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가드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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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이 책 『라이프가드』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저자 마윤제의 전작 『바람을 만드는 사람』에 힘입은 바 크다. 마윤제는 탄탄한 필력을 보여주며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 ARKO 문학나눔 등에 선정됐다. 그는 『바람을~』을 구상할 때 병원 대기실에서 운명처럼 잡지 기사 한 꼭지와 사진 한 장을 만나게 된 일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파타고니아 고원에 올라가서 양을 키우며 살아가는 목동들의 일상을 취재한 르포 중 예순여덟 살의 목동 네레오 코르소가 자신의 오두막 계단에 앉아 낡은 브라질산 권총을 닦고 있는 사진 한 장은 이 소설의 시작점이 되었다"고 출간에 부쳐 밝힌 바 있다. 거친 바람이 불어오는 황량한 고원에서 홀로 살아가는 노인의 명경처럼 맑은 눈빛과 행복한 표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소설이 출간된 지금까지도 그를 사로잡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저자 마윤제의 『바람을~』은 독자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신화적 요소가 많았다. 그런 독자에게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추천평을 읽으며 다시 책을 잡았다. "남미 파타고니아의 고원 지대, 압도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신의 현현(顯現)처럼 느껴지는 그곳에서, 바람을 만드는 존재 ‘웨나’에 대한 전설을 들은 한 소년이 그의 실체를 찾아 평생을 떠도는 이야기다. 윗세대에게는 헤르만 헤세의 철학적 구도소설을, 아랫세대에게는 파울로 코엘료의 영적 로망스를 떠올리게 할 이런 이야기를 나는 본래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소설에 미달하는 교훈담이 되거나, 소설을 낮춰보는 형이상학을 자임하는 경우를 더러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달랐다."

 


 

신형철 평론가는 이어 "내가 변했기 때문일까, 이 작가가 워낙 잘해냈기 때문일까. 내가 알기로 늘 어딘가로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 작가가 그만의 ‘천로역정(天路歷程)’을 써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내가 책상머리에 앉아 이 소설을 기이한 절박함 속에서 완독한 것은 뜻밖이었다. 예전 같으면 추상이나 관념으로 느껴졌을 주인공 네레오 코르소의 필생의 여정을 연민과 긴장 속에서 따라갔고, 그 장중한 행로가 마감될 때는 마치 내 남은 삶을 당겨 살아버린 것처럼 먹먹한 피로감마저 느꼈으니 말이다"고 덧붙였다. 독자가 신화적 요인이 가득한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은 그리스·로마 신화가 왜 오랫동안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쳤을까를 생각해 오던 차였다. 신형철 평론가의 평은 독자의 그리스·로마 신화 읽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바람을~』을 추천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마윤제 작가의 첫 소설집인 『라이프가드』는 깊은 물속에서 일렁이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묵직한 여덟 작품을 묶은 소설집이다.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되어 발간된 작품으로, 이미 출간 전부터 뛰어난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 뒤에 숨겨져 있는 슬픔을 알고 싶어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단편적인 모습이 아닌 양면을 통해 한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사람에 대한 깊은 사유와 고찰로 쓰인 여덟 편의 작품은 우리가 모르고 있던, 혹은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어 했던 내면의 적나라한 감정까지도 낱낱이 들여다보게 만들어 것이란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씨줄과 날줄을 촘촘하게 엮어 만든 베처럼 단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은 문장들이 저자의 독창성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엮여 단단하고 묵직한 작품이 탄생했다고 독자는 믿는다.

 


 

『라이프가드』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면서도 적나라하다. 가깝고도 먼 타인으로부터 깊고 어두운 질투와 시기를 발견하고(「강(江)」, 「라이프가드」), 다른 서가에 잘못 꽂힌 책으로 말미암아 유령처럼 떠도는 자신의 위치를 되새기거나(「도서관의 유령들」) 오래전 한 청년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잃은 이들이 새로운 봄날을 꿈꾼다(「어느 봄날에」). 진실이라고 믿은 것이 모두 거짓임을 목격하거나(「옥수수밭의 구덩이」), 진실을 이야기했음에도 거짓으로 매도당하는 모습(「조니워커 블루」)을 보여주며 우리가 믿는 ‘진실’이 정말 견고한 것인가를 의심하게 만든다. 온유한 얼굴을 가진 바다에 속아 실종된 남자의 모습이나(「버진 블루 라군」)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사는 것으로 세상이 유지된다’는 말 한 마디(「전망 좋은 방」)는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도 진한 여운을 남긴다.

독자는 문학적 상징과 깊은 사유를 담은 『라이프가드』는 바다 같은 소설집이라는 평가에 동의한다. 바다의 잔잔한 파도 아래 짐승의 발톱이 숨겨져 있듯, 평온한 인간의 뒷모습에서 내밀한 이면을 바라보는 마윤제 작가는 자신만의 개성 있는 문체와 몰입도 있는 이야기로 독자들을 극에 빠져들게 만드는 걸출한 문장력도 독자를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이유이다. 짧은 이야기 한 편에 누군가의 삶과 감정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담아내는 것, 『라이프가드』는 오직 마윤제이기에 탄생할 수 있는 소설이란 생각이다.

"그때부터 뭇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젊은 여성, 스크린 도어 앞에서 지하철이 오기를 기다리는 청년, 점심 무렵 햄버거가 가득 든 종이 봉투를 양손 가득 들고 개인병원 계단을 올라가는 간호사, 말간 갓등 아래 술잔을 높이 든 휴가 군인, 샛노란 은행잎이 깔린 보도를 걸어가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 먼 길 떠나는 딸을 배웅하는 어머니, 멀찍이 떨어져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연인들의 뒷모습을 훔쳐본 것은 그들의 행복한 모습 뒤에 숨겨져 있는 슬픔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한 면이 아닌 양면을 통해서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어서였다."(p.237~238)

 


 

저자가 「작가의 말」에서 쓴 이야기는 독자의 소설 읽기에 한층 무게감을 더해 준다. 압박감이라기보다 중량감을 준다는 의미다. 가벼운 읽을 거리로 읽기보다는 우리 삶의 한 면을 파헤치는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그 이면의 또다른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도록 저자가 진입로를 열어준다는 의미로 독자는 해석했다. 이 책은 8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단편은 짧은 이야기다.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강물을 칼날로 잘라낸 단면이 단편이다. 단편은 찰나의 순간을 다룬다. 단순한 이야기도 있지만 어떤 소설은 은유를 앞세워서 복잡하고 난해하다. 이런 이유로 최근 소설을 읽기 어렵다고 푸념하는 독자들이 꽤 많다. 단편이 쉽게 읽히든 어렵든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우리 삶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단편을 읽는다는 건 우리 자신의 뒷모습을 훔쳐보는 것과 같다. 조금 비약하면 내 앞과 옆에 있는 사람들, 혹은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의 온전한 모습을 이해하려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의 삶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단편소설을 읽어야 한다(p.236~238)고 주해를 겸해 달아놓았다.

저자의 말을 이해하도록 이 책의 표제어로 쓰인 「라이프가드」의 한 장면을 여기에 적는다. "유지는 모아이 석상을 떠올렸다. 석상은 온종일 무엇을 생각하는 걸까. 오래전 자신들의 찬란했던 영광을 반추하는 걸까. 아니면 전쟁도 약탈도 없는 평화로운 천 년의 세상을 생각하는 걸까. 어쩌면 자신을 빼닮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숨을 불어넣어주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굳은 무릎을 펴고 일어나서 다시 활보할 날을 위해 뜨거운 햇살과 거친 바람을 맞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아이 석상이 크기와 무게만 다를 뿐 생김새가 전부 같다고 했다. 하지만 유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887개의 석상이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사람의 얼굴이 다른 것처럼 석상도 그럴 거라고 믿었다. 유지는 그 가설을 증명하기 이스터 섬을 찾아갈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석상의 사진을 찍어 이름을 붙여줄 생각이었다. 그 사진을 모아 책을 만드는 게 유지의 꿈이었다.(p.88)

 

 

독자는 중년 세대이다. 요즘 소설의 경향은 장편, 그것도 대하소설에 가까울 정도로 분량이 길다. 단편 소설집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을 정도로 드물다. 작가들이 단편보다 장편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끔씩 생각해보는 이런 질문은 이유가 있다. 독자가 소설을 많이 읽었던 시절은 우리나라가 산업화 시대였을 때다. 경제적으로도 아직 어려울 때고, 책을 사보는 여유도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장편을 읽어낼 시간도 부족했다. 일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그런 시절엔 단편 소설이 주를 이루었다. 작가들도 단편을 많이 썼다. 독자가 읽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단편은 작가들의 노력으로 굉장한 작품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작가로서의 등단 보증수표라고 불리던 신춘문예도 단편만 응모할 수 있었다. 신문에 실어야 하기 때문에 장편은 부적절한 데다 60년대 이후 등단한 작가는 단편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듯했다. 당연히 우수한 작품이 많이 나오면 작가들의 꿈인 책 출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장편의 책을 낸다는 것은 가난한 출판문화계 입장에서 모험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중편 장편의 시대가 바로 다가왔다. 일부 신문에서 신춘문예에 중편소설도 응모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당시 뛰어난 작가들의 역량은 대부분 단편을 신춘문예에 투고해 당선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었고, 또 그들은 실력도 뛰어났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던 것이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장편의 시대로 넘어갔다. 앞서 지적한 대로 경제적으로도, 시간으로도 독자는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출판 문화업계도 실력 있는 편집자들에 의해 출판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길을 열어주는 적지 않은 액수의 현상공모를 하면서 우리 문학계도 장편시대로 접어든 느낌이었다.

 


 

당연히 훌륭한 작품들이 중량감 있는 소재와 주제로 장편으 집필하면 여러 권 시리즈로 발간해도 충분히 판매되기에 이른 것이다. 장편시대로 들어간 데는 인터넷 소설이나 웹소설, 드라마 등도 적지 않은 기여를 했으리라 독자는 생각한다. 마윤제 작가는 단편이 이만큼 훌륭한 작품이다는 증명이라 하듯 이 작품들의 수준이 대단하다. 물론 문외한인 독자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마윤제 작가에 대한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이다. 그의 작가적 역량이 장편을 통해 데뷔한 것만은 아니라고 증명하듯 낸 이번 단편집에 실린 8개의 작품은 소재나 주제, 문체와 문장, 그리고 구성까지도 거의 완벽하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소설의 참맛을 느끼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저자 : 마윤제

 

경상북도 봉화에서 태어났다. ‘Heaven, Mackenzie’라는 재즈바와 인테리어 사무실을 운영하다 문학동네로 등단했다. 2012년 ‘마윤제’란 필명으로 세 소년의 모험을 그린 장편소설 『검은 개들의 왕』을 발표했다. 제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아르코 문학상을 수상했다. 뒤이어 우연히 잡지 [GIO]에서 읽은 기사에 이끌려 3년 동안의 긴 작업 끝에 남미 최남단 파타고니아를 배경으로 전설로 전해져오는 바람의 남자 웨나를 찾아가는 한 목동의 장대한 이야기를 담은 『바람을 만드는 사람』을 출간했다. 이후 특별한 서재 출판사와 교보문고가 공동으로 주최한 특별 강연을 기반으로 『우리는 왜 책을 읽고 글을 쓰는가』를 펴냈다. 『8월의 태양』은 동해안의 한 항구도시에서 열리는 ‘뱃고놀이’ 축제를 배경으로 젊은 다섯 남녀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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