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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버 -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지음,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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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게르버』는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라는 부제와 출판사의 책 소개글에서 '금서'로 지정된 책이라는 데 독자의 주목을 끌었다. 특히 저자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가 스물한 살 때 쓴 작품인 데다 복잡한 국적과 출신 등이 더 관심이 갔다. 이 소설은 1930년 오스트리아에서 출간되었는데 혹시 독일 히틀러가 제 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라 관련이 있지 않나 싶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는 프라하 출신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 작가다. 저자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주인공이자 고등학생 '쿠르트 게르버'가 겪는 학업의 어려움, 교수와의 갈등, 우정과 사랑의 문제를 다뤘다. 이 소설이 자전소설인 셈이다. 프라하의 권위주의적인 학교에서 겪었던 부정적인 경험을 그렷다.
저자는 1921년 아버지가 프라하로 전근하면서 저자가 다녔던 프라하의 학교는 개혁이 단행된 오스트리아 빈의 학교와 달리 옛 군주제 시기의 낡은 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 교육의 핵심은 규율과 규범을 내세우며 학생의 자유 의지를 꺾고 순종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졸업 후 좋은 직장과 대학 입학을 위해 졸업시험 합격증이 필요한 학생들은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성적 평가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교수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소설의 서두에서 전하는 일주일에 열 명의 학생이 자살하는 현실은 그런 학교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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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적인 학교를 고발하는 이 소설에는 고등학교 시절 시를 쓰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1927년 졸업시험에 한 번 낙방한 적이 있는 작가의 경험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소설은 카프카의 유고를 정리·발표한 막스 브로트의 도움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첫 출간 당시 5,000부가 인쇄되고 1년도 안 되어 7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소설의 성공으로 토어베르크는 물질적인 안정과 함께 작가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하지만 『게르버』는 출간 3년째 되는 1933년 나치 정부가 “사제의 문제를 증오심에 가득 찬 왜곡된 형태로 그린” 소설로 판정해 금서가 되었다. 이어 1936년 토어베르크의 모든 글에 금서 판정이 내려졌고, 작가는 1938년 스위스를 거쳐 프랑스로 도피했다가 1940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1951년에야 오스트리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쿠퍼 같은 사람 앞에서 도망치지 않을 거예요!”(쿠퍼는 소설 속 수학 교수이자 게르버의 담임이다.)
쿠르트 게르버는 고등학교의 마지막 해, 졸업시험을 앞두고 있다. 그는 졸업반 담임인 쿠퍼 교수가 가르치는 수학에 약하다. 학생들 사이에서 ‘신’이라 불리는 쿠퍼는 권력 지향적인 사디스트 성향의 교사로, 학생들의 자존심을 짓밟으며 강압적으로 행동한다. 쿠퍼에게는 재능 있으나 반항적이며, 또래 아이들보다 어른스럽고 통솔력이 있는 게르버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다. 게르버가 가장 취약한 과목인 수학을 가르칠 때마다, 쿠퍼는 게르버는 물론이고 많은 학생들에게 모욕감을 주어 게르버는 날마다 괴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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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버의 아버지는 일찍이 쿠퍼의 악의를 눈치채고 전학을 가라고 권하지만 게르버는 “쿠퍼 같은 사람 앞에서 도망치지 않을 거”라며 아버지의 뜻을 거스른다.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졸업시험에 떨어지는 것이 치욕이다. 심장병이 있어 흥분하면 목숨이 위태로운 아버지로 인해 게르버의 졸업시험에 대한 부담감은 커져만 간다. 게다가 동급생인 리자에 대한 첫사랑은 어쩐지 가망이 없어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도 게르버는 무자비한 교수 쿠퍼와 불공정한 싸움을 계속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현대 사회 속 모든 사람들은 세상에 발을 딛기 전에 오랜 세월을 학교에서 보내야 한다. 학교는 우리가 살고 활동하는 이 세상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토어베르크의 이 소설 『게르버』는 똑똑하고 성숙하나 반항적인 학생 게르버의 학교생활 마지막 해를 그리며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세상은 세 가지 것에 근거한다. 바로 진리와 정의, 사랑이 그것이다.” 소설의 서두에 인용된 고대 이스라엘 랍비의 이 격언은 소설의 화두이다. 주인공 게르버는 학교와 실제 인생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한다. 만약 아버지의 말이 옳다면 학교는 세상의 토대인 진리와 정의, 사랑이 있는 곳, 혹은 그것을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 과연 학교는 그런 곳일까? 저자는 교수의 견해에 좌우되는 학교의 성적 평가 방식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비판은 그런 주관적 판단으로 한 사람의 미래를 판단하는 문제점에 대한 고발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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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프라하의 학교에서는 담임의 권위가 막강했던 것 같다. 사회 진출이나 대학입학 등에 관한 절대적 권한이 주어진 것으로 보인다. 성적표에 여러 단계로 나눠 기재토록 돼 있는데 낙제점을 받으면 진급이나 취업은커녕 유급되는 신세가 되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지만 결국은 잘못된 제도 때문에 한 사람의 능력과 실력은 물론 존재까지도 지워버릴 만큼 절대적 사회의 제도에서는 엉뚱한 피해자가 속출할 뿐이다. 게르버는 주장한다.
"누가 ‘교수진’과 그의 ‘동료들’에게 수십 년 동안 한 사람의 존재를 규정할 권리를 보장했는가? 이 사람은 강한 앞발로 미래를 장악하고 아무 일 없을 거라고 하고, 반면 저 사람은 무너져 웅크리고 앉아 배가 난파되어 황량한 섬에 표류한 사람처럼 사방 삭막한 바다에 둘러싸여 냉혹하게 완결된 지평선을 필사적으로 바라보며 혹시 자비나 우연, 환영으로 불리는 하얀 점이 나타나지 않을까 기다리라고 하는 불가침의 일회적 판결을 내릴 권리를 대체 누가 그들에게 보장했는가?"(p.241)
게르버의 아버지는 학교와 실제 인생이 아무 관계가 없다는 아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만약 그가 옳다면 학교는 세상의 토대인 진리와 정의, 사랑이 있는 곳, 혹은 그것을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졸업시험을 인생 최고의 목표로 간주하고, 교수가 절대 권력을 휘둘러 학생을 파멸시키고, 같은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서로 돕기보다 경쟁하며 강자인 교수의 부당한 행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학교는 진리, 정의, 사랑과 아무 상관이 없다. 토어베르크의 소설이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정도는 다르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 세상 모든 학생이 겪는 문제를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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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981년 볼프강 글뤼크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가 스물한 살 때 발표한 이 소설이 출간된 지도 어느덧 거의 90년이 넘었다. 장 아메리의 말처럼 “폭탄처럼 떨어진” 이 소설은 오늘날까지 강렬한 시의성을 잃지 않고 있다. 어쩌면 권위주의적 잔재가 사회에 아직 남아 있는 곳이 많다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들릴 수도 있다. 등장인물 중 주인공은 게르버다. 8학년(*역자 주 실과고등학교 : 수학과 자연과학에 중점을 두는 오스트리아의 8년제 고등학교) 재학 중으로 졸업 시험을 앞두고 있다. 낙제가 될 시에는 졸업 시험을 보지도 못하는데 게르버는 일부 선생님들에게 미움을 받는 학생인 듯하다. 특히, 반의 담임 선생님인 쿠퍼는 게르버의 부모님께 엄포를 놓는 등 게르버를 괴롭힌다. 게르버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거나 가정 학습을 받자는 아버지의 설득에도 끝까지 학교에 남아 졸업 시험을 보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학교 체제에 불만과 게르버의 이성과의 순수한 사랑, 졸업 시험에 대한 압박감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게르버가 똑똑하지만 엉뚱하고 반항적인 인물이다. 다른 선생님들은 그의 영민함에 따른 일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담임인 쿠퍼는 권위에 대한 도전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게르버를 괴롭힌다. 흔히 말하는 문제아로 생각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어쩌면 일제강점기 일본인 선생에게 배우는 우리어린이들이 생각난다. 당연히 학교는 다니지만 선생이나 가르치는 것에 대해 반항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선생의 눈밖에 났다는 이야기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정당한 주장을 하는 학생인 것이다. 특히 청소년기는 조그마한 것이라도 옳지 않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나서서 주장을 펼치는 요즘 학생 시선으로 보아서는 게르바의 행위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느낄 것이다. 반항이 아니라 평범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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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담임인 쿠퍼 선생은 부정적 요소를 다 갖춘 인물이다. 권위주의적인 데다 자신의 권위와 하는 일에 반항하거나 불만을 표시한다면 그 성적표 점수를 무기로 이용해 학생들을 옭아매는 못난 인물이다. 좋게 보면 괴상한 인물쯤으로 보일지 몰라도 독일 나치스 권위주의 시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권력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학생의 능력을 키워주고 지식을 전해주는 선생이 아니라 말 잘 듣는 모범학생을 키우는 선생이다. 학생의 인성을 함양한다는 점에서는 도무지 도움이 안 될 인물이다. 자신은 어쩌면 권력의 지시에 가장 잘 순응하는 선생일 것이다. 학생 위주의 선생이 아니라 이해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나의 기준만 보자면 선생님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학생을 괴롭히는 악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밖에 나면 낙제를 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길을 들이는 선생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갑자기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을 자신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이런 학생에 대해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관련 질문을 하는 등 비인격적 선생의 전형이다. 지금 시대에는 있을 수 없겠지만 나치스 권위를 생각해보면 가능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청소년기인 게르버의 사랑 이야기도 꽤나 인상적이다. 주위 사람들이 성관계 등의 육체적인 사랑에 대해 논할 때 게르버는 성애적인 감정을 느끼면서도 리자와 육체적인 사랑에 거리를 두고자 노력한다. 여러 남자와 관계를 맺는 리자의 모습을 보고도 순애보적인 사랑을 보인다는 게 옳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본능적 욕구도 참는 순수하면서도 이상적인 젊은이의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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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다르고, 지역도 달라 오스트리아의 교육 체계가 우리와 다르고, 선생이나 학생들의 생각이 달라서 약간씩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노출되지만 적절한 역자 주석을 통해 해소하면 우리의 청소년 소설, 성장소설이나 다름없다. 주인공의 권위주의에 대한 반항심리, 권위주의적 선생의 행위 등을 중심으로 읽으면 큰 물줄기를 잘 따라갈 수 있다. 예를 들면 지금 우리의 대학입시는 수학능력시험에 의해 치러지지만 당시 게르버 학교에서는 낙제일 경우 대학에 응시할 기회가 박탈되거나 구술 고사로 이루어지는 일 등은 조금 낯설게 느껴지지만 교육제도란 게 시대적으로 지역적으로 가변성이 있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별 문제는 없다. 마지막 내용이 마음 아프게 비극적이어서 씁쓸한 뒷맛에 개운하진 않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저장하기에는 오히려 더 강렬하다는 느낌도 있다.
저자 :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190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프라하 출신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1921년 아버지가 프라하로 전근하면서 가족과 함께 프라하로 돌아가 1924년 체코 시민권을 획득했다. 고등학교 시절 이미 시를 발표하고 일간지의 스포츠 리포터와 연극 비평가로 활동했다. 1928년부터 프라하 대학에서 잠시 철학과 법학을 공부한 후 프라하와 빈을 오가며 저널리스트, 연극 비평가, 소설가, 서정시인, 패러디 작가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1933년 첫 소설 《게르버》가 나치 정부의 금서 판정을 받은 이후 유대인 작가로서 박해를 받다가 1938년 스위스를 경유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1940년 다시 미국으로 도피해서 생계를 위해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 번역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연극 비평가로 일했다. 1945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1951년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저술에 힘을 쏟았다. 편집자, 잡지 발행인, 번역가, 방송 토론자로 활동하는 한편, 재능 있는 젊은 작가의 등단에 힘을 보탰다. 작품으로는 자신의 부정적 학교 체험을 그린 소설 《게르버》를 비롯해 《선수단. 스포츠 인생》 《복수는 나의 것》 《저 여기 있어요, 아버지》 《욜레슈 아주머니 혹은 일화로 보는 서양의 몰락》 《그것 역시 빈이었다》 등이 있다. 《게르버》 《저 여기 있어요, 아버지》 《그것 역시 빈이었다》 등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생전 율리우스 라이히 상, 빈 저널리즘상, 오스트리아 학문·예술·명예 십자훈장, 오스트리아 국가문학대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1979년 11월 10일 세상을 떠나 빈 중앙묘지에 안장되었다.
역자 : 한미희
이화여자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독문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고, 홍익대학교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쳤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하이디』, 『루소』, 『카를 융-생애와 학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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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