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 - 8인의 시인, 8인의 화가 : 천진하게 들끓는 시절을 추억하며
김연덕 외 지음 / 미술문화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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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한때 시와 소설을 TV에서의 광고와 드라마로 비유한 적이 있다. 물론 사석에서 한 말이고, CF의 한 장면에 대한 이야기에서 파생돼 나온 이야기지만 지금도 그때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 책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는 미술 에세이로서 시와 그림은 매우 닮은 점이 있다는 의미에서 갑자기 TV 광고 이야기를 꺼내게 됐다. 시는 간결하고 언어로 시인의 마음을 표현하는 문학 장르로서 어쩌면 가장 오래된 문학인지도 모르겠다. 문자로 기록된 최초의 문학은 서사시로서 긴 이야기를 시의 형식으로 썼기 때문이다. 시는 간결한 언어로 표현해야 하므로 상징과 은유 등 비유도 자주 사용되고, 갖은 문학적 수사 방법이 동원된다. 그래서 간혹은 어렵다는 말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의 카메라로 풍경을 찍는다면 사진보다 자세하고 정확하게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림의 시초도 사실은 자연이나 인물에 대한 묘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들었다. 그래서 그림을 자연 모방으로부터 시작된 예술이라고 한다. 이는 문학에서도 차용되는 논리다. 자연이나 화자의 느낌, 감정, 마음 등을 짧게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생긴 장르기 때문이다. 문자가 없었을 때는 구전해야 했기에 간결한 것이 우선이었을 터, 마땅히 짧게 표현하다보니 시가 짧게 의미 전달을 위해 최소한의 단어만 사용하는 문학으로 발전되지 않았나 싶다. 문학 전공자들은 어떻게 배우는지 독자도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시와 그림의 조화라고 해도 될 것이고, 한편으론 화가가 표현하는 바를 시인이 글로 반추해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에세이다. 이 책의 8명의 저자들은 모두 시인들이다. 시인 중에서도 그림을 좋아하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겠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한결같이 그림을 좋아하고, 어떤 시인은 화가의 작품에 일가견을 갖고 있을 정도로 애호가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그림을 직접 그리는 분도 있다 하니 미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는 시인들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예스24 에세이 PD 이나영의 평가도 눈여겨볼 만하다. "8명의 시인들이 각자 친애하는 화가의 그림들을 글로 써낸 책이다. 시와 그림은 말을 줄여 한 이미지로 표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각자의 시절을 관통한 그림들을 시인 각자의 언어로 추억하고, 조우하며 시와 그림이 접촉하는 순간, 엉겨 붙어 내게로 오는 순간을 느낀다."

시와 그림을 나란히 놓고 보자. 단순하게 구분하자면 한쪽은 글로 쓴 예술이고, 한쪽은 선과 색으로 그린 예술이다. 보다 엄밀한 설명도 가능하겠지만 그건 너무도 복잡하고 심오한 세계라 이쯤에서 넘어가 본다. 시와 그림은 자주 한데 엮인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을 줄임으로써 말해지는 무언가가 담겨 있다는 공통점 때문일까? 대상을 구체적으로도 추상적으로도 표현할 수 있지만, 어느 쪽이든 결국 읽고 감상하는 이의 관점에 따라 무한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공통점 때문일까? 아무래도 좋다. 시와 그림은 조용히 우리의 마음을 부수고 깨뜨리고 치유하고 복원한다는 점에서, 이토록 희미한 세상의 한 구석을 한결같이 예리하게 투사해 헤집어 놓는다는 점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이 책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는 이러한 시와 그림을 적나라하게 사랑하고 싶어서 기획된 책이다. 고유한 세계관과 예리하게 벼린 시어로 이미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단단히 각인된 시인 여덟 명이 한자리에 모여 그림을 논했다. 안희연 시인은 특정한 사조로 분류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신비로운 그림 세계를 구축한 스위스 화가 ‘파울 클레’를, 서윤후 시인은 뜨겁게 불타오르는 성정을 우키요에라는 불멸의 장르로 승화시킨 일본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를, 오은 시인은 강렬한 색채를 자유분방하게 사용해 ‘야수주의’라는 사조의 시초가 된 프랑스의 거장 ‘앙리 마티스’를 좋아한다고 털어놓는다. 또 김연덕 시인은 간결하고 깔끔한 선과 색채로 천진하여 더욱 애달픈 연인 연작을 그려낸 프랑스 화가 ‘헤몽 페네’를 골랐다.

신미나 시인은 반 고흐가 존경한 화가이자 순박하고 꾸밈없는 농촌 생활을 화폭에 담은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를, 이현호 시인은 영조와 정조 시대에 활약하며 기인, 미치광이, 주객 등의 별칭으로 전국팔도에 이름을 떨친 조선 후기의 천재 화가 ‘최북’을, 최재원 시인은 풍성한 색채와 영롱한 빛 표현으로 독보적인 화풍을 개척한 프랑스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 ‘피에르 보나르’를, 박세미 시인은 오랜 시간 서로의 예술에 크고 작은 영감을 선사하며 우정을 나눈 한국의 동시대 화가 ‘이소화’를 각각 골랐다. 시인들은 저마다 다른 시선과 언어로 그림을 향유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고른 화가와 그 그림이 시인들의 한 시절을 예리하게 관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안희연 시인에게 파울 클레는 최승자와 더불어 그의 이십 대를 정의하는 아이콘이었다. 그는 한때 “클레의 작품을 보고 신선한 충격에 사로잡혔고 그것을 언어화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나의 시도는 미수에 그쳤다. 제목과 주석만 초라하게 남은 저 광활한 실패를 보라. 아마 시를 쓰면서 처음으로 마주한 장벽이 아니었을까. 모든 자극이 다 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 어떤 그림은 그 자체로 크고 넓어 언어가 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인이 십여 년 만에 다시 만난 클레의 그림에는 허공을 바라보며 소리 지르는 여인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갈 듯 기우뚱한 전나무가, 겁을 집어먹은 듯 처연하게 눈물 한 방울 떨구고 있는 인물이 그려져 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 뒤 시인은 고백한다. “지금껏 써온 나의 시들이 상당 부분 클레에게 빚지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파울 클레에게 무한 존경과 사랑을 아낌없이 쏟아내는 안희연은 시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아니, 시 쓰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청춘을 달려온 시인들에게 그림은 때론 위안을, 때론 공감을, 또 때론 조언을 해주었다고 털어놓는다. 시인이 되고 시집을 펴내며 마주한 고민의 시간과 다양한 인연들 속에서 아파한 이들에게 그림은 때론 사랑을, 때론 상실을, 또 때론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시인들의 한때가 짙게 묻은 그림을 보며 독자들은 시인이 품고 있는 기억의 한 구석을 그들과 공유하며, 그것이 산문으로 발화하는 과정을 찬찬히 따라가게 된다. "클레는 달랐다. 클레의 그림 앞에선 침착하려 해도 휘저어졌다. 단순한데 깊고 골똘했다. 무엇보다 작품 안에서 추상의 역할이 분명하다는 점이 좋았다. 현실을 똑바로 옮겨내는 작업도 소중하지만 내게 보다 위안이 되는 그림은 물컵에 담긴 쇠젓가락처럼 신비로운 굴절이 일어나는 작품들이었다."(p.24)

 


 

또 서윤후 시인은 가쓰시카 호쿠사이를 두고 “이십 대의 방황 속에서 우정을 짙게 나눈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부르며 “마치 언젠가 소식이 끊겨버렸지만 한 시절의 깊은 우정을 나눴던 친구처럼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고 추억한다. 시인은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속 성난 파도를 바라보며, 펄펄 끓어올랐던 호쿠사이의 정열과 갓 시인이 되어 조급하고 서투른 마음으로 안달했던 자신의 이십 대를 병치한다. 김연덕 시인에게 헤몽 페네는 열세 살에 처음 만나 “한낮의 서점에서, 잠깐의 순간에도 그의 연인들에 매혹”되게 만든 화가다. 시인은 “나는 오직 페네를 위해, 책에서 20페이지도 차지하지 않는 그 부분을 읽고 간직하기 위해 그것을 계산대로 가져갔다. 그의 그림은 거의 내가 들고 다니는 노트에 한 낙서 같았고 그게 낙서라면, 내가 태어나 보았던 낙서들 중 가장 이상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고 말하며 유년 시절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던 페네의 그림을 추억한다. 시인은 열세 살 꼬마에서 스물여덟이 되었고, 그 사이 시인에게 찾아온 사랑들의 “겉과 안은 여전히 아프고 어렵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때, 페네가 그린 천진한 연인들은 다시 부활하여 시인과 조우한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인 시와 그림. 글과 색. 펜과 붓. 문장과 색채. 그리고 시인과 화가. 이 둘을 나란히 놓고 감상함으로써 우리는 두 개의 예술이 서로를 흡수하여 하나가 되는 합일의 예술을 목격한다. 어쩌면 글로 그림을, 그림으로 글을 100퍼센트 완벽히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능성의 결핍이 그들을 계속해서 책상과 이젤 앞에 앉히고, 끊임없이 쓰게 하고 그리게 하는 것 아닐까? 시인과 화가가 접촉한 순간은 한 편의 산문이 되어 지금 여기에 도착했다. 이 글은 또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생경한 촉감을 남길 테다.

 


 

오은 시인은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마티스에 대한 꽤 깊은 조예가 드러난다. 시인은 마티스의 그림을 마주할 때마다 춤추는 기분이 든다고 고백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춤추자고 적극적으로 손 내미는 사람을 마주한 기분이라는 것. 몸을 움직이는 데 '젬병'인 시인조차 신체 곳곳에 분포한 신경이 반응한다. 발을 살짝 떼도 괜찮지 않을까.란 표현으로 몰입하는 그림임을 강조한다. 손을 슬쩍 머리 위로 올려도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란다. 시인은 마티스의 회화에서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 이 느낌이라고 말한다. 직전이 가져다주는 설렘과 아슬아슬함을, 한창때에 번져 나오는 흥분과 희열을 시인은 도무지 외면할 수 없다고 느낌을 말한다. 그러나 마티스의 회화는 결코 넘치는 법이 없다는 데 와선 흥분을 슬쩍 감추기도 한다. 신체는 캔버스에 스며든 듯 안정적이고 신체가 표현하는 동작은 날렵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자연스럽다는 시인의 표현으로 독자는 마치 진짜 춤을 추는 사람들 앞에서 감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은 시인의 마티스에 대한 애정은 그의 작품성을 알아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수많은 마티스의 작품에 대해 보고 또 보면서 많은 생각을 정리한 듯하다. 예술 작품을 오래 보면서 사유를 통해 자신이 표현하는 글까지 이끌어내는 데서 "역시 시인은 다르다"는 독자의 감탄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마티스는 회화 작업을 할 때 단순화를 중시했다. 무엇을 단순화한다는 것일까? 형태를? 색깔을? 입체감을? 사실상 모든 것이었다. 회화 작업을 할 때도 그는 스케치가 지닌 본래의 날렵한 미덕을 지키기 위해 붓을 들었다. 붓을 드는 일은 스케치를 채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덮어버리는 일이다. 연필선이 드러나는 작품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채색 작업은 원래의 구상을 뚜렷하게 하는 작업이기 대문이다. 구상이 뚜렷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처음의 의도는 희미해진다."(p.83)

 


 

시간이 지연될수록 나는 내 공간에 그녀의 그림을 걸게 될 순간을 더 간절히 기다리게 된다. 소화의 얼굴을 본 시간보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이제 훨씬 더 많게 되었지만, 그녀에 대한 나의 애정이 더 깊어진 것처럼. 그녀의 그림에 대해서도 같은 마음이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때, 그리고 그녀의 그림이 내 공간에 존재하게 될 때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웃게 된다. 이것이 작은 꽃의 기쁨.(p.240) - 「박세미 × 이소화」중에서

 

저자 : 김연덕

199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으며 2018 [대산대학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재와 사랑의 미래』가 있으며 곧 다가올 성탄절을 내 생일처럼 기다리고 있다. 겨울과 산책과 꽃을 사람처럼 사랑하는 사람.

 

저자 : 박세미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건축과 건축역사·이론·비평을 전공했다.

 

저자 : 서윤후

1990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다.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2009년 [현대시] 신인 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과 『휴가 저택』, 『소소소(小小小)』,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그리고 여행 산문집 『방과 후 지구』, 『햇빛세입자』, 만화 시편 『구체적 소년』 등을 펴냈다. 제19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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