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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시대정신이 되다 - 낯선 세계를 상상하고 현실의 답을 찾는 문학의 힘 ㅣ 서가명강 시리즈 27
이동신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1월
평점 :
독자는 사실 SF(Science Fiction) 소설을 접한 것은 불과 2년 전쯤이다. 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꽤 열심히 책을 읽었지만, 사회 생활을 하면서 책을 점점 멀리했다. 급기야 40세 이후에는 업무상 필요한 책이 아니고서는 1년에 10권도 못 읽었다. '시간이 없어서'란 당시 핑계였고, 지나서 생각해보니 '술' 때문이었다고 자책도 했다. 그러나 사회 생활하는 데는 몇 년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해도 일상에 지장이 없어서 별 문제 없이 '무독(無讀)'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재택 근무가 많아지면서 무료하고 무의미한 생활을 한두 달 하다 보니 어느 날 한 권 마음 잡고 샀던 책이 추리소설이었다. 오랜 만에 읽었음에도 독서의 재미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후 책은 다시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주로 새로 나온 출판물은 감염병 시대에 걸맞은 위로와 격려가 주제인 에세이가 쏟아져 나왔고, 이어 '코로나 블루'가 유행처럼 번지자 정신의학의 칼 융이나 아들러의 심리학 책과 그에 관련된 연구 서적도 번역돼 나왔다. 그리고 예술서적, 특히 미술서적도 늘 베스트셀러 명단에 올랐다. 독자의 느낌은 책을 읽는 것보다는 이젠 보는 시대가 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무렵 소설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이 책과 관련된 책이 아니니 도서명이나 저자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러나 그 소설은 분명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책 표지부터 요란한 홍보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심심풀이 느낌으로 한 번 읽었다. 의외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인 데다 스토리마저 흥미로웠다. 나오는 용어들이 생경했으나 원래 SF 소설을 읽지 않아서 SF 문외한이어서 그러려니 했다. 이미 독자가 책을 읽지 않은 동안 SF 소설이나 영화가 대세가 되어 있었다.
원래 판타지나 과학 공상 소설을 읽지 않은 경향의 독서 스타일이어서 내키지 않아 손에 잡지 않았다. 우연히, 정말 우연히 선물 받은 소설 한 권이 SF 소설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가 됐다. 시간을 보내기에는 나름 꽤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매력이었다. 그 다음은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도 조금씩 높아지게 됐다. 스토리의 전개가 조금은 황당무계한, 시간을 넘나들어 과거와 현재를 마음대로 오가는 소설이었다. 지금은 SF 소설도 꽤 즐겨 읽는 독자가 됐다. 이 책 『SF, 시대정신이 되다』은 서점가를 비롯하여 OTT, 극장 할 것 없이 대세가 된 SF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 이동신은 현대 미국소설, SF 문학, 고딕 소설 등을 가르치는 서울대학교 교수다. 출판사의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시리즈의 스물일곱 번째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아이작 아시모프부터 김초엽까지 많은 SF 소설들이 앞다투어 영상화되고 있으며, 대중들은 이에 열광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말로써 책을 시작한다. 이 책의 주제는 SF는 왜 대세가 되었는가?에 대한 답으로서 쓰였다고 한다. 물론 SF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책이 될 것이다. 좋아하는 장르를 얼마나 넓고 깊게 경험할 수 있는지 엿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을 안겨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다만 문외한인 독자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기초 지식이 없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다소 걱정이 되긴 했지만, 강의식으로 해설해주는 책이라고 믿고 읽었다. 예상대로 이 책은 SF 작품을 면면히 살피며 SF가 가진 매력과 개성, 그리고 정체성까지 속속들이 설명해준다. SF의 매력은 무엇일까. 저자의 답은 "인간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흥미롭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타임머신, 우주여행, 외계인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평평한 2차원 세계, 살아 숨 쉬는 무생물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SF 작품들 속 상상의 향연을 접하다 보면 그 새로움과 다양한 매력에 흠뻑 빠진다.
그저 신기하다고만 해서 이렇게까지 많은 이들이 열광할까. 저자는 SF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심어준다고 말한다. 시간을 비틀고, 공간을 확장하며 다른 세상을 보여줌으로써 지금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대하여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속한 현재가 어떻고, 그리고 어떠해야 하는지를 논의할 계기를 만들어준다. 저자에 따르면 SF는 초기에 일부 독자들에게만 인기 있는 대중문화의 작은 영역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상상력을 무한대로 넓혀가며 현재를 통찰하게 하는 장르로 성장했다. 높은 오락성으로 마니아층을 모은 SF는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왜 쓰고, 왜 읽는가”에 대해서 독자와 작가가 질문하고, 그 질문에 답을 하며 성장해왔다.
시대에 맞춰 확장하고 변화하는 SF를 보며, 소수를 위한 장르가 어떻게 시대정신이 되었는지까지 알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는 어떻게 우리가 시대적 요구에 유연하게 답하며 성장할 수 있는지를 배울 실마리를 제공한다. SF적 사고력이 미래사회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이 되고 있는 시대라는 주장이다. 미래사회가 현재의 경제·인종·성·이념·환경 등의 문제를 악화시킬 거라는 우려가 현실로 입증되는 지금, 이런 문제를 극복하거나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기존의 지식체계가 아닌 그 너머의 생각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마지막 챕터는 현대인의 사고의 틀을 넓혀주는 ‘사변 소설’에 대해서 다루기도 한다. 사변 소설은 과학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아 인공지능, 동물, 사물 등 온갖 영역에 대해 사변하는 작품들을 일컫는다. 우리 주변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사변 소설처럼,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시각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에 따라 SF는 시대정신이라 할 만하다. 저자 이동신이 “재미 이상의 무언가를 생각할 계기를 마련해주는 데 있다”라고 말한 이 책의 목표는 SF라는 장르 그 자체의 목표이기도 한 것이다.
“과학이 설명하는 어떤 세계 너머의 과학이 있어야만 한다. 아니면 과학 밖 실재를 이야기하는 소설이 필요하다. 그래서 원칙상으로 이 실험적 과학이 불가능하고 실제로 알려지지도 않은 세상을 상상하는 소설이 이 시대에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작업을 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살면서 겪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겪게 될 많은 현상이,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던 방식으로는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복잡하거나 아니면 너무 거대한 일이라서 과학이 그것을 충분히 설명해줄 때까지 기다리거나, 철학이 충분히 그 의미를 파악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문학도 적극적인 참여를 해야 하고 그런 면에서는 SF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p.207~208)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SF가 다루는 ‘시간’에 대해서 알아본다. SF는 “여기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신이 지금 있는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파악한다. 시간을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들인 소설 『타임머신』을 비롯해 ‘다중적 시간관’이라는 지금 우리의 시간관과는 전혀 다른 시간관을 다룬 영화 〈컨택트〉도 살펴본다. 2부에서는 SF가 다루는 ‘공간’에 대해서 알아본다. 〈스타워즈〉, 〈스타트렉〉의 배경인 우주는 물론이고, 〈매트릭스〉 속 사이버 스페이스까지… SF가 새로운 공간으로 영역을 넓혀가며 확장해온 장르라는 것을 보여준다. 3부에서는 ‘SF를 왜 읽고 쓰는가?’에 대해서 다룬다.
이 책은 한마디로 SF를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짚어낸 책이다. SF의 가장 대표적인 소재인 ‘시간’과 ‘공간’을 문학이 어떻게 다루어왔고 또 어떻게 확장하여 뻗어가고 있는지 뜯어본다. 이와 함께 이런 SF를 우리가 왜 읽고 쓰는지, 나아가 SF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까지, 문학 안팎으로 확장하여 다채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이 선보이는 다양한 작품들을 맛보며 저자의 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SF라는 장르의 매력은 물론 SF를 읽어야 할 시대적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SF의 특징에 대해 두 가지 용어로 규정한다. 이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세계적인 SF 비평가의 정의를 따른다. "SF는 새로운 것, 특히 과학기술로 가능해진 새로운 발명품이나 법칙 혹은 개념 등을 다룬다는 점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수빈은 앞서 말한 두 가지 문제를 고민한 결과 SF의 특징은 '인지적 낯섦'과 '노붐'이다. 인지적 낯섦은 인지란 단어와 낯섦이란 단어의 상호 역행적 단어가 한데 붙어 모순된 듯하지만 SF 세계에서 가능한 특징이라는 주장이다. 또 노붐은 SF가 항상 뭔가 알 것 같지만 모르겠고, 또 모를 것 같지만 아는 모호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장르다. 이렇게 낯섦이 판타지와의 차별점인데, SF는 그 새로운 것들을 계속 만들어낸다. 이 새로운 것들은 과학기술에 기반한 발명품이나 아이디어인데 수빈은 이를 '노붐'이라고 정의한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 저자는 영화 〈컨텍트〉를 꼽는다. 책에 따르면 이 영화는 휴고상과 네블러상을 수상한 테드 창의 단편집 『네 인생의 이야기』를 각색한 작품이다. 영화에는 외계인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지구를 정복하려는 게 아니라 소통을 원한다. 문제는 외계인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가 다르다는 데 있다. 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스와 외계인과 소통하려 노력하는데, 그 결과 단지 언어만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외계인의 시간관을 공유하게 된다. 그 결과 루이스는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되면서 과거-현재-미래의 구분이 사라진다.
이 책은 SF의 역사도 짚어보고 있다. 물론 다른 문학 장르와 달리 SF의 역사는 짧다. 더욱이 독자처럼 SF 문외한은 어떤 작품이 SF 문학의 첫 작품인지도 모르는 상태지만 이 책에서 개념을 확립하고 역사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낯선 용어와 핵심어 등은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따로 정리하기도 하고, 본문에서 사용하며 설명하기도 한다. 미진한 게 있다 싶으면 장(章)의 끝에 별도의 'Q & A'란을 만들어 추가하고 있다. 이 덕분에 앞으로 대하는 SF 작품은 문학이든 영화이든 거의 이해할 수 있을 정도, 혹은 조금 더 공부한다면(과학까지) SF를 잘 아는 독자 축에 낄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독자로서는 특히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의미를 잘 모르고 있었지만 이 책에서 매우 비중 있게 다루며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스페이스 오페라란 용어의 정확한 의미뿐만 아니라 SF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자세한 해석과 사례 설명도 곁들이고 있다.
책은 이 용어를 설명하면서 우주선과 우주여행에 대한 상상력을 동원해 쓴 웰스의 『타임머신』을 적절한 예로 들고 있다. 우주선과 우주여행의 개념이 웰스에 의해 창조되지만 20세기 초반 유럽은 그것에 대한 상상력을 꽃 피우기에는 너무 큰 피해를 입었다.(아마 제 1차 세계대전을 두고 한 말인 듯.) 이에 따라 미국에서 성행한 것으로 본다는 주장이 저자의 견해인 것 같다. 1941년(제 2차 세계대전 중) 윌슨 터커는 이 작품들을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명명했다. 그렇게 부른 이유는 당시 라디오에서는 멜로 드라마가 방송됐는데 드라마 중간에 비누 광고가 나왔다. 그래서 그런 류의 드라마를 '소프 오페라'라고 불렀고 소프 오페라는 하나의 장르가 된다. 그 후 1940년대에 미국에서는 서부극이 상당한 인기몰이를 했고, 이를 '호스 오페라'라고 불렀다. '말을 타고 다니는 오페라'라는 의미다. 소프 오레파는 감정적인 부분, 특히 사랑과 우정 등 인간의 감성적인 면을 강조한 드라마였다. 따라서 스페이스 오페라는 이 두 가지를 우주 공간으로 옮긴 것이라 볼 수 있다.
저자는 서양의 SF를 넘어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의 SF에 대한 연구도 적잖은 성과를 올린 것으로 이해된다. 저자는 아이작 아시모프, 필립 K. 딕 등 SF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주요 작품을 다루면서 SF를 쓰고 읽는 이유를 SF가 싹트고 성장하며 변화하고 진화하는 과정을 살피며 답을 찾는다. 그리고 인종·성별·국가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작가들이 약진하는 과정을 그리며 다채로운 작품들을 소개한다. 일본의 〈아키라〉, 중국의〈삼체〉, 한국의 〈괴물〉등의 작품을 언급하며 아시아의 SF를 다룬 부분도 눈길을 끈다. 4부에서는 “SF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며 ‘사변 소설’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사변 소설의 대표작 『플랫랜드』를 비롯하여 인공지능, 동물, 사물 등을 사변한 다양한 작품을 폭넓게 소개한다. 이와 함께 이제 SF가 어떤 장르로 성장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SF의 사명감에 대해 말한다. SF 작품이든, 다른 작품이든 저자의 SF에 대한 해석은 독창적이고 통사적이며, 통찰력을 곁들였다고 독자는 이해된다.
저자 : 이동신
가장 문학적으로 혜안을 찾아내는 영어영문학자.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후 텍사스 A&M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대 미국소설, SF 문학, 고딕 소설 등을 가르치며,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틀에서 연구하고 있다. 문학과 문화 그리고 사회에서 비인간존재가 재현되고 사용되는 방식과 목적을 결정하는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작업을 한다. 최근 몇 년간은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함께 ‘인간-동물 연구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인간-동물관계의 성격과 문제점을 논의하며 좀더 윤리적이고 실천적인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저서로는 A Genealogy of Cyborgothic: Aesthetics and Ethics in the Age of Posthumanism,『다르게 함께 살기: 인간과 동물』등이 있고, 『갈라테아 2.2』를 번역했다. 『포스트휴머니즘의 쟁점들』, 『관계와 경계: 코로나시대의 인간과 동물』,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영미 소설 속 장르』, 『동물의 품 안에서: 인간-동물 관계 연구』등을 공저했고, 주요 논문으로 「좀비반, 사람반: 좀비 서사의 한계와 감염의 윤리」, 「좀비라는 것들: 신사물론과 좀비」, 「망가진 머리: 인공지능과 윤리」, 「Gulliver, Heidegger’s Man: Swift’s Satire of Man in Captivation」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