로도, 드라마로도 나와 여러 번 읽고 본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 소설과 우리의 작품들이 다른 것 중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역시 개인적 프라이버시에 해당하는 사생활과는 완전 별도의 문제로 취급한다는 점이다. 외설적 표현이나 사생활에서 사회적 정서의 차이와 수용성의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독자나 시청자들 대부분은 TV 프로그램의 드러난 부분(지적이고 교양 있고 열정적인 전문직)만 보고 판단되는 대로 인식한다. 그러나 우리 소설이나 드라마의 사장부터 가장 낮은 직급의 방송사 사람들의 일하는 모습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더욱이 가족이나 친구가 아니라면 그들의 성격이나 이력도 모른 채 배역(드라마의 경우)만 보고 그 사람의 인격을 투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조직의 유기적 관계, 승진과 좌천, 남녀 간의 사생활이 아무런 장애 없이 보여진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이 작품이 왜 '19금' 소설이란 말이 나오는지에 대해 이해할 만도 하다. 이른바 사생활의 남녀 관계는 타인이 간섭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문화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녀 간에도 주고받는 방법이 여전히 '섹스'가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소설을 읽으며 받는 안타까운 느낌이다. 다만 이성간의 성이나 동성애도 표현에 거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배울 점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 소설 일부 장면은 정상적이지 않은 섹스나 동성애의 사랑 이야기와 표현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출판물이라면 과연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도 하기에 하는 말이다.

여성 서사적 작품인 만큼 이 책의 여성들은 대부분 '주도적' 성향의 사람들이다. 또 커리어 여성 특유의 자신만의 목표를 이루려는는 성취욕과 도전의식도 굉장히 높다. 게다가 목표 달성을 누군가가 도와주는 것에도 의지하지 않는다. 이는 새 소유주 매들린 케인도 마찬가지다. "난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위해 무언가를 바꾸어 주기만을 기다리면 안 되죠. 그것은 변화가 아니라 거저 얻는 겁니다." 그녀의 말보다 그런 의식의 소유자라는 점이 그녀의 매력을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이전투구식의 욕망과 배신, 그리고 복수의 싸움은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고, 스스로의 양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결말로 이어져 책의 무게감을 더한다.

 


 

 

"서로의 몸을 몹시 흥분한 상태로 더듬고, 마침내 피부와 피부가 닿은 채로 혀들이 빙글빙글 돌면서 손끝을 어루만지고, 헐떡거리는 신음소리가 주위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을 때까지 그들은 단 하마디도 하지 않았다. 램프가 깜박거리더니 꺼졌다. 아만다는 눈을 감고 어둠에 굴복해 그를 더 깊숙이 끌어당겼다. "계속해 줘." 아만다는 댄의 귀에 대고 속삭이더니 깊이 키스했다. 아만다는 댄의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느끼며 두 손을 댄의 멋지고 단단한 엉덩이에 올려놓고 더 세게 밀었다. 폭죽 상자처럼 아만다는 속을 환하게 비추는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열의를 기울였다. 그들의 호흡은 거칠었고, 억제할 수 없는 흥분으로 헐떡거리며 일제히 절정으로 치달았다."(p.267)

 

저자 : 멜라니 블레이크

그녀의 첫 번째 책 The Thunder Girls는 2019년 여름 베스트셀러 1위가 되었고 소설을 각색한 연극은 권위 있는 Lowry Theatre에서 신작으로 흥행 기록을 세웠다. 그녀는 여전히 영국 텔레비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람 중 하나로 현재는 프로듀서, 작가 및 극작가로서 성공적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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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이규범

N잡러, 개고양이 임상수의사 더하기 알파.

 

역자 : 손덕화

N잡러, 공무원수의사, 상담심리전문가, 유튜버&블로거(별과침묵), 옮긴책으로는 《위기와 기회사이》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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