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발밑에는 피렌체보다 화려한 부여가 있다
최경원 외 지음, 홍경수 엮음 / 북카라반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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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부여를 딱 한 번 간 적이 있다. 수십 년 전 중학교 수학여행지였다. 부여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친구들과 함께 갔기에 즐거웠고, 집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잔 첫 여행지였다. 워낙 오래 전이라 세세한 기억은 잊혀졌지만 고란사, 낙화암, 백마강 등 몇몇 유적들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이후엔 우리 역사를 배우는 시간에 현장 방문 체험의 기억에 덧대어진 역사 지식이 그대로 머릿속에 남았다. 우리나라 한반도 고대 삼국 중 하나인 백제인의 숨결이 아직도 남아 있는 부여는 당시 수도이자,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였다. 당시 이름은 '사비'이었다. 백제 때 도읍 자체의 명칭이기도 하다. 백제 때에는 부여 일대의 평야를 사비원(泗?原)이라 하고, 금강을 사비하(泗?河)라고도 했다고 우리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백제가 협소한 웅진(熊津)을 버리고 넓은 들이 있는 곳에 보다 큰 도읍을 건설하기 위해 천도한 것은 538년(성왕 16) 봄이다. 무왕은 수도의 건설을 위해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공장(工匠)ㆍ화사(?師) 등을 청하였다. 사비성은 이때 새로 쌓은 것이 아니고 수축만 했다. 이 성은 부소산을 감싸고 있고 양쪽 머리가 낮게 둘러져 백마강을 향해 초승달의 형태를 보이고 있어 반월성(半月城)이라고도 했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의 기록에는 성터의 길이가 13,000여척이나 되며, 치소가 성 안에 있었다고 한다. 백제가 망한 뒤 백제의 유민들이 모여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는데, 664년(문무왕 4)에는 한때 사비성을 점령하여 신라군을 물리치기까지 했던 곳이라는 역사서 기록을 보더라도 한 나라의 수도로서 대단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던 듯하다.

 


 

출판사 측에 의하면 이 책 『당신의 발밑에는 피렌체보다 화려한 부여가 있다』는 지난해 봄, 방송사 프로듀서 출신의 국제 교류 전문가, 디자인 연구자, 예능작가, 사진작가, 콘텐츠 연구자가 모여 다섯 가지 관점의 부여 답사 가이드를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여러 차례 부여를 방문하며, 부여가 가진 매력을 발굴하고 스토리텔링 과정을 거쳐 로컬 콘텐츠를 만들었다. 부족한 점이 없지 않지만, 새로운 방식의 인문 도시 답사의 방식이라 자부한다. 그 자부심으로 독자 여러분을 고아한 초승달이자 보름달의 도시 부여로 초대한다.

오랜 세월 미의 정수를 이어온 고대 왕국 백제의 마지막 수도이자, 미래의 역사가 더욱 확장될 도시 부여는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견주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대단한 자부심을 내세운다. 이탈리아 피렌체와 견주는 이유는 도시로서의 위용뿐만 아니라 미적 관점에서도 피렌체와 결줄 만큼 완벽하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다만, 그 흔적이 우리의 발밑에 묻혀 있을 뿐"이라는 점이 독자로서는 안타까울 뿐이다. 동북아시아의 공예와 건축 혁명의 시발점이었으며, 문화예술의 수도였던 부여의 모습을 떠올리면 안타까움은 더욱 사무친다. 하지만 부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늘 높은 땅을 지키며 보듬고 있고,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으니 부여의 온전한 모습은 보름달같이 복원될 것이라는 참가자들의 노력과 함께 더욱 완전한 모습을 갖춰 갈 부여를 책을 통해 방문한 것은 개인 입장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부여는 원래 기원전 2세기경부터 494년까지, 멀리 북만주 지역을 지배했던 예맥족 국가의 이름이었다. 부여는 고조선이 멸망한 뒤 고대 한반도 북부와 드넓은 만주를 책임졌고, 고구려와 백제가 만들어지는 뿌리가 되었다. 이런 부여의 흐름은 백제가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 정책에 밀려 수도를 두 번 이전하면서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왔고, 지금의 부여, 사비라 불렸던 백제의 세 번째 수도에까지 내려온다.(p.19~20) 저자들이 왜 피렌체와 비교하고 있는지 지금의 부여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된다. 피렌체(Firenze)는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인구 37만 2,038명(2020년)으로 소도시이다. 면적도 102.4㎢에 불과하다. 부여군은 인구 7만 1143명(2015년 현재)에 624.57㎢이지만 사비라는 명칭의 부여읍은 면적 58.86㎢, 인구 2만 4,225명(2013년)이다. 현재 토스카나주(州)의 주도(州都)이다. 작지만 한 나라의 수도로서의 역할을 해낼 만큼 충분한 역량을 갖췄다는 점에서 우리의 옛 도시 부여와 비슷한 점이 많다.

아르노 강변에 위치한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발상지로 피렌체-프라토-피스토이아를 잇는 넓은 구릉지대의 도시들이 한 생활권으로 연결되어 약 150만 명이 피렌체의 영향권 안에 있다. 건축과 예술의 요지로 알려진 피렌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산타크로체성당, 산타마리아노벨라성당, 우피치미술관, 베키오 다리, 시뇨리아 광장, 피티 궁전 등은 세계적인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또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를 비롯하여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조반니 보카치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산드로 보티첼리, 니콜로 마키아벨리, 알리기에리 단테,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 천재적인 과학자와 문학가, 예술가들을 배출한 도시로도 유명하며, 세계 예술 작품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피렌체 지방의 언어는 이탈리아 표준어로 인정되고 있다.[두산백과]

 


 

피렌체 못지 않게 부여도 옛 수도로서의 화려한 문화와 정치·경제·군사·교통의 요지로서 자격을 충분히 갖춘 곳이다. 특히 백제의 문화는 오늘날에도 되살리기조차 어려운 금속공예 기술과 불교 미술, 화려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수도로서의 명성을 유추할 수 있다. 피렌체보다 훨씬 높은 문화 수준을 이뤘다고 평가해도 아무런 이상한 점이 없을 터다. 특히 1,400여 년이 지난 뒤에 모습을 드러낸 〈백제 금동대향로〉는 그간 백제 문화를 두고 오가던 말들을 단번에 무색하게 만들었다. 백제 문화는 소박하다느니, 인간적이라느니 하는 말들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이 향로는 앞발을 치켜든 용 한 마리가 연꽃 봉오리를 물고 있는 듯한 형상인데,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잇다. 맨 위의 봉황, 향로의 몸통, 용 모양 받침대다. 각각의 부분들은 서로 다른 조형성으로 만들어졌다.

우선 맨 위의 봉황은 유려하게 흐르는 곡면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다. 봉황의 몸통에서부터 긴 꼬리까지 이어지는 곡면의 흐름은 페라리 같은 최고급 자동차를 연상시킬 정도로 뛰어나다. 향로의 몸통은 오늘날 캐릭터처럼 수많은 형상들이 모여 있다. 그것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채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전하려는 듯 살아 움직이는 역동성도 갖추고 있다. 하나하나가 대단한 표현이고 현대적 조형 원리를 구현하고 있어 놀랍기만 하다. 또 몸통을 받치고 있는 받침대 버분은 정말 찬탄을 자아낸다. 가히 피렌체의 미켈란제로보다 뛰어난 조형미와 생동감 넘친다. 용의 모양은 금세라도 하늘로 올라갈 것처럼 아름답고 힘차다. 당시 금속을 이 정도로 조각할 정도는 지구상 유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향로 하나를 이런 수준으로 만들었다면 다른 것들은 또 어떻게 만들었을까? 백제 금동대향로가 던져주는 남은 숙제다.

 


 

이 책은 모두 5개의 장(章)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 「작고 조용한 부여 안에 담긴 크고 찬란한 부여」, 2장 「부여로 동기 부여하니, 여부가 있겠습니까」, 3장 「규암을 걷다」, 4장 「그곳에 가면 부여의 맛이 있다」, 5장 「땅의 힘으로, 땀의 힘으로」 등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부여 복원을 위한 모임의 참가자들이 부여의 옛날과 오늘날의 부여를 각각 분담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책에 따르면 1장을 쓴 최경원은 고대의 화려한 왕국 백제와 수도 사비의 복원되지 않은 모습을 글로 생생하게 재현해 냈다. 부여가 자랑하는 정림사지 석탑과 백제 금동대향로는 왜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지 비례와 균형, 치밀한 디테일을 묘파하며 분석했다. 시공간을 뛰어넘고 작품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는 심도 깊은 미 해석의 세계를 보여준다. 2장을 쓴 정길화는 부여의 역사적 연원과 인문학적 의미를 다양하게 톺아보고 있다. 6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시각적 재현이 탁월하다. 특히 신동엽 시인, 임옥상 화백, 유홍준 교수 등 부여인들의 이야기는 부여의 본질을 궤뚫어보는 데 도움을 준다.

3장을 쓴 홍경수는 지역 재생의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규암의 재미 있는 공간을 크리에이터와 함께 소개한다. 부여 토박이, 이주한 공예인, 젊은 기획자, 청년 등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규암을 핫 플레이스로 만들고 있다. 4장을 쓴 김진태는 부여 사람으로 고향의 맛을 지키고 있는 진국 같은 식당 주인들 여덟 명을 만났다. 백제의 맛과 부여의 정신을 지키고 있는 주인들의 이야기만으로 부여의 매력에 빠질 수 있다. 5장을 쓴 김수 사진작가는 부여가 자랑하는 농산물 〈굿뜨래〉의 대표 작물을 재배하는 농업 장인들을 만났다. 수박, 멜론, 딸기, 토마토 등 한국 최대의 생산지에서 가장 농사를 잘 짓는 분들을 만나 부여 맛의 근원을 탐험했다.

 


 

각 장의 끝에는 저자나 저자가 선택한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부여 1박2일 코스를 실었다. 글을 읽은 다음 저자의 큐레이션 대로 1박 2일을 보내려 부여로 향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여를 오랫동안 관찰한 경험에서 나온 제안은 탁월한 가이드가 되어 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 : 최경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산업 디자인과에서 공업 디자인을 전공했다. 지금은 현 디자인 연구소의 대표로 있으며, 한국문화를 현대화하는 디자인 브랜드 홋 컬렉션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성균관대학교, 국민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기도 하다. 대학교 때부터 디자인을 생산이나 판매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대중들의 삶을 위한 문화인류학적 성취로 파악하고자 했고, 식민지와 산업화 과정 속에서 소외되었던 우리의 전통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일을 목표로 많은 연구를 해왔다. 그 결과 지금까지《good design》, 《르 코르뷔지에 vs 안도 타다오》, 《알레산드로 멘디니》, 《디자인 인문학》, 《한국문화 버리기》, 《끌리는 디자인의 비밀》 등 총 열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이 책은 디자이너 입장에서 우리의 문화를 해석한 열한 번째 저서다. 앞의 책들이 주로 저자의 이론을 펼치기 위한 기초적인 내용들이었다면, 이 책은 그간 연구해 온 내용들을 본격적으로 펼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후로 디자인과 우리 문화에 대한 연구들을 계속 출간해 나갈 예정이다.

 

저자 : 정길화

현재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으로 재임하면서 국제문화 교류와 한류 진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1982년 외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1984년 MBC에 PD로 입사했다. 「세상사는 이야기」, 「인간시대」,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교양 프로그램과 시사 다큐멘터리를 주로 만들었다. 방송대상, 통일언론상, 임종국상, 한국청년대상 등을 수상했다. 제12대 PD연합회장, MBC 홍보심의국장, 중남미지사장 겸 특파원을 거쳐, ‘중남미 K-POP 팬덤’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외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오징어 게임과 콘텐츠 혁명』(공저. 2022년 세종도서 교양 부문 선정), 『기록의 힘 증언의 힘』, 『우리들의 현대침묵사』(공저) 등이 있다.

 

저자 : 김진태

방송작가로 1965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 부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서울예술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1990년 MBC TV 「우정의 무대」를 시작으로 30년간 「일요일 일요일밤에」, 「21세기 위원회」, 「강력추천 토요일」, 「청춘 신고합니다」 등 예능작가로 프로그램 다수를 집필했다. 한국방송작가협회 예능연구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지은 책으로 『# 예능작가』(편), 『# 生큐멘터리 : 술로 50년 솔로 50년』(공저) 등이 있다. 부여로 낙향 후 노모 그리고 상추(犬), 배추(猫)와 함께 사소하고 다정한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현재 the 작업실 대표와 ㈜디턴 수석 크리에이터를 맡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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