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이렇게 말했다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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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는 서점 서지학적 분류상 문학, 문학 분류상 소설이다. 56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긴 장편소설로서 최인의 작품이다. 그러나 소설의 내용이 소설이라기보다 오히려 명언집에 가깝다. 저자 최인은 이 소설 창작의 과정에 대해 서두에 밝힌다. "처음에 250장 분량의 중편으로 쓰여졌고, 이후 약간 손을 봐서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러나 2022년 4월 '꿈'을 꾸고 난 다음, 장편으로 확대 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2개월 만인 6월에 초고(2,000장)를 끝냈고, 그 후 4개월간 탈고를 거듭해서 완성시켰다. 이 작품은 철저히 악마화 된 인간과 대신해 죽은 신과, 천사를 타락시키는 악마를 서사시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꿈'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어느 맑고 화창한 봄날 오후였다. 나는 흰 벚꽃이 하늘을 뒤덮은 자전거 도로를 콧노래를 부르며 라이딩 중이었다. 자전거 도로 양쪽에서는 새들이 노래를 부르듯 아름답게 지저귀었다. 부드러운 봄바람이 빰을 스쳤고, 오색의 자전거 마스크 자락을 살랑살랑 날렸다. 도로 좌우에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울창했고, 벚꽃 향기는 콧속으로 싱그럽게 파고들었다. 그 어떤 것도 향기로운 공기와 상쾌한 기분과 행복한 마음을 깨뜨릴 것 같지 않았다.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에 취해 있는 순간, 오른쪽 숲속에서 커다란 사자가 양발을 벌리고 내 몸과 저전거를 동시에 덮쳤다." 저자가 꾼 꿈은 봄에 꾸었으니 '일장춘몽'(一場春夢)이고 사자가 나타났으니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에 빗대어 '사자몽'(獅子夢)이라고 해야 할까? 왜 꿈이 소설의 동기가 되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안은 채 꿈의 내용을 더 따라가본다.

 


 

"나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필사적으로 사자의 발톱을 피했고, 사자는 자신의 중량과 속도를 이기지 못한 채, 반대편으로 쪽 바위에 머리를 부딪치고 쓰러졌다. 그때 뒤따라오던 자전거가 사자의 몸을 깔아뭉개고 재빨리 도망쳤다. 나는 남자를 따라 도망치려다가 '죽어 가는 생명체를 내버려 두고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숨이 넘어가는 사자의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몇 분 후, 사자는 눈을 뜨고 슬그머니 일어섰다. 그리고는 머리에서 붉은 피를 뚝뚝 흘리며 말했다.

"인간의 선은 살리는 것이지만, 악마의 선은 죽이는 거라는 것을 알고 있소? 내가 말했다. "그대는 악마가 아니잖소? 사자가 재빨리 뿔이 달린 악마로 변신하며 말했다. "악마는 자신에게 선을 베푸는 자에게는 언제나 파멸을 베푸는 법이오." 내가 반문했다. "나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 사람이오." 악마로 변한 사자가 껄껄 웃었다. "악마의 인간에 대한 법칙은, 살리는 자는 죽이고, 죽일 자는 더욱 철저히 죽이는 것이외다." "그럼 내가 그대를 죽게 내버려 둬야 했단 말이오?"

"맞았소. 인간의 선행은 이제 인간에게도 쓸모없는 것이 되었소. 지금 당신이 할 유일한 선행은 그대로 내 밥이 되는 것이오."

악마는 이렇게 말하고 내 목에 크고 날카로운 이빨을 박았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뜨고 꿈에서 깨어났다.

 


 

이 작품은 신의 종말, 천사의 저주, 악마의 죽음, 인간의 타락, 짐승의 멸종을 진지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논하고, 노래하고, 추억한다. ‘악(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유에 깊이 매료된 저자가 철저히 악마화 된 인간, 인간을 대신해 죽은 신, 천사를 타락시키는 악마를 서사시적으로 묘사했다. 이 작품은 신의 종말, 천사의 저주, 악마의 죽음, 인간의 타락, 짐승의 멸종을 진지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논하고, 노래하고, 돌이켜 생각한다. 역설적이면서도 부조리한 회억은 과거를 되새기고, 반성하고,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저주와 조소와 비난의 읊조림이다. 이미 죽어서 궤란(潰爛)의 무덤 속에 자리 잡은 미래는 신조차도 살릴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그 되살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인간은 차라리 창조주를 어둠의 동공 속으로 던져 버린다.

그리하여 인간으로부터 버림 받은 신과 천사와 악마는 궤란의 무덤 속에서 스스로의 죽음을 재확인한다. 얼핏 들으면 단테의 신곡 같고, 읽다보면 철학서 같기도 한 이 소설은 저자 최인의 이력과 전작을 살펴보면 좀더 이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저자는 등단 전 인천지방경찰청에서 13년 근무했으며 파출소장과 형사반장을 역임했다. 범죄와 악에 대한 충분한 사유가 있었으리란 짐작이다. 또 전작 『도피와 회귀』(2021. 10, 글여울刊), 『돌고래의 신화』(2022. 4, 글여울刊)을 읽은 독자라면 저자의 문체와 소설 내용에 대해 쉽게 수긍하리란 독자의 생각이다.

 

 

저자 최인은 전작 『도피와 회귀』에서 이미 소설이라기보다 오히려 철학서나 종교서, 혹은 사회학 책으로 가깝게 보이는 작품을 썼다. 『도피와 회귀』의 줄거리는 '허구'이지만 사용되는 단어가 철학 등 학문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말들로 구성되어 있는 특색을 갖고 있다. 제목, 소제목 등도 대부분 학문적 용어들이다. 우선 제목에 있는 '도피'라는 단어 역시 사회적 사건일 때 뜻하는 '범인이 도피(도망) 중이다'는 예처럼 쓰이지 않고, 일상에서 권태로운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뜻의 현실 도피와 어우러지는 단어다. 또 회귀는 종교서적이나 철학서에서 많이 이용된다. 언어가 철학적 단어나 심리학적 단어로 완벽히 구별되어 사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뜻의 일상 용어가 소설에서 주로 사용되는 반면 학문적인 용어로 사용될 때는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의미의 용어를 쓴다. 각 단어의 뉘앙스 차이로 생각될 수 있지만, 그것은 학자들이 학문을 할 때 정확한 뜻의 단어를 써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른바 전문용어로 점찍어 사용되기 때문이다. 소설가나 시인들이 도피나 회귀의 단어를 몰라 못 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가진 뉘앙스의 차이가 있기 때문으로 독자는 추정한다. 15장으로 이뤄진 소설 각 장의 제목도 「고독으로부터의 탈출」, 「존재와 비존재」, 「야만적인 너무나 야만적인」, 「이데올로기의 부활」, 「특화된 다수는 항상 부정하다」, 「우연 그리고 필연」, 「진지함의 가벼움, 사소함의 무거움」, 「선택과 판단」, 「모든 사람을 위한,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현상과 본질」, 「군중 속의 고독」, 「탄생과 죽음」, 「이것이냐 저것이냐」, 「가는 자와 오는 자」, 「도피와 회귀」이다. 현실 도피와 일상 회귀를 암시하는 듯한 단어들이다. 이 소설의 또다른 특징은 1월1일부터 12월25일까지 주인공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철학적 탐구이다.

 


 

또 『돌고래의 신화』는 단편소설집이다. 최인은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이다. 저자는 이 작품집에서 포우와 오 헨리가 즐겨 쓴 '충격요법'과 '반전기법'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고 출판사 측은 설명한다. 이 때문에 이 작품집에 실려 있는 대부분의 소설이 긴박한 상황 속에서 빠르게 전개되는 한편, 극적 반전을 이뤄 독자를 글 속으로 몰입시키는 데 성공한다고 언급한다. 또한 치밀하고 세밀한 점묘법으로 구성된 작품 속에 녹아 흐르는 에로티시즘은, 책을 읽는 흥미를 더 한층 배가시킨다고 말한다. 당연한 일이다. 단편소설의 생명이나 다름없다. 충격요법, 반전기법, 점묘법 등은 단편소설의 요건에 해당되는 일들이다. 단편소설이 대부분 200자 원고지 70~80장 분량임을 감안한다면 장편소설처럼 사건이나 인물에 구구한 설명도, 장황한 묘사도 필요없다. 오히려 소설 전개나 반전에 방해가 될 뿐이다. 그런 점에서 포우와 오 헨리의 소설작법은 이미 '교과서'로 지목될 정도로 모범적 단편소설들이다. 이 작품에는 52명에 달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들이 보조 인물로 등장한다. 이 보조 인물들은 주인공의 분신이면서도 제2, 제3, 제4의 자아이기도 하다.

카두케우스를 손에 든 헤르메스가 우리를 쫓아왔어. 저승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그는 일렁이는 백사장과 하늘로 솟구치는 바닷물을 느끼며 물었다. 헤르메스가 왜 우리를 쫓아오는 거지? 미재가 오래된 진공관 소리처럼 말했다. 사랑에 빠진 자들을 징계하기 위해서야. 아니 깊이 잠들게 하고, 그 다음에 죽이려는 속셈이지.

그는 그럴 듯한 상상이라는 듯 키득키득 웃었다. 은지로 변한 미재가 무릎을 꿇고 백사장에 앉았다.

“내가 펠라티오를 해 줄게.”

 


 

저자 최인의 네 번째 장편소설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는 현대를 그리고 있지만 과거의 인물이 주인공이다. 이 책을 펴낸 도서출판 글여울 측은 인간, 신, 악마, 짐승 등이 길을 가며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지만 옛날 신화의 원형을 가져다 쓴 서사기법이며 길을 가며 세상의 모든 것과 대화와 현상 인식을 하며 인간의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고 말한다.

"보라, 머리에는 헌 삿갓을 쓰고, 손에는 썩은 지팡이를 들고, 등에는 짚신이 매달린 괴나리봇짐을 멘 인간을. 보라, 머리는 여인처럼 길게 기르고, 턱수염은 목 아래까지 늘어뜨리고, 때에 전 모시 도포와, 낡은 무명 바지저고리와, 짚으로 엮은 신을 신은 인간을. 보라, 마른 샘물가에서 얻은 한 모금의 물과, 궁핍한 자에게서 얻은 한쪽의 빵과,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천정으로 삼은 잠자리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즐거움을."(p.12)

출판사 측은 이 작품이 기행문이지만 선지자와 짐승을 운율적으로 표현하며, 악마의 부르짖음이지만 이성과 오성과 명성을 노래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시대 최대 슬픔의 하나는 이성(理性)이 인간에게 깊은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시대 최대 불만의 하나는 오성(悟性)이 인간에게 깊은 충족감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시대 최대 불행의 하나는 명성(明性)이 인간에게 깊은 행복감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성과 오성은 기본적 인간이 기형적 인간에게 갖추어야 할 올바른 사고이고 능력이다."(p.24)

출판사 측은 또 신과 천사와 악마를 논하지만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강조한다.

"그대들 영혼의 파괴를 거부하지 않음은,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어둠의 힘찬 발걸음이다. 그대들 영혼의 죽음을 반갑게 끌어안지 않음은, 어둠을 향해 다가가는 악마의 힘찬 발걸음이다. 그대들 마음의 눈뜸이 없는 집과, 영혼의 외침 없는 음식과, 절망이 깨어 있지 않은 잠과, 탐욕이 불 밝힌 희망에 눈멀지 말라. 그대들 이성의 자각이 없는 육체와, 오성의 깨달음이 없는 정신과, 명성의 단단함을 갖추지 않은 영혼을 그리워하지 말라."(p.37)

 


 

남자는 흰 천으로 감싼 항아리 2개를 지게에 얹어 놓고 있었다. 도심 속에서 지게를 지는 것도 이상했지만, 흰 천으로 감싼 항아리는 더욱 수상했다. 그는 술을 마시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지게 위에 얹어 놓은 항아리는 무엇이오?”

남자가 술을 한 잔 마시고 대답했다.

“슬픔입니다.”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항아리가 슬픔이라니?”

남자가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제 슬픔의 모든 것입니다.”

그가 항아리를 보면서 말했다.

“그러면 누구의 유골이라도 된다는 말이오?”

남자가 침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제 어머니와 아버지 유골입니다.”(p.462)

 

우리는 흔히 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우리 뜻대로 되기를 바라면서 기도한다.(p.474)

말이 오해될 때가 아니라, 침묵이 이해되지 못할 때 인간관계의 비극은 시작된다.(p.487)

이쪽에서 정성껏 얘기하고 있는데, 농담을 지껄이는 것처럼 못 견딜 것은 없다.(p.487)

가장 위대한 사랑이란, 그리워하다가, 질투하다가, 증오하다가, 그 사랑을 고백하고, 그 사랑을 추억하다가, 그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다.(p.502)

 

저자 : 최인(崔仁鎬)

 

본명은 최인호다. 경기도 여주시 명성황후탄강구리에서 태어났다.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 「비어 있는 방」으로 등단했으며 2002년 『문명, 그 화려한 역설』로 1억 원 고료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2008년-2019년 12년간 ‘최인소설교실’을 운영했다. 인천지방경찰청에서 13년 근무했으며 파출소장과 형사반장을 역임하였다. 저서 『안개 속에서 춤을 추다』, 『킬리만자로 카페』, 『뒤로 가는 버스』, 『장미와 칼날』, 『크리스마스 전야』, 『그 바다엔 낙타가 산다』, 『인베이더』, 『그들 그리고』,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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