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서 만나자
신소윤.유홍준.황주리 지음 / 덕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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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인사동에서 만나자』는 80~90년대 과거의 인사동을 지켜내 오늘의 전통문화동네로 가꾸어온 문화계 인사 35명의 글을 모은 에세이다. 오늘날 인사동은 우리 전통 문화의 거리와 동네로 상징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한국 문화의 자부심을 지켜낸 주역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들이 글의 주인공들이다. 그들이 기억을 더듬으며 빚어낸 에세이는 짧지만 짙고 큰 울림이 있다. 특히 중년 이상의 독자들에게는 어려웠던 시절 정겹고 따뜻한 아날로그 감성을 되살려줌으로써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쳐가는 독자들의 심신의 피로감을 씻어주는 데 큰 몫을 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35명의 저자들은 당시 인사동을 제집 드나들 듯 다니면서 지금은 작고해 이름만 남아 있는 인사동 지킴이들의 기억도 끄집어 인사동 제자리 찾기에 한몫을 더하고 있다.

이들 저자들이 꺼낸 기억의 편린들은 제각기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끈끈한 정과 문화 공유 인식의 감성을 하나로 모을 수 있어 더 의미가 있다. 이 책의 대표 저자인 인사전통문화보존회 신소윤 회장, 유홍준 교수, 서양화가 황주리를 비롯해 소설가, 시인, 화가, 조각가, 의사, 회사 대표, 정치인, 배우, 가수, 카페 대표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에피소드는 유쾌하면서도 뭉클하고 따뜻한 감동을 전해준다.

 


 

이 책은 글과 더불어, 수십 년간 인사동 사진을 찍어온 사진작가 김수길과 조문호가 그 시절 인사동 모습을 담은 귀한 사진을 보태 읽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갤러리 씨네 노광래 대표가 이 책을 기획했다고 한다. 그는 인사동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는 인사동 터줏대감이자 산증인이다. 덕분에 한 권의 책에 35명이나 되는 여러 저자의 글을 담을 수 있었다고 밝힌다. 인사동 이전 한국전쟁 직후 명동의 역할이 인사동으로 옮긴 것 같은 느낌에 전통문화의 동네라는 인식도 더해지면서 오늘날 인사동은 한국 고유 문화의 색채가 가장 강한 동네로 남아 있는 데는 이들 문화계 인사들의 숨은 공로가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강남으로 옮기기 전까지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후반까지는 종로, 특히 인사동이 그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특히 수요일이면 신작을 내걸고 사람들을 맞이하는 갤러리들로 거리는 활기가 넘쳤다고 한다. 오래된 고서점, 골동품 가게, 전통찻집, 술집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국적 불명의 물건들이 넘치고 전통가옥 대신 번듯한 건물이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고, 몇 달씩 술값을 달아놓아도 크게 나무라지 않던 푸짐한 인심은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최근 미술품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올라가면서 인사동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책을 들고 보물찾기하듯 인사동 구석구석을 탐색하며 옛 흔적을 찾아보고,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들에 들러 차 한잔,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어보면 어떨까.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어슬렁어슬렁 걷는 것만으로 마음이 풍성해질 것이다. 인사동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인사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전통의 거리, 그림이 가득한 예술의 거리이다. 심지어는 외국인들도 '한국전통문화'의 요람으로 인사동을 찾는다. ‘갤러리’라는 이름으로 변화한 그림을 전시 판매하는 곳도 예전에는 ‘화랑’이라 불렀다. 인사동은 우리나라 화랑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당시 인사동 단골손님(?, 어쩌면 당사자는 주인이라고 할지도 모른다)인 유홍준 명지대 교수(미술평론가)는 화랑이 들어서기 시작할 무렵의 인사동 분위기를 글로 전하고 있다.

"1970년대 인사동에는 많은 상업 화랑들이 들어섰다. 1970년 4 월 현대화랑이 인사동에 문을 연 것은 우리나라 화랑 역사의 시작이다. 그때만 해도 화랑이라는 단어에 익숙지 않아서 당시 한 신문에서는 ‘그림을 판답니다’라고 소개했다. 마치 1980년대에 ‘이태원에 피자집이 생겼답니다’ 같은 기사다. 화랑이 생기기 전 인사동엔 고서점과 함께 통인가게, 고옥당을 비롯한 고미술상, 구하산방으로 대표되는 필방, 박당표구, 상문당, 동산방 등 표구점들이 자아내는 고미술의 향기가 풍기고 있었는데, 여기에 상업 화랑이 들어서면서 현대미술이 더해지게 된 것이다.(p.83)

 

 

이들 인사들은 화랑 이야기를 비롯해, 카페, 찻집, 술집, 밤거리 등에 얽힌 ‘그때 그 시절 그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맘 잡고 하기 시작하면 밤새워 얘기해도 다 못할 것이라고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그만큼 인사동을 자주 드나들었고, 깊이 관여하고, 많은 만남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 10대는 물론 20~40대들까지도 인사동 이야기를 마치 옛날 조선시대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라는 의미가 아니라, 오래된 문화 이야기라고 해야 더 정확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이 책 『인사동에서 만나자』를 읽으며 중년 이상의 사람들은 옛 기억을 소환해 살포시 미소 짓게 될 것이고, 젊은이들은 인사동의 옛 모습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겨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과거의 인사동, 현재의 인사동의 모습을 살펴보고, 미래에도 지속 가능한 인사동을 위해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희망한다고 이 책의 저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만주 춤비평가이자 시인은 「우리들의 인사동 시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사동에는 개점 100년이 다가오는 서울의 오래된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다. 1924년 문을 연 ‘통인가게’는 지금도 인사동의 얼굴로 한국의 고미술품부터 예술품에 가까운 생활 소품까지 다양한 물건을 팔고 있다. 지금은 화랑까지 운영하고 있다. 필방으로는 1913년 진고개에서 개점하여 명동을 거쳐 인사동으로 옮겨온 ‘구하산방’(1920년 무렵 개점했다는 설도 있음)과 1932년 문을 연 ‘명신당필방’이 꿋꿋이 버티고 있다. 1934년 개업한 고서적상 ‘통문관’은 또 하나의 인사동 얼굴이다."(p.17)

 


 

인사동에는 이처럼 백년가게도 많다고 한다. 1902년 대한제국 시절 개업한 이문설농탕, 1913년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필방인 구하산방, 1919년 시작한 낙원떡집 역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서울시 유형문화재인 승동교회는 조선시대 교회 건물로 3·1독립운동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사동의 또 다른 대표명사라 할 수 있는 작은 찻집 ‘귀천’에 들러 고 천상병 시인과 부인 목순옥 여사의 향기도 한번 느껴보길 권한다.

보물찾기하듯 인사동 구석구석 명소를 찾아보자. 갤러리, 고미술, 한지·필방·표구, 공예, 카페·식당, 복합문화공간으로 나누어 업종별로 색깔을 달리하여 한눈에 보기 쉽게 표시하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장소는 총 80곳이다. 이 책의 77페이지에는 인사동 곳곳에 숨어 있는 표지석을 모아두었는데, 표지석 찾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268~269페이지에는 화장실 벽면을 가득 메운 낙서들을 실었다. 허름한 가게에 들어가 화장실 낙서를 찾아보자. 인사동 거리를 탐방한 뒤 시간이 남는다면 인사동 건너편에 자리 잡은 운현궁 산책을 해보자. 또 다른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저자들은 갤러리, 고미술품점, 필방, 카페, 식당 들이 없다면 인사동 거리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사동 거리를 만든 가게들과 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인사동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은 인사동의 오늘을 만들었다는 데 작지만 한몫한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긍지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저자들의 글과 별도로 80군데 갤러리, 고미술품, 카페 등의 상세 정보를 실었다. 인사동을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가이드도 할 셈이란 말이다.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한번 들러 보기 독자들에게 바란다는 마음에서다. 갤러리에 들어가 그림을 구경하는 것도 좋고, 전통찻집에 앉아 느긋하게 향긋한 차 한잔 마셔보는 것도 좋다. 필방에 들러 붓 한 자루, 한지 한 장 사는 것 또한 큰 즐거움일 것이다.

 


 

사실 인사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슬렁거리며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눈과 귀가 풍요로워진다. 인사동에서는 언제 가더라도 버스킹을 하는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 보물찾기하듯 인사동 구석구석 명소를 찾아보자. 최영남 화가 겸 수필가는 「수요일의 인사동」에서 버스킹 문화가 시작된 곳이라는 소개와 함께 인사동의 변화에 아쉬움도 있는 듯 느낌을 표현한다. "그동안 인사동은 재화보다 문화 예술을 중시했던 예술인들의 아지트였다. 가난하지만 개의치 않거나, 가난하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한 채 정신적 풍요를 누리는 예술인들이 모여 예술을 논하던 곳이었다. 그들의 아지트가 하나둘 사라지고 현대적 상업 시설이 새로 들어서는가 하면, 아예 허름한 건물이 통째로 사라지고 큰 건물이 번듯하게 들어서기도 했다.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화랑, 표구사, 필방과 골동품 가게 등이 없어지고 천연 염색이 아닌 옷가게와 중국산 기념품 가게, 짧은 시간만 머물러야 하는 식당 등은 늘었다. 나무 기둥이 손님들의 손자국으로 반질거리던 전통찻 집이 없어진 대신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깔끔한 카페는 늘었다. 인사동이 변한 것을, 변해가는 것을 나라고 모를 리가 없다. 다만 나는 인사동의 분위기가 조금씩 변해 가는 모습을 늘 지켜보았기에 놀랄 일이 없었고, 오랜만에 인사동을 찾은 그는 몇십 년 만에 흰머리로 뒤덮인 친구를 만난 양 변해버린 모습에 놀랐을 뿐이다."(p.131~132)

이제 우리들이 변했듯 인사동도 변했다. 낡았던 인사동은 젊은 옷으로 갈아입어 카페와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며 골목의 풍경이 바뀌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곳엔 여전히 시와 그림과 조각들이 있고, 앞으로도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낭만들이 각자의 표정으로 새롭게 연출되며 인사동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진화할 것이다. 그래서 인사동은 우리들의 인생동(人生洞) 아닐까.(p.226)

 


 

"인사동에 가면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도 들여다보고, 사지도 않을 한지 부채를 폈다 접었다, 한복 치마를 요리조리 들여다보고 하는 등 눈이 호사를 누린다. 어디선가 이름을 부르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휙 돌려지고, 아는 얼굴들이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생각에 혼자 씨익 웃는다. 그러다 우연히 진짜로 마주치면 반가워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팔짱을 끼기도 하면서 난리법석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괜스레 어슬렁거리고 싶은 인사동은 옛날과 달리 많이 변했다지만 그래도 그 거리, 그 골목, 그 추억은 잊을 수 없다."(p.251~252) - 장순향(민중춤꾼) 「인사동에서」

 

저자 : 유홍준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미학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박사)를 졸업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인협의회 공동대표, 제1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1985년 2000년까지 서울과 대구에서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강좌를 십여 차례 갖고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대표를 맡았다. 영남대학교 교수 및 박물관장, 명지대학교 교수 및 문화예술 대학원장, 문화재청장을 역임하고, 현재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제주 추사관 명예관장도 맡고 있다.

평론집으로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 『다시, 현실과 전통의 지평에서』, 『정직한 관객』, 답사기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국내편 1~10, 일본편 1~4), 미술사 저술로 『조선시대 화론 연구』, 『화인열전』(전2권), 『완당평전』(전3권),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추사 김정희』 등이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저작상(1998), 제18회 만해문학상(2003) 등을 수상했다.

 

저자 : 황주리

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서양화과,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뉴욕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32회의 국내외 개인전과 200여 회의 단체전에 참가했으며, 석남미술상(1986)과 선미술상(2000)을 수상했다. 화려한 원색과 열린 상상력을 바탕으로 독특한 회화세계를 구축한 신구상주의 계열의 가장 주목받는 화가다. 그에게 있어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그림이 그려지기를 기다리는 빈 캔버스다. 캔버스 외에도 안경과 돌과 오래된 목기 등에 그린 그림들과 화가의 시각으로 써 내려간 독특한 문구들은 사라지는 순간순간들을 지금 여기에 못 박아두는 ‘시간채집’이다.

다양한 소재와 장르를 통해 도시적 인간의 내면세계와 인간 상황을 시적 언어로 그려내며, 그림뿐 아니라 삶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는 산문들과 그림소설까지, 그의 글들 또한 읽는 이들의 마음에 짙은 여운을 남긴다. 저서로 산문집 『날씨가 너무 좋아요』 『세월』 등이 있고, 그림소설 『그리고 사랑은』 『한 번, 단 한 번, 단 한 사람을 위하여』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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