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우리 동네 한바퀴 - 우리의 시작은 북촌에서
중앙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이한솔 교사 지음 / 마음의숲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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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하면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서울 양반들이 살던 동네'를 떠올린다. 조선시대 이곳 북촌은 그야말로 양반들이 살던 마을이다. 당시 양반들은 궁궐(경복궁과 창덕궁) 인근에 사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문인들이 주로 살았다고 학교 때는 배운 적이 있다. 궁궐과 궁궐 앞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와 가깝다는 지리적 잇점일 것이다. 임금이 정사를 보는 궁과 대신들이 나랏일을 처리하는 육조(정부종합청사) 근처에 사는 것이 편리해서 형성된 마을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왕족도 벼슬을 하면 이 동네에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한옥(기와집)이 즐비했을 거란 점이 쉽게 짐작되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총독부가 궁에 위치했기 때문에 예부터 벼슬 높았던 양반들은 그곳에 머물러 살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물론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떠났겠지만.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이곳은 한옥 밀집 형태를 잘 간직한 마을로 지속돼 왔다. 이제는 그곳이 민속적인 측면보다는 '관광' 목적이 큰 채로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이곳에 일제 때(1908) 기호학교(중앙고등학교)가 들어섰다. 1908년 을사·정미 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후 국권 상실 상태에서 설립 1년 후 유길준이 교장(융희학교로 개명)에 취임했다.

이듬해(1910)에는 중앙학교로 개칭돼 오늘에 이르고 있는 114년의 유서 깊은 학교다. 이 학교 출신 유명 인사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학생과 교사, 교장까지 수없이 많고 우리나라 독립운동에도 가담한 인사가 많다. 동아일보 창간 사주 인촌 김성수도 이 학교 교장 출신이다.

 


 

아무튼 이 지역은 서울시의 '한옥 유지' 방침에 따라 개발은 물론 증·개축도 잘 허가가 나지 않은 채 한국을 대표하는 마을로 자리잡았다. 유서 깊은 마을 북촌은 모 TV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관광지로서 변모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마 한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곳으로 홍보를 했기 때문이겠지만 이젠 외국인도 자주 찾는 필수 관광코스가 되었다. 이곳은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됨으로써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로 인해 기존 상인들은 비싼 임대료를 낼 수 없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난 모습이다. 북촌 계동이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각종 프랜차이즈가 입점하고, 오래전부터 자리를 지키던 가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 이를 보며 북촌에 있는 중앙중학교의 교사들은 학생들이 삶의 터전인 ‘마을’의 정체성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그래서 마을이 직면한 사회 현안 ‘젠트리피케이션’을 수업 주제로 삼았다.

이 책 『시와 함께하는 우리 동네 한바퀴』는 마을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과 함께 좋은 이웃으로 도와가며 살면서 마을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프로젝트에 따라 시작됐다. 중앙중학교는 학생들이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북촌을 돌아보길 바랐다. 마을결합형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은 마을을 답사하고, 북촌의 정체성을 이루는 가게 스무 곳을 골라 가게 주인들을 인터뷰했다. 살아 숨 쉬는 북촌의 역사를 마주한 학생들은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을 공간의 소중함을 느꼈다. 우리 동네의 소중함을 어떻게 알릴지 고민한 흔적을 중앙중학교 1학년 학생 전원이 쓴 71편의 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다른 지역에서 진학하여, 북촌이 처음인 학생들도 북촌에서의 시작(詩作) 활동을 통해 마을에 뿌리내리면서 이 책이 탄생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젠트리피케이션이란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유동 인구가 증가하여 외부 자본이 유입되면서 기존 상권이 밖으로 밀려나는 현상이다. 2022년 1학기 중앙중학교의 교과 융합 수업의 목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위기 속, 우리 동네의 가치와 정체성 찾기’였다. 해당 주제로 사회, 영어, 국어, 목공예 수업(자유학년제 예술 프로그램)까지 네 과목을 융합한 수업이 이루어졌다. 우선 사회 수업에서 학생들은 우리 동네를 ‘오래된 가게’와 ‘프랜차이즈’로 나누어보고, 마을의 정체성을 이루는 오래된 가게를 골라 지도로 만들어 ‘북촌 스탬프 투어’를 진행하기로 했다. 영어 수업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우리 동네의 가치를 알리고자 영어로 북촌의 가게를 소개하는 글을 썼다. 목공예 수업으로는 스탬프 투어에 쓸 가게 도장을 직접 만들어보았다. 국어 수업은 학생들이 가게를 방문하여 인터뷰하고, 그 공간을 소재로 삼아 시를 쓰도록 했다. 학생들이 나의 삶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삶 역시 시가 될 수 있음을 느끼길 바랐다. 학생들에게 ‘삶이 시가 되는 순간들’을 포착하는 마음의 힘이 생긴다면,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삶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다양한 교과 수업을 거쳐 학생들의 시선은 ‘나의 삶’에서 ‘타인의 삶’으로 옮겨갔다. 타인의 삶, 북촌에 오래 자리했던 가게 사람들의 삶을 두 눈에 담았다. 주민들이 마을을 아끼는 감정을 나누며 마을 공간이 갖는 소중한 가치에 공감했다. 이를 스스로 고민하며 시로 적어내는 과정에서 삶이 시가 되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학생들의 시를 쓰기까지의 진중한 고민과 가게를 인터뷰하며 느낀 점을 생생한 목소리로 만나볼 수 있다.

 


 

계동떡방앗간은 저희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가게예요. 하지만 평소에는 방앗간에서 엄마가 사 오신 떡을 먹을 때 말고는 직접 가보거나 떡을 사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사장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계동떡방앗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사장님이 떡방앗간과 함께 살아온 시간에 대해 알게 되었지요. 계동길을 오가는 사람들도 이 이야기에 대해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계동떡방앗간이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소중한 공간이며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이 떡방앗간에 찾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를 썼습니다.(강여해 학생) - 「계동떡방앗간」 학생 시인 인터뷰 중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도 사장님의 말씀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사장님에게 계동은 삶의 터전이었다. 사실 중학교에 들어오면서 처음 계동을 알게 된 우리들은 이곳을 ‘관광지’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계동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삶의 터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도 중앙중학교에서 3년 동안 학교 생활을 하다 보면, 이곳이 ‘나의 마을’로 느껴지게 될지 궁금해졌다. 비록 내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나의 학교가 있고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는 이곳이 ‘우리 동네’로 느껴지길 기대하며 인터뷰를 마쳤다.(송태성 학생) 「카페공드리」 마을 가게 인터뷰 보고서 중에서

 

마을이 당면한 문제가 학생들의 시에 녹아들면서 북촌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세상에 알린다. 나아가 북촌의 가치를 품은 공간을 노래하며 직접 와서 만나보라 손짓한다. 작품을 읽어본 사람들의 마음은 북촌으로 이끌리고, 이들이 말하는 소중함을 함께 지켜주고 싶어진다. 이렇게 문학은 학생들의, 북촌 마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었다. '우리 동네'를 구석구석 들여다보며 학생들은 익숙함 속에 잊고 지냈던 마을의 가치를 마주했다. 주민들의 마을에 대한 애정과 삶의 애환을 공유하면서 학생들에게도 북촌 마을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싹텄다. 모든 학생이 직접 북촌을 담은 시를 쓰면서 시를 매개로 학교와 마을은 마침내 하나가 되었다.

 


 

19700401(제목)

 

본래 고향은 마산이었다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저 먹고 살아야 했다

서울로 가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거기도 똑같더라

어렵게 배운 게 세탁일이다

뿌리박은 곳이 계동이다

 

쉽게 시작한 건 아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눌러앉아 있다(p.211)

- 「백양세탁소」 (김이제 학생) 창작 시 중에서

 

이 시는 6.25 당시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나 전전하다 계동의 세탁소에 정착한 주인의 사연을 표현한 작품이다. 제목으로 쓰인 〈19700401〉는 백양세탁소 주인이 북촌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해를 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서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고심한 끝에 중앙중학교 1학년 학생들의 손끝에서 여러 시가 태어났다.

 


 

이 책을 내기까지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이끌어온 이한솔 교사가 발간 이후 인터뷰를 가졌다. 두 개의 질문 답변만 독자가 선정해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여기에 함께 싣는다.

 

-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지도하시며 가장 인상 깊었던 학생들의 반응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나요?

* 우리 동네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 현안을 주제로 시 창작 수업을 하다 보니 학교 밖으로 나가는 활동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직접 마을을 돌며 가게의 현황을 파악하고, 사장님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과정이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어려운 과제는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학생들의 눈빛은 학교 밖에서 더욱 빛났습니다. 교실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웃고 떠들면서도,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활동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학생들이 쓴 작품들을 책으로 엮으면서 수업 활동을 진행했던 당시의 기억이 고스란히 떠올랐습니다. 이번 책 출간을 통해 중앙중학교 1학년 학생들 역시 자신의 빛나는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학생들은 시를 쓸 때 어떤 점에 가장 신경 쓰고, 또 힘들어했나요? 이러한 수업을 통해 달라진 점, 시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북촌에 대한 마음가짐에서 이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 학생들은 시를 쓸 때 '나'의 시각이 아닌, '인터뷰어'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했습니다. 학생들은 가게 사장님과 인터뷰를 했던 내용을 기반으로 시를 써야 했는데, 이 부분에서 많은 고민이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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