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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철학자와 함께한 산책길 -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가는 노학자 6인의 인생 수업
정구학 지음 / 헤이북스 / 2022년 12월
평점 :
'왜 살아가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등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면 언제든 명쾌한 답이 없어 다시 '왜 태어나는가'로 돌아가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계속되는 것 같아 별 소득 없이 생각하기를 멈춘 기억이 독자들에게 있을 것이다. 독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생각 끝에 얻는 답은 '책을 읽자'이다. 이때 읽는 책이 대체적으로 철학 책이다. 철학을 전공하거나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는 독자로서 철학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질문처럼 책을 통해서 얻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 원인을 알아내기에도 벅차다. '생각하기'가 서툴러서 그럴까? 철학은 그렇게 독자에게는 늘 어려운 대상으로 생각됐다. 어려운 학문인 만큼 유명한 철학자의 사상이나 고뇌, 사유의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기에도 벅찬 것은 아닐까? 하는 자책성 의문만 남긴 채 다른 책으로 시선은 옮겨간다.
독자의 경우 가끔은 문학 책을 접해본다.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난 인물의 성격, 성향은 어떤 상황에 부딪쳤을 때 어떻게 극복하고 넘어서는가?에 접근해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위대한 작품일수록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바람에 그 또한 쉽지 않다. 이 책 『인생철학자와 함께한 산책길』의 저자 정구학은 학교 졸업 후 30년을 기자생활을 한 분이다. 개인적으로 아는 바가 없지만 유명인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가 인터뷰한 6명의 각각 다른 분야의 철학자(인생철학자)들로부터 들은 내용을 정리해 그들이 몸담은 분야에서 철학적 사고로 무엇을 이뤄냈는지는 명확히 드러나는 팩트이다. 그리고 직업도 잘 드러난다. 표제어에 등장한 '산책길'은 철학자뿐만 아니라 많은 학자들이 생각을 끌어내는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방법이 '산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30년 베테랑 기자의 '촉'이 발동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 책은 저자 정구학이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이자 거장인 큰 어른들과의 인터뷰를 담았다. 노학자 6인은 그들 각자의 인생관을 기초로 하여 인생의 가치와 목적을 정하고 망망대해와 같은 인생의 여정 속에서 때론 거친 풍랑과 파도를 넘어서며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고 저자는 밝힌다. 그것은 그들의 연구나 사고가 외부적으로 인정을 받은 인물들과의 인터뷰이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선정된 분들과의 인터뷰에서 '인생철학'이란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은 저자가 의도적으로 그들의 답변을 끌어낸 것인지, 아니면 인터뷰한 이후 나온 내용을 종합해서 판단한 점에 근거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인생철학이란 용어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개똥 철학'이란 의미를 넘어선 진정으로 삶에 대해 사유하고 분석해 나온 자신의 이념을 추구하고 유지한 분들은 분명하다. "이 책은 그 항해의 나침반, 인생의 지도와 같이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여섯 번의 인생 수업을 담았다"고 지적한 저자의 말로부터 이해될 문제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 책에는 자연과학자부터 인문학자와 통섭학자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도 다르고, 인생의 여정과 학자로서의 성과도 다르다. 그럼에도 그들은 공통적으로 ‘온전한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며 삶의 가치와 의미를 지키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은 그들이 매일같이 지키며 실천하는 생활의 규칙과, 타인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지켜야 할 인생의 정도(正道), 그리고 세상풍파 속에서 ‘나’를 지켜주는 굳건한 인생철학을 생생한 목소리로 전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이 책의 인터뷰는 모두 산책길에서 이뤄졌다. 매일 오후 똑같은 시간에 공원을 산책했던 칸트가 사고 체계를 정리했듯이, ‘걷는 자만이 생각할 수 있다’는 명제를 생각하며 여섯 어른들과 함께 길(路)을 걸으며 또 하나의 길(道)을 깨닫는 여정을 함께했다. 이시우 천문학자는, 천문학을 불교적 관점에서 해석하며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고 말한다. 별은 한마디로 부처라고 말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윤동주의 별에서도 생텍쥐페리의 별에서도 생각해보지 못한 독자로서는 당황스럽고 이색적이지만 다음말에 주의를 기울인다. ‘무위(無爲)로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별이 알려주는 철학이라고 천문학자 이시우는 강조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시우가 천문학을 불교적 관점에서 해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문학의 눈으로 자연과학을 바라본 것이라고 풀이한다. 그는 인간과 지구와 태양의 구성 성분을 놓고 초신성이 폭발하면서 방출된 물질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별은 한마디로 부처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 때문에 끊임없이 채우려는 인간들은, 별처럼 조절하며 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는 것이다. 별이 살아가는 원리를 깨닫기를 바라는 천문학자의 바람이 별은 부처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해 낸다. 별이 무위적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조작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자연적인 상태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다 수용하고 적응하면서 살아간다는 것. 반면에 인간은 조작을 많이 한다. 인간의 욕심 때문인데, 조작은 대체로 자기중심적이다. 유의적인 것을 버리고 무위적인 세계로 나아가려면 별을 봄으로써 별의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음을 밝힌다. 탐욕을 버리고 남과의 경쟁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또 강신익 의철학자는 "우리 몸은 누더기 상태의 불완전한 생물체"라고 말하며, 왜 아프지 말아야 하냐고 반문한다. '의철학'이라는 말은 사실 처음 들었다. 인터뷰에서 강신익 의철학자는 ‘health’는 치료와 예방이지 건강이 아니며, 우리가 생각하는 건강은 미병(未病), 즉 아직 병이 나지 않은 상태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독자로서는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20세기에 와서 평균 수명이 2~3배 늘어났는데 모두 의학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주 일부만 맞는 이야기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손을 씻는 위생과 영양 공급이 3분의 2 이상의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그러니 의학이 기여한 바는 3분이 1 이하라고 설명한다. 요즘 코로나 팬데믹 시기여서 '면역'에 관한 정의도 의철학자 입장에서 새롭게 내놓는다.(독자로서 새롭다는 의미다) 그에 따르면 면역은 강하고 약함이 아니다. 적절과 부적저로 봐야 한다. 아토피에 걸린 아이들은 면역력이 지나치게 과한 것이다. 면역력이 지나칠 경우 외부 세균이 우리 몸에 들어와 공격할 때 오히려 면역세포들이 과민하고 과다하게 반응하여 외부 세균만 공격하는 게 아니라 내 몸 세포도 공격한다. 이론 인해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어려서부터 흙도 만지고 하면 외뷰 세균에 점점 적응이 되는데 말이다.
의철학자는 또 하나의 가설도 내놓는다. '기생충 가설'이다. 우리 몸속에서 감염을 막는 유익한 기생충마저 없어지면서, 또 기생충에 맞서 수만 년에 걸쳐 발달한 우리의 면역 체계가 상대할 기생충이 없어지자 우리 몸을 건드리기 시작하면서 아토피 같은 병이 생겼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강신익 의철학자와의 인터뷰에서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일반 의학 상식과는 다른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츰 그의 말을 이해하다 보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털어놓는다. 우리가 과도하게 건강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성찰이 필요할 듯하다.
조장희 뇌과학자는, 뇌는 ‘감정을 집어넣은 컴퓨터’라고 정의한다. 인간 생각의 90%가 감정의 산물이라며, 감정을 조절하는 절제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뇌도 근육처럼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며, 나이 듦이 아니라 쓰지 않을수록 쇠퇴한다고 강조한다. 조장희 뇌과학자의 인터뷰에서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말을 많이 듣는 저자는 우리 몸의 각 부분을 통솔하는 기관이고, 신경계의 최고위 중추기관임에 틀림없어 뇌과학자에 관심이 있었나 보다. 특히 요즘 부쩍 늘어난 치매나 파킨슨 환자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의학계에선 "뇌는 아직 신(神)의 영역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저자는 정신이란 무엇인가, 의식이란 무엇인가, 마음이란 무엇인가, 인간 정신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등에 관한 관심이 컸다고 한다.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의 열쇠가 바로 뇌의 어딘가에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이미 뇌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시체의 뇌를 해부했다. 이처럼 인류는 뇌를 캐보려는 탐구를 계속해오고 있다.
저자는 이 세계적인 뇌과학자에게 "걸으면 뇌에 자극을 줘서 뇌가 살아난다"는 말에 대해 묻는다. 이에 조장희 뇌과학자는 "심장에서 나오는 피의 20%가 머리로 간다. 뇌의 무게는 몸무게의 2%밖에 안 된다. 그러니까 운동을 하면 뇌가 다른 신체 조직보다 10배의 혜택을 받는 셈이다. 운동하면 팔다리가 튼튼해지고 알통이 나오니까 좋아하는데, 그것은 부수적으로 생기는 것이다. 모엇보다 뇌가 좋아지고, 걷거나 뛰어서 뇌에 산소도 많이 공급하고, 영양도 많이 공급하면서 늙어서도 알츠하이머 병이나 파킨슨 병도 안 걸리고 좋다. 심지어 술을 많이 마셔서 손상된 뇌도 회복할 수 있다"는 말에 독자의 귀를 의심하기도 했다. 독자는 의사로부터 술을 많이 마시면 뇌(전두엽)이 손상돼 알코올성 치매 등을 일으키기도 하며 한 번 손상된 뇌세포는 재생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바가 있어서다. 뇌과학자는 또 명상과 예술 감상 등이 뇌에 크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백종현 칸트철학자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행복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임을 인터뷰를 통해 알려준다. 인간의 존엄성은 교환가치가 성립이 안 되는 ‘대체 불가’에 있다는 것이다. 또 행복 추구가 도덕과 충돌할 때는 행복을 피해서 도덕을 우선시하라고 그는 강조한다. 윤석철 경영과학자는 복잡하게 사는 현대인들이 강해지려면 거꾸로 단순화하라고 강조한다. 조직이나 사회뿐 아니라 개인의 인생 경영에서도 이 원칙을 추구해야 비로소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복잡한 것은 약하고, 단순한 것은 강한 게 경영의 이치라고 그는 강조한다. 이어령 문학평론가는, 과학자 뉴턴을 ‘바보’ 라고 말한다. 사과가 떨어지는 중력의 법칙은 알았지만, 사과씨앗이 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올라가는 생명의 법칙은 몰랐다는 이유에서다. 과학과 자본주의가 놓친 ‘생명자본주의’를 논하며, 세상이 과학만이 아닌 정신적인 조화를 꾀해야 인류가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나면 노학자이자 인생철학자인 6인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메시지를 만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걸어온 인생 탐구의 길은 각각 달랐지만 한곳에서 만나기 때문이란다. 바로 인생의 위기 순간에 어떤 지혜를 발휘할 것인가이다.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서 풍랑을 만날 때에는 먼저 자신을 들여다보라고 제안한다. 지금의 자기 모습은 자기의 과거가 축적된 모습이기 때문에 때론 불편할 수도 있고 때론 외면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그럴 때에는 더더욱 ‘자기가 살아온 삶을 이해하고, 지금의 삶을 인정할’ 용기를 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 실패했던 나도, 방황했던 나도, 좌절했던 나도 회피하지 말고 응시하면서 말을 걸어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인새의 좌표와도 같은 진리를 깨닫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들 역시 삶의 세파 속에서 힘든 고비를 맞았고 역경을 겪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면서 인정하기 싫은 자신의 삶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였다. 이어서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 순간에 진정한 자아가 보였다는 것이다. 자신을 인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울 앞에 보이는 자화상을 인정하고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저자는 이 인터뷰집을 통해 부디 독자들도 자기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이해하고 인정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자기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행복 추구가 도덕과 충돌할 때는 피해야죠. 예를 들면, 내가 감을 먹든 떡을 먹든 상관없어요. 내가 감을 먹는데 남의 감을 따먹으면 안 되죠. 행복이 최고 가치라면 다른 것이 종속되죠. 행복하게 살지 말라는 게 아니라, 도덕 가치가 위에 있다는 거예요. 내가 고통을 받더라도 인간의 도리라면 고통을 감내해야죠."(p.166)
저자 : 정구학
충남 예산 출생. 환일고와 한국외대 독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리건대 방문교수(연수)를 다녀왔다. 신문기자로 30여 년간 취재 현장을 돌아다니며 경제, 정치, 사회와 학계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여러 사람을 접하면서 ‘사람은 다르면서도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인간 본성에 대한 깨달음이다. 삶의 현장에서 뛰고 있는 기업가, 세상에 지식을 전하려는 교수, 갈등을 해결하려는 정치인, 각박하게 살아가는 민초들…. 사회 구성의 사슬 속에서 각각 연결되어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각각의 고민과 메시지를 들어 전달하는 기사를 쓰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인간의 연원과 역사, 지적인 능력의 한계, 앞으로 전개될 우주의 역사 등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해당 분야 철학자와 전문가들을 만나 물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기자로서 세상에 ‘소금’ 역할을 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부족한 능력과 게으름을 극복하려고 마라톤을 뛰면서 소금기만 잔뜩 흘리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