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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선사해준 사람
조조 모예스 지음, 이나경 옮김 / 살림 / 2022년 12월
평점 :
이 소설 작품 『별을 선사해준 사람』은 표제어부터 매우 서정적이고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겨나온다. 20세기 초반 세계적 격동기를 지나 차츰 안정돼 가는 무렵 미국은 다시 한 번 대공황이라는 엄청난 시련에 부딪친다. 이 무렵 미국은 이미 강대국의 위치에 올라서 격랑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유럽 세계에 비해 훨씬 안정적인 발전에 본격 시동을 걸 무렵이다. 유럽에서는 제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쓸 때 미국 사회는 전승국인 데다 발전된 산업 기반으로 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가던 때이기도 하다. 호사다마일까, 한바탕 전승국으로서의 유희를 끝낸 미국 사회에 예기치 못한 경제대공황이 불어닥친다. 이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경제부흥을 위해 내세운 '뉴딜 정책'으로 팔을 걷어부친 경제 재건에 국가의 명운을 걸었다.
이 소설은 숨 막히는 영국에서의 생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인공 앨리스는 잘생긴 미국인 청년 베넷과 결혼해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의 역동적인 재건 바람을 듣고 훨씬 자유롭고 역동적인 미국 사회를 동경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도착한 켄터키 또한 밀실과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밖으로 드러난 풍요로운 땅, 검소한 생활, 국민이 강한 나라라는 정체성을 보여주고 되찾는 데는 짧지 않은 기간이 필요할 터였다. 1930년대 말 미국 대공황의 막바지로 접어들자 차츰 경제부흥에 성공이라는 확신이 들 무렵 미국 정부는 국민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이동 도서관’을 실히한다. 이 제도는 대통령 영부인이 주도하는 사업으로 도서관까지 찾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말을 타고 외진 곳까지 가 직접 책을 빌려주는 책 대여 시스템이다.
전국적으로 실시된 이 사업은 잔혹한 현실과 새로운 희망이 싹트는 시기의 미국 켄터키주 동부의 탄광촌 깡시골까지 미친다. 어느 날 앨리스는 여성으로 구성된 사서 팀을 모집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단번에 합류를 결정한다. 그리고 함께 뜻을 모은 다섯 명의 사서. 품속에 책을 넣은 채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켄터키의 풍경을 배경으로 다섯 명의 사서. 그녀들이 만들어내는 우정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서 펼쳐진다. 켄터키주 동부의 탄광촌 깡시골은 당시 만연했고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인종, 계급, 성별, 장애를 비롯한 인권과 관련된 갈등과 전반적으로 평등하지 못한 사회 인식 문제를 다각도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부인의 주도로 공공사업국에서 1935~1943년에 실시했던 ‘이동 도서관’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은 이 다섯 명의 사서들이 보여주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당시 미국의 이야기다.
미국인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시집온 영국인 앨리스 반 클리브, 베일리빌에서 안 좋은 쪽으로 명성을 떨쳤던 밀주업자의 딸 마저리 오헤어, 남자 형제만 있는 집안의 외동딸로 자란 베스 핀커, 한쪽 다리가 불편한 이지 브레이디, 유색인 소피아 켄워스까지 각기 다른 성향과 배경을 가진 다섯 명의 여성들로 이루어져 있다. 성별, 집안 환경, 장애, 인종, 출신지 등 수많은 이유로 인해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로막힌다. 이 다섯 명의 사서 역시 본인들이 지닌 시대적 약점으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본래의 자신을 잃어갔다. 이동 도서관을 통해 쌓아가는 사랑과 우정은 이들을 원하는 곳으로 안내하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심어준다.
이 시기의 미국 농촌에서는 지식의 바람이 불었다. 이동 도서관 사업은 배움의 기회가 현저히 적고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이가 태반인 산속 주민들을 문명의 앞에 한 걸음 다가서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바람은 켄터키주 베일리빌까지 불어와 ‘윤리적’이고 ‘보편적’인 규칙에 갇힌 삶을 살던 여성들의 닫힌 생각을 일깨워준다. 말을 타고 깊은 산속의 집집마다 직접 방문하여 책을 빌려주는 이동 도서관의 사서들은 마저리를 중심으로 앨리스, 베스, 이지로 구성되고 후에 소피아가 합류하여 이들을 지원한다. 처음에는 이웃의 방문조차 꺼리며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로 경계하던 산속 주민들은 점차 이 네 명의 여성 사서들의 진심과 정성에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배움의 즐거움을 알아간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그것은 배운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격언이다. 배운 사람들은 캔터키 깡촌까지 찾아들 리 없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남녀평등, 인종 차별, 장애에 대한 인식, 노사 갈등,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비롯한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겪는 고충에서 보면 말 그대로 사회 사각지대다. 그러나 이들이 사각지대에 갇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것은 배우지 못해서이다. 그 무지는 모르는 것뿐만이 아닌 알려고 하지 않는 태도가 더 문제일 것이다. 주변을 위해, ‘나’를 위해 비난하거나 포기하기 전에 타인을 알고 ‘나’를 마주보려 노력한다면, 이와 같은 우리 사회의 갈등이 조금은 해소되지 않을까 이 책은 주목한다.
다섯 명의 사서들도 각자 개성이 강하다.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오지만 기대와는 확연히 다른 결혼 생활에 실망한 앨리스. 부부관계를 갖지 않는 남편과 부부의 일에 너무 깊게 관여하고 보수적인 시아버지 사이에서 지쳐가던 그녀는 시댁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동 도서관 사업의 사서로 지원한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소통하며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르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간다. 마저리는 마을에서 유명했던 폭력적인 밀주업자 아버지의 아래서 자라 보수적이고 신앙심 강한 마을에서 유독 자유롭고 자기주장이 강한 튀는 성격의 소유자다. 마을 이동 도서관 프로젝트의 주축으로 다른 사서들을 이끌고 사업을 진행하는 데 앞장선다. 그녀에겐 그녀와의 결혼을 원하는 오랜 연인 스벤이 있다. 서로 사랑하지만 결혼이라는 틀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던 마저리의 신념으로 인해 결혼하지 않고 연인의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세상에 오로지 자신의 생각과 신념만이 가득했던 마저리는 이 사업을 통해 겪는 모종의 사건들과 예기치 않은 출산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소통하며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 나간다.
남자 형제들 사이에서 자라 거칠고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베스, 한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에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모든 일에 자신없는 태도로 일관했던 이지 역시 이동 도서관 프로젝트에 합류하면서 일에 보람을 느끼고, 사서들끼리 우정을 나누면서 자신의 세상을 깨고 나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사서들을 지원하기 위해 중간에 합류한 유색인 소피아 역시 자신의 잘못이 아닌 그저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로 세상에 소극적이던 태도를 우정을 위한 용기로 바꿔나간다.
이렇듯 각기 다른 배경과 성향을 가진 다섯 명의 여성 사서들은 경직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채 바보 같은 인형처럼 그저 예쁘게,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이동 도서관 사업을 통해 서로를 만나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잊고 있던 자신을 되찾을 수 있는 믿음을 키워 나간다. 또한 미래를 원하는 방향으로 개척해나가며 고난이 닥쳐와도 서로를 홀로 고통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우정과 애정을 보여준다. 이는 스스로가 알을 깨고 나오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 무엇을 위해 맞서고, 무엇을 위해 희망하고 사랑해야 하는지 생각하며 자신의 선택을 믿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여러 경직된 사회 문제들을 실제 역사적 배경에 빗대어 풀어나간 이 책은 이유도 모른 채 만연한 서로를 향한 증오의 목소리를 누르고 상처받은 개인에게 위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그들의 삶이 얼마나 잔인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사서들에게 도서관은 도서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들에게 도서관은 내면의 공허함, 의지, 생각, 주권, 의무, 책임, 투쟁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성장의 디딤돌이다. 평등을 잊은 사회 속에선 안전한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여성은 미소를 짓고 움직이지 않으며 소리 없이 그저 장식하는 존재가 아니다. 몸이 불편하다고 말을 탈 수 없는 것도 아니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같은 공간에 있지 못할 이유도 없으며 노동자는 노예나 소모품이 아니다. 누구나 원하는 것을 마음껏 이룰 수 있는 자유가 있고, 누구도 그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 다름이 불쾌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조조 모예스의 좋은 이야기가 가져다주는 재미와 희망을 간절히 기다린 독자들에게 사랑, 혐오, 기쁨, 우정, 고통, 슬픔, 분노까지 모든 종류의 감정으로 가득 찬 이 책은 선물과도 같을 것이다. 또한 책 속의 눈부시게 용감하고 활기차고 영리한 여성들을 통해 우리는 그 시대 남성들이 우상화하던 여성이라는 존재를 추모하게 될 것이다.
“스벤, 내겐 아무것도 없어. 자유도 없고 존엄성도 없고 미래도 없어. 내게 남은 거라곤 이 애, 내 심장,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는 다른 삶을 살길 바라는 희망뿐이야. 그러니 날 사랑한다면, 내 부탁을 들어줘. 내 딸이 어린 시절에 감옥이나 찾아다니는 걸 바라지 않아. 당신과 아이가 매주, 매년, 주립 교도소에서 머리에는 이가 들끓고 구정물 냄새를 풍기면서 시들어가는 내 모습을 보는 걸 원하지 않아. 그런 모습을 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우리 애를 행복하게 해줘. 내 이야기를 할 때는 이 이야기 말고, 찰리를 타고 산속을 다니던 이야기를 해줘. 내가 사랑하는 일을 했던 이야기를.” (p.354)
저자 : 조조 모예스(JOJO MOYES)
런던에 있는 로열 홀로웨이 대학(RHBNC)에서 공부했고, 시립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배웠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인디펜던트」에서 1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한 뒤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전업 작가가 되었다.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꾸준히 사랑받아온 그녀는 전 세계적으로 1,400만 부 이상 팔린 『미 비포 유』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미 비포 유』는 동명의 영화로도 각색되어 흥행에 성공했다. 첫 책인 『Sheltering Rain(비를 피하기)』 이후 『원 플러스 원』 『허니문 인 파리』 『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 『더 라스트 레터』 『스틸 미』 등의 소설을 썼는데, 모든 작품이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그의 소설은 46개 국어로 번역되었고 12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4,000부 이상 팔렸다. 로맨스의 여왕이라는 수식이 붙는 그는 로맨스 소설 협회상을 두 번 받았다. 최신작 『The Giver of Stars』도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으며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역자 : 이나경
이화여자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에서 르네상스 로맨스를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역서로 『메리, 마리아, 마틸다』, 『어떤 강아지의 시간』, 스티븐 킹의 『샤이닝』, 『피버 피치』, 조조 모예스의 『애프터 유』, 제프리 디버의 『XO』, 제시 버튼의 『뮤즈』, 『살아요』, 『배반』, 『좋았던 7년』, 내가 혼자 달리는 이유』, 『세이디』, N. K. 제미신의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 『햇살을 향해 헤엄치기』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