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로 읽는 인간의 역사 - ‘왜 인간은 다채로운 신발을 신는가?’에 관한 방대하고 진귀한 문화 탐구서
엘리자베스 세멀핵 지음, 황희경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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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특히 운동화에 대한 독자의 기억은 슬픔과 기쁨 두 가지가 다 있다. 지금이야 운동화가 그리 비싼 편은 아니지만(물론 명품이라는 또다른 비싼 운동화가 있긴 하지만)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이른바 브랜드 운동화가 유행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사실 당시 물가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비쌌다. 그러나 그걸 신고 싶어 부모님을 졸라도 사주지 못한다고 해서 싼 운동화를 신고 다녔던 기억이 슬프다. 그러나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비싼 신발을 사주다 보니 기쁘기 그지 없다. 그때 우리 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슬퍼지기도 한다. 지금은 우리가 선진국에 돌입할 정도로 경제적 부를 이뤘으니 신발쯤이야 조금 바싸다 해도 그리 부담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독자만 해도 5~6켤레를 갖고 있다. 가격이 싸서 사놓았다가 아직 한 번도 안 신은 등산화도 있다.

독자는 위에 언급한 신발 제조와 소비 과정에서 과소비에 의한 엄청난 수입의 원천인 브랜드 신발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 『신발로 읽는 인간의 역사』는 신발 발달 과정의 역사를 통해 인간과 신발, 그리고 신발의 원래 목적인 발을 보호하는 용도에서 점차 소재의 다양화, 고급화, 기능화 과정을 통한 인류 역사를 함께 다룬다. 이를 위해 170여 장의 희귀한 신발 도판을 신보이고 신발과 함께해온 인간의 역사를 읽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다. 저자는 캐나다 토론토의 바타 신발 박물관 수석 큐레이터 엘리자베스 세멀핵이며, 그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역사학자이기도 하다. 그간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신발 탄생의 비화, 신발을 만들고 유통하고 신은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난 흥미로운 에피소드, 고대 이집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발의 변천 과정에 담긴 의미 등을 모두 담았다.

 


 

이 책은 인간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신발을 샌들, 부츠, 하이힐, 스니커즈로 나누고, 그것을 둘러싼 역사적·사회적·문화적 쟁점들을 조명한다. 자유를 위한 투쟁 그리고 여가 활동에서 샌들이 왜 선택받았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부츠와 남성성의 관계, 하이힐을 신은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이중적인 시선에 대해 살펴보고, 스니커즈는 어떻게 편하게 신는 신발에서 가장 각광받는 고급 패션 아이템이 될 수 있었는지 등을 신문과 잡지, 문학작품 같은 방대한 자료를 통해 흥미롭게 펼쳐놓는다. 신발은 인류가 이동성을 높이기 위해 색, 모양, 소재, 굽의 높고 낮음 등은 단순히 실용성이나 미적인 아름다움만을 위해 달라지지 않았다. 그것을 신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 또는 욕망을 드러내기 위해, 생각을 표현하거나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과 연대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신발 스타일에 변화를 주었다.

저자는 신발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곧 인간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그 스타일의 변천사에 모두 드러난다. 이 책은 ‘우리는 왜 신발을 신는가?’라는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삶과 역사를 묻는 매우 복잡하고 방대한 질문에 대해 답해주는 매혹적이고 흥미로운 문화 탐구서다. 왜 지금은 신발에 그렇게 대단한 사회적·경제적 가치를 부여하고, 지금 같은 '신발 중독' 상태에 이르렀는가? 이는 발을 보호한다는 신발의 쓰임을 훨씬 넘어서는 신발의 역할을 살펴보면서 이 책에서 다루게 될 몇 가지 질문 중의 하나다. 이 책은 신발의 유형 분류 체계를 정리한 것도 아니고, 신발 제작 기법에 대한 연구나 스타일 변천을 알려주는 카탈로그도 아니다. 이 책에서는 문화·역사·경제·사회 정체성 구축과 관련 있는 신발의 의미와 중요성을 다룬다.

 

"맨 처음 여성들을 반하게 한 힐의 매력은 비실용성이 아니라 힐을 매력적인 액세서리로 여기게 만든 이국적 정서, 승마 그리고 남성성과의 연관성에 있었다. 17세기 초반 여성복은 남성 복식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했으며, 1618년 궁정 신부가 런던 주재 베네치아 대사에게 여성들이 “모두 남자 신발을 신는다”고 말할 정도로 힐은 여성복을 남성화하는 데 사용되는 부가적인 특징이었다."(p.199)

 


 

책에 따르면 신발은 성별을 표시하고 충의를 표명하며 지위를 선언하고 저항을 표현하는 데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매우 규범적이고 쉽게 해석할 수 있는 의미들이 부여됨으로써 광범위한 사회적 동맹부터 좀더 미묘한 개성의 표현에 이르기까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비언어적 표현으로서도 기능했다. 산업화의 결과로 오늘날에는 전례 없이 다양한 신발이 폭넓은 가격대로 제공되고 있다. 이에 따라 더 많은 소비자가 신발 선택을 통해 점점 더 미묘해지는 사회적 정체성의 차이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시중에 나와 있는 신발의 종류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 북미 소매업체인 노드스트롬 백화점의 웹사이트만 간단히 살펴봐도 이 책을 쓰는 시점에 1만5,000개 이상의 신발을 찾을 수 없더라도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끊임없이 변화하며 매혹적인 새 모델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는 상점들이 무수히 많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좀더 독특한 상품에 관심이 있는 소비자라면 중고 판매점, 빈티지 상점과 경매 웹사이트를 통해 과거에 출시된 매우 다양한 신발을 구할 수도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또 현대의 소비자들은 신발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다양한 상품들도 접할 수 있다. 신발 모양의 크리스마스 장식과 슬리퍼 형태의 전채 요리 접시 같은 색다른 실내 장식품부터 스니커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열쇠고리와 하이힐 모양의 토트백 장식까지 고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각축을 벌인다. 실제 신발 그리고 신발과 관련된 상품의 구매뿐 아니라 신발과 관련된 정보의 소비도 늘어나고 있다. 신발 이미지로 가득한 소셜플랫폼 핀터레스트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페이지처럼 인터넷에는 신발을 주제로 하는 웹사이트와 블로그가 넘쳐난다. 사람들은 신발 '셀카'를 올리고 신발이 주제인 책을 읽고 신발을 주제로 한 미술관 전시회에 들르며, 신발에 유명 디자이너의 사인을 받기 위해 오랫동안 줄을 서서 기다린다.

 


 

이 책 『신발로 읽는 인간의 역사』는 「'왜 인간은 신발을 신는가?'에 관한 방대하고 진귀한 문화 탐구서」라는 부제에서 보여지듯이 신발이 문화적으로 중요해진 것은 그 다양성과 가용성이 끊임없이 확장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이는 전통적으로 성별과 계급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던 다른 복식 엑세서리들이 사라진 현상과도 연관이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모자는 남성과 여성, 성인과 아동,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차이를 드러내고 전파하는 동시에 더 다양한 사회와 하위문화 내에서 집단 정체성을 강화하고 드높이는 역할을 해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신발에 얽힌 발전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취재하다 보면 값싼 노동력과 자원을 찾아 글로벌 사우스로 몰려가는 다국적기업의 무분별한 사냥, 사람들보다 금전적 이익을 앞세우는 정치적 결정, 통제를 벗어난 과잉소비주의 등을 생생하게 드러난다고 귀띔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 책의 출간 목적이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대로 신발에 관한 문화탐구서이다. 책 본연의 자세로되돌아가면 역시 신발의 제조와 인간의 역사와의 연관성을 재조명하는 것이어서 20세기와 21세기 서구 사회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네 가지 주요 신발의 전형인 샌들, 부츠, 하이힐, 스니커즈에 초점을 맞춰 기술한다. 네 가지의 넓ㅇ느 범주로 분류한 이 신발들은 같은 시대를 거쳐왔지만, 각각 더 폭넓은 역사적·사회적·문화적 쟁점들을 조명하며 놀라울 정도로 독특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 책은 모두 5부 25장으로 구성돼 있다. 1부 〈샌들-낯설고 이국적인 자유의 상징에서 경직된 사회를 무너뜨리는 저항의 도구로〉, 2부 부츠 〈부츠-활동적인 남성의 전유물에서 다양한 집단의 동일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3부 〈하이힐-남성들의 굽 높은 승마용 신발에서 여성을 향한 욕망과 편견을 투영하는 상징으로〉, 4부 〈스니커즈-값싸고 편한 혁신적인 운동화에서 우리 시대 가장 주목받는 패션 아이템으로〉, 5부 〈신발-신발에는 시대의 변화하는 모습과 추구하는 가치가 담겨 있다〉 등이다.

 


 

1부는 로마 제국 말기에 버림받은 뒤, 수세기 지나 18세기 말에 다시 서구 패션에 도입된 샌들에서 시작한다. 다시 도입되던 순간부터 샌들은 종종 용인성의 한계에 도전하고자 했다 사람들이 착용해 왔다. 19세기 중반 검소하고 단순한 생활을 지향했던 영국의 '심플 라이프족'이 신었던 인도풍 샌들이나 20세기 중반 히피가 신었던 근동의 레반트 지방에서 유래한 지저스 샌들처럼 샌들은 그것을 신었던 매우 별난 사람들과 함께 서구의 관점에서 본 이국의 '낯선 이들'과 더욱더 깊은 연관성을 지녔다. 샌들은 간헐적으로 고급 패션에 받아들여지기도 했는데 그러한 맥락에서 착용될 때는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을 채 제 기능을 수행했다. 흔히 말하듯 '날 것'과 '닳고 닳은 것' 사이의 충돌로, 샌들은 레저와 놀이를 상징하는 신발이자 우아함과 세련됨을 상징하는 신발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개인 특유의 나다름과 급진적인 정치 성향을 상징하는 신발이 되었다.

2부에서는 부츠와 권력, 지배, 남성성, 동일성이라는 개념의 관계를 살펴본다. 19세기 이전까지 부츠는 남성 영역에 속해 있었고 오랫동안 활동을 위한 신발이자 사냥과 전쟁을 상징하는 신발이었다. 19세기 후반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많은 남성의 일상 의복에서 패션 아이템으로서 부츠의 중요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19세기 제국, 특히 미국 서부에서는 여전히 최고의 지위를 지켰으며 아직까지도 카우보이 부츠에는 철저한 개인주의와의 연관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저자는 파악한다. 부츠는 일반적인 남성 복식에서 설 자리를 잃었지만 여성 복식에서 중요한 아이템이 되었다. 19세기 말이 되자 여성용 부츠는 점점 에로틱해졌다. 3부 하이힐에서는 우선 서아시아 남성들이 승마용으로 처음 신었던 굽이 달린 신발의 기원을 살펴보낟. 이어서 힐이 17세기 서양 복식에 도입되어 자리 잡은 과정과 천박함의 상징이자 기만적이고 지나치게 성적인 여성성의 상징으로 변하게 된 과정을 따라간다.

 


 

4부에서는 19세기 중반 스니커즈의 첫 등장부터 새로운 기술, 남성성이라는 개념의 변화 그리고 계급, 지위, 특권의 표현과 관련된 스니커즈 문화의 부상에 이르기까지 스니커즈의 진화를 살펴본다. 1930년대 스니커즈 대중화에 우생주의와 파시즘이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19세기 스니크즈의 인기 증대에 있어 '강건한 기독교 운동'의 역할과 신체 문화의 중요성도 담고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베이비붐 시대에 스니커즈의 부활과 문화의 등장은 이 장을 구성하는 핵심 내용이다. 마지막 결론이 될 5부에서는 신발에 담긴 역사적 의미와 그 의미를 확장하는 데 핵심 동인이 된 산업화의 역할을 살펴본다. 21세기 시장에 넘쳐나는 신발, 그리고 관련 상품의 수가 계속 증가함에 따라 신발 스타일의 표현 형식은 사회 정체성을 해석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비현실적인 하이힐을 신는다는 것이 본질적으로 여성의 의식 부족을 나타낸다는 주장은 더 흔하게 제기되었다. 1871년 한 잡지에 쓰인 “그녀는 프랑스식 힐을 신고 비틀거리며 발만큼이나 흐트러진 머리를 하고 번화한 해리엇가를 달려”라는 구절은 멍청하면서 매혹적인 여성의 전형을 묘사했다. 하이힐은 성적 매력이 있는 여성성의 복잡하면서도 모순적인 상징이 되었고, 여성의 교활한 속임수뿐만 아니라 비천한 지성의 증거로 이용되었다. 이를 통해 하이힐은 이후 수세기 동안 이러한 일련의 의미들을 내포하게 된다."(p.207)

 


 

"스니커즈, 도시 패션과 상업화의 관계가 점점 더 업계의 의문이 되고 있는 가운데 스니커즈를 신은 성공한 남자의 또 다른 모델이 나타났다. 흑인 운동선수, 랩 스타들과 함께 실리콘밸리의 총아들이 성공한 남자의 새로운 전형으로 떠올랐다. 존경 그리고 조롱과 우려를 동시에 받았던 백만장자인 기술업계 거물들이 운동복과 스니커즈를 신고 이사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정장용 브로그나 스리피스 슈트는 이제 세상의 새로운 질서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뜻을 넌지시 비쳤다. 한 기자가 기억하듯이 '정장을 사지도 않을뿐 더러 인터뷰에 나설 일도 없는 스물두 살의 닷컴 기업 백만장자들의 시대에 기업들은 차려입는 것이 약간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생각하게 되었다.'"(p.340)

 

저자 : 엘리자베스 세멀핵(Elizabeth Semmelhack)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바타 신발 박물관은 4,500년 전 신발부터 현대의 신발까지 13,000여 점에 이르는 세계의 신발이 전시된 이색 박물관이다. 엘리자베스 세멀핵은 바타 신발 박물관 수석 큐레이터로 신발의 역사와 문화적 의미, 가치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다. 《보그》, 《엘르》 등의 패션 잡지는 물론 《뉴욕타임스》,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다양한 매체에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들여다본 신발 주제의 칼럼을 싣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아웃 오브 더 박스: 스니커즈 문화의 부상(Out of the Box: The Rise of Sneaker Culture)』, 『하이츠 오브 패션: 높은 신발의 역사(Heights of Fashion: A History of the Elevated Shoe)』, 『스니커즈×문화: 컬래버레이션(Sneakers x Culture: Collab)』, 『디오르 바이 로저 비비에(Dior by Roger Vivier)』 등 다수가 있다.

바타 신발 박물관 홈페이지 batashoemuseum.ca|트위터 @batashoemuseum

 

역자 : 황희경

홍익대학교에서 섬유미술을 전공하고 영국 브루넬대학교 디자인 전략혁신 과정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의류 대기업 및 컨설팅 회사에서 패션정보기획, 트렌드 분석 리서처로 근무했다. 현재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고객 경험 혁신을 위한 서비스 디자인 특강』 『드레스코드』〔근간〕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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