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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존재 자체로 낙인이었어
오현세 지음 / 달콤한책 / 2022년 12월
평점 :
중국과 그 주변의 나라들을 보통 문화적 표현으로 '한자문화권'이라고 한다. 문자는 역사시대를 가름하는 분기점으로 흔히 사용된다. 유사 이전과 유사 이후를 따질 때도 문자로 당시의 삶의 모습이 담겨 있을 때를 사실상 역사적으로 가장 확실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 특히 동북아와 동남아에서는 중국이 가장 먼저 문자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한자문화권으로 통용되는 것이다. 우리도, 일본도, 베트남도 한자문화권으로 함께 묶이는 이유다. 사실 중국의 오늘날의 한자는 최초의 그림문자로부터 오늘날의 간자체까지 발전을 거듭해 왔다. 중국에서 사용된 최초의 문자는 5,000여년 전 상나라 때 사용된 갑골문자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갑골문을 만든 사람들은 남자들이었고, 그 남자들은 여(女) 자를 모든 부정적인 개념을 표현하는 데 사용했다고 이 책 『여자는 존재 자체로 낙인이었어』는 전한다. 왜 그랬을까?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 저자 오현세의 집념으로 마침내 고대사회에서 여자는 존재 자체가 낙인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시대정신을 담은 글자, 그 속에서 울고 있는 여자들. 수천 년을 이어온 여자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과 여자의 위상은 현대에 들어서며 획기적으로 달라졌지만 여자를 낙인으로 취급했던 고대사회의 시각이 과연 현대인의 의식에서 완전히 지워졌을까? 저자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친근한 말투와 흥미로운 예화들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되짚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상호보완적인 존재임을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현대는 여성들의 위치가 제자리를 잡은 듯 보이지만 실상 사회에서는 공공연한 오랜 차별의 관습을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양에서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이처럼 여성의 종속성을 그대로 이어왔다. 남자들은 여자를 어떤 존재로 보고 있을까? 민주주의 발상지 서양에서도 여성이 참정권을 얻게 된 것은 불과 100여 년 전 일이고, 그 이전에는 시민 취급도 받지 못했다.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이후로도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존재라고 인식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지금 상황도 이런데 100여 년 전의 세상, 그리고 훨씬 더 오래전의 세상에서 여자들의 위상은 말할 것도 없다. 역사상 남자는 늘 여자보다 우월한 존재로 군림했기에,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를 지배하거나 아껴주거나 이용만 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갑골문이다.
우리나라 자랑스러운 한국어에도 한자어의 비율이 50~70퍼센트에 이른다. 한글로 씌어지는 상당수의 말과 문자가 한자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우리가 쓰는 언어에 한자의 영향이 크다는 얘기다. 저자는 그 많은 한자어들 속에서 ‘여(女)’ 자에 주목했다. 10년 전 ‘독 독(毒)’ 자를 보다가 이 글자에 ‘어미 모(母)’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었고, 그 이후 ‘여(女)’ 자가 들어간 한자에 좋은 의미가 하나도 없음을 깨닫고는 수많은 자료와 책들과 인터넷을 뒤지며 연구를 계속한 끝에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언어는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그리고 지구상 거의 대부분의 언어처럼 한자를 만든 사람들도 남자다. 한자의 기원이 되는 갑골문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그림문자였던 갑골문이 그 글자를 만든 남자들의 생각을 표출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타(妥)’라는 한자의 뜻은 ‘온당하다’라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이 글자를 만든 연유를 알면 ‘온당하다’는 의미에 담긴 남자의 시각을 꿰뚫어볼 수 있다. ‘妥’의 갑골문과 금문, 초계간백에는 여자(女) 위의 ‘손톱 조(爪)’가 여자의 머리채를 끌고 가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전쟁터에서 포로로 잡혀가는 여자, 노예 삼을 여자를 포로로 잡아가는 일이 온당하다고 말하는 글자인 것이다.
저자가 밝힌 것처럼 갑골문에서 사용된 여(女)라는 글자들은 여자의 존재 자체를 낙인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 시절 여자에 대한 남자의 인식은 그렇게 머물러 있었고, 언어는 면면히 이어지며 갑골문 이후 5,0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우리의 무의식에 알게 모르게 쌓여 있는지도 모른다.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남녀 갈등이 화두로 떠올랐다. 일부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심지어 혐오감을 드러내기까지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남자들은 자신을 역차별의 희생양이라 하고, 여자들은 여성 차별이 여전한 현실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보편적인 명제와 함께 전통적인 성 역할이 사라지는 지금, 우리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무장해야 할 역사의 기로에 서 있다.
저자는 책의 「머리말」을 통해 여(女)라는 한자가 주로 좋지 못한 뜻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기록을 찾았다. 이에 대한 전설을 『회남자(淮南子)』에서 찾았다.
"어느 날 한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인물 창힐에게 여자 귀신들이 몰려와 항의를 했다. 왜 나쁜 뜻의 글자에 여자를 사용한 것이 그리 많느냐고. 그러면서 예를 들었다. 奸(간음할 간), 嫉(시기할 질), 妖(요망할 요), 妄(망령 망), 娼(창녀 창), 媚(아첨할 미), 姦(간사할 간), 奴(종 노) 등등. 말문이 막힌 창힐은 사과를 하고 여자를 이용한 좋은 글자를 만들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렇게 만든 글자들이 妥(편안할 타), 妙(묘할 묘), 嬌(아리따울 교), 姝(예쁠 주) 등이다.(p.18)
이 전설의 맞는지 여부에 대해 저자는 의문을 품었다. 과연 여자라는 글자가 좋은 뜻으로 쓰였을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남자들의 머릿속에서 자신과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여자가 있어본 적이 없다. 여자는 누구랄 것도 없이 남자의 삶을 위한 노예이자 도구이며 남자를 유혹해 파탄으로 이끄는 존재일 뿐이라고 남자들이 믿었음을, 남자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나쁜 개념에 여(女)자를 낙인으로 사용했음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인식은 한자권 남자들만의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세상의 많은 남자들이 여전히 그런 인식으로 품고 있다. 허구라는 것이다. 이 인식의 허구를 확인한 것이 이 책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여(女)가 들어간 1,000여 개의 한자 중에서 창힐이 만들었다는 나쁜 글자, 좋은 글자는 물론 수천 년간 남녀를 세뇌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100여 개를 추렸다. 상용 여부는 염두에 두지 않고 오히려 사라진 글자, 벽자(僻字)들을 많이 다뤘다고 밝힌다.
저자는 동파문(東巴文)도 연구해 한자에서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여(女)자에 대한 쓰임새를 밝힌다. 이에 따르면 동파문은 중국 북부의 소수민족인 나시족이 7세기 무렵부터 사용해오고 있는 문자로 표의(表意)와 표음(表音) 성분을 겸비한 상형문자이다. 동파문은 2,223개의 글자가 있으나 일상에서는 1,300자 내외가 사용되고 있다. 세밀한 정감의 표현이 가능하고 복잡한 사건을 기록하고 시와 작문을 쓸 수 있으며 경전 등의 완전한 기록이 가능하다. 상당히 추상화된 한자에 비해 형태가 원시적이지만 사물의 본모습을 매우 흡사하게 담고 있다. 그림문자의 특징이 명확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문자로 그림문자의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할 수 있다.
동파문은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순수 그림문자로 현대의 이모티콘과 놀랄 만치 흡사하다. 이 책(p.19~20)에 몇 가지 개념을 동파문과 현대의 이모티콘을 비교해 실었다. 〈플래티콘〉 사이트에서 가져온 이모티콘과 동파문을 함께 놓고 비교해본다. 선을 디지털 작업으로 처리한 것과 손으로 그렸다는 차이를 제외하면 똑같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독자가 보기에도 어떤 것을 동파문이 훨씬 더 실감이 난다. 동파문의 '보다'에는 '시선'이, '노래하는'에는 '소리'가, '사랑하다'에는 '꽃'이 그려져 있다. 현대의 이모티콘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그만큼 더 설득력이 있다. 이러한 동파문이 널리 사용되지 못한 이유는 그림만으로 개념을 나타내는 데서 발생하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극복한 것이 한자이다.
이 책은 모두 6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여자」, 2장 「여자의 위상」, 3장 「여자의 성정」, 4장 「여자의 조건」, 5장 「여자는 아름답다」, 6장 「여자는 추하다」 등이다. 여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글자를 만든 남자들이 여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표현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왜 여자를 분류하느냐에 해당되는 구분은 아님을 미리 밝힌다. 한자는 그림문자가 아니라 회의문자이다. 시작은 그림이었지만 수만 자의 한자 중 사물의 모습을 본뜬 순수 그림문자는 불과 364개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모두 변형된 그림과 부호, 기호, 비슷한 발음을 가진 글자들을 조합해 만들었다. 이 때문에 그림문자가 아니라 뜻글자, 즉 회의문자라고 불린다.(p.20)
책은 남녀의 구분을 한 그림과 글자 또는 표시, 부호 등을 견주어 가며 이 책의 취지인 글자가 여자를 열등하고 남자의 종속물로 인식하고 만들어져 왔음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사람들의 의사 소통의 수단으로 남자와 여자를 그린다면 어떤 모습일까?란 의문으로부터 답을 구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동파문부터 살펴본다. 이 책 21~22페이지에 설명돼 있다. 이에 따르면 동파문에서 남녀를 생식기 모양으로 구별했고 옆에 발음을 나타내는 그림을 덧붙였다. 남녀를 구별함에 있어 오직 외형적인 차이만 고려했다. 오늘날 구분해 그리는 그림은 외형상 구분과 무형적 개념을 포함하는 것들 등 다양하다. 머리 모양과 옷차림, 신체적 특성과 점성술에서 유래한 부호로 표시한 것들이 모두 사용되고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남녀 차별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양상을 역사적 제자(製字) 배경, 문자의 역사, 변천과정, 당시의 시대상, 그림문자와 상형문자, 뜻글자로 진화하면서도 여자에 대한 속성과 인식을 그대로 유지된 채 흘러왔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모든 역사는 갈등과 투쟁, 양보와 포용을 통해 발전해나간다. 남자와 여자가 각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소리를 높이는 것도 앞으로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진통의 과정이다. 사람들의 인식이 흔들리고 변해가는 이 과도기를 슬기롭게 잘 통과하기만 한다면 남녀 모두 서로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바라는 평등 세상의 한 단면을 책을 통해 볼 수 있다.
남자가 여자에게 갖는 일차적인 인식은 종족 번식을 위해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여자는 성적 대상이 됩니다. 여기에서 유일하게 제외되는 존재가 바로 어머니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모든 여자는 어머니이거나 장차 누군가의 어머니가 될 존재지만 남자에게 어머니는 오로지 자신의 어머니만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남의 어머니는 어머니가 아닙니다. 여자일 뿐입니다. 남자는 인간을 남자와 여자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로 구분합니다. 이렇게 남자들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어머니는 어떤 존재일까요? 선악의 판단 대상이 아닙니다. 지고지순한 존재입니다. 신성불가침입니다.(p.25)
저자 : 오현세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근화제약, ㈜우성해운에서 근무했으며 벤처기업인 ㈜드림테크를 창업, 게임기 ‘죠이맥스’, 국내 최초 닌텐도 호환 게임팩 ‘장두진 바둑 쌀롱’, PC버전 ‘김인 바둑 쌀롱’, 국내 최초 컴퓨터 리모컨 ‘드림키’를 개발 출시했다. 그 후 영화사(주)CCC에서 스토리보드 아티스트, 프로덕션 디자이너로 일하다 광고회사 ㈜씨네텍을 설립, 700여 편의 CF 및 홍보 영상을 감독, 제작했다. 월간지 《좋은 생각》에서 객원기자로 일했고, 일간지 《시민일보》에 칼럼니스트로 글을 썼다. 대학교와 직장 생활 때는 그룹사운드 활동을 하며 리드 기타를 맡았다. 생활체육 탁구 1부 선수로 뛰면서 서대문구 생활체육 탁구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일찍이 대중 월간지 《부부》에 만화를 연재했고, 2008년 법무부 주최 법질서 공모전에서 만화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바둑 사이트인 〈사이버오로〉에 칼럼을 쓰며 2015년 바둑 문학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합창단 지휘자와 지역문화회관 기타 강사로 활동 중이다. 이 책은 뒤늦게 심취하여 10여 년간 자료를 모으고 연구한 갑골문의 첫 번째 결과로 그 내용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간하게 되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