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리트의 껍질
최석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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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마그리트의 껍질』은 사고로 최근 2년 동안의 기억을 잃어버린 회사원이 기억을 되찾아가려는 노력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 이야기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제목 중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와 화가가 즐겨 그리는 사과를 모티프로 했다. 이 소설은 인간의 폭력성을 통제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는 자들과 그들을 쫓는 기억 잃은 주인공 간의 쫓고 쫓기는 미스터리 스릴러이다. 이 소설은 정신의학, 뇌공학, 심리학, 문학, 미술 분야가 한데 어우러져 저자가 그리려는 세계에 한 발씩 다가서는 구성을 보인다. 주인공 강규호가 어느 날 눈을 뜨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본 것은 천장의 하얀 형광등이었다. 사고가 있기 전 기억은 칼로 도려내진 것처럼 깨끗이 사라졌다. 강규호는 사고로 최근 2년간의 기억을 잃었다. 퇴원하며 소개받은 정신과 의사는 '역행성 기억 상실'이라고 하지만 기억을 찾을 만한 단서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 11. 21 ~ 1967. 8. 15)는 벨기에의 화가. 쉬르레알리슴 운동에 참가했고, 전후의 팝 아트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1927년 쉬르레알리슴 운동에 참가했고, 처음에는 키리코풍의 괴상한 물체나 인간끼리의 만남 등과 같은 풍경을 그렸다. 1936년경부터 이미 데페이스망보다도 고립된 물체 자체의 불가사의한 힘을 끄집어 내는 듯한, 독특한 세계를 조밀하게 그리기 시작했고, 또한 말과 이미지를 애매한 관계에 둠으로써 양자의 괴리를 드러내 보이는 방향도 보여주었다. 「이미지의 속임」(1928~1929, 로스 앤젤레스 카운티 뮤지엄), 「의외의 대답」(1933, 브뤼셀, 왕립미술관), 「복제불가」(1937, 로테르담 보이만스 반 뷰닝겐 미술관), 「사람의 아들」(1964, 개인소장)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복도 벽에 걸린 전신 거울을 빤히 바라보았다. 담당 의사는 기적이라고 말했다. 한강 하류의 갈대가 무성한 기슭에서 발견돼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땐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왼쪽 무릎 관절과 9번, 10번 갈비뼈 골절, 뒤통수의 깊은 상처, 저체 온에 의한 쇼크, 의식 불명. 최악의 상태였다.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본 것은 천장의 하얀 형광등이었다. 너덜너덜해진 몸뚱이는 정육점에 전시된 포장육처럼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몸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뼈는 붙었고 근육은 다시 탄탄하게 힘을 얻었다. 뒤통수의 수술 자국도 잘 아물었 다. 오늘은 다리 깁스를 풀었다. 다음 주면 퇴원이다. 모든 것은 산책하는 절름발이 철학자처럼 천천히, 하지만 견고하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한 가지만 빼고는……."

주치의인 박석준 정신과 의사는 일상생활 중에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그때마다 기록하라고 노트 한 권을 건넨다. 노트의 표지에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같은 허공에 뜬 채 껍질이 반쯤 벗겨진 사과가 그려져 있다<사진 참조>. 이 책에 표지에 있는 그림이다. 강규호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노트에 일상을 모두 기록한다. 그러던 중 집 화장실에서 비밀 벽을 찾게 되고, 숨겨진 스냅 사진과 소형 금고를 발견한다. 하지만 사진 속 여자가 누군지, 금고 비밀번호가 무엇인지, 금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과 의사의 조언에 따라 기억의 조각들을 찾으며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던 중 그는 동네 편의점과 책 대여점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기억을 잃기 전 자신은 즉석 도시락을 자주 먹었고 콜라를 지나칠 정도로 마셨으며 엄청난 독서광이었다는 것이다.

 


 

사고가 있기 전 기억은 칼로 도려내진 것처럼 깨끗이 사라졌다. 두개골 속 말랑말랑한 대뇌피질이 마치 해면처럼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것만 같다. 서른둘 인생에서 2년이 송두리째 지워져 버렸다. 사라진 기억 속에 소중한 것이 있지는 않았을까. 날 지탱하던 무엇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햇볕이 따듯하게 데워놓은 병원 벤치에 앉아 온종일 생각했다. 기억이 있었을 자리에 온갖 상상과 추측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일상의 기억은 그대로 남았다. 몇 년째 계속 사는 투룸, 다니던 직장, 하던 업무, 동료들, 늘 들르는 편의점, 주말이면 산책을 하는 공원과 뒷산, 출근 때마다 마주치는 옆집 여자 얼굴, 사고가 나기 전 구매한 노트북의 가격과 판매점 사장의 얼굴까지도 또렷이 생각났다.(p.10) -「1장. 기억의 흔적」 중에서

강규호는 그렇게 기억을 잃은 채 회사로 다시 복귀하여 회사-집-편의점-책 대여점을 오가는 무료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강규호는 누군가로부터 매일 미행당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초소형 핀 카메라를 가방에 설치하여 자신을 쫓는 남자를 촬영한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부터 머리를 다쳐 기억을 상실한 환자가 성격이 반사회적 정신장애, 이른바 '소시오패스'와는 다르다는 말을 해준다. 주인공 강규호가 가끔씩 마음속의 공격성에 대해 자신의 성격 변화인지 단순한 기억 상실에 따른 데서 오는 부작용인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데서 오는 혼란을 호소하는 부분에서 의사의 입을 빌려 설명한다.

"가끔 반사회적 정신장애가 나타날 순 있긴 한데 그건 성격이라기보다 일종의 마음의 병이니까 다른 경우라고 봐야 하겠지요. 정신의학, 심리학 분야에서 〈DSM〉이라는 것이 있어요. 우리말로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이라는 것이라는 책인데 미국 정신의학회가 합의한 모든 정신장애를 정의하고, 분류해 전문가가 따라야 할 진단 기준을 제공하는 일종의 가이드북입니다. 그 책은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정의를 이렇게 내립니다. '15세 이후에 시작되고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거나 침해하는 광범위한 행동 양식이 있고 다음 일곱 개 중 세 개 이상의 항목에 해당한다.(p.51)

 


 

작중 의사의 말에 따르면 소시오패스와 같은 정신장애는 7가지의 행동 양식을 보인다. ① 사회규범을 지키지 못한다. ② 사기성이 있다. ③ 미리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④ 쉽게 흥분하며 공격적이다. ⑤ 타인의 안전을 무시한다. ⑥ 무책임하다. ⑦ 자책할 줄 모른다. 소위 정신병이라 불리는 병증은 알아내기가 간단하지 않아요. 뇌에서 작동하는 병리 생물학 기제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게 아직은 너무 적고 동작 원리도 대체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규호는 단편화된 기억의 퍼즐을 조금씩 맞춰 나가고, 더 많은 기억을 찾기 위해 그동안 빌렸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동료의 도움으로 예전 회사에 다시 복직하게 된 강규호는 회장님의 비서 차수림과 가까워진다. 회장과 차수림은 앞으로 일어나는 사건에 주요 인물들이다. 단조로운 삶을 바꿔 보기 위해 강규호는 차수림을 쫓아 주말마다 봉사 활동을 다닌다. 몇 번의 만남 후 차수림은 강규호에게 두 가지 부탁을 한다. “콜라를 마시지 말 것.” 어떤 상황에서도 화내지 말 것.”. 그렇게 둘은 사내 연애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얼마 후 차수림은 바람과 같이 사라진다. 차수림이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회식 중 김형석 사장은 술에 취한 채, 강규호를 향해 '마그리트의 껍질'이라는 이상한 말을 하며 횡설수설하다가 곯아떨어진다.

 

“자네 같은, 껍질이?”

‘껍질?’ “그거 뭐라 그랬지? 사과 껍질, 그거.”

‘사과 껍질?’ “마그……. 뭐더라. 마가린? 마그릿? 마그리트. 그래, 마그 리트의 껍질.”

‘마그리트의 껍질?’ 3초? 길어야 5초를 넘지 않았을 것이다. 깊은 이마 주름, 꽉다문 입술, 일그러진 눈매. 이병우 팀장의 얼굴이 얼음처럼 경직됐다.

찰나였을 뿐이지만, 난 모든 것을 보았고 기억했다. 망막에 맺힌 이미지는 내 시신경에 의해 정보로 바뀌었다.(p.79) - 「1장. 타인과 그의 뱀 그림자」중에서

 

 

미행자가 자신의 방 사진 속 미스터리 여자와 매우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강규호. 사진 속 여자, 비밀 금고, 잃어버린 과거, 주변인들의 수상쩍은 행동,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미스터리한 일들 그리고 노트에 그려진 사과 껍질……. 그리고 조금씩 되살아나는 기억들. 마그리트의 껍질은 강규호의 잃어버린 기억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과연 그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 자신을 둘러싼 미스터리한 일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이제, 마그리트의 껍질을 벗어나기 위한 강규호의 기록과 진실을 찾는 시간으로 함께 들어가 볼 시간이다.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그건 자기가 사이코패스인 줄 아는 사이코패스래요. MRI로 찍은 자기 뇌 사진을 보고 자신이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졌다는 걸 알게 된 어느 뇌 과학자의 말이에요.”

(중략)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지고 태어난 자는 애초에 타인의 감정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해요. 왜 슬퍼하는지, 왜 기뻐하는지, 왜 아파하는지, 왜 그리워하는지, 그런 것들을요. 대신 내겐 똑똑한 뇌가 있죠. 학창 시절부터 한 번도 1등을 놓쳐본 적 없고 언제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어요. 난 끊임없이 관찰하고 학습해 왔어요. 타인의 감정을 말이죠. 자원봉사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어요. 어느 때 인간의 감정이 바뀌는지, 어떻게 반응을 보이고 행동해야 하는지, 언제 슬퍼하고 분노하고 기뻐해야 하는지. 미술도 그런 것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고요.”(p.253) - 「4장. 마그리트의 껍질」 중에서

 


 

이 소설은 앞서 언급한 대로 인간의 폭력성을 통제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는 자들과 그들을 쫓는 기억 잃은 주인공 간의 쫓고 쫓기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소설은 '마그리트의 껍질'이라는 초현실주의 화가가 그린 그림의 일부를 제목으로 삼고 있고, 기억 잃은 주인공이 기억을 되찾아가는 과정과 인간의 본성에 숨겨져 있는 잔혹성과 폭력성 등을 약물로 제거해 '안전한 사회'로 만드려는 현대 과학의 오만함을 지적하하기도 한다. 자칫 예술 지상(至上)의 노력도 보이지만 결국은 기억이나 환경이 인간의 선한 본성을 추구하는 양심에 의해 제어된다는 점을 보여주려 하는 저자의 의도도 엿보인다. 이를 위해 껍질이 바닥을 향해 물처럼 흘러내리고 안이 텅 비어 있는 푸른 사과를 통해 무언가 꽉 막힌 답답한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묘한 여운을 모티프로 사용함으로써 구성이 복잡해지긴 했다. 주제보다는 소재가 더 두드러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 모두 겉을 감싼 껍질을 벗겨내면, 사실 똑같이 생긴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암호명처럼 사용된 '마그리트의 껍질'(비밀 프로젝트)은 영혼의 껍질을 의미한다. "강규호라는 인물은 겉으로는 완벽한 모범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의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취미는 주기적으로 관찰됐다. 규칙적으로 길고양이나 유기견을 붙잡아 인적 드문 곳에서 죽을 때까지 고문했다."(p.237) 이 점이 강규호가 실험 대상이 된 것이다. 반전이다. 반전은 다시 반전을 부른다. 결국 약물을 통해 반사회적 인물을 제거하려 한 사람이 반대로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마지막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직후 이 소설의 중심 인물 중의 한 사람이 한 말에서 복잡함에서 탈피한다.

 

"그래서 피실험자를 껍질이라고 불렀군요."

회장은 비웃었다.

"아니, 아니지. 정반대야. 사이코패스는 껍집을 벗겨내면 그 안에 영혼이라는 것이 없어. 텅 비어 있을 뿐이지. 그저 껍데기일 뿐이야. 인간의 형상을 닮은 껍데기, 가죽 피부가 덮인 마네킹,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도 모르는 플라스틱 인형."(p.245)

 

저자 : 최석규

 

LG와 HP를 거쳐 KT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현재는 특허 관련 일을 한다.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오가며 글을 쓴다. 다양한 분야의 경계 허무는 작업을 좋아한다. 선과 악에 관한 연작 중 첫 번째 장편으로 《마그리트의 껍질》을 썼다. 2020년 국가예술지원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소설집 《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출간했다. 2021, 2019, 2015년 과학 소재 장르문학 공모전에 당선, 2019년 무예소설문학상, 2018년 경북일보 문학대전, 2017년 모래톱문학상, 2014년 천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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