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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ㅣ 베이식 아트 2.0
제이콥 발테슈바 지음, 윤채영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3년 1월
평점 :
이 책 『마크 로스코』는 한 위대한 화가의 작품집이기도 하고, 그의 일생을 기록한 전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르네상스부터 현대까지, 미술사 거장들을 만나볼 수 있는 베이식 아트 시리즈의 일환으로 출판됐다. 출판사에 따르면 베이식 아트 시리즈는 1985년 피카소 작품집을 시작으로 베스트셀러 아트북 컬렉션으로 거듭났다. 그 이후 간결하고 얇은 작가별 도서는 200여 종이 넘게 제작되었고, 20여 개 국어로 출간되었다. 이 시리즈는 뛰어난 제작 가치를 지님과 동시에 훌륭한 삽화와 지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각각의 책이 지닌 주제 의식은 활력이 넘치면서도 어렵지 않아 가까이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2005년 첫 한국어판을 출간한 이후 15년 만에 새롭게 재출간되었다. 이번 〈베이식 아트 2.0〉 시리즈는 전보다 더 커진 판형과 도판으로 독자들에게 보다 생생한 작품 이미지를 전달한다.
마크 로스코(1903-1970)는 예술가의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 옹호자였다. 작품 해설이나 구분에 반대한, 뉴욕에서 처음 형성된 추상표현주의 운동의 핵심 주역이었지만 로스코는 레이블*을 거부하고 ‘그림과 관람객 사이의 완전한 경험’을 주장했다.
*레이블은 라벨(label)이라고도 하며, 인쇄하여 상품에 붙여넣는 조각을 가리킨다. 종이, 중합체, 옷, 금속 등의 물질로 된 조각이다. 표찰이라고도 한다. 때로는 레터(letter)라 하여 포장에 첨부하거나 인쇄하는 경우도 있다. 레이블은 제품의 기원 제조업체(예: 브랜드 이름), 용도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포함하여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으며 이 중에는 영국]이나 미국에서의 음식 등에서 법에 의해 관리될 수 있다. ① 라벨의 효과적인 디자인으로 소비자의 주목을 끌게 하고, ② 상품의 내용을 확신시켜 판매를 촉진하며, ③ 사용상의 주의사항을 표시하여 사용자에 편의를 제공하고 보호하는 수단이 되는 데 있다.
비유적인 작품들에 이어 로스코는 빨강, 노랑, 황토, 적갈색, 검정 및 녹색 등 대담한 색상으로 현재 그를 상징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이 반짝거리고 생동감 있는 색 덩어리로 인간의 모습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상징적으로 표현하거나 모양을 넣었다고 강조한다. 이 강렬한 색채 형태는 인간의 모든 비극을 담고 있다. 그와 동시에 로스코는 작품의 표현 가능성에 대해 관객이 명시적으로 판단할 권한을 부여했다. 그는 “그림은 민감한 관찰자의 눈에서 확장되고 빨라진다”고 믿었다. 이 책은 로스코의 지적인 사고와 초기부터 가장 유명한 색채 분야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극적이고 친밀하며 혁명적인 작품의 영향력을 소개한다.
이 책의 저자 제이콥 발테슈바는 박물관 전시 작가 및 비평가이자 독립 큐레이터다. 앤디 워홀 등 20세기 거장들에 대한 공부가 깊고 상당한 지식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르크 샤갈, 앤디 워홀 등 20세기 화가와 팝아티스트들에 대한 책을 다수 출간한 미술작가이기도 하다. 저자는 "로스코는 지식인이자 사상가이며 매우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음악과 문학을 사랑했고 철학, 특히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신화에 심취했다. 친구들은 로스코를 까다롭고 불안하며 성미가 급한 사람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는 성격이 급하긴 했어도 다정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로스코는 이후 추상표현주의자들로 알려진 미국인 미술가 운동의 주역이었다. 양차 대전 사이에 뉴욕에서 결성되어 뉴욕파라고 불린 이 그룹은 미술사 전체를 통틀어 국제적 인정을 받았던 최초의 미국인 미술가 그룹이다. 로스코를 포함, 이 그룹에 속했던 많은 이들이 오늘날 전설이 되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그의 작품 세계와 일생을 풀어낸다.
저자는 책에서 마크 로스코(1903~1970)는 추상회화의 본질과 형상에 혁명을 일으킨 미국인 화가 세대에 속한다고 구분한다. 로스코는 다양한 형상적 표현으로부터, 관람자가 회화와 맺는 적극적 관계에 뿌리를 둔 추상양식으로 이르는 양식적 발전은 회화에 있어서의 급진적 비전을 구체화했다. 로스코는 이러한 관계를 '회화와 관람자 간의 완전한 만남의 경험'이라고 했다. "아무것도 내 그림과 관람자 사이에 놓여서는 안 된다"라는 말에 따른 분석이라 한다. 저자는 로스코의 색 구성은 관람자를 내적 빛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이끌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주로 관람자의 경험 즉, 작품과 수용자의 언어적 이해를 넘어선 합일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로스코는 "어던 기호들로도 우리의 회화는 설명되지 않는다. 설명이란 회화와 관람자 간의 완전한 만남의 경험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예술 감상이란 정신적 존재들 간의 진정한 결혼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결혼에서 초야를 치르지 않는 것이 무효선언의 근거가 되듯이 예술에서도 완전한 만남의 결여는 무효 선언의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는 점을 들어 평가한다.
저자는 19세기 후반 이래 현대미술은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특히 파리 같은 활기찬 도시들이 현대미술 발전의 중심이 되었다고 밝힌다. 그러나 1차 대전, 2차 대전 이후부터 미국 미술이 점점 더 주도적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세계 무대의 중심으로 미국이 떠오르면서 경제와 문화 등의 분야에서도 미국 주도적 흐름이 형성되었다고 말한 것으로 독자는 판단한다. 로스코가 이 흐름에 존재하며 역할을 주도했고, 협력했다는 분석으로 보인다. 이른바 '뉴욕파'의 주역으로서 로스코가 활동한 것에 중점을 둔 것 같다. 실제로 1952년 근대미술관에서 열린 〈15인의 미국인전〉을 통해 뉴욕파는 국내외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로스코를 설명하기 위해 추상표현주의 등 미국의 현대미술에 대한 설명을 아끼지 않는다. 책에 따르면 추상표현주의라는 용어는 양식보다는 과정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행위에 의해 도출된 산물 즉, 예술작품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회화 그 자체의 작용으로부터 느끼는 것 즉, 과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운동의 주창자들에는 잭슨 폴록, 윌렘 드 쿠닝, 아돌프 고틀리브, 로버트 머더웰, 프란츠 클라인, 클리포드 스틸, 바넷 뉴먼 그리고 마크 로스코가 있다. 그들 모두는 유럽 미술 특히 초현실주의와 표현주의 그리고 막스 에른스트, 앙드레 마송, 몬드리안, 탕기, 샤갈 같은 나치 시절에 미국으로 이주해 온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이 작가들의 작품이 시각적으로 같은 형태를 띠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영감의 원천은 뉴욕 근대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들로서 그 가운데는 모네의 후기작, 마티스, 칸딘스키, 마누엘 오로스코와 그 밖의 멕시코 벽화 작가들의 작품들이 있었다.
저자는 '추상표현주의 운동'을 화가 일리엄 자이츠의 말을 들어 정의하고 있다. "그들은 완벽함보다는 표현을, 완성보다는 활력을, 휴식보다는 동요를, 알려진 것보다는 미지의 것을, 분명한 것보다는 베일에 싸인 것을, 사회보다 개인을, 외부적인 것보다는 내부적인 것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는 정해진 강령을 가진 단일한 운동이 아니라 다양한 예술적 입장을 가진 느슨한 연합형태의 그룹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추상표현주의가 등장하기 전 1차 대전 이후 미국의 미술계에는 두 개의 흐름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지역주의라고 할 수 있는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이다. 전자는 근면하게 일하는 시골 사람을, 후자의 작품은 대공황 시절의 미국 도시 생활을 반영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에 따라 45년에 걸친 마크 로스코의 활동 시기는 리얼리즘 시기(1924~1940), 초현실주의(1940~1946), 과도기(1946~1949), 고전주의 시기(1949~1970) 등으로 나뉘는데 이 모두를 그의 작품에 반영됐다고 저자는 확인한다.
이 책 『마크 로스코』는 모두 8개의 장(章)으로 나뉘어 구성됐다. 저자가 그의 일생과 작품 활동, 활동 무대, 작품 경향을 종합 분석해 시대를 구분한 데 따른 것으로 이해된다. 1장 「드라마로서의 회화」, 2장 「러시아에서 오리건주 포틀랜드를 거쳐 뉴욕으로」, 3장 「마르쿠스 로트코비치, 마크 로스코가 되다:신화와 초현실주의」, 4장 「멀티폼-고전 회화에 이르는 길」, 5장 「로스코의 벽화와 팝아트의 대두」, 6장 「로스코 예배당과 테이트 미술관」, 7장 「로스코의 죽음과 유산」, 8장 「마크 로스코 삶과 작품」 등이다. 2장 「러시아에서 오리건주 포틀랜드를 거쳐 뉴욕으로」는 로스코가 러시아 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이 책과 두산백과에 따르면 로스코는 1903년 러시아의 드빈스크에서 마르쿠스 로스코비츠(Marcus Rothkowitz)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부모는 유대인으로 1913년 가족이 모두 미국 오리건주(州) 포틀랜드로 이민을 왔다. 1921년 예일대학교에 입학했으나 3년 만에 학업을 그만두고 뉴욕으로 가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한동안 뉴욕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 들어가 맥스 웨버(Max Weber) 밑에서 공부했다. 웨버를 통해 컬러 페인팅 화가이자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밀턴 에이버리(Milton Avery)를 만났다. 에이버리는 로스코 회화의 초기 발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935년에 추상미술과 표현주의에 찬성하는 미술가 그룹인 ‘10인회’을 창립했다. 그리고 미국 미술가 협회와도 그룹전을 개최했다. 초기의 작품은 종이와 캔버스에 주로 인물과 풍경을 그렸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인 《지하철 Subway》 연작이나 《거리 풍경 Street Scene》에는 치밀한 기하학적 구도의 휘황찬란한 도시 풍경 속에 정신적으로 고립된 익명의 인간 군상들이 부유하고 있다. 그는 현대사회의 소통단절과 외로움이란 주제를 발전시켰고, 한 가지 주제를 다양한 소재로 변형해 그렸다. 비록 초기 구상회화이지만 이 작품들에서 이미 성숙기 회화의 특징인 수평과 수직의 구성과 색면 분할의 전조를 읽을 수 있다.
로스코는 유럽에서 나치의 영향력이 커지자 1938년 미국 시민권을 얻어 법적으로 완전한 미국인이 되었다. 1940년에는 이름도 마르쿠스 로스코비츠(Marcus Rothkowitz)에서 마크 로스코(Mark Rothko)로 개명했다. 이때부터 로스코의 예술은 큰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후앙 미로(Joan Miro),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의 영향을 받아 초현실주의적 작품을 제작했다. 이 책은 그의 작품이 신화와 초현실주의 경향을 띠기 시작한 때가 로스코로 개명을 통해 미국인으로 거듭난 때와 함께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때부터 로스코의 예술은 큰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후앙 미로(Joan Miro),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의 영향을 받아 초현실주의적 작품을 제작했다. 이 당시 그는 초월적 세계와 원시미술 및 고대미술 세계와의 교감에 매료되어 있었다.
1943년 이후 추상화가 클리포드 스틸(Clyfford Still)과의 우정은 로스코가 색면 회화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커다랗고 모호한 색면과 불분명한 경계선으로 이루어진 직사각형의 캔버스는 절망부터 환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정의 물결을 불러일으켰다. 1940년대 말에는 재현적인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고 오로지 물감이 캔버스 속으로 배어들게 하여 더 개성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로스코는 1950년에 뉴욕 화파의 일원이 되었고, 1954년부터는 시드니 재니스 화랑의 전속작가가 되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1960년에는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며 당대 최고의 작가로 부상했다. 그러나 로스코는 자신의 사회적 명성에 대해 기꺼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의 미술적 진보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지 않았는지 두려워했다. 또한 예술이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극도로 불편해했다. 1964년 이후 로스코는 주로 어두운 색이 지배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말기 작품에서는 단 하나의 수평선으로 화면이 양분되는 등 구성이 더욱 단조로워지고 무거움과 우울함의 정조가 짙게 드리워졌다. 결국 그는 우울증과 건강의 악화로 1970년 2월 25일 뉴욕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정확한 시점을 알 수는 없으나, 전쟁이 극심했던 시기에 로스코는 급격한 양식 전환을 꾀했다. 새로운 경향의 작품들은 친구 아돌프 고틀리브와 함께 작업하던 시기에 나왔다. 로스코는 어떤 것을 작품의 주제로 삼아야 할지에 대해 고틀리브와 끊임없이 토론을 벌였다. 이 두 화가는 미국 회화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확신했다. 또한 이들은 로스코가 지하철 그림 이후에도 피투라 메타피시카를 고수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했다. 토론에 자주 참석했던 바넷 뉴먼은 이들이 처했던 딜레마에 관해 훗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전쟁터가 되어버린 세상, 광기어린 세계대전의 대량 파괴 앞에 황폐해져가는 세상의 도덕적 위기를 감지했다..... 따라서 예전처럼 꽃이나 누워 있는 나신, 첼로 연주자 같은 것들을 그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p.32)
저자 : 제이콥 발테슈바
박물관 전시 작가 및 비평가이자 독립 큐레이터다.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교와 뉴욕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마르크 샤갈, 알렉산더 칼더, 장 미셸 바스키아, 앤디 워홀 및 크리스토 자바체프의 작품에 관하여 수많은 책을 출간했다. 그는 뉴욕과 파리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역자 : 윤채영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있다. 현재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