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의 인문학 - 아주 사소한 이야기 속 사유들
박홍순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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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수다의 인문학』은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 문제 중 법적으로 처리할 수도 없고, 제도적 시스템을 마련하기도 어려운 언어 생활이나 생활상의 문제 등에 관한 것들을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들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제재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 이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을 알고도 정부의 공권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가령 국민의 언어생활은 법이나 권력으로도 제한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또 법적으로 제한하는 일은 '언론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에도 위배되는 일이어서 공권력이 미치지 못한다. 다만 올바른 방향으로의 꾸준한 계도와 노력밖에는 달리 단 시일 안에 해결 방법이 없기 때문에 확산 속도가 빠르다는 불편한 점도 있다.

또 일상 중 문화에 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즐겁고 유쾌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한 일이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가 존재하니만큼 제도적 제재 틀을 마련하는 일도 쉽게 할 수 없다. 정치적 문제도 이미 법적으로 제한할 수 없는 행위 이외에는 다른 제재가 불가능하다. '음모론' 같은 경우 분명 국민 여론을 호도하지만 실체나 음모론을 퍼뜨리는 실체가 파악되지 않는다면 법적 제재가 불가능한 헛점도 있다. 이런 문제는 국민의 건강한 삶을 위해 저해되는 요소임에도 공권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점이 특징적 요인이다. 국가는 그런 음모론이 나오지 않을 사회 유지에 실패한 잘못만 남기 때문이다. 또 이런 문제는 거의 모든 국민들이 알고 있는 문제고, 이런 상태에서 사석에서 '잡담'처럼 나누는 경우가 많아 여론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는 결국 국가의 부담이 되기 때문에 당초 이런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못한 책임은 오롯이 국가가 져야 한다.

 


 

이 책의 저자 박홍순은 국민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쉽게 나누는 '잡담' 중에서 많이 주고받는 말, '수다'에서 찾아내고 있다. 국민들도 다 알고 느끼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지 못한 것들-이 책은 특히 '언어' 생활에 중점을 두고 있다-에 대한 올바른 방향 제시이다. 국민의 언어 생활의 건전성을 되찾자는 의미에서 저자는 지적하고 바른 방향으로의 흐름으로 바뀌길 바라는 입장이어서 독자들의 지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이 '수다'라는 범주에 일상의 대화, 방송 언어, 특히 인터넷 언어 생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들은 먹고 사는 생활을 소재로 한 흔한 수다, 문화적으로 흥미로운 현상을 둘러싼 수다, 술자리 안주처럼 다루어지는 정치 관련 수다 등이 대상이다. 저자는 책의 앞 부분 '작가의 말' 「모래알에 담긴 우주」에서 "이런 수다에서 단지 잡담에 머물지 않고 그 이면의 역사적인 맥락이나 사회구조로 이야기의 지평을 확장해보려고 한다. 나아가 철학적으로 깊어진 인식까지 나아갈 가능성을 탐색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사회의 흐름을 짚으려면 큰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작은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모래알'의 의미부터 짚어본다. 저자는 우리 일상의 큰 것은 본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기보다는 주로 작은 것을 통해 스며든다고 말한다. "본래 작은 것과 큰 것 사이의 경계는 분명치 않은 법이다. 그런 점에서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남긴 '한 알갱이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우주를 본다'는 문장은 단순히 문학적 수사가 아님"을 강조한다. 저자의 이 말은 설득력과 파급력이 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사실 모래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간단치 않다. 처음부터 왜소한 돌 조각이었던 게 아니다. 해안의 큰 돌에 파도가 쳐서 오랜 기간 부서지고 갈려 작은 모래알이 만들어진 것임을 우리는 안다."(p.6)

 


 

이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일상의 흔한 수다〉, 2부 〈문화 흥미를 돋우는 수다〉, 3부 〈술자리의 수다〉이다. 3개의 각 부에는 사안에 따라 각각 6개의 장을 두어 '수다'를 집중 분석한다. 1부에서는 「오늘도 먹방이 날 유혹해!」, 「요즘 애들 말은 도무지 못 알아먹겠어!」, 「우리가 화장실 선진국이란다」, 「혹시 나도 꼰대인가?」, 「이번 생은 망했어!」, 「뭐 재미있는 거 없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2부에는 「벼룩시장에서 문화를 만나다」, 「텔레비전과 독서에서 서성이다」, 「사랑으로 사나, 정으로 살지!」, 「K팝과 드라마로 국뽕을 맞다」, 「돈만 있으면 한국이 최고야!」, 「씨름 한판 할까?」 등 6개 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또 3부에서는 「음모가 세상을 움직인다고!」, 「정치가 무슨 코미디냐?」, 「권력은 거짓말에서 나오지!」, 「정치평론가 전성시대에 살다」, 「전문가의 말을 믿어야 할까?」, 「너는 진보야, 보수야?」 등이다.

이 책은 여러 SNS를 통해 자주 접하고 또 일상의 이야깃거리로 종종 등장하는 ‘먹방(먹는 방송)’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지 살피며, 로마시대의 만찬과 콰키우틀족의 ‘포틀래치 축제’, 우리의 오곡밥 풍습 등을 비교해 본다. 또한 현대 한국 먹방문화의 심리적 요인은 무엇인지도 짚어 본다. 이와 함께 역사적인 맥락이나 사회구조, 문화의 흐름 등을 살펴본다. 이 밖에 꼰대, 줄임말, N포세대, K팝, 음모론, 진보와 보수 등 일상의 수다 속 여러 소재에서 인문학, 철학적 이야기로 뻗어간다. 인문학 또는 철학이 너무 먼 이야기인 듯하고 어렵다고만 느껴진다면 ‘아주 사소한 이야기 속 사유들’을 담은 이 책 『수다의 인문학』과 함께하기를 권한다.

 


 

먼저 1부의 내용은 우리의 과시적 '먹방' 문화를 지적하고, 미국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저서 『문화와 수수께끼』를 인용, 로마 제국의 향락적 먹방 문화와 태평양 연안에 사는 콰키우틀족의 '포틀래치 축제'는 과시와 경쟁이 있기는 하지만 원주민들간의 경제적 조건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어려움에 닥친 주변 사람들에게 음식을 분배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 말한다. 포틀래치 축제의 나눔으로서의 먹방 문화를 비교한다. 이에 비해 우리의 먹방 문화는 길거리 음식이나 배달 음식처럼 서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컨텐츠를 만들어 부의 정도와 관계없이 모든 계층에서 향유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 주장은 독자도 어느 다른 책에서 접하지 못한 신선한 설득력을 준다. 이 점에서 우리의 먹방문화와의 차이점을 설명하기도 한다.

책에 따르면 인간의 세 가지 본능인 수면욕, 성욕, 식욕 중 수면욕과 성욕은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많이 억제하고 감수해야 하는 욕구로 저자는 강조한다. 이에 따라 수박 서리, 오곡밥 서리 등 나눔으로서의 '서리 문화'가 존재하지만 현대 우리 사회에서 지금 유행하는 먹방문화는 수면욕과 성욕을 억압당하고 있는 사회적인 집단 신경증 증상이라고도 파악한다.

먹방문화가 유행하는 현상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견해가 있다. 식욕이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므로 먹을거리에 끌리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게다가 복잡하고 고단한 세상살이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한 자기만족의 행위이니 문제될 게 없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먹방 신드롬은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없을까?(p.15)

 


 

저자는 우리의 언어 생활 중 최근 유행하는 신조어에 대한 통사적 고찰도 내놓는다. 이 장 「요즘 애들 말은 도무지 못 알아먹겠어!」는 독자도 가장 공감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얼마 전 1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한 학생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적이 있다고 한다. 우연찮게 함께 탄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학생은 친구와 통화하는 바람에 괜히 엿듣는 것 같은 기분에 조금 찜찜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었다고 밝힌다. 그 학생의 통화 내용 중 절반 이상을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암호 같은 단어에다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신조어가 수시로 등장했다. 사실 그날의 경험이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인터넷을 보다가 신조어 때문에 당황하는 일이 부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그 학생이 친구와의 대화 도중 '엘베'라는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엘리베이터의 준말이었다니. 저자는 텔레비전에도 자주 등장하는 '현타'를 검색해봤더니 '현실 자각 타임'의 준말이란 것도 알게 됐다. 사실 이 말은 독자도 텔레비전에서 자주 나오기에 그냥 감으로 '현실 타파'의 뜻인가보다 하고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이 책을 보고 '현타'의 정확한 뜻을 알게 됐다.

그래도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하다)', '낄끼빠빠(낄 땐 끼고 빠질 땐 빠져라)', '갑툭튀(갑자기 툭 하고 튀어나온다)'라는 말은 어찌어찌 뜻을 파악할 수도 있는데 '텅장·열폭·솔까망·즐·샵쥐·본캐·문찐·틀딱, 등은 검색해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단 말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 가운데 독자 역시 처음 들어본 단어들의 퍼레이드다. 텅장은 텅 빈 통장을 줄여서 통장에 돈이 없거나 부족한 상황을 의미한다. 열폭은 열등감의 폭발, 솔까말은 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것이다. '즐'은 꺼져, 닥쳐와 같은 의미이며, 샵쥐는 시아버지를 빠르게 말하면 비슷한 발음이 나오는 데서 비롯됐고, 본캐는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관리한 가장 중요한 캐릭터를 뜻한다. 상대를 비하하는 의미의 부정적인 신조어도 있다. 문찐은 문화 찐따를 줄여 부르는 것으로 유행에 느린 사람을 지칭한다. 틀딱은 자신의 나이를 빌미 삼아 사람들을 훈계하거나 공공장소에서 예절을 어기는 노년층을 비하하는 말인데, 틀니를 딱딱거린다라는 표현에서 생겨났다.

 


 

저자는 또 '꼰대'라는 의미를 우리의 지난 역사 속에서 찾아내고 지적하기도 한다. 특히 「이번 생은 망했어!」 장에서는 사회의 흐름을 꼬집고 있다. 덴마크 최초의 여성 화가로 꼽히는 베르타 베그만의 〈절망〉은 그림 속 여인의 몸과 분위기만으로도 그림의 주제를 충분히 묘사한 점을 들어 우리 사회 분위기를 비유하고 있다. 이 장의 제목이 된 '이번 생은 망했어!'는 '이생망'으로 표기하고 있다며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 그림과 가장 잘 어울리는 유행어로 꼽고 있다. 책에 따르면 처음에는 20~30대 젊은 층에서 주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국민적인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자기 나름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태를 표현할 때 쓰인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어려운 처지가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절망을 담고 있다. 워낙 보편적으로 쓰이다 보니 이제는 자기 얼굴이 마음에 안 들거나 기대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을 때도 불쑥 튀어나온곤 한다.

이때도 본래의 의미는 여전한다. 한국처럼 외모를 능력으로 여기는 '외모 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는 비호감 얼굴과 지나치게 작은 키 등에 절망을 느끼기가 더욱 쉽다. 성적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어느 대학을 가느냐가 인생을 결정하는 입시 지옥이기도 하다. 성적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부터 누적되어온 결과이기에 마음을 고쳐먹고 한두 해 노력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 절망적인 심정이 되어 이생망을 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신에게 닥친 절망의 감정을 표현하는, 이생망과 비슷한 유행어가 있다. 우리에게 십여 년 전부터 익숙한 '삼포세대' 혹은 'N포세대'가 그렇다. 삼포세대는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다는 의미다. 여기에 취업과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한 '오포세대', 건강과 외모 포기도 더한 '칠포세대', 인간관계와 희망도 포기했다는 '구포세대'까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포함하여 N포세대라고 부른다.

 


 

글이 말의 기능을 수행하려면 속도가 중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을 압축하거나 긴 내용을 대체하는 짧은 기호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 언어를 포함한 대부분의 신조어는 글을 말처럼 빨리 쓰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신조어를 사용하면 효율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길고 복잡한 설명 없이, 짧은 글로도 의도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p.31~32)

 

‘사랑으로 사나, 정으로 살지!’는 적어도 사랑의 포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하지만 사랑을 순간의 욕구로 보고, 그러한 의미에서 사랑을 불신한다는 점에서는 더 비극적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과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해 사랑을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가르친다는 점에서 개인을 넘어 사회적인 비극이 되기도 한다.(p.112)

 

저자 : 박홍순

 

글쓰기와 강연을 통해 사람들을 미술과 인문학으로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앞만 보고 전력 질주하느라 성찰의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고전과 미술 등을 매개로 인문학을 벗으로 삼도록 하는 데 애착을 갖고 있다. 특히 인문학이 생생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순간 화석으로 굳어진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일상의 사건과 삶에 밀착시키는 방향으로 글을 써왔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서양 문명의 근간이 된 그리스 신화를 통해 새로운 인문학적 사유를 전달하는 『인문학으로 보는 그리스신화』, 옛그림과 선현들의 글로 오늘의 자신과 세상을 돌아보도록 돕는 『옛그림 인문학』, 인문학적 시각으로 방대한 서양 미술사를 풀어내며 진정한 미술 감상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지적 공감을 위한 서양 미술사』, 다양한 소재로 인문학적 관점을 기르는 『저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 『헌법의 발견』, 『일인분 인문학』 외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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