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 하우스 - 있지만 없었던 오래된 동영상
김경래 지음 / 농담과진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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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삼성동 하우스』는 소설 작품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 그룹인 삼성그룹의 회장의 성매매 동영상 파문(?)을 다뤘다. 독자도 이 내용을 루머를 통해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언론에 잠깐 나왔던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잘 모른다. 흔히 말하는 재벌 그룹 총수의 개인적 일탈이라서 끝까지 파헤친 언론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파헤치다 거대 권력에 발목이 잡힌 건지는 지금도 모르고 있다. 강제 성매매도 아니라면 큰 이슈가 될 만한 내용이 아니어서인지 모르지만 추적 취재해 보도한 것은 보질 못했다. 아니 설령 보도했다 해도 큰 사회적 파장 없이 지나갔는지는 독자로서는 모르겠다. 처음 소문이 돌 때는 사회적 파장이 클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탐사를 중단했는지, 여론의 관심을 끌 만한 비리나 부정이 아니어서 그만 뒀는지 모른 채 지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보수 정권 아래서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는지의 여부도 독자로선 모른다.

이 사건 관련해선 독자로서도 돈으로 여자를 끌어들여 성매매를 했다는 것 이상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게 넘어갈 일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연루 혐의로 대통령직으로부터 파면된 헌정 초유의 사건이 일어나며 정권이 교체되었다. 이번엔 그의 아들 이재용 부회장이 뇌물 공여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다. 그리고 병원에서 누워 있는 삼성 그룹 총수의 근황이 사진에 잡히면서 다시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워낙 큰 사건 속에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는 그룹 총수에 대해 더 이상의 비난을 쏟을 수 없었던지 성매매 동영상 사건은 완전히 잊혔다. 그 동영상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가 공식 언론이 아닌 소설로 그 내막을 파헤친 책이 출간된 것이다. 독자로선 내용의 진위 여부와 어떤 내용의 동영상(결국은 어떤 성매매인지)인지 궁금했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독자가 궁금한 내용의 팩트를 기반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된 소설 형식이라 조심스럽게 읽었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 김경래가 당시의 동영상 사건을 취재한 내용과 퇴직 후 소설로 쓰게 된 이유까지 진실과 상상의 구별을 넘나들면서 전개된다. 저자는 취재 시작이 그렇게 비범하지도 않은, 그렇게 타락하지도 않은 기자에게 아주 특별한 제보가 옴으로써 비롯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제보는 기자들에게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것이었다고도 한다. 특히 이런 굵직하고 사회적 파장이 클 여지가 있는 제보에 대해서는 취재할지 말지부터 고민되는 일이었다고 한다. 소설의 전개 내용이지만 실제 유력 언론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거 취재할 수 있겠어?” 그리고 소설은 두 축으로 흘러간다. 대기업 회장님의 비밀 동영상을 찍으려는 일당과 그 동영상이 유통되면서 벌어지는 은밀한 거래들. 이 사건을 보도하려는 언론과 그것을 막으려는 시도들. 3년 동안 떠돌았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소설은 한국 사회에 실재하는 거대한 우상과 그 주변에 만연한 공포를 극복하는 이야기다. 독자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지만 2016년 뉴스타파가 보도했던 유튜브 조회수 1,500만의 특종을 바탕으로 하는 블랙 코믹 스릴러로서 집필했다는 저자의 전언이다. 당시 이 사건을 직접 취재한 김경래 기자가 소설로 탄생시킨 현실보다 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상상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 무엇보다 놀랍도록 재미있는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우상이자 공포인 〈삼성〉의 실체를 드러낸 사건, 이른바 ‘이건희 회장 동영상’을 다룬 소설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동영상은 2013년 서울 논현동 안가와 삼성동 자택에서 성매매 여성이 촬영한 것이다. 이 영상을 빌미로 여러 범죄자들이 수십억의 돈을 반복적으로 갈취했지만 삼성은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

 


 

실제 사건이 소설로 재구성될 때는 사실과 상상이 독자로서는 구별하기 힘들다. 소설은 알지만 언론에 대해 무지한 탓이다. 언론에 대해 무지하다는 말은 언론의 역할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 아니라 현직 언론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 많아서 독자 입장에서 '무지'란 표현을 썼다. 그러나 독자로서 읽을 때 이 소설로서의 재미는 확실하다. 이 책의 저자 김경래는 2001년 KBS에서 기자일을 시작한 나름대로 참된 언론인을 꿈꾸었다. 사회부, 경제부 등을 거쳤고 〈미디어 포커스〉 등을 제작했다. 2010년 KBS에 새노조(언론노조KBS본부)를 만들었고 편집국장으로 노보를 제작했다. 2013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로 옮겼다고 한다. 이때 이직의 이유는 정확히 독자는 모르겠다. 노조 일로 퇴직을 강요받았는지, 아니면 취재한 내용의 방송을 두고 책임자들과의 의견 차이 때문이었는지, 또다른 이유가 있는지 무지한 독자가 알 리 없다.

당시 저자는 대기업의 치부부터 검찰의 수상한 뒷거래까지 가리지 않고 취재했다. 논픽션 『죄수와 검사』를 심인보 기자와 함께 썼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KBS 1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에 전 직장에서 시사 프로그램 하나를 맡았는지 모르겠다. 이후 2022년 기자 생활을 접었다. 기자도 이야기를 쓰는 직업이지만 이야기를 창조하고 싶은 욕구가 점점 커졌기 때문이라고 「작가의 말」에서 밝힌다. 어린 시절 읽고 또 읽었던 전래동화와 같이 매혹적인 이야기를 쓰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여전히 저자는 몇 년 동안 언론계에 유령처럼 떠돌았던 동영상을 아무도 보도하지 않았던 기이한 상황을 〈삼성〉이라는 이름을 빼고 설명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한 논픽션 『죄수와 검사』는 심인보 기자와 함께 썼다. 『죄수와 검사』는 두 저자가 2년여 동안 검사들과 벌인 전쟁을 기록한 일종의 전기(戰記)다. 〈죄수와 검사〉 보도는 수십 년 이상 굳건히 다져진 검찰 기득권의 철옹성을 조금씩 무너뜨렸다. 전쟁에서 저자들이 사용한 무기는 죄수들의 말이었다. 검찰의 수사 과정과 치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죄수들의 말, 그러나 과거에는 죄수라는 이유로 신뢰받지 못했던 죄수들의 말을 ‘검증’이라는 숫돌로 벼려 무기삼은 것이다. 검증을 거친 죄수들의 말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검찰의 도덕성과 정당성에 치명상을 입혔다. 그 결과 죄수와 검사의 자리가 뒤바뀌게 되었다. 죄를 묻는 검사의 자리에 죄수가, 죄를 숨겨야 하는 죄수의 자리에 검사가 놓이게 된 것이 내용이라고 한다. 사실 이 논픽션 책도 읽지 못해 독자로서는 책 소개란을 토대로 이 책의 성격을 파악했다.

이 책에 일관되게 나오는 주제는 검찰의 꽃이라고 불리는 특수부 검사들이 죄수를 수사에 활용하는 불법 수사 관행이다. 취재를 통해 밝혀진 바, 특수부 검사들은 죄수에게 특혜를 베풀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죄수를 수사에 활용한다. 노동력을 착취하기도 하고 죄수의 전문성을 이용해 정보를 빼낸다. 죄수가 가진 돈을 활용해 다른 죄수들의 정보를 사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거짓 증언을 시키기도 한다. 이 책에는 특수부 검사들이 죄수를 활용해 벌인 다양한 불법 사례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불법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죄수와 검사〉 연속 보도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되었던 것은 단연 한명숙 사건을 재조명한 부분이다. 검찰 조사에서는 뇌물을 줬다고 진술했다가 법정에서 돌연 뇌물을 준 적이 없다고 번복했던 핵심 증인 한만호, 저자들은 한만호의 행적을 추적하던 과정에 한만호의 비망록을 발굴했다. 저자들이 발굴한 한만호의 비망록은 뉴스타파가 보도하면서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죄수와 검사』는 최근 모 방송국의 드라마 〈법전〉의 내용과도 많은 부분이 결을 같이한다.

 


 

언론학자 강준만은 〈삼성은 대한민국의 거울〉이라는 글에서 “한국인들의 마음속에서 이미 포지셔닝을 마친 삼성의 위상, 그게 더 무서운 권력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기자가 이 사건을 보도한 이유도, 저자가 이 소설을 쓴 이유도 이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말한다. ‘두당 5백만 원’을 주고 성매매를 했다는 건 ‘미담’이 아니냐고. 꼭 보도해야 했냐고. 보통 ‘농담’이라는 단서를 달지만 ‘백 퍼센트 농담’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쉽게 얘기해보자. 성매매 동영상이 존재하고 팩트가 확인됐다.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이 관여했다. 만약 이 사건의 주인공이 정치인이거나 연예인이었다면, 혹은 다른 그룹의 회장이었다면 어땠을 것인가. 그렇기에 이 소설은 특정 기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상’을 극복하는 이야기다. ‘상징’을 해체하는 이야기다. 우리 사회에 실재하는 어떤 ‘공포’에 맞서는 이야기다.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과 용기, 무엇보다 놀랄 정도로 재미있다” 수많은 추천인들이 이 소설을 ‘블랙 코믹 스릴러’라고 규정했다. “기자가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망조다. 그래서 기자를 그만뒀다. 그리고 이야기를 썼다. 이 소설은 당연히 소설이다. 20년 넘게 기사를 썼지만, 이야기와 상상의 힘을 나는 믿는다”는 저자의 말처럼 소설은 기사로는 불가능했던 혹은 부족했던 답변이다. 무엇보다 원래 ‘이야기’가 가진 힘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다. 수많은 사연과 맥락, 손에 잡힐 듯 묘사된 인물들의 생생함이 촘촘한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권력에 맞서 저널리스트로 활약할 때도 보여주었던 경쾌하고 자유로운 저자의 유머러스함이 이야기를 만나 더 빛을 발한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힘을 빌려서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 끈질김과 용기에 박수와 감탄을 보낸다.

 


 

카메라가 드디어 집으로 보이는 공간으로 진입했다. 사치스러운 가구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큰 그림, 영화관처럼 거대한 텔레비전, 사람보다 큰 스피커. 거인이 사는 집인가. 뜬금없이 트로트 노래가 흘렀다. 산뜻하게 꾸민 젊은 여자들. 나이트가운 같은 걸 입은 나이 든 여자. 양복을 입고 귀에 뭔가를 꽂은 젊은 남자. 그리고 다시 블랙. 물이 흐르는 소리, 여자들의 소곤거림······.(p.43)

 

좋은 기자, 훌륭한 기자, 소신 있는 기자, 정의로운 기자인 척하면서 실제로는 기자로서의 상품 가치를 높이고 커리어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취재원을 이용한 건 아닌가. 제품 홍보 기사나 팔아먹고 접대 골프나 치러 다닌다고 비난하던 기레기보다 내가 나은 게 도대체 무엇인가. 그들은 적어도 제보자를 위험에 처하게 하진 않았다. 그래서.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제보자를 팔아먹은 건가. 동해는 이달의 기자상 상패를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p.70)

 

"우리 사회에서 권력을 비판하는 건 이미 하나의 비즈니스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비즈니스가 됐다면 그 비즈니스를 잘해야죠. 멋지게. 프로페셔널하게. 우리 언론은 지금 경제 권력의 동등한 비즈니스 파트너가 아니라, 경제 권력의 하청업체에 불과합니다. 비즈니스가 아니라 서비스를 하는 거죠. 그게 쪽팔립니다. 이 보도가 나가지 못하면 더 쪽팔리겠죠."(p.241)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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