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사회학적 읽기 - 우리는 왜 그 작품에 끌릴까
최샛별.김수정 지음 / 동녘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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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이 예술이 되고 어떤 것은 예술 작품에 끼지 못한다는 것은 누가 판별하는가? 예술 작품의 기준은 무엇인가? 예술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늘 고민했던 질문들이다. 각 시대마다 예술의 범주에 들 수 있는지 여부는 그 시대 예술가들의 총의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각 시대마다 나라마다 약간씩 다른 기준이 있을지 몰라도 최소한 당대 그 지역의 기존 예술가들의 평가로 판별되는 것 같다. 이처럼 우리가 예술로 지칭하는 문학, 음악, 미술 등 오랜 역사를 갖는 예술은 어느 정도 정형화된 틀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예술을 누리는 사람들의 평가는 그 정형화된 틀 밖에서는 예술의 범주에 들어가기조차 어려운 장르도 있다. 이른바 고전음악에 대한 대중음악이 그랬고, 상업성 높은 영화는 예술 테두리에서 배제되기 십상이다.

이 책 『예술의 사회학적 읽기』는 사회학의 렌즈를 통해 본 예술을 이야기한다. 꽤 오랜 시간 우리나라의 아이돌 음악은 진정한 예술이 아닌 것으로 여겨졌고, 그 가수와 팬에게는 ‘딴따라’와 ‘빠순이’라는 비하하는 명칭이 붙곤 했다. 그러나 오늘날 아이돌 가수는 ‘아티스트’로 불리며, 팬덤은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존재로 주목받는다. ‘예술 테러리스트’로 불리는 뱅크시의 작품들은 그가 작품을 파괴하는 기행을 펼칠수록 오히려 값이 올라가고, 미국 팝아트의 거장 클래스 올덴버그의 거대 햄버거 조형물은 ‘작품’이 되었지만 고등학생들의 거대 케첩병 조형물은 해프닝에 그쳤다. 이 책은 질문을 던진다. 어떤 작품이 예술이 되고 안 되고는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 작품은 오로지 천재 예술가의 영감만으로 탄생할까? 이런 ‘예술 보는 눈’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이자 주제이다.

 


 

앞서 던진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은 ‘예술’과 ‘사회’를 함께 읽도록 제안한다. 그림,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문학 등 어떤 영역의 예술도 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하나의 작품에는 당대의 정치, 경제, 문화, 제도가 거울처럼 반영되어 있고, 그렇게 나온 작품 또한 사회를 변화시킨다. 예술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날 각광받는 대부분의 예술작품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협업으로 탄생하며, 그렇게 나온 작품이 ‘진짜 예술’로 인정받는 과정에도 사회적 힘이 작용한다. 심지어 어떤 작품이 ‘내 취향’이라는 느낌이 들더라도, 그 취향 또한 알고 보면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많은 예술 관련 입문서들이 개별 작가와 작품, 장르나 기법, 역사 등에 초점을 둔다면, 이 책은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들을 드러냄으로써 색다른 방식으로 ‘예술 보는 눈’을 길러주기 위해 쓰였다고 이해된다. 공동저자 최샛별과 김수정은 인상파의 부상부터 BTS 열풍까지 여러 장르와 작품, 다양한 한국 사례들을 통해 예술작품들은 익숙하지만 ‘예술사회학’은 생소한 독자들, 미술관에 가면 왠지 모르게 위축되는 독자들도 예술에 흥미롭게 접근하도록 만들려고 이 책을 썼다. 예술사회학이란 학문은 우리 예술가는 물론 사회에서도 널리 알려진 학문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그리 오래된 학문의 분야도 아니다. 예술사회학은 어떤 예술현상을 사회 현상의 하나로 간주하며, 특히 사회 내의 일정한 계급이나 집단과의 관련을 전제로 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예술은 예술 내적인 여러가지 인자에 의해서 규정되나 동시에 표현이나 전달의 기능에 의해 사회에 작용하므로 이러한 예술과 사회와의 관련성에 대한 해명이나 규명은 예술학의 영역인 동시에 사회학적인 연구도 될 수 있다.

 


 

예술사회학(sociology of art)이란 예술의 창조나 대중에 의한 향수의 연구를 통해서 사회 기구의 인식을 목표로 하는 사회학의 한 부문이라고 백과사전엔 정의돼 있다. 세계미술용어사전에 따르면 예술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경계로 하여 다소 그 양상을 달리한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예술의 생산과 수용에 미치는 사회적 규정 작용을 해명하는 것이 주요한 이론적 관심사였지만, 전후에는 훨씬 구체적으로 예술이 발휘하는 사회적 기능의 갖가지 모습이 학문적 조명을 받기에 이르렀다. 대체로 이러한 예술의 사회학적 연구에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의 구별에 관계없이, 기술의 발달이 물질적 생산량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교환되는 정보량도 비약적으로 증대시켜 결국에는 인간관계의 사회적 기초를 변혁시킴으로써 선진제국에 점차 대중사회를 성립시키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즉 기술문명이 낳은 사회적 모순들에 직면하여 전후의 미학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에 관계없이,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다각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의 진보가 예술 그 자체의 성격을 변질시켜, 예컨대 대중예술과 같은 것이 사회생활 속에서 점차로 발언력을 강화해가고 있다는 사실도 예술사회학을 기대의 급선무로 간주하는 일부 미학자들의 동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텐느(Taine), 귀요(Guyau) 등이 예술사회학적 입장에 속하나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하우젠슈타인(Hausenstein)에 이르러 비로소 예술사회학이라는 명칭과 그 입장이 명확해졌다. 프리체 등이 이 분야에서 활약하였지만 이들은 도식주의적인 견지를 취했다 하여 비판받았다.

 


 

저자 역시 ‘걸작’의 조건은 무엇일까?로 접근을 시작한다. 범접할 수 없는 영감, 천재적인 발상, 세련된 기법, 높은 완성도 등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사회학의 눈으로 보면 이 조건들은 상당 부분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지금껏 ‘예술 바깥의 일’이라고 여겨왔던 것들이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데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흔한 예로 우리는 영화를 ‘레드카펫’ 위 사람들의 작품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지만, 영화 한 편이 완성되기까지는 감독과 배우 등 ‘핵심인력’뿐 아니라 섭외, 분장, 홍보 등을 맡는 ‘보조인력’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인상파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높은 명성은 생전에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화가 베르트 모리조의 ‘명성 관리’가 큰 역할을 했다. 수많은 화가 아내의 이름들이 그랬듯, 오늘날 모리조의 이름도 기억하는 이가 드물지만 말이다.

예술을 소비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로맨스 소설은 흔히 가부장적 가치관을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이 책에 소개된 연구에 따르면 로맨스 소설은 여성 독자들이 자기 시간을 갖도록 유도해 가부장제 질서에 균열을 내는 측면이 있다. 우리가 지극히 개인적인 호불호라고 믿는 소비의 ‘취향’조차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책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계급에 따라 그림을 선호하는 취향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낸 부르디외의 연구를 비중 있게 소개하며 ‘인스타그램 속 미술관 사진’의 의미도 짚어본다. 이렇듯 예술과 사회를 결합해 읽는 예술사회학의 시도는 작품의 숨겨진 측면을 드러내며 색다른 작품 감상법을 제공한다.

 


 

예술과 사회가 맺는 ‘관계’의 눈으로 보면 아는 작품도 다르게 보인다. 저자들에 따르면 예술작품은 당대 사회에 관해 많은 정보를 주는데(반영이론), 예를 들어 한국 근대문학 속 많은 주인공들이 결핵으로 죽어간 배경에는 당시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던, 그리고 작가들 자신도 피하지 못했던 결핵의 대규모 유행이 있었다. 여러 시대에 걸쳐 많은 화가들이 구약성서 속 인물 ‘유디트’를 성녀나 요부로만 묘사한 것 또한 미술계가 오랫동안 남성 화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왔음을 보여준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유명한 작품 〈마라의 죽음〉과 〈생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에서는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정치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작가의 실제 삶이 엿보인다.

예술은 사회를 반영하는 것을 넘어 변화시키기도 하는데(형성이론), 원작 소설이 영화로도 만들어진 〈도가니〉가 여론을 움직여 ‘도가니법’(성폭력범죄의처벌특례법 개정안) 제정을 이끌어낸 사례가 대표적이다. 만화 〈아톰〉의 상상력이 일본에서 로봇 ‘아시모’의 개발에 큰 영향을 준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 또한 이러한 형성이론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데, 특히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경우 사회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점에서 대중문화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실제로 나치시대에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 등은 빼어난 영상미를 자랑하지만, 히틀러의 통치 전략으로 활용되면서 수백만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처럼 예술과 사회의 만남에 주목하는 것은 익숙한 작품들의 낯선 모습을 보여줄 뿐 아니라 예술 자체에 대해서도 각자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끈다. 이는 장르나 기법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입문자들도 어렵지 않게 예술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이 책이 기존의 예술사회학 책들과 구분되는 점들 중 하나는 다양한 사례 인용에 있다고 한다. 기존 책들은 대부분 번역서라서 독자들이 한국 사례로 학습할 기회가 부족했는데, 이 책은 한국 드라마와 가수, 영화 등 우리가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사례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실제로 〈기생충〉과 〈아가씨〉 등의 영화뿐 아니라 〈SNL 코리아〉 등 TV 프로그램,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부터 하상욱 시인의 〈애니팡〉까지 여러 분야를 넘나든다. 이는 지은이가 14년 넘게 동명으로 대규모 대학 교양수업을 진행하면서 쌓은 노하우와 피드백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이 책은 예술이 사회를 반영한다는 생각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마르크스의 이론부터 베버, 베커, 벤야민, 부르디외 등 다양한 사회학자들의 이론들을 소개한다. 핵심만 추려 본문 곳곳에 박스로 구분했기 때문에, 이론 설명이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면 읽지 않고 건너뛰어도 큰 지장이 없도록 구성되어 있다. 또한 각 장마다 다양한 시각 자료가 배치되어 있으므로 작품 위주로 빠르게 살펴보는 읽기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는 인상파의 부상과 BTS 열풍 등의 주제를 예술, 사회, 생산, 분배, 소비의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입문 지식뿐 아니라 실전 적용 방법도 동시에 안내한다.

 

"히틀러는 정치를 종교적 속성의 아우라를 가진 예술과 동일시하면서 자신의 정치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방지하고자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벤야민은 진품이 가진 아우라를 걷어내는 복제 기술의 또 다른 기능에 주목하며, 정치의 예술화에 대항하기 위해 예술의 정치화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과거의 예술과 달리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은 진품의 역사성과 일회성을 벗어나 있으며, 주술적·제의적 기능이 아닌 단순히 그 외형적 아름다움만을 표방하는 상품적 가치와 전시적 가치를 지니는데, 이로써 대중들은 예술작품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벤야민의 주장이다."(p.177)

 


 

저자 : 최샛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예일대학교 사회학 박사. 한국문화사회학회 등재지 『문화와 사회』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그 외에도 『한국사회학』, 『사회과학연구논총』, 『문화경제연구』, 『여가학연구』등의 주요 학술지의 편집위원을 역임하였다. 연구 관심 분야는 문화사회학, 예술사회학, 대중문화연구, 문화예술정책이며 현재 한국 사회의 문화 자본과 상징적 경계에 대한 연구, 세대문화연구, 한국 문화정책연구를 수행 중이다. 주요 저서 및 역서로는 『문화사회학으로 바라본 한국의 세대연대기: 세대간 문화경험과 문화갈등의 자화상』(2018 세종도서학술부문 우수도서-구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 2019. 한국 연구재단 우수성과 50선 선정.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표창) 『문화사회학으로의 초대: 예술에서 사회학으로』(2004), 『현대문화론: 문화사회학자가 본 일본의 현대사회』(2004), 『문화분석: 피터 버거, 메리 더글라스, 미쉘 푸코, 위르겐 하버마스』(2003), 『만화! 문화사회학적 읽기』(2009, 공저), 『예술사회학: 순수예술에서 대중예술까지』(2010, 공역)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한국문화의 상징적 위계에 관한 조사: 한국사회의 고급문화는 무엇인가」(2014), 「한국사회의 문화자본은 존재하는가」(2006), 「불평등한 미래: 청소년의 ‘꿈’, 지위표식이 되다」(2020, 공동), 「Anything but Gugak and Trot: Symbolic Exclusion and Musical Dislike in South Korea」(2020, 공동 집필), 「A Cultural Map of South Korea, 2011」(2017, 공동) 등 90여 편의 저역서 및 논문을 저술하였다.

 

저자 : 김수정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고, 국민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문화/예술사회학, 한류사회학, 문화예술교육 등을 가르치고 있다. 연구 관심 분야는 문화자본, 계급불평등, 세대문제, 대중문화, 문화정책 등이며 최근 논문으로는 「Anything but Gugak and Trot」(2020), 「불평등한 미래: 청소년의 꿈, 지위표식이 되다」(2020), 「한국 문화정책에서의 문화 개념에 관한 연구」(2020), 「1960~1980년대 한국 문화정책에 대한 재고찰」(2019), 「A Cultural Map of South Korea, 2011」(2017)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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