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 - 조선인들의 들숨과 날숨
송순기 지음, 간호윤 엮음 / 경진출판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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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은 야담집이다. 저자 송순기(1892~1927)는 일제 강점기 때 1919년에서 1927년까지 〈매일신보〉 편집기자, 논설부주임, 편집 겸 발행인을 지낸 근대적 지식인이자 한학에도 조예가 깊은 유학자였다고 한다. 그가 이 야담집을 펴낸 것은 일제 강점기 신문기자 신분이었으니 공부를 많이 한 지식인임에는 분명한 듯하다. 다만 이 책의 원본은 『기인기사록』(奇人奇事錄)이라고 한자로 쓰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한학자이자 유학을 배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36세의 젊은 나이에 자식을 잃은 슬픔과 지병인 폐질환으로 요절하는 바람에 많은 책을 남기거나 사회 활동의 기록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야담집은 〈매일신보〉에 연재된 것을 모으고 더 첨가해 책으로 펴낸 것이라고 전해진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매일신보〉는 1904년 7월 18일 영국인 배설(裵說 , Ernes Thomas Bethell)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를 일제가 사들여 국권침탈 직후인 1910년 8월 30일부터 ‘대한’ 두 자를 떼고 〈매일신보(每日申報)〉로 개제한 것이다. 경영상으로는 일어판 기관지인 〈경성일보(京城日報)〉에 통합시켜서 〈경성일보〉의 일본인 사장과 편집국장 밑에 두어 일제의 한국통치를 합리화하고,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주장하는 논조로 발간되었다.

1920년 초까지의 무단정치 기간에는 〈매일신보〉가 유일한 한국어 일간지였으므로, 이 신문에 이인직·조중환·이해조·이상협· 등이 신소설 또는 번안소설을 발표하였고, 이광수(李光洙)가 데뷔작 『무정(無情)』, 『개척자(開拓者)』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1920년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민족지가 창간된 후로는, 민족지와 대립된 논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은 이처럼 저자 송순기가 한자로 쓴 『奇人奇事錄』을 간호윤(簡鎬允)이 편역한 한글본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당시 초간본 발행 때는 상·하 2권으로, 현토식(懸吐式) 한문으로 편찬한 신문연재구활자본야담집(新聞連載舊活字本野談集)을 텍스트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신문연재구활자본야담집에는 상·하권 107화가 실려 있다고 한다. 상권(1921)은 51화 203쪽, 하권(1923)은 56화 195쪽이다. 당시 출판사는 〈文昌社〉이다. 이에 따르면 「서(序)」는 녹동(綠東) 최연택(崔演澤)이 썼다. 1910~1920년대는 우리 야담사에 꽤 의미 있는 공간이다. 문학사 속에서 필사와 식자의 여기라는 척박한 토양에 겨우 명맥을 잇던 야담이, 잠시나마 활자본 야담집의 간행으로 독서 대중화를 꾀했던 작품집으로 평가되고 있다. 『기인기사록』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이 시기 야담집의 중심에 놓인다고도 한다. 더욱이 시대를 고뇌하였던 야담작가 송순기는 『기인기사록』에 야담의 순기능인 ‘재미’와 ‘시대의 진정성’을 함께 녹여냈다는 평가다.

이 야담집의 특징에 하나 더할 것이 있다면 신문 연재이기에 글자 수에 따른 화소의 전략적 배려 속에 구조화된 야담집이란 점이다. 『기인기사록』은 신문연재야담집이기에 지면 관계상 글자 수를 고려하였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기인기사록』은 모든 작품이 대략 1,700자 내외로 한 화가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작가가 다른 야담집에서 단순하게 작품을 발췌, 수록할 수 없다는 점과 대충대충 쓴 글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준다.

 


 

당시 책 발간 소식이자 광고문안에 "널리 전에 들은 이야기를 채록하고 또 여러 대가의 잡설을 수집하여 혹은 불필요한 글자나 글귀 따위를 지워 버리고 혹은 덧붙여서 자세히 설명하며 혹은 양쪽의 좋은 점을 골라 뽑아 알맞게 조화시켜서 한 편을 만들고 이름을 『기인기사록』이라 하였으니 이 책은 단지 기이한 일과 기이한 이야기만이 아니다."라는 것이 『기인기사록』의 요지인 셈이다. 그러함에도 이 야담집은 그동안 낙장된 ‘상권’으로 미루어 ‘하권’이 있음을 추정할 뿐 그 실체를 찾을 수 없다가, 얼마 전 『기인기사록』(상·하)을 남윤수 교수가 소장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그 뒤 남윤수 교수는 상권을 영인하였으며, 이윤석·정명기 교수에 의해 상권의 체계가 분석되어 학계에 소개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책의 내용은 사람을 알아보는 지인지감과 의리를 담은 이야기(1화, 2화, 4화), 남녀의 인연담을 담은 이야기(3화, 7화, 9화, 13화, 14화, 19화, 22화, 27화), 앞날을 내다보는 지혜와 운명을 담은 이야기(5화, 15화, 23화, 24화), 충성과 절개 귀신과 대결을 담은 이야기(8화, 21화), 인간 생활의 기본 원리를 담은 이야기(10화, 11화, 12화, 20화), 스승과 제자의 배움을 담은 이야기(16화), 뜻을 펴지 못한 죄절담을 담은 이야기(17화, 18화, 26화), 뛰어난 여인들의 시재를 담은 이야기(25화) 등이다. 모두 우리네 삶에서 일어날 만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 송순기의 요절로 그의 문학 또한 그만큼으로 멈췄지만 문학세계가 결코 녹록치만은 않다는 것을 알았다고 편역자 간호윤은 말한다. 간호윤은 또 1920년대 지식인 송순기의 대사회적 글쓰기를 한마디로 줄인다면 ‘전방위적 글쓰기’라고 평가한다. 전방위적 글쓰기라 함은 기자로서 기사뿐만 아니라 야담, 소설, 한시, 논설, 기행문, 전(傳) 등 그야말로 다양한 장르를 두루 섭렵했기 때문이다. 기자 출신이니 충분한 설명이 되리라고 독자 역시 생각한다. 그 중 이 책은 『기인기사록』 상(51화)을 중심으로 1차 번역을 하며 오늘날 우리에게 가치를 줄 만한 작품 27편을 선별하여 대중에 맞게 풀어 엮은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초간본 서문을 쓴 최연택은 "비록 좋은 술이 있으나 맛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지 못하고 비록 옥덩이가 있더라도 다듬지 않으면 그것이 보배임을 알지 못한다"는 속담을 들어 송순기의 『기인기사록』 출간의 의의를 칭송했으며, 문학사적 위치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는 이어 이 책의 성격과 읽고 배울 것도 많은 내용임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세상에 어떤 이가 이러한 것을 수집하여 간행하려는 사람이 있지만도 대부분 그릇되었고 또 없어져 소략하여 그 전체를 알기 어려우니 안타까울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송물재(저자 송순기의 필명 勿齋) 군은 이 시대의 역사가이다. 송 군은 널리 들어 기억을 잘하고 독실하게 학문을 닦아 지혜가 많은 것이 정평이 나 있다. 이 송 군이 신문 지상에 집필하여 이로써 우리나라의 기이한 사람과 기이한 일을 천하에 알리려고 하였다. (중략) 그중에는 남의 착한 행실을 드러내고 의로움에 감동한 일이 제법 많으니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가르치고 모범이 될 만하다."

 


 

편역자 간호윤은 편역한 이유와 의의를 책 서두에 부제로 사용된 「조선인의 들숨과 날숨」을 지어낸 분이고 책의 서두에 「들숨소리 하나」, 「들숨소리 둘」로 나눠 이 책의 발간 과정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설명한다. "기인기사'라. 검은 먹대로라면 맨 '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란 뜻이다. 허나 글줄을 따라잡다보면 '백문선이 헛문서' 같은 글이 아님을 안다. '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로되, 삶의 꼼수와 기술을 터득한 축들이 여봐란 듯이 세상을 휘젓는 꾀부림 이야기가 아니요, 잇속을 얻어 부를 몸에 두르고, 권세를 얻어 머리꼭지에 금관자를 붙이고 '물렀거라' 외치는 권마성 소리만도 아니다. 조금만 살피면 깔깔대며 주고받는 그저 우리네 이웃 사람들의 엇구수한 삶의 소리이다"고 글의 성격을 밝힌다.

그는 또 "야담은 이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보탬이 되려는 심결에서 나왔다. 이 책 속에는 재주놀음 하는 이, 풍 치는 이, 바른 맘결을 가진 이들이 나와 저러한 세상을 조롱하기도, 혼내기도, 생글 웃어넘기기도 한다. 때로는 적당히 허구도 섞어작 곁들였지만, 그렇다고 온통 '스님 얼레빗질'하는 흰소리만은 아니다고 강조한다. 여기엔 세상을 꼬느는 꼬장함도, 저기엔 고운 마음결로 평생을 눈물로 산 이들의 삶도, 땀땀이 수놓아져 있기 때문이다. 때론 예리한 붓끝으로 사정없이 세상을 벼리고 불의를 산골하여, 문자의 표본실에 안치해둘 논객의 글발보다도 나은 영채 도는 이야기도 만난다"고 설명한다. 세상에 교훈이 될 만한 이야기를 직접 채록해 저자의 글솜씨로 이야기로 풀어냈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부분이다. 또 그 내용으로는 우리 이웃들의 평범한 삶의 모습이 담겨 있어 마음결 고운 우리의 인심을 설명하기도 하고, 타인의 삶의 도움이 될 일들은 언제나 서슴없이 앞장서 해주는 심성 고운 우리들의 심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간호윤은 「들숨소리 둘」에서 이 야담을 초승달에 비유한다. "야담은 우리네 부대끼는 삶의 실개천에서 건져 올린 초승달이다. 초승달은 음력 초사흗날 저녁에 서쪽 하늘에 낮게 뜨는 눈썹 모양의 달이다. '초승달은 잰 며느리가 본다' 한다. 어쩌다 산머리에 낫 같은 초승달이 걸린들 아무나 보는 게 아니다. 건강하게 하루 삶을 보내고 고개를 들 줄 알아야만 우련한 저 초승달을 본다. 초승달이 앞서야 반짝이는 저녁별도 총총 나온다. 그래 별은 누구나 보지만, 초승달은 누구나 보는 게 아니다. 그림으로 치면 엷은 담묵 기법의 수묵화다. 그래 가만히 산머리를 치어다보고, 화지를 스치듯 지나간 엷은 붓 자국을 훑을 줄 아는 마음이 먼저 선손을 걸어야만 한다. 이렇듯 야담 속에 들어 있는 저 이들의 붓질은 보는 이의 마음이 있어야만 통 성명을 하고 따라잡는다. 모쪼록 이 책을 보시는 분들, 여명 우려든 아침 햇살이 창호 살을 투과하며 빚어내는 그 해맑고도 평안한 창안함이 넉넉한 들숨소리 한 꼭지 만나시기를 바란다."

이 책의 또 하나의 특징은 편역자 간호윤의 역할이다. 단순히 번역해 싣고 책을 만든 데 그치지 않는다. 100여 개의 이야기 중 비교적 우리 민심에 가깝고 교훈이 될 만한 내용을 기술한 27개를 선정했다. 이후 각 이야기의 끝에 「별별 이야기 간 선생 왈」이라는 별도의 난(欄)을 만들어 편역자 자신의 주석을 첨부했다. 이야기의 배경과 당시의 우리나라나 민심의 방향을 짚어주고, 필요하다면 등장인물에 대한 자세한 소개도 덧붙였다. 또 저자 송순기의 집필 시기와 100년이 지난 2023년 현재 대한민국과 나라 상황, 국민의식의 비교가 가능하다. 이는 이 책을 쓴 송순기의 시대와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켜 저자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설령 편역자의 의도가 아니더라도 그것은 독자들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독자 개인적으로는 편역자의 입장과 책의 집필 의도에 맞다고 생각돼 지지한다.

 


 

저자 : 송순기(宋淳夔)

 

송순기(宋淳夔, 1892~1927)는 춘천에서 태어났다. 봉의산인(鳳儀山人)과 물재(勿齋), 혹은 물재학인(勿齋學人)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그는 1919년에서 1927년까지 [매일신문] 편집기자, 논설부주임, 편집 겸 발행인을 지낸 근대적 지식인이자 한학에도 조예가 깊은 유학자였다. 그러나 자식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36세로 생을 마감했다. 이 책의 바탕이 된 [기인기사록]은 엄혹한 일제를 살았던 송순기라는 지식인이 우리의 야사, 문집, 기담 따위를 신문에 현토식(懸吐式) 한문으로 연재한 것을 다시 책으로 편찬한 것이다. 평범한 일생을 기록하고 있지만 송순기는 매일신보에서의 발행인의 위치에까지 올라간 것으로 보아 일제에 순응하거나 동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독자가 다른 백과사전에 등재된 손수기의 인명록에서 일부 발췌해 여기에 싣는다.

송순기는 일제강점기의 언론인이다. 호는 물재(勿齋). 본관은 은진이다. 한학에 밝은 문장가로 알려져 있다. 개화파 한학자인 최영년의 제자이기도 하다. 1919년에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입사했다. 1921년에 편집부 기자, 1922년에는 논설부 기자가 되어 활동했다. 1923년부터 약 4년 동안 매일신보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근무했으며, 1927년 논설부장에 임명된 뒤 얼마 되지 않아 폐질환으로 사망했다. 매일신보 기자이던 1921년 1월 1일 매일신보 신년호에 3·1 운동으로 활발해진 조선의 독립운동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그 내용은 독립운동이 일본에 대한 내란이며 조선총독의 문화정치는 조선인과 조선민중을 위한 시의적절한 정책이라는 것으로, 독립운동으로 혼란해진 사회상과 문화정치로 인해 좋아진 점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편역 : 간호윤(簡鎬允)

 

순천향대학교(국어국문학과),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국어교육학과)을 거쳐 인하대학교 대학원(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61년, 경기 화성, 물이 많아 이름한 ‘흥천’(興泉) 생이다. 예닐곱 살 때부터 명심보감을 끼고 두메산골 논둑을 걸어 큰할아버지께 갔다. 큰할아버지처럼 한자를 줄줄 읽는 꿈을 꾸었다. 12살에 서울로 올라왔을 때 꿈은 국어선생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현재 인하대학교 초빙교수다. 고전을 가르치고 배우며 현대와 고전을 아우르는 글쓰기를 평생 갈 길로 삼는다. 그의 저서들은 특히 고전의 현대화에 잇대고 있다.

『한국 고소설 비평연구』(경인문화사, 2002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기인기사』(푸른역사, 2008), 『아름다운 우리 고소설』(김영사, 2010),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조율, 2012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그림과 소설이 만났을 때』(새문사, 2014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연암 박지원 소설집』(새물결플러스, 2016), 『아! 나는 조선인이다』(새물결플러스, 2017), 『욕망의 발견』(소명출판, 2018), 『연암 평전』(소명출판, 2019) 등 저서 모두 직간접적으로 고전을 이용하여 현대 글쓰기와 합주를 꾀한 글들이다. 연암 선생이 그렇게 싫어한 사이비 향원(鄕愿)은 아니 되겠다는 것이 그의 소망이라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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