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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타인 ㅣ 베이식 아트 2.0
재니스 헨드릭슨 지음, 권근영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3년 1월
평점 :
이 책은 미국의 화가이자 팝 아트의 대표 작가로 손꼽히는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에 대한 작품론과 작가론으로 쓴 책이다. 리히텐슈타인의 일대기이고, 전기(傳記)로 봐도 무방하다. 리히텐슈타인은 초기에 추상 표현주의의 작품을 그리다가 1961경부터 만화에 관심을 돌려 독자적인 작품을 제작했다. 그 당시에 일상품, 만화, 광고 등의 소재를 사용한 것이 반예술 계열로 보이게 했으나 사실은 정보사회의 아이콘을 작품에 표현한 것이었다. 그는 현대 미국 미술의 대표적 작가로 이미 미술대사전 인명편에도 등재돼 있다. 그는 뉴욕 아트 스튜던츠 리그와 콜럼부스의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수학했다.
처음에 추상 표현주의풍의 작품을 그렸으나 1961경부터는 만화로 관심을 돌려 독자적 스타일의 작품을 제작하였다고 저자 재니스 헨드릭슨도 이 책에 쓰고 있다. 일상품과 만화, 광고 등 기성 이미지를 제재로 하는 점에서 반예술 계열에 속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들 정보사회의 아이콘을 명철하고 견고한 조형력에 의하여 회화형식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오브제를 채용하는 입장과는 다르다고 한다. 1964년 이후 풍경, 추상표현주의에서 아르데코의 의장 등으로 주제를 넓혀 자신의 스타일 가능성을 추구하였으며, 1970~1972년에는 자신의 조형언어만으로 성립된 추상적 『거울』 연작을 제작했다. 그 후에는 미래파, 표현주의 등 20세기의 아방 가르드(전위미술)의 작품을 주제로 들 수 있다. 그외에 판화 입체도 제작했다. 만화를 제재로 한 작품에는, 『물에 빠진소녀』 (1963 뉴욕 현대미술관), 『Whaam!』(1963, 런던 테이트 갤러리) 등이 있다.
저자 재니스 헨드릭슨은 '베이식 아트 시리즈'의 하나로서 이 책의 집필을 맡았다. 헨드릭슨은 스미스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했고, 함부르크에서 마틴 원케 밑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그녀는 작가이자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1985년 피카소 작품집을 시작으로 베스트셀러 아트북 컬렉션으로 거듭났다. 그 이후 간결하고 얇은 작가별 도서는 200여 종이 넘게 제작되었고, 20여 개 국어로 출간되었다. '베이식 아트 시리즈'는 뛰어난 제작 가치를 지님과 동시에 훌륭한 삽화와 지적인 내용을 담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출판사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다. 각각의 책이 지닌 주제 의식은 활력이 넘치면서도 어렵지 않아 가까이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독자들의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책은 2005년 첫 한국어판을 출간한 이후 15년 만에 새롭게 재출간됐다. 이번 〈베이식 아트 2.0〉 시리즈는 전보다 더 커진 판형과 도판으로 독자들에게 보다 생생한 작품 이미지를 전달하도록 양장본으로 펴냈다.
책에 따르면 미국 화가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은 1950년대 후반 뉴욕에서 추상표현주의가 지배하는 시장에 뛰어들며 미국 미술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했고 새로운 예술 용어를 정의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산업 생산 기법과 만화, 연재만화, 광고와 같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사용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앤디 워홀, 제임스 로젠퀴스트와 같은 동시대 인물들과 미국 대중매체와 소비문화를 반영하고 풍자했다. 특히 벤데이 점 인쇄와 같은 대량 생산 기술로 제작한 〈이것 좀 봐 미키〉, 〈물에 빠진 소녀〉, 〈와아앙〉은 픽셀화된 ‘점’ 스타일을 만들었고, 이는 리히텐슈타인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이 책은 추상표현주의와 팝 아트 초기작부터 후기 ‘붓자국’과 현대 걸작의 재해석에 이르기까지 리히텐슈타인에 대한 필수적인 내용을 제공한다. 20세기 중반 모더니즘에서 그의 주도적인 위치와 작품들이 20세기 미국을 어떻게 비판하고 연대하는지 살펴본다.
독자는 미술을 특별히 공부하지도 않았고, 그림에 대해 많은 관심을 쏟지 못해 화가 중 현대 화가, 그 중에서도 미국의 현대화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을 정도로 문외한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책을 많이 읽다보니 '힐링 도서'의 일환으로 미술, 미술사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이전의 미술이나 화가에 대한 지식이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미술 수업이 전부였다. 그때 미술 교과서에 서양의 수많은 화가들이 등장하지만 현대 화가들은 별도 장(章)을 마련하거나 설명하지 않았다. 구색 맞추기인지 피카소는 워낙 유명한 화가고 미국에서 활동하지 않아 서양 화가의 (章)에 몬드리안, 간딘스키와 함께 실렸지만 그 외의 화가들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리히텐슈타인은 미국의 만화를 통해 몇 번 접한 기억이 있어 이 책과는 첫 인연인데도 낯설지는 않았다. 물론 책 안으로 들어가면 '멋지다'는 탄성(개인 입장에서)이 나올 정도의 그림도 여러 점 발견하고 눈을 크게 뜨게 했다.
책에 따르면 리히텐슈타인은 마흔에 가까워질 때까지 그의 화풍과 작품에 대해 사회적으로도, 미술계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1962년 리히텐슈타인은 미국 미술계의 리더가 되었다. 한 해 전 그는 가끔 보여주던 불손한 유머 감각에 어울리는 회화 양식을 발견했으며, 뉴욕의 유명한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의 후원을 받게 됐다. 그리고 곧 작품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 강사직을 그만두었다. 그가 연필로 슨케지하고 유화로 완성한 초상화 〈조지 워싱톤〉을 그렸는데 이 초상화가 한때 미국 1달러 지폐에 담겼다고 한다. 저자는 이 초상화가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세계를 탐색하는 동안 만나게 될 많은 생각을 담고 있어, 그의 전형적인 작품으로 꼽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우선 작품의 주제가 유명하고 영웅적이면서도 평범하고 심지어 촌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또 18세기 미국 회화의 싸구려 복제화에서 이미지를 차용한 점도 특징이라고 밝힌다. 〈조지 워싱톤〉은 길버트 스튜어트가 이미 100점 이상의 워싱턴 초상화 복제화를 그린 이후 이를 보고 그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리히텐슈타인의 워싱턴 초상화는 원작의 복제의 복제의 복제쯤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유머뿐 아니라 이 작품의 모순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 그림의 특징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리히텐슈타인의 회화 기법은 대량 생산되어 신문에 인쇄된 원본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성공은 오랜 기다림 끝에 이룬 것이다.
1923년 뉴욕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정상적이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차고 및 주차장 전문 부동산 중개인이었다. 리히텐슈타인은 그의 가정에 예술적인 경향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리히텐슈타인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굳이 그런 사실까지 언급하려 하지 않았다고 저자는 이 책에 적고 있다. 미술 과목이 없는 일반 공립학교를 다니며 드로잉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취미로 집에서 유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무렵 재즈에 빠졌다. 그는 할렘의 아폴로 극장과 52번가의 재즈 클럽에서 열리는 콘서트를 보러 다녔다. 그는 벤 샨 같은 미국 화가들처럼 음악가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종종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청년 리히텐슈타인은 가장 흥미진진한 문화적 영감을 찾아 뉴욕을 배회했다. 재즈에 매혹된 일은 그가 시각예술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입체주의 화가들이 흑인 문화를 애호한 것에 공감했고, 아프리카 미술뿐 아니라 미국 재즈를 좋아했다고 알려졌다.
레지널드 마시가 그의 첫 스승이고 리히텐슈타인은 피카소를 존경했다. 마시는 마치 풍자화처럼 알아보기 쉽게 일상의 주제를 그리는 데 중점을 두는 세계를 다루었으며, 입체주의나 미래주의 같은 전위적인 유럽 추상미술은 거부했다. 이 사조들은 1913년 뉴욕, 시카고, 보스톤에서 열린 아모리 쇼을 통해 미국에 소개된 이후 더 유명해졌다. 그러나 마시의 관점에서는 유명해지기보다 '악명 높아진 것'이었다. 이런 전위미술은 마시에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는 추상을 거부하고 오히려 회화성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시는 대중에게 매력을 느껴 사람들의 얼굴을 빠른 붓놀림으로 묘사했으며, 놀이공원과 해변, 코니아일랜드, 지하철 등 색과 움직임으로 가득 찬 도시풍경을 주제로 삼았다. 이런 마시 스승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리히텐슈타인은 마음속의 느낌이나 현실세계를 기록하는 것보다는 미술과 미술작품 제작과정을 면밀히 검토하는 일에 더 흥미를 느꼈다. 1950년까지 리히텐슈타인은 말년의 피카소, 브라크, 클레의 영향을 받은 반추상화를 그렸다. 1951년 그는 강사로 채용되지 못하고 아내의 직장이 있는 클리블랜드로 이사해 6년간 살면서 토목 설계사, 창문 장식사, 금속판 디자이너 같은 직업을 전전했다.
그는 그림을 일을 하고나서 그렸다. 그는 실제 풍경, 모델, 순수 추상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뉴욕에서 전시를 했지만 가족을 부양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추상표현주의에 눈을 돌렸다. 추상표현주의에는 외향적 형식과 내향적 형식이 있다. 외향적 형식인 액션 페인팅은 미술가의 에너지와 즉흥적 기법에 의지하는 것으로 물감에 담배 꽁초나 유리를 섞어 커다란 캔버스에 뿌리기도 하고 방울방울 떨어뜨리거나 바르는 것이다. 잭슨 폴록과 윌렘 드 쿠닝이 이런 직접적인 표현방법을 강조했다. 앤디 워홀은 추상표현주의의 세계는 상당히 마초적이라고 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상업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소리와 촉감 같은 감각, 혹은 중요성이나 흥분 같은 추상적인 성질을 기호로 표현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꼈다. 대중적인 팝 아트의 전형이었던 리히텐슈타인의 미술은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그는 대중적 친밀함을 보여주기 위해 실제로 추하고 저급한 것들을 유별난 방식으로 작품에 표현했다.
자신의 세계를 표현해 가던 리히텐슈타인에게 관심을 표한 사람은 또 다른 팝 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이었다고 한다. 워홀이 리히텐슈타인의 만화 그림을 부러워한 것은 벤데이 점 때문이었다. 벤데이 점은 검은 윤곽선이나 제한적으로 선택한 몇 개의 산업적 색보다 그림에서 돋보였다. 만화에서 특정 장면만 따로 떼어 낸 이미지는 오랫동안 순수미술과 결합되어 왔지만 아무도 콜라주나 회화적 모티프 이상의 표현으로 확장할 방법을 몰랐다. 그런데 리히텐슈타인은 벤데이 점 같은 인쇄기술을 참고해, 인쇄된 출처에 적용된 구상을 그대로 살렸다. 자신이 원용한 출처에서 거리를 두지 않았다고 리히텐슈타인을 비난한 비평가와 상업미술가들은 확실히 그림의 내용뿐 아니라 양식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리히텐슈타인이 모든 초기작에서 벤데이 점을 쓴 것은 아니지만 벤데이 점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62년 리히텐슈타인은 피카소의 입체주의 회화 〈모자 쓴 여인〉을 개작했다. 그는 배경은 벤데이 점으로, 가슴은 10대 만화 속 소녀들의 두근거리는 가슴처럼 부풀어 오르게 그렸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은 처음에는 피카소의 그림을 캐리커처처럼 변형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기 쉽다. 실제로 몇몇 비평가들은 그렇게 해석했다고 한다. 그러나 리히텐슈타인이 가한 변화를 눈여겨보면 이런 해석은 타당성이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색은 맑아졌고 중심색인 노랑과 파랑만 쓰였으며, 형태들도 단순해지고 모든 형태에 똑같은 구성적 무게가 실렸다. 리히텐슈타인은 자신의 의도에 맞게 원작의 구성을 변형해 자기의 양식을 피카소의 형태와 결합했다고 저자는 해석하고 있다. 저자는 리히텐슈타인은 예술의 불멸성에 대해 회의적임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파란 붓자국이 있는 벽화〉의 흘러내리는 파란 폭포는 리히텐슈타인의 붓자국 모양을 가장하고 있지만 붓자국의 질감을 띠지 않으며, 마치 청소를 도우려는 듯 한쪽 구석에서 아래로 쏟아져 내린다."(p.90)
리히텐슈타인은 여러 가지 탐험을 했지만 모더니티의 미로에서 빠져나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여행 중에 많은 영역을 발견하고 또 재발견했다. 아마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경 거슬리는 모순과 숨겨진 유머일 것이다. 그는 우리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변형함으로써, 과연 21세기에 미술이란 또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의 여지를 남겨놓았다.(p.91) - 「편집, 생략, 뒤섞기」 중에서
저자 : 재니스 헨드릭슨
스미스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했고, 함부르크에서 마틴 원케 밑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그녀는 작가이자 큐레이터이다.
역자 : 권근영
수원에서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이동도서관이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서울로 전학 후 중학교 2학년 때,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3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살고 싶다”고 답했다. 서울대학교에서 국문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같은 대학 미술대학원에서 석사학위(MFA 첨자 처리)를 받은 뒤 기자가 됐다. 이후 10년 넘게 미술·문화에 대한 글을 쓰며 밥벌이를 하고 있다. 『중앙일보』에 칼럼 「그림 속 얼굴」 「권근영의 숨은그림찾기」를 연재했고, 지은 책으로 『나는 예술가다―한국 대표 예술가 10인 창작과 삶을 말하다』가 있다. 광주비엔날레 연구로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JTBC 스포츠문화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기자를 하며 만난 미술가들, 대학과 미술관 강의 때 만난 미술에 대한 열정 가득한 사람들, 또 세계 곳곳으로 취재를 다니며 접한 명작들은 삶의 어두운 순간을 ‘반짝’ 밝혀주는 빛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 책은 바로 그 순간의 나눔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