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란 무엇인가 - 행운과 불운에 관한 오류와 진실
스티븐 D. 헤일스 지음, 이영아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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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란 무엇인가? 가끔 누구나 해보는 질문이다. 특히 중요한 시험이나 경기를 앞두고 '운이 따라주기를' 기대하는 심리가 누구에게나 있는 듯하다. 시험이나 경기는 사실 실력을 테스트하는 것이지 운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운도 있어야' 합격이나 승리를 따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듯하다. 사실 우리 삶을 운이 좌우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임할 때는 늘 운도 따라줄 것을 기대한다. 동양에서는 특히 사람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가진 운세가 있고, 또 살아가면서 태생적으로 가진 운에 의해 많이 좌우되기도 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과연 그러할까? 예전에는 운명이나 운세 등이 삶을 가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전쟁을 하러 가는 사람들도 운이 많이 승패를 좌우한다고 믿고 있는 사례가 많다. 집단으로 함께하는 경쟁에는 개인의 운세가 아닌, 천운(天運)이 뒤따라야 한다고 믿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근대 서양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운은 비과학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어 사실적으로 배제했다. 지금 우린 근대 과학이 밝힌 운의 허상을 반신반의하면서 살고 있는 셈이다.

이 책 『운이란 무엇인가』는 운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집필했다. 저자 스티븐 D. 헤일스는 별도의 머릿말 없이 바로 본론의 장(章)으로 들어간다. 1장 「라케시스의 제비뽑기와 운의 역사」에서 말 그대로 운의 역사를 파헤친다. 저자는 "운은 역사를 관통하여 사람들의 생각을 직조해온 황금의 실"이란 명제를 내세운다. 운이 신(神)과 도박꾼, 철학자와 신학자, 논리학자, 점성가, 황제, 과학자, 그리고 노예들을 하나로 이어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불운을 두려워하고 행운을 기대하면서 자신의 삶에 어떤 운명이 펼쳐질지 궁금해왔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장에서 저자는 우리의 운에 대한 생각을 거리낌없이 털어놓는다. "우리는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왔으며 지금까지 쭉 우리가 선택한 길만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어려운 시기를 겪을 때는 자신의 실수가 아닌 불운을 탓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어 "우리가 주변 세상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것조차 우리 자신의 기특한 노력이 아닌 그저 운이 좋아서인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주변 상황을 예측하고 통제하려 애쓰며,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내다보려 한다고 지적한다. 또 우리의 삶을 스스로 이해하고, 우연과 스스로의 성취를 구분하려 한다는 것. 이에 따라 인류는 새로운 신학, 철학 운동, 색다른 수학 분야 등을 통해 무자비한 운을 이해하고자 온갖 애를 썼지만, 큰 소득 없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나는 우리가 결코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워왔음을 입증하겠다고 못박는다. 즉 운은 우리 실체 없는 신화 속 존재라는 것을 강조한다. 히드라의 목을 자르면 새로운 목이 솟아나듯,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자마자 두 가지 문제가 다시 나타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밝힌다. 우리는 운을 정복할 수 없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운은 무찌르고 말고 할 것이 없다고 한다. 운이란 끈덕지고 골치 아픈 환상에 불과하다. 운 같은 건 없다. 이 사실을 인지하면, 그와 관련하여 '실재'하는 현상, 즉 기회나 인생의 부침에 우리의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리고 그에 더해 운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운이란 우리 자신의 행위이며,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한 우리 자신의 관점이다. 언젠가는 쓸모가 있으리라 기대하며 고집스럽게 끌어안고 있던 먼지 쌓인 묵은 개념을 머릿속에 씻어내버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해방이다. 운을 놓아버리면, 세상 속에서 주체적으로 행위하는 존재로서의 우리 위치를 회복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신화(고대 로마 신화)에서 로마인들은 우리네 인생에 자꾸 끼어드는 듯한 운을 일찌감치 감지하고 포르투나라는 여신으로 의인화했다. 포르투나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며 우리의 인생사를 가차 없이 주물렀고, 인간들은 그녀에게 굴복하거나 맞서 싸우거나 혹은 그녀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반면 근대 이후의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포르투나와의 악연을 끊기 위해 운이라는 미스터리한 개념을 설명하고 그 실체를 파악하게 도와줄 이론을 확립하려 했다고 저자는 책에서 밝히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운에 대해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가? 운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저자는 본다. 그러나 저자는 애초에 이 모두가 신화 속 괴물 같은 실체 없는 상대와의 전쟁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운이란 인지적 환상,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운을 설명하는 이론을 하나하나 파헤치고 반례를 통해 그 허점을 드러냄으로써 운이 실재하지 않는 허상이라고 주장한다.

신화에 이어 운에 관한 이론의 세 가지가 이 책에 등장한다. 확률 이론, 양상 이론, 통제 이론이다. 과연 이 이론들은 운의 실체를 드러내고, 우리가 이루어낸 성과에서 우리 자신의 실력과 운이 각각 얼마의 비율을 치지하는지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확률 이론에 따르면 발생 확률이 낮고 중요성을 띤 사건이 운과 관련되어 있다(즉 행운 혹은 불운이다). 복권 당첨은 발생 확률이 낮은 동시에 긍정적인 의미로 중요성을 띤 일이기에 행운이다. 반면 복권 낙첨은 발생 확률이 높으르로 운과 무관하다. 양상 이론은 양상적으로 취약한, 즉 아주 작은 변화로도 결과가 바뀔 수 있는 일이라면 운과 관련된 사건이 된다. 그러나 자연법칙처럼 양상적으로 견고한 사실은 운과 무관하다. 또 통제 이론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라면 모두 운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복권 당첨도 낙첨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므로 각각 행운과 불운이 된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이론을 2장, 「운과 실력」, 3장 「양상 이론과 통제 이론」, 4장 「도덕적 운」, 5장 「지식과 우연한 발견」, 6장 「운의 비합리적 편향」 등으로 나눠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르네상스 시대부터 수학자들은 확률 이론으로 운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연은 신의 변덕이 아니라 수학 법칙에 좌우되므로, 운 또한 예측 가능한 법칙과 같다는 걸 증명하려 한 것이다. 그것은 곧 우리의 성공이나 실패에 운과 실력이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지, 운과 실력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근세의 학자들은 수학이라는 살상 무기로 운을 정복하고 없애버리기 위해 확률 이론을 개발했지만 비선형적 상호작용으로 가득한 혼돈의 세계에서 궁극적 예측은 불가능했다. 누군가가 확률이 낮은 일에서 성공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실력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동전 던지기에서 앞면이나 뒷면이 연이어 나오는 경우처럼 무작위성이 드러나면 운과 실력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진다. 고득점 행진 기록을 세우고 있는 농구선수는 비범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아서 평소 이상의 성적을 올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 밖에도 확률 이론으로 운을 설명할 때 불거지는 문제로 준거 집합, 통계적 잡음, 규범적 요소 등이 있다.

가능성, 확률, 통계와 같은 것들은 기술적인 도구일 뿐 가치나 공적, 상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못한다. 운에 관한 또 하나의 설명 방식인 양상 이론에서는 유의미하고 양상적으로 취약한 사건이 운과 관련된 것으로 간주된다. 까딱하면 잘못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운이 좋은 것이다. 수월하게 잘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운이 나쁜 것이다. 의미 없거나 양상적으로 견고한 사건은 운과 무관하다. 현실 세계에서 작은 변화 하나만 일어났다면 그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관점이다. 칭기즈 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오고타이 칸이 죽지 않았다면 수부타이의 몽골 전사들이 유럽 대륙을 짓밟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오늘날과 같은 유럽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서양은 ‘순전히 운’으로 살아남은 것일까? 이것은 양상 이론은 가능 세계들 간의 거리를 본능적으로 측정하여 취약함과 견고함을 파악하는 방식에 의존한다. 하지만 이 이론은 세계 간의 거리를 결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없으며 행운의 필연적 진리 같은 사례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세 번째 접근법인 통제 이론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사건을 운으로 상정한다. 하지만 어떤 사건에 대한 통제력을 직관적으로 판단하기는 힘들다. 2012년 윔블던 대회에서 승산이 낮았던 루카스 로솔이 챔피언 라파엘 나달을 상대로 승리했다. 당시 로솔은 최고의 경기를 펼치기 위해 자신의 경기력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왜 그의 승리는 행운처럼 보일까? 이처럼 통제력의 실체는 모호하며 통제에 대한 우리의 직관은 신뢰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통시적 관점으로 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의 일부로서 행운(혹은 불운)이라 판단되는 사건도 공시적 관점에서 보면 시간을 초월해 다른 사건들과는 무관해지고, 따라서 운과 무관해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을 곧잘 겪는다. 선한 의지로 최선을 다해 도덕적 인생을 산다 해도 머피의 법칙 때문에 만사가 틀어진다. 어떤 행동의 옮고 그름을 따질 때는 그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요인을 근거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을 때, 도덕적 책임을 묻고 평가를 내리는 데 느닷없이 운이 끼어든다. 불운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식이다. 결국 또다시 운의 문제로 귀착되는 것이다.

윤리와 인식론의 많은 난제는 결과적 운과 태생적 운으로 설명된다. 우리 행동의 결과에 운이 끼어든다면, 우리는 그 결과에 대해 얼마나 칭찬받거나 비난받아야 할까? 우리 삶의 행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의 범위, 도덕적 특권의 개념 등이 행운과 불운이라는 기반 위에 세워져 있다. 도덕적 운의 심리적 원리를 설명해주는 방법으로 ‘사후 확신 편향’이 있으며, 사회적 운과 특권의 문제도 운 이론을 좀 더 넓게 확장시켜준다. 운은 지식 분야에서도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게티어 문제와 급진적 회의론 같은 결과적 운의 문제들, 그리고 오버턴 창문과 과학계의 우연한 발견과 관련된 상황적 운의 문제도 주목해서 읽어볼 만한 부분이다.

 


 

인류는 그동안 신학, 철학, 수학, 과학 등을 통해 운을 이해하고자 다채로운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여전히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흥미로운 여정이다. 플라톤 시대의 신화적 이야기부터 현대의 이론가까지 운의 역사를 일관하고, 운을 설명하고 그 역할을 밝히기 위한 이론과 논리를 다각도로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광범위한 영역에서 벌어지는 풍부한 사례를 통해 운이 정말로 실재하는지, 아니면 인지적 착각 또는 주관적 허상에 불과한지를 세세히 밝혀내고 있다.

이 책은 결론적으로 운은 인지적 착각이며, 우리의 운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확언한다. 플라톤이 이야기한 에르의 신화에서, 라케시스는 불운한 인생에 대한 책임은 그 삶을 선택한 자에게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에서 운이 얼마나 작용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며, 운은 객관적인 속성이 아니라 우리가 주변 상황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 즉 주관적인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일의 결과 평가나 불확실한 미래에 덧씌워진 운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을 말끔히 걷어내고 모든 일에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이 책의 역자 이영아도 책의 마지막 부분 「옮긴이의 말」에서 "운을 이토록 이론적으로 철저히 파헤친 책이 또 있었나 싶다"고 저자의 노력과 예리한 분석에 공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학, 물리학, 스포츠, 정치, 경제, 역사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사례가 우리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고 격찬을 아끼지 않는다. 옮긴이는 저자의 말을 인용해 "저자도 인정하듯, 운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논리적으로 이해하게 된 후에도 운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단번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여운을 남긴다. 다만 우리가 행운아인가 불운아인가를 결정짓는 것은 순전히 우리 자신의 관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저자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결국 우리가 ‘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행운이 함께하길 기도하고, 서로에게 행운을 빌어주며, 운이 좋아서 성공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 대부분은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안 되는 의례적인 말이다. ‘미신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하고 그냥 넘어가면 될 일이다. 운의 종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운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잘못된 낡은 패러다임의 흔적으로 인지해야 하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을 점액질형 인간이라고 부르거나(갈레노스의 4체액설), 모든 천체가 지구 둘레를 돈다고 주장하는(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것과 다를 바 없는 행위로 말이다. 이런 이론들은 무해한 유물이 되어 우리 문화에 잔존해 있지만, 세상의 진리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p.311)

 

저자 : 스티븐 D. 헤일스(Steven D. Hales)

미국 펜실베이니아 블룸스버그 대학교 철학과 교수. 브라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주로 형이상학과 인식론, 대중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토리노 대학교, 에든버러 대학교, 런던 대학교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블룸스버그 대학교의 최고 강의상을 수상했으며 북미 인?무기물?질소 난연제협회(Pinfa-NA)의 경영 컨설턴트로도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이것이 철학이다(This Is Philosophy)』, 『상대주의와 철학의 토대(Relativism and the Foundations of Philosophy)』, 『상대주의의 동반자(A Companion to Relativism)』, 『맥주와 철학(Beer & Philosophy)』 등이 있고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역자 : 이영아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사회교육원 전문 번역가 양성 과정을 이수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걸 온 더 트레인』, 『몹쓸 기억력』, 『스티븐 프라이의 그리스 신화』, 『쌤통의 심리학』, 『민주주의는 여성에게 실패했는가』, 『익명의 소녀』, 『라이프 프로젝트』, 『행복은 어떻게 설계되는가』, 『도둑맞은 인생』, 『마음의 문을 닫고 숨어버린 나에게』, 『쌤통의 심리학』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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