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 - 현대 의학이 놓친 마음의 증상을 읽어낸 정신과 의사 이야기
앨러스테어 샌트하우스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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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100세 시대'라고 할 만큼 인류의 수명은 크게 늘었다. 인류 수명 확장에는 무엇보다 의학의 힘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누구나 다 안다. 과학 발전과 함께 서양 의학은 과학에 기대어 엄청난 발전을 거듭해왔고, 치료할 수 없는 병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의학계는 발전해 왔다. 누구나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고, 의사가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고 진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의사는 진찰과 검진을 통해 병의 원인을 찾아내고 알맞는 약을 투입해 병의 치료에 다가선다. 한때 '걸리면 죽는다' 해서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암 역시 이제는 환자의 5% 이하로 사망률이 줄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희귀성 질환도 꾸준한 연구와 치료법의 발전에 힘입어 상당 부분 정복되었다고 뉴스는 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고령화로 인한 치매(알츠하이머 포함) 등 뇌신경계의 질병에 대한 치료는 아직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병의 진행을 늦추는 정도의 약만 개발된 상태라고 한다. 정신질환 등 뇌에 관한 질병은 아무래도 아직은 의학계가 정복하지 못한 '신의 영역'으로 간주되고 있는 형상이다.

이 책 『몸이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는 고도로 발전된 현대 의학의 사각지대로 여겨지는 만성피로증후군, 신경성 두통, 불쑥 찾아오는 어지럼증, 매일 끊이지 않는 흉통 등의 치료법에 관한 이야기다. 현대 의학으로도 그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터라 이로 인해 환자의 불편한 심리 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몸에 나타나는 고통도 더욱 심화된다는 것. 저자 엘러스테어 샌트하우스는 이 질병 등에 주목했다.

 


 

저자는 런던 종합병원의 정신과 의사로 20년 넘게 ‘원인 불명의 증상’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치료해 왔다. 현대 의학이라고 해서 모든 의사들이 모든 병을 다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조금만 신경을 쓰고 연구한다면 치료가 가능한 환자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치료법은 '비과학적'이란 이유로 의료계가 제대로 주목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서 치료 경험과 환자들에 대한 상담 등을 통해 환자들의 마음속에 숨은 아픔을 치료하는 과정을 계속해 왔다고 한다. 이 치료의 경험에서 마음의 고통이 어떻게 몸으로 이어지는지, 무엇이 그 고통을 더욱 깊게 하는지,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의학적인 시선으로 예리하게 살폈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우리의 성격과 정신 건강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지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게 도와준다. 아울러 현대 의학의 기계적 진료에 지친 사람들에게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이야깃거리를 던진다. 'Head First : How the mind heals the body.' 원제로 보이는 영어가 표지에 실려 있다. 부족한 능력으로 번역을 해보자면 '머리가 먼저다 : 어떻게 마음이 몸을 치유하는가'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몸이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란 번역 제목은 오히려 눈에 띄지 않은 이유는 독자의 의학 지식 부족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추천평을 한창수 고려대학교 정신건강연구소장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으로 아픈 경험이 있거나 마음을 다루는 일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고 썼다.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다.

 


 

누구나 그렇기도 하지만, 특히 이 책의 독자 대부분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으로 몸이 아픈 적이 있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또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이 한 가지인 사람도 있지만 두세 개씩 가진 사람도 많다. 다만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치료할 수 없다는 뜻이어서, 인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특히 극심한 고통이나 일상이 어려울 정도의 불편함이 있다면, 병원에 입원을 해서라도 치료에 응하겠지만 그 정도에는 못 미치게 아프다는 게 맹점이다. 조금씩 아프다말다를 반복하는 것도 적극적 치료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이 같은 증상이 없는 독자라면 이 책을 더 주의해서 읽을 것을 권유한다. 어쩌면 치료법이 없다는 뇌신경계나 원인불명으로 진단되는 경우 치료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을 쓴 앨러스테어 샌트하우스는 런던 종합병원의 정신과 의사로, 20년 넘게 수천 명이 넘는 환자를 치료해왔다.

내과 의사 출신이었던 저자는 종합병원의 응급실을 거쳐 내과 진료소에서 근무하며, 몸이 아픈 사람들의 증상을 살피고 진단명에 따라 치료하고 처방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수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점차 신체검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으며 질병의 심리적 측면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정으로 그들의 몸과 마음 모두를 치유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정신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저자는 종합병원의 정신과 진료소에서, 병원 내 각종 분과에서 증상의 원인을 알아내지 못한 환자들의 정신을 감정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이 일을 통해 건강은 신체적 측면과 심리적 측면 양측이 모두 적용되며, 두 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저자가 만났던 수많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묶어낸 책으로, 종합병원 정신과를 찾아온 환자들이 겪었던 증상과 마음속에 숨은 아픔,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마음의 고통이 어떻게 몸으로 이어지는지, 무엇이 그 고통을 더욱 깊게 하는지,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의학적인 시선으로 예리하게 살핀다. “환자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고민하지 말고 그 병이 어떤 사람에게 생기는지 고민하라”고 말한 영국 의학자 윌리엄 오슬러의 말처럼, 이 책은 우리의 성격과 정신 건강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지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게 도와주는, 치유와 회복을 위한 첫걸음과도 같은 책이다.

저자가 속한 종합병원에서 정신과는 ‘원인 불명의 증상’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다. 환자들을 만나 그들이 어떤 일을 겪었고 마음 상태가 어떤지 당사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치료한 결과, 저자는 이런 환자들에게 신체의 상태를 점검하는 일 못지않게 내밀한 심리 치료가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환자 스스로도 모르던 마음속 결핍을 채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은 한 환자는 18개월 동안 심장외과, 류마티스내과, 신경과, 자율신경과, 소화기내과, 이비인후과까지 전문의 6명을 거치고도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결국 정신과 진료소로 왔다. 업무도, 약혼도 미뤄두고 온갖 스캔과 검사에 몰두한 그에게 남은 것은 불안, 분노, 악화된 건강 상태. 저자는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눈 뒤, 그가 ‘불안장애’를 겪고 있으며 어지럼증은 불안장애에 흔히 따르는 과호흡 때문이라는 소견을 제시했고, 환자는 항불안제 복용 8주 만에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사실 능숙한 의사는 보통 메모를 힐끗 보기만 해도 환자가 호소하는 신체 건강 문제가 스트레스, 불행, 우울 등 온갖 심리적·사회적 요인에서 비롯되었음을 눈치 챌 수 있다. 복잡한 가족 관계, 경제적 압박, 기분 및 불안장애도 참고 사항에 기록된다. 하지만 그때쯤엔 이미 상황이 늦기 마련이다. 의사들은 이미 환자의 문제가 신체 질환이라는 판단하에 검사를 진행해왔고 환자도 그렇게 믿고 있다. 의사들이 발견할 가능성도 없는 신체 질환을 계속 찾으려고 했을 리가 없으니까. 그러니 전임자들이 그랬듯 환자와 나눠야 할 대화를 피하는 편이 쉽다. 환자의 신체 질환이라는 것이 사실은 심리적?사회적 압박의 결과일 가능성을 외면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p.54~55)

위 내용은 책에 쓰여 있는 그대로 인용했다. 독자가 판단하기에는 의학이 과학에 너무 얽매여 과학적으로 풀리지 않는 것은 믿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심리적 요인들을 구태여 진단 명목에 넣지 않은 것을 지적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마음의 치유는 단순히 질병 치료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한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 태도를 좌우하고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것. 이 책은 저자가 만난 다양한 사연과 증상을 지닌 환자들의 이야기를 총 18장으로 나누어, 각 사례에 등장하는 환자들이 어떻게 마음을 마주하고 삶을 바꾸어 나갔는지 보여준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만성피로나 신경성 두통 환자부터, 세상이 두려워 집에 틀어박힌 광장공포증 환자, 외모 강박으로 건강이 망가진 거식증 환자, 자신의 삶을 방치하다 병세가 악화된 당뇨 환자, 자기혐오와 우울로 먹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비만 환자, 심지어 보살핌을 받고 싶어 일부러 몸을 망가뜨렸던 환자까지, 각양각색의 이유로 종합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환자들이 가지고 있던 심리적 문제를 파악해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환자에게 적합한 방법을 제시해 고통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매일 끔찍한 흉통을 앓았지만 신체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을 찾아내지 못한 한 환자는 납치 후 후유증으로 인한 불안장애가 통증의 원인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잦은 검사가 아닌, 항불안제 처방과 심리 상담이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또 당뇨를 평생 관리해야 한다는 현실에서 도피하느라 지병을 방치해 건강이 악화된 한 환자는, 스스로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저자가 던진 질의응답을 통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내면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치료 과정을 밟은 환자들은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신체적 고통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삶을 가꿀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책을 통해 환자의 심리 상태가 신체 상태에 대한 인식, 지속적인 건강관리, 더 나아가 삶을 유지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과학적 근거를 통해 밝힌다. 이를테면 스트레스를 받은 후 두통을 느끼는 것은 심리적인 고통이 몸까지 전이되어 나타나는 현상 중 일상적인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일시적이고 가벼운 증상이더라도, 증상을 느끼는 당사자가 이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증상과 고통이 더욱 심화될 수도 있다. 실제로 환자가 자신의 증상이 심각한 것 같다고 사전에 선입견을 가질 경우 더욱 아프다고 느끼는데, 이는 신경을 통해 전해지는 감각을 뇌가 왜곡하여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통각 자체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더라도, 뇌가 심각한 요인이 있을 거라고 단정하면 실제보다 통증을 더욱 과장되게 인식하는 것이다.(p.259)

 


 

특히 정신질환으로 분류되는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삶을 비관적으로 보는 환자는 신체의 통증을 더욱 심하게 느끼고 염려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도 밝혀낸다. 이런 환자들은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병세가 더욱 악화되기 쉽다. 실제로 우울증은 심장병과 뇌졸중의 발병 확률을 급격하게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p.294) 하지만 신체 질환과 우울증을 모두 갖고 있는 환자는 주변에서(심지어 의료진까지도) ‘우울증에 걸릴 만하다’며 우울증 치료를 방치하는 일이 잦아 질병을 빠르게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우울증 환자가 비관으로 더욱 자신의 질병을 방치하고, 병이 깊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기도 한다.

더욱이 우울증 환자가 심장마비를 겪고 나면 만성 질환과 사망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울증으로 인한 화학물질 분비 변화 때문이겠지만, 어쩌면 우울증이 개인의 사기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우울증 환자는 건강관리에 소홀하기 쉽다. 예를 들어 흡연을 계속하거나, 정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하거나, 건강에 해로운 식사를 고집하거나, 후속 진료를 받을 의욕이 부족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모두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심장 질환 치료의 맥락에서 우울증 치료는 결코 심장약 복용만큼 강조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다. 꼭 우울증 정도로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겪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환자가 심리적으로 얼마나 위축되었는지는 환자가 자신의 삶을 관리하는 큰 요인이 된다. 이에 저자는 심장마비 이후 회복 과정에 있는 환자들의 상태를 조사한 결과, 환자가 겪는 객관적인 불편함의 정도보다 환자 본인의 믿음이 건강을 좌우한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기도 한다. 자신이 “병세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환자”는 재활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회활동을 유지하는 등 질이 높고 긍정적인 일상생활을 이어나갔다. 반면 “자신의 병이 치명적이라고 믿은 환자는 활동이 위축되고 정적인 생활을 유지했”으며, 심장마비 이후에는 적당한 신체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면서도 무력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확인되었다.

 


 

“환자의 믿음이 병의 예후와 진행을 좌우하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과학을 맹목적으로 믿고 치료에 임한다면, 정확한 진단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각성시킨다. 또 인간의 질환 치료에는 피지컬과 멘탈의 연결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정신 치료에도 과학 이외의 요인도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심리·사회·정신·환경 등 인간 삶과 연결된 여러 요인을 병합 진단하는 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저자 : 앨러스테어 샌트하우스(Alastair Santhouse)

런던의 가이스 병원과 모즐리 병원의 정신과 의사.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한 후, 영국 왕립런던종합병원 대학원에서 의학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 종합병원 내과에서 근무하던 중,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 모즐리 병원 정신의학과로 전공 분야를 옮겼다. 이후 20년 넘게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며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영국 왕립정신과의사협회 자문조정정신의학 위원회 부위원장과 영국 왕립의료학회 정신의학과장을 지냈다.

《몸이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는 ‘원인 불명의 증상’으로 종합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정신감정을 맡아온 저자가 그동안 만난 여러 환자들이 겪은 아픔, 증상, 그리고 그들이 털어놓은 마음속 이야기들을 묶어낸 책이다. 이 책은 각양각색의 사연을 지닌 환자들의 사례와 저자의 예리한 의학적 시선을 통해, 정신 건강이 신체 건강과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역자 : 신소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 편집자 및 번역가로 일해왔다.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야생의 위로』, 『우먼 디자인』, 『맨 인 스타일』, 『여행에 나이가 어딨어?』, 『첫사랑은 블루』, 『완벽한 커피 한 잔』, 『밴 라이프』, 『사랑은 오프비트』, 『세계 예술 지도』, 『피너츠 완전판』,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 등을 번역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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