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불행 - 사람은 누구나 얇게 불행하다
김현주 지음 / 읽고싶은책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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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것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연애소설은 한 번쯤 읽어본다. 어쩌면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연애 상대'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때로는 연애는 어떻게 해야 성공할지에 대한 방법을 알기 위한 기대에서였을지도 모른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냥 연애할 때 심리와 자신의 심리를 비교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또 연애를 하는 사람이라면 연애를 잘 하는 비결을 알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우리 대부분은 어렸을 때 연애소설을 누구나 읽어볼 호기심을 갖는 것은 본능일지도 모르지만, 그 기회도 많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연애할 때 사랑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해서이다. 본능이라는 것은 어떤 이해관계가 덧대어지지 않는 순수한 감정의 발로라는 데서 연애는 순수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연애, 사랑의 감정은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고 다루어지며, 이는 인간의 감정, 즉 감정의 순수성이 증명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이 싫어하는 거짓과 목적, 또는 다른 감정이 스며들 여지가 없는 인간 본연의 감정의 발로라는 점에서 순수함이 일치하는 것 같다. 이는 사랑의 감정을 강조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그 빛을 발한다. 소설이나 연극, 음악과 미술, 최근의 사진과 영화 예술에서도 사랑은 예술의 제 1차적 모티프로 작동하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또 사랑이 주제가 되든, 소재가 되든 어떤 예술도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책 『얇은 불행』은 작가 김현주의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소영이라는 여주인공이 20대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20대는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최고 황금기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신체적으로도 가장 큰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아직 정신적으로 불안한 면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나이이다. 또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때이므로 세상의 잘못된 풍속에 물들지 않아 순수하고 그만큼 선한 마음이기도 한 때이다. 굳이 색으로 표현하자면 '백색'의 나이가 20대인 것이다. 사회에서는 '청년'이라고 푸른빛으로 규정하지만 순수함이 강조되고,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아마 '푸를 청(靑)'의 글자로 표현했나보다.

저자 김현주 역시 나이가 들수록 어떻게 불리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고민한다고 운을 뗀다. 즉 나이가 들면서 사회 경험이 많은 사람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보다 어떻게 보일까에 의미를 두기 때문에 때가 묻기 시작한다고 표현하고 싶어서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저자는 출간한 책이 쌓일 때마다 고민은 짙어진다고 말한다. 가끔 인터뷰에서 작가가 되어서 좋은 점이 무어냐고 묻는데, 저자는 작가로 불리는 게 좋다고 고민 없이 털어놓는다. 그렇다면 삼십 대 후반의 여성을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저자는 와이프, 딸, 사모님, 아주머니, 이모, 언니, 누나. 정도라고 답한다. 아, 삼십 대 초반의 어떤 동생은 누님이라고도 한다. 기분은 참 묘하고 별로던데 누나를 높여서 부른 거라니 할 말이 없다고도 말한다.

 

 

이것 역시 일종의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여질까에 생각이 집중되면 역시 순수한 마음(어떻게 할까)보다는 어떻게 보여질까가 더 관심이 가는, 세속적 판단이 덧대어진 것이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글을 쓰지 않았다면 아마 아주머니라는 호칭이 가장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물론 세상의 모든 아주머니를 존경하지만 내가 원하는 호칭은 아니다. 나에게 글은, 작가는 어렸을 때의 꿈을 포개어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성실한 노력을 인정받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는 게 꿈을 포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한껏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이 책의 목차에서 보여지듯 각 장(章)의 제목이 나이와 계절을 겹쳐 썼다. 이유는 소영이 경험한 사랑이야기가 계절과 매우 닮아 있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된다. 여자로서의 20대를 봄부터 겨울까지의 사계절과 비슷한 피고지는 것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것일 수도 있다.

스무살에는 입학한 대학교에서 같은 학과 남학생을 좋아하게 되지만 남학생은 소영이 아닌 소영의 친구를 마음에 두고 있다. 소영은 사랑이냐 우정이냐는 기로에서 머뭇거린다. 스물세 살에는 대학교 졸업반이 된다. 소영은 학원 강사일을 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제자 고등학생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문제는 이곳에서 만난 학원 수학강사가 소영에게 호감을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영이에 대해 모든 걸 다 알고 있는데 꺼림칙한 느낌에 소영은 거리를 두게 된다. 결국 수학강사의 소영이에 대한 관심은 스토킹으로까지 변질된다. 당연히 연애에 성공할 수 없는 상황이다. 스물여섯 살에는 우연히 만난 남자에게 첫눈에 반한다. 동거까지 하게 되지만 그 남자는 이미 8년을 함께 했었던 사랑이 있었고, 그 사랑을 잊지 못한 상태다. 이 사랑도 오래 가지 못한다. 스물아홉 살 소영은 이번엔 자신이 이상형으로 생각했던 남자를 만난다. 이상하게 만날 때마다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을 받게 되고, 결국 사랑까지 느끼지 못하게 된다.

 


 

저자가 20대에 경험한 일을 소설로 옮겼다면 자전 소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자전 소설로 보기는 어렵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저자가 겪은 20대와 겹칠 수 있지만. 사랑과 우정, 스토킹, 동거 등등 어쩌면 소영이 경험했던 사랑이야기는 지금 20대 여성들이 겪는 현실적인 사랑이야기에 훨씬 가깝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 작품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대할 때 심리적 변화와 상황에 대처할 때의 심리 등은 저자가 겪은 경험의 일부일 수도 있다고 추정만 될 뿐이다. 두근거리는 첫사랑의 느낌, 쓰라린 짝사랑, 사랑으로 인해 잃어버리는 자신감 등을 이르는 말이다.

이 소설을 다 읽어가도록 표제어 중 '얇은'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 안타깝다. 왜 '얇은 사랑'이라는 표현을 했을까. 작품 속에 이를 비유하거나 표현한 것을 파악하지 못한 것은 독자의 아둔함에서 비롯되는 일이겠지만 쉽사리 잡히지 않아 약간은 책 속에 집어넣지 않은 저자의 작품에 아쉬운 감이 든다. 책의 부분 부분에서 조금은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표현이 나오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호응을 끌어내기에 충분한 작품 속 장치에 대해서는 작가의 날카로운 '숨김'이 엿보이기도 한다. 또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련한 글쓰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의 「프롤로그」에서 약간의 힌트를 읽어낼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요즘 소설 쓰듯 말을 한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덕분에 첫 소설 앞에서 작아졌던 마음을 용기 내어 꺼내 봅니다. 평생 말하듯이 글을 쓰고 글을 쓰듯 말하고 싶으니까요. 이 소설을 한창 쓸 때는 정말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힘든지 모르니까 시작했지, 알았으면 절대 안 썼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프롤로그까지 쓰고 보니 이렇게 힘든지 알았더라도 꼭 썼을 것 같네요. 제가 좀 그래요."(p.5)

 


 

사랑 이야기(러브 스토리)가 수천 년 간 인간들이 다루어 온 주제라 조금은 썰렁한 느낌도 있지만 반대로 중년쯤의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아날로그적 연애 감성이 되살아나는 느낌을 준다면 이 소설이 무척 좋을 것 같다. 독자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미국의 유명한 소설이자 영화 〈러브 스토리〉가 기억속에서 스멀스멀 삐져나와 메마른 가슴과 마음을 흠뻑 적셔준다. 애틋하고 어쩌면 당초에 이룰 수 없는 사랑처럼(로미오와 줄리엣) 아련한 슬픔도 준다. 뻔한 사랑 이야기 같지만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독자들 모두에게 어떤 식으로든 순화와 순수의 기억을 되살리기엔 더없이 좋은 모티프라는 사실도 재확인시켜 준다. 특히 첫사랑의 풋풋함, 어긋난 사랑의 간절함, 사랑과 우정이라는 중고등학생들의 정서에도 어울릴 소재들로부터 지금 20대 독자들보다 오히려 중년의 독자들에게 더 어필될 것 같은 느낌이 듣다. 독자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소재 채택이다.

저자가 「프롤로그」 마지막에 쓴 "계절을 닮은 사랑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사랑에서 어디까지가 감정인지,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많이 사랑할수록 많이 참고 많이 찌질해지던데요. 사랑의 크기는 재단해볼 수 없지만 찌질했던 순서는 나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사랑이 가장 찌질했을 거에요. 아마도. 소설을 마치면서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추억하고 안녕히 내일을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겨봅니다. 나의 첫사랑을, 그 시절을 그 계절을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가 다시금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 책 표제어 '얇은'의 실마리는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약간은 잡은 듯하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사람은 누구나 소소하게 행복하고 얇게 불행합니다"라고 말한다. 소소한 행복이란 아마 '작고 대수롭지 아니하다'란 뜻으로 쓰인 것으로 보아 '얇은' 역시 크거나 격한'이 아닌, '잔잔하고 별 것 아닌' 불행이라는 의미 아닐까. 독자의 느낌이지만 저자는 에필로그에 약간의 실마리를 남겨 놓았다. "소영은 아마도 한꺼번에 행복이 밀려와도 제대로 행복해하지도 못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부분도 저와 많이 닮았구요. 우린 누구나 얇게 불행하지만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행복 그거 별거 아니거든요."(p.319)

 

저자 : 김현주

 

키 크고 못생기고 똑똑하고 자존심 센 남자 사랑하다가

연애의 피 맛본 사람

사랑의 피 맛이 영 별로라

키 상관없이 잘생기고 무던하고 사랑 앞에 자존심 없는 남자 만나서

잔잔하게, 천천하게 사랑받고 행복한 여자

이상형과 나와 잘 맞는 사람이 다르다는 걸 깨달은 기쁨을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은 작은 작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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