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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해링 ㅣ 베이식 아트 2.0
알렉산드라 콜로사 지음, 김율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2년 8월
평점 :
미국의 미술에 대한 독자의 지식은 거의 문외한에 가깝다. 서양 미술사를 봐도 대부분 유럽 중심의 미술사이고 마지막에 미국의 미술이 조금 기술되는 형식이라 접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 미국의 미술은 근대 이후 현대 미술 중심이어서 그림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독자가 아는 미국의 미술가는 '앤디 워홀' 정도이니 스스로 생각해도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지만 미국의 미술 작품을 전혀 접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이 분석하고 있는 『키스 해링』도 미국 미술가다. 이 책은 그의 작품과 작가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한 책이다. 키스 해링의 작품은 독자 입장에서는 이미 우리나라 각종 상품에서 이미지를 이용하고 있어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많이 보아왔다.
국내 최대의 화장품 업체에서 사은품으로 쇼핑백이나 파우치 등을 만들어 제작할 때 키스 해링의 작품을 넣어서 화장품을 구입하고 사은품으로 받은 기억이 있다. 바탕은 붉은색 바탕에 아기와 개를 각각 형상화해 넣은 작품이어서 인상적이었다. 또 반대로 짙은 회색 바탕에 빨간 아기와 개 형상화 그림이 들어간 것도 있어 두 종류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독자는 기억하고 있다. 이 책에는 그 작품에 대한 설명도 실려 있다. "오늘날 해링의 초기 작품은 하나의 도상으로 양식화되어 그의 이름을 가장 먼저 연상시킨다. 빛나는 후광 속에서 기는 아기와 주둥이가 모난 개가 짖고 있는 그림을 예로 들 수 있다."(p.8)
이 책은 독일의 현대 미술 전시 큐레이터 알렉산드라 콜로사가 썼다. 이에 따르면 1980년대 뉴욕 미술계의 주요 인물인 키스 해링(1958-1990)은 거리 예술, 그래피티, 팝 감성, 만화 요소들을 혼합한 독특하고 기억에 남는 특유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두꺼운 검은 윤곽선, 밝은 색조, 역동적인 인물상, 공적인(때로는 불법적인) 개입, 조각상, 그리고 캔버스와 종이에 그린 작품들은 즉시 20세기 시각 문화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뉴욕 지하철역에 그린 첫 분필 드로잉부터 유명한 “빛을 내는 아기” 심벌, 스와치 시계와 앱솔루트 보드카와의 협업까지, 해링의 작품은 1980년대 뉴욕의 비이성적인 노동 윤리의 상징이자, 사회·정치적으로 독특한 인식을 자아냈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밝고 장난기 넘치는 미학 뒤에서 인종차별, 자본주의, 종교적 근본주의와 뉴욕 게이 집단에서 에이즈가 갖는 영향력 등 크게 논란이 되는 사회정치적 문제를 작품에 담았으며, 1990년 에이즈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자신의 운명 또한 예고했다고 한다. 저자의 생동감 넘치는 작품 소개를 통해 우리는 활기찬 뉴욕이 배출한 가장 중요한 예술가 중 한 명인 키스 해링의 시각 예술 언어와 강한 정치적 신념을 살펴보며, 10년 가량 크게 주목받고 떠난 그의 역동적인 삶과 혁신 정신을 만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은 모두 6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예술은 삶, 삶은 예술」, 2장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는 법」, 3장 「예술, 상업 그리고 어린이」, 4장 「성과 범죄」, 5장 「대단원」, 6장 「키스 해링(1958~1990) 삶과 작품」으로 돼 있다.
「예술은 삶, 삶은 예술」에서는 키스 해링의 어린 시절과 가정 환경, 미술에 입문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초기의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실려 있다. "해링은 자신의 개성과 예술을 하나의 작품으로 통합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있었다. 해링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선이다. 그의 작품에서 선은 대상의 본질에 충실하도록 형식적으로 축약된 것으로, 화면의 한정된 공간 안에 적절한 비율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그 선은 항상 연속적이며, 우연을 법칙을 따르고, 외곽선이 되어 형상을 이루고 결국에는 상징이 된다. 무엇보다도 관람자는 작가가 작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짧은 순간의 응시만으로 충분히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해링의 작품이 가지는 특별한 혜택은 이런 강렬한 그래픽 양식을거대한 상상의 세계와 결합한 작가의 능력이다."고 분석한다. 그의 탁월한 화가로서의 인식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작가로서의 역량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작품 속의 인물이나 형태는 연속적으로 변형되어 새로운 창조물로 변화하는데, 이는 소묘가이자 화가, 조각가로서 해링이 지닌 작가적 능력을 증명한다고 설명한다. 천부적이라기보다 노력의 결과이며, 끊임없는 예술적 열정에서 비롯된다고 본 것이다. "해링의 지속적 탐구는 작품의 변화하는 화면과 관련된 실험이 병행되었다. 작가가 선택한 화면이라면 어떤 것에도 벽이나 옷가지, 자동차나 비행선,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이 또는 캔버스, 가공되지 않은 면이나 비닐 등에서 해링만의 특징이 완벽하게 위력을 나타낸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강조한다. 해링의 선은 스케치나 습작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무의식성과 확신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책을 쓰기 전 해링의 예술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크게 어렵지 않았다고 밝힌다. 그도 그럴 것이 해링의 작품 중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해링은 주변에서 본 것들을 모사하고 통합했으며, 당대의 민감한 쟁점에 대한 확고한 직관으로 미국 사회를 관찰했다. 왜냐하면 해링은 생산자인 동시에, 특정 세대 특정 생활방식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카툰과 만화를 보며 성장했기에, 미국인의 '본심'을 파악할 수 있는 예리한 감각을 개발하는 데 최고의 전제조건을 누린 셈이라고 말한다. 이로써 해링은 스파르타식 예술 수단으로, 텔레비전 매체의 노출된 지위라는 보편적인 양상을 지적하는 데 성공했다고 언급한다. 독자로서는 '스파르타식 예술 수단'이라는 표현에서 독서가 막힌다. 처음 듣는 용어다.
어쩔 수 없이 네이버 사전을 찾는다. 정확한 설명의 같은 말은 없다. 다만 '구원 수단으로서의 예술'(니체 『우상의 황혼』의 해제)이란 항목에서 "삶 의지를 부정하는 예술은 구원의 수단이다. 의지의 중단 없는 충족에 대한 추구와 그로 인한 고통으로부터의 구원 수단인 것이다. 하지만 이때의 구원은 '찰나'에 불과한 구원일 뿐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니체의 표현대로 '영원한 구원'에 이르는 수단을 찾고, 그 수단을 바로 금욕을 통한 의지욕구의 포기 및 자아의 불교적 포기에서 발견한다. 니체는 이것을 그리스도교적 사유방식과 유사한 것으로 이해한다."란 해재가 적혀 있다고 기술돼 있다.
저자는 해링 작품의 하나인 성 주제를 강조한 드로잉은 해링의 예술과 삼이 얼마나 밀접한지를 보여주는 증명으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해링이 학생이었던 1979년 제작해 케니 스카프에 헌정한 작품은 그래프지에 그린 것으로 수많은 동일한 상징들로 뒤덮여 있다. 이 상징을 자세히 살펴보면 세 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남성의 성기로서 귀두 부분이 빨간 색연필로 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상징들은 종이의 가장자리 선에 맞추어져 서로 겹치거나 닿지 않게 나란히 배열되었다. 같은 해 해링은 같은 주제를 한 번 더 다루었다. 이번에는 검은 종이에 그린 대형 작품으로, 하얀색 초크로 세밀하게 그린 작은 남성 성기들은 압축된 평면성으로 장식 문양처럼 보인다.
저자는 또 해링의 작품의 주제 성향은 일반적이거나 사회비평적인 측면으로 제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춤과 같은 개인적 관심사의 기록으로도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춤과 음악은 해링에게 있어 창조의 필수 요소였다. 그는 작업실에서 일할 때, 볼륨을 최대한으로 올리고 힙합 음악을 듣곤 했다. 또한 해링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클럽인 파라다이스 개러지에 가는 것이 주말 의식의 하나일 정도로 매우 열정적인 춤꾼이기도 했다. 외국 여행을 갈 때면 가능한 한 토요일 저녁 시간에 맞춰 뉴욕으로 돌아오게 일정을 짰다. 작품의 춤추는 장면들은 이런 열정에 대한 증거이다. 해링의 작품들은 힙합, 브레이크 댄스, 일렉트릭 부기 정신에 대한 반영이다.
삶의 마지막 기간에, 해링은 자신의 예술 세계를 그 이상의 복잡한 것으로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는 상황의 심각한 변화에서 기인된 작품의 더 많은 요구들을 점점 더 감지했다. 해링은 작가 윌리엄 버로스의 작품을 학창시절부터 높이 평가했는데, 1987년에 그를 처음 알게 된 이후 교류를 이어왔다. 해링은 윌리엄 버로스와 두 가지 기획을 함께 진행했다. 해링은 『계시록』이라는 제목으로, 1988년에 출간된 버로스의 글에 10장의 실크스크린을 더해 화집을 제작했다.
저자 : 알렉산드라 콜로사
독일의 트리어에서 미술사와 독일 문학, 경영학을 공부하여 2003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뒤렌에서 자유기고가이자 현대미술 전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역자 : 김율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서양학과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