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비, 밝음이 안으로 들어오니 어둠이 밖으로 나가네
김종봉 지음 / 헬로북스 / 2022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 『세라비, 밝음이 안으로 들어오니 어둠이 밖으로 나가네』는 에세이집이다. 표제어로만 본다면 종교인의 에세이 모음인 것 같기도 하고, '세라비'가 라틴어인가 하는 생각으로 여행 에세이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에세이집은 한 사람의 일상과 삶에서 느낀 감정과 거기서 얻은 삶에 대한 교훈을 저자 김종봉이 담담하게 풀어내는 에세이이다. 그리고 세라비는 무슨 뜻일까? 이 책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중에 힘들지 않은 이들이 있기나 한 것인지 묻는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무게, 부처님의 일체개고(一切皆苦, 모든 것이 다 고통이라는 의미), 누구나 한 꺼풀만 벗고 보면 사는 게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로써 '세라비'의 뜻을 알 듯하다. 저자는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위로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살아오면서 오감으로 체득한 감동과 애환을 이 책에 담담하게 녹여냈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듯. 세라비(C’est la vie)는 프랑스어이다. 이 용어는 프랑스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에서 따온 말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말이다. 저자는 세무 공무원을 평생 직업으로 살아온 세무사로서 자신의 인생을 비유적으로 세금과 함께 한 인생이라는 의미의 ‘稅라비’라고 말하기도 한다.

저자는 작가이기에 앞서 ‘세무사’를 업으로 하는 세무사이기에, 세금은 숫자로나 돈으로 말할 수 없는 영역이 있기에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털어놓는다. 오히려 돈과 숫자로 말하는 ‘업(業)’의 프레임이 글에 스며드는 것을 철저하게 떨쳐냈다고도 한다. 그저 누구나 마음 편하게 읽고 생각해볼 것을 권유하고 싶었던 게 책을 쓴 이유라고 고백한다. 저자 김종봉의 첫 에세이집 ‘세라비’의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인 셈이다.

 


 

이 책은 긴 제목을 풀이라도 해주려는 듯 '밝음이 안으로 들어오면 어둠이 저저로 밖으로 나갈 것이다'는 문구를 책의 추천사에서 읽게 된다. 우창록 법무법인(유) 율촌 명예회장의 말이다. 燈入房中夜出外(등입방중야출외)라는 말이라고 한다. 한시의 한 문구인 것 같기도 하다. 누구의 어떤 시가 어떤 뜻으로 인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추천사를 읽어보면 의미는 가늠이 된다. 그는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를 "주변에서 흔히 불 수 있는 소재,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을 편안하고 담담하게 엮어낸 책"이라고 소개한다. 이 페이지들을 통해 우리는 존재 이면에 새겨진 각자의 자화상과 마주하게 된다는 게 추천하는 이유로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성찰의 시간을 갖기에 좋다는 뜻으로 읽힌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어렸을 때 형의 권유로 세무 공무원이 됐고, 형이 졸업여행 갔다가 사온 족자의 글자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그 족자의 제목은 '귀감(龜鑑)'이었다. 귀감은 독자도 배운 바 있다. 한자어 귀감은 거북(龜)과 거울(鑑)이 합쳐진 말로 '본보기'라는 뜻으로 쓰인다. 즉 행위의 기준을 의미한다. 거북은 길흉을 점치는 것이고 거울은 사물의 모습을 비치는 것이기에 두 단어가 합쳐져 관용적으로 쓰인다. 흔히 한자어가 그런 말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디에서 처음 나온 말인지는 독자로서는 알지 못한다. 아마 그 말을 마음속에 새겨둔 저자가 삶의 모토로 각인되었던 것 같다는 짐작은 능히 할 수 있다.

 


 

이 책은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그리움을 담다〉, 2부 〈세라비〉, 3부 〈어느 세무사의 하루〉, 4부 〈밝음이 안으로 들어오니 어둠이 밖으로 나가네〉 등이다. 각 부는 각각 10개씩의 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정확한 숫자와 계산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아서인지 정확하게 1부에 10개의 장씩, 모두 4부 40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 부의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우리의 일상과 직업상의 일상, 그리고 저자가 살아오면서 경험으로부터 얻은 교훈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1부 1장 「아이코노클라스트(Iconoclast)」. 생경한 단어가 갑자기 튀어나와 약간 당혹스럽다. 혹시 세무나 회계학에서 나오는 단어인가 책장을 넘기자 다행히 제목 아래 뜻풀이를 친절하게 실어 놓았다. "창조적 발상 자체에 머물지 않고 성공으로 연결한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저자는 정약용과 이어령은 아이코노클라스트라고 설명한다. 영어사전식 풀이는 우상 파괴자, 인습 타파주의자를 이르는 말이다.

얼마 전(사실은 1년이 지났다) 세상을 떠난 이어령 선생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한 사람의 이름이 더 떠오르더라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이다. 우선 두 사람은 많은 책을 저술하여 세간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인문학적 태생임에도 한 사람은 과학과 공학, 의학을 아우르는 융합적 인물이었고, 또 한 사람은 예술의 제반 분야마저 섭렵했던 공감각적 인물이었다고 저자는 두 인물을 평하고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오히려 자신들의 진가를 보여준 위대한 지성인으로 추앙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두 사람이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정약용 사후 100여 년 만에 이어령이 태어났으니 두 사람은 백 년에 한 명 태어날까 말까 한 인물로 기억한다는 점도 밝힌다. 꽤 존경하는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아이코노클라스트라는 말을 처음 언급한 분은 이어령 선생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시대정신에 어긋난 행위를 좌시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들어 정약용 선생도 아이코노클라스트라고 생각한단다. 저자가 존경하는 인물들인 만큼 두 사람에 대한 나름대로의 연구도 있었던 것 같다. 저자에 따르면 정약용에게 있어 '우상 파괴'는 관료의 구조적 부조리에 대한 경고에서 출발한다. 강진 유배 중 '남자의 생식기를 자른 일을 애통해 한다'는 뜻을 지닌 〈애절양(哀絶陽)〉이란 제목의 한시를 지어 부패한 조세 운영 실태와 사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군정 문란으로 인해 벌어진 이 사건은 『목민심서』에 그 자세한 경위가 실려 전한다. 그는 〈원목(原牧)〉이란 글에서 "목(牧)이 민(民)을 위해 존재하는 것(牧爲民有也)이지, 민(民)이 목(牧)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民爲牧生乎 曰否否)"라고 하였는 바, 백성 위에 군림하는 목민관이야말로 우상 파괴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22살의 이어령에게 '아이코노클라스트'는 권위주의에 매몰된 기성 문단의 자기 성찰 촉구 내지 혁신적 파괴의 선언이었다. 기득권층 문화 권력에 맹종하는 젊은 세대의 세태까지 싸잡아 원폭 선언을 한 느낌이 든다. 그는 단순 파괴가 아닌 창조를 위한 파괴였음을 에둘러 이야기한 적이 있다. 훗날 누군가가 자신을 우상으로 부르는 일이 생기자 이는 아이러니라며 두려워하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 한다. 두 사람의 에피소드는 무려 여덟 개가 이어진다. 가족과 일상, 직업인으로서의 삶 등에 두 사람의 일화를 하나씩 짚어가며 왜 저자 자신이 두 사람을 아이코노클라스트라고 말하는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에 저자는 두 사람은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설파했듯, 세상에 내던져진 채 그저 살아가는 존재(피투성, 被投性)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위해 자신을 내던져 변화된 상황을 창조해 가는 삶을 살아간 존재(기투성, 企投性)였다고 역설한다.

 


 

2부 14장 「베토벤 교향곡과 베 짜는 소리」도 인상적이다. 제목 아래 "세상에는 마치 벼락부자와 벼락거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이분법적인 사고에 익숙해져 있으나 실상은 대다수 사람이 벼락부자도, 벼락거지도 아니다"라는 설명글이 달렸다. 어렸을(너댓 살) 때 베토벤의 〈교향곡 9번〉 4악장을 듣고 너무 좋아 매일 밤 엄마에게 그 곡을 틀어달라고 졸랐다는 기억을 가진 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그 시절에는 오두막집의 단칸방 안에 베틀이 있었고 엄마의 베 짜는 소리를 들으며 자라야 했다. "삐이익삑 탁 삐이익삑 탁···." 그때는 남들만큼 큰 집은 아니더라도 좁은 방안에 베틀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은 화합과 인간애를 주제로 한 '합창교향곡'으로 알고 있는데. 저자의 이야기는 갑자기 세법의 동향 사전 파악의 의미로 급선회한다. 독자로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최근 부동산 경기의 정책 수립과 세법 정책 변화와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함이다. 세법이나 부동산에 관해 완전 문외한 독자로서는 단박에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지만 저자의 글의 의미를 뒤늦게 깨닫더라도 언급은 여기서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적어놓는다.

책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부동산 가격 변동은 상당수 국민을 소위 '멘붕'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십여 차례가 넘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에도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부동산 투기와 벌인 전쟁은 길고도 지루하게 이어져 왔다. 1966년 3월 국세청 개청 이듬해인 1967년 부동산 투기 억제 목적으로 '부동산 투기 억제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처음 제정되었으니 얼마간 잠잠했다가 다시 도지는 고질병처럼 부동산 투기 문제를 달고 산 지도 55년이 넘은 셈이다. 이번(2021년) 세재의 한 축을 주택가격 안정과 관련짓는 사람이 많다. 주택가격이 오르는데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린 게 원인이라고도 하고 외국이나 지방의 투기자본이 결부되어 있다고도 한다. 모두가 간과했던 점도 있다. 20~ 30대 젊은 세대가 결혼하면 부모세대로부터 집을 물려받을 수 있다며 낙관했다.

 

 

그러나 평균 수명 연장으로 자녀 세대는 60~70세는 되어야 부모의 집을 물려받을 판이다. 젊은 세대의 결혼이 늦어지면서 결혼 전 독립해서 사는 1인 가구도 늘었다. 졸혼, 이혼, 별거 등의 증가세로 인해 추가적인 주거 공간도 필요해졌다. 인구는 줄어들지언정 가구 수는 늘어만 간다. 부동산 시장의 트렌드를 선결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해야 세제든 부동산 정책이든 효과가 극대화되지 않을까. 과거의 경험을 통해 부동산정책을 입안하고 수립, 시행하는 소관 부처의 긴 안목과 그 역할의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다. 저자의 말은 이번에는 천재 미술가 미켈란제로로 향한다. 그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천지창조〉를 그릴 때 에피소드다. 길이가 약 41미터, 폭이 약 13미터에 이르는 대형 천장화다. 4년 4개월의 대작업의 마지막 손질이 끝나갈 무렵 교황이 방문했다고 한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상당히 만족해하면서 천장화에 금색이 없어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가 그림 위에 금으로 덧칠할 것을 주문하자 미켈란젤로는 "금으로 만든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교황이 다시 "그림이 가난해 보일 텐데···"라며 아쉬워했지만 그는 "제가 여기에 그린 인물들도 가난합니다"며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야 저자의 의도가 드러난다.

"특정 계층이 자기 생각이 옳다며 무조건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은 제국주의적 사고다. 나아가 자기식 경영으로 지배한다면 식민주의 시대나 볼 법한 일이다. 근대주의가 획일적 특정 개념에 의해 모두를 지배했던 시기라면, 현대의 경우는 서로를 인정하고 대화의 파트너로 공존하는 방식이 주류다. 일부의비상식적 행위까지 포용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 갈 수 있다."

 


 

4부 첫 장 「아타락시아 세계」란 글이다. 역시 주제가 될 만한 문장을 제목 아래에 달았다. "한 나라의 가치 척도는 세금 과세 방식에 있다. 조세제도야말로 그 사회의 근원적 가치 기준이다." 아타락시아(ataraxia)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말한 정신적 평정의 상태를 뜻한다. 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 등은 우주를 잘 인식하여 일체의 공포에서 해방되는 것에 의해 이것을 획득할 수 있다고 했으며, 현자가 이런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에피쿠로스는 일체의 종교적 미신을 척결하고 이성의 인식에 입각한 곳에 아타락시아가 있다며, 이것을 쾌락이라고 불렀다. 저자가 세무사이고 직업상 관련된 에피소드는 세금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접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럽다. 세금의 깊은 뜻을 생각하며 세금 내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아타락시아란 말을 꺼낸 이유가 뒤의 글에서 드러난다. 세금 역시 부동산 정책과 마찬가지로 이리저리 모두 재보고 따지고 파장도 고려하고 득 볼 사람, 피해 볼 사람 등 많은 것을 고려해 신중에 신중을 기해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복지 천국이라고 불리우는 스웨덴의 조세 정책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스웨덴 정부는 세수 확보를 위해 '부부합산과세제도'를 도입했다. 세금이 부담스러워진 젊은이들은 결혼을 하는 대신 약혼만 한 상태에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린다. 결혼한 사람들은 과도한 세금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이혼을 하고 같이 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에 스웨덴 정부는 탈세의 목적으로 이혼 후 다시 동거하는 사람들을 부부로 간주한다는 세법 조항을 신설했다. 이번엔 집 한가운데로 벽을 세우고 출입구를 두 개 만들어 사는 가정이 생겨났다. 정부는 새로운 세법 개정으로 맞섰다. 한 번 결혼했다가 이혼한 후 동일 주택 내에 살면서 수입원이 둘인 가정을 동거하는 부부로 간주하는 조항을 추가한 것이다. 저자는 무리한 법의 신설과 개정은 오로지 과세 목적을 위해서였다고 밝힌다. 결과는 뻔하다. 스웨덴은 젊은이들이 아예 결혼하지 않으려 한다.

 

저자 : 김종봉

 

마산고와 세무대학을 졸업하고 국세청에서 20여 년, 법무법인(유) 율촌에서 6년 넘게, 세무법인의 대표로서 10년, 대학에서 세법 강의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현재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이사, 가천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주)에버다임 사외이사, 사단법인 대한바둑협회 이사,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며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분과실행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의 첫 번째 글쓰기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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