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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샤의 후예 1 : 피와 뼈의 아이들
토미 아데예미 지음, 박아람 옮김 / 다섯수레 / 2022년 10월
평점 :
독자의 SF 소설에 대한 독서 부족 탓이겠지만 '블랙걸(흑인 소녀)'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이 책 『오리샤의 후예』가 처음이다. 이 책은 모두 3권으로 이루어졌지만 1권이 2018년에 출간된 후 4년 만에 2권이 출간됐다. 왜 연속 출간되지 않은지 이유야 어찌됐든 독자로서는 궁금증만 커질 뿐이다. 특히 113주 연속 USA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킨, 대단한 소설로 알려져 있는데도 말이다. 이 책은 출간 당시부터 아마존에 1만3,000개 이상의 리뷰가 올라왔을 뿐 아니라 스티븐 킹, 록산 게이 등 걸출한 작가들에게도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저자는 나이지리아계 미국인인 토미 아데예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블랙걸인 이유가 아프리카 신화를 기반으로 매력적인 마법 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여성 히어로의 활약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불평등한 현실 세계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목에 등장하는 오리샤는 아프리카의 한 왕국이다. 먼 옛날부터 오리샤 왕국에서는 마법을 가진 '마자이'와 그렇지 못한 '코시단'이 평화롭게 어울려 살았다. 그런데 마법을 두려워한 왕이 마법을 없애고 대습격을 일으켜 마자이를 몰살하면서 모든 것이 바뀐다. 새하얀 머리카락을 갖고 태어난 마자이의 아이들은 최하층민으로 전락해 온갖 차별과 폭력 속에 살아간다. 11년 후, 제일리는 바다 깊숙한 곳에 버려졌던 성물을 손에 넣는다. 세 개의 성물을 모아 신성한 의식을 치르면 봉인된 마법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고 한다. 제일리와 아이들은 왕의 추격을 피해 임무를 완수하고 마법을 되찾을 수 있을까? 여정이 이 소설의 스토리다.
검은 피부와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마자이, 생소한 이름의 신들과 부족들. 이 작품 속 세계는 무척 낯선 풍경으로 가득하다. 표지 그림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저자의 속마음에 딱 맞는 얼굴과 장식 등으로 저자가 그리고자 하는 인물을 잘 그려주었다고 나중에 저자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고 저자가 남긴 「감사의 글」에 남아 있다. 오리샤에서는 제각기 다른 재능을 부여받고 그 힘을 사용하는 열 개 부족으로 이루어진 희귀하고 신성한 마자이족이 번영을 누렸다. 마자이는 태어날 때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지고 태어난다. 열 세살이 되면 마법을 부릴 수 있었는데 이 마법이 11년 전에 사라졌다. 그 이유를 아는 이는 없다. 사란 왕은 마자이가 약해진 틈을 타 공격을 했고, 마자이었던 제일리의 엄마도 죽었다. 그 이후 사란 왕은 각종 세금을 걷기 시작하고, 세금을 내지 못하면 마자이를 부역장으로 끌고 갔다. 그 곳은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성물이 해변에 떠밀려와 신성자들이 성물에 접근하면서 능력이 되살아나는 사건이 일어난다. 두루마리의 능력을 시험한 사란 왕은 두루마리를 없애려 하지만 불가능하다. 그것을 지켜본 아마리 공주는 두루마리를 가지고 왕국을 도망나온다. 시장에서 제일리를 만나게 되고 탈출에 성공한다. 두루마리를 만진 제일리에게 신적인 힘인 아셰가 되살아나는 일이 일어난다.
마법을 되찾는 법을 알아내기 위해 제일리, 제인 , 아마리는 찬돔블레로 떠난다. 그들을 아마리의 오빠인 이난왕자와 카에아가 그들을 뒤쫓는다. 찬돔블레에서 하늘 어머니의 영혼과 땅에 있는 마자이들을 연결해 주는 영적 수호자의 역할을 하는 센타로를 만나게 되고 엄청난 비밀을 가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백년제 하지에 오리니언해 북쪽 해안에 나타나는 신성한 섬에 3가지의 성물을 가지고 도착해야 하지만 시간은 촉박하고, 뒤쫓는 막강한 적도 있다. 과연 이들은 일장석, 두루마리, 단검을 구해서 그날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제일리와 이난이 꿈에서 연결되는 신비한 일이 일어난다. 마자이를 죽여야 한다고 교육받은 이난은 마자이인 제일리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낀다. 자신이 잘못알고 있었음을 깨닫고 마지이의 적에서 같은 편이 된다. 시간이 촉박한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제인과 아마리가 수상한 사람들에게 납치를 당하게 되고, 이를 구하러 간 제일리와 이난은 그들의 정체를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무사히 탈출해서 제시간에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사란 왕과 마주친 제일리 앞에 사란 왕이 나타나고, 잊지 못할 상처를 남긴다. 지우고 싶어도 지울수 없는 엄청난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란 왕을 지켜보고만 있는 이난. 이난은 왕국을 지키기 위해 제일리를 배신한 것일까?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하며 3가지 성물 하나에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대로 마법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는 날아가게 되는 걸까?
1권이 650여 페이지, 2권은 580여 페이지에 이르는 굉장한 분량의 소설이다. 쉼없이 숨가쁘게 읽히지 않는다면 읽어내기 쉽게 생각하는 독자가 드물 터다. 하지만 낯선 풍경과 낯선 용어들이 오히려 독자의 상상의 세계와 잘 맞아 떨어진다면 분량이 길다고 읽기를 포기할 독자는 없을 터다. 이 소설은 화자가 바뀌면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연결이 매끄럽고 적절한 타이밍에 화자의 입장에서 상황이 전개되어 몰입도가 더 높다. 이 소설이 사랑받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또 파라마운트 픽처스 영화로 제작이 확정된 책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머릿속으로 영화를 찍으면서 읽은 듯한 느낌을 준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배경은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왕국은 어떻게 나타내면 좋을지, 전쟁의 장면에서 책에서처럼 실감나게 표현된다면 너무 잔인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흠뻑 빠져들게 구성되었다. 글을 읽고 있지만 책이 살아있는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였다. 영화로 어떻게 표현될지도 벌써 궁금해진다.
머릿속에 상상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제일리, 제인, 아마리, 이난이 영화에서 표현된다면 소름 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오랜만에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낯선 이름과 용어답게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존재가 우리 세상과는 다른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죽은 자의 영혼을 부리는 사령술사 이쿠족에서부터 상대의 정신을 지배하는 마음술사 에미족, 쇠와 땅을 주무르는 쇠술사와 땅술사 아이에족, 앞날을 예측하는 예언술사 아리란족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서아프리카의 신화와 문화를 토대로 새로운 판타지 세계를 보여준다.
1권 〈피와 뼈의 아이들〉은 우연히 마자이의 두루마리를 손에 넣은 주인공들이 마법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다. 찬돔블레 사원에서 일장석의 존재를 알게 된 아이들은 백 년에 한 번 찾아오는 신성한 의식을 치르고자 험난한 여정을 떠난다. 그 가운데 마자이의 탄생 배경과 마법이 사라진 이유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마침내 아이들은 이배지의 경기장에서 목숨 건 피의 경기를 펼친 끝에 일장석을 찾아 의식을 치른다. 과연 수많은 희생을 감수한 그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을까? 참혹한 피 냄새와 강력한 아름다움을 품은 오리샤는 얄궂게도 우리가 사는 세계를 도식화한 레플리카(독자 주 : 미술 그림이나 조각 따위에서, 원작자가 손수 만든 사본)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의 세상과 오리샤가 모두 자신과 다른 존재를 철저히 타자화하기 때문이다.
오리샤처럼 현대 사회에서도 많은 갈등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생겨난다.
저자는 현대 사회, 특히 미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인종 차별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썼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는 책의 시작 부분에 앞서 「작가의 말」을 통해 털어놓는다. "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수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책을 수정하면서도 수없이 눈물을 흘렸다. 여러분의 손에 이 책이 들려 있는 지금도 나는 또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거대한 사자너와 신성한 의식은 환상의 요소이지만 이 책에 묘사된 모든 고통과 두려움, 슬픔, 상실은 현실의 이야기다. 이 책은 우연찮게 뉴스를 켤 때마다 무장하지 않은 흑인 어른들과 아이들이 경찰의 총에 맞은 사건을 연일 접하게 되던 시절에 쓰였다. 나는 두렵고 화가 났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시절에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작게나마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p.6)
마법으로 번성했던 축복의 땅 오리샤는 물, 불, 빛, 쇠, 바람, 질병, 동물, 시간, 마음, 영혼을 다루어 뭇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강력한 힘은 두려움을 불러왔다. 두려움은 증오가 되고, 증오가 폭력으로 바뀌면서 마자이를 몰살하겠다는 열망이 왕의 마음에 싹튼다. 대학살의 밤, 그 후 십여 년간 오리샤의 최하층민이 되어 고초를 겪는 마자이의 후예들. 오리샤 군대의 사슬과 감옥으로도 묶어둘 수 없는 정의를 향한 갈망, 피를 타고 흐르는 마법의 능력. 이제 그들은 고통스러운 신음이 아니라 결단의 함성을 지르려 한다. 때가 왔다. 백 년에 한 번, 마법을 되찾을 수 있는 신성한 날이 다가오고 있다. 마법을 되찾아야만 한다.
왕의 근위대에게 엄마와 동족을 빼앗긴 제일리는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 살아간다. 적의 위협에 대항하고자 훈련을 받으며 칼 대신 손에 쥔 것은 격투봉이다. 소녀는 주문을 외듯 읊조린다. “격투봉은 피하되 해하지 않고, 해하되 불구를 만들지 않으며, 불구를 만들되 죽이지 않습니다. 격투봉은 파괴하지 않습니다.” 서로에게 칼을 겨눠야 했던 남매, 이난과 아마리는 혹독한 교육과 세뇌 속에서 왕실의 후계자로 길러진 아이들이다. ‘의무를 지켜라, 이난.’ ‘쳐라, 아마리.’ 왕과 왕비의 목소리가 언제나 머릿속을 지배한다. 마침내 궁전에서 도망치는 공주. 그런 여동생을 추격하다가 아름다운 마자이를 만나게 되는 왕자. 각기 다른 고통으로 울부짖던 아이들에게 마법보다 빨리 찾아온 것은 사랑일까, 전쟁일까.
이에 대한 표현은 저자가 염두에 둔 인종차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 듯하다. 독자로서는 로마 시대의 검투사가 떠오르기도 하고, 흑인 노예로 끌려오던 시절의 아프리카 출신 노예의 삶이 떠오른다.
저자의 피를 토하는 듯한 절규처럼 들리는 「작가의 말」은 이어진다. 작가의 말을 인용하는 것은 이 소설의 분위기와 저자의 의도를 알면 더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였다면 이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내디뎌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줄라이커와 살림을 위해 눈물 흘렸다면, 조던 에드워즈와 타미르 라이스, 에이야나 스탠리존스 같은 무고한 아이들을 위해서도 울어주길 바란다. 그들은 각각 열다섯, 열둘, 열일곱 살에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 (책 속에서)엄마의 죽음에 슬퍼하는 제일리를 보며 가슴 아파했다면 경찰의 만행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던 모든 이들을 위해 가슴 아파해 주길 바란다. 이를테면 다이아몬드 레이놀즈와 그녀의 네 살배기 딸 같은 사람들. 그들은 사랑하는 필란도 카스티유가 총에 맞아 무참히 살해당하는 광경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를 죽인 경관 제로니모 야네즈는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런 극소수의 사례 외에도 흑인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다."(1권, p.6~7)
서아프리카 신화를 바탕으로 씌어졌다는 이 소설은 인종 차별에 대한 항거의 목소리를 담았다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독자들은 신화의 스토리를 재미 있게 읽더라도 왜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머나먼 나라에 와서 핍박받고 차별적인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저자는 물론 역자 박아람도 「옮긴이의 말」을 통해 이 점을 분명히 되새기고 있다.
"생소한 요소가 가득한 오리샤는 오싹할 만큼 낯익은 모습들을 드러낸다. 201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는 흑인 민권 운동의 열기가 뜨거워졌다. 토미 아데예미는 1권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미국의 뿌리 깊은 흑인 탄압을 염두에 두고 소설을 썼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에서 1권이 출간되고 1년여 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었고, 2년이 지난 지금도 종식되지 않았다. 마치 질병술사들이 활약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이 팬데믹은 국내외에서 직간접적으로 인종 차별과 정치적 분열을 심화하는 원인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세상의 한쪽에서는 믿을 수 없는 전쟁이 터졌다. 21세기 우리의 세상은 오리샤의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아데예미가 창조한 '판타지' 세계는 배경을 덜어내고 보면 우리 세계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마자지와 왕실은 쉽사리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다. 이쿠족은 죽음의 마자이인 동시에 삶의 마자이다. 이몰레족은 어둠의 마자이인 동시에 빛의 마자이고 이오산족은 질병술사뿐 아니라 치료술사도 품고 있다. 그들은 때로 혼돈과 문제를 일으키지만 동시에 그것을 해결할 힘을 지니고 있다. 누구에게나 완벽한 세상은 구현되지 않는다.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화합할 의지를 다지는 것이 모두에게 최선의 길일 것이다. 부디 제일리의 세상과 우리의 세상이 모두 함께 그 길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지금은 어디로 끌려가는지 모르는 제일리 일행이 희망을 찾았으면 좋겠다. 두 세상은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고 있으니까."(2권, p.581~582) 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이다.
2권 〈정의와 복수의 아이들〉은 제일리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는 참담한 광경으로 시작한다. 마법이 돌아왔지만 주인공들은 더 큰 절망에 빠진다. 왕실은 여전히 그들을 위협하고 이제는 왕보다 더 인정사정없는 왕비가 전면에 나선다. 게다가 왕실 사람들도 막강한 마법의 힘을 갖게 된다. 다행히 우리의 주인공들에게는 든든한 지원군과 새로운 터전이 생긴다. 마법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오합지졸 신성자들의 정착촌이 아니라 무려 세 개의 산에 자리한 성지를 찾은 것이다. 성지에서의 생활은 마자이들의 아름다운 만남과 감탄스러운 풍광이 어우려져 낙원처럼 묘사된다.
첫 장(章) 「우리의 전투는 이제 시작이다」의 화자는 제일리다.
"되도록 아빠를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아빠를 생각할 때면 파도 소리가 들린다.
아빠와 함께 처음 파도 소시를 들었으니까. 그 순간 처음으로 파도를 느꼈으니까.
우리는 자장가 같은 파도 소리에 이끌려 숲길을 따라 바다로 향했다. 바다의 산들바람이 고불고불한 나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듬성듬성한 나뭇잎들 사이로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나는 우리 앞에 어떤 광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지 못했다. 저 자장가가 어떤 신비로운 힘을 간직하고 있을지. 그저 그리고 가봐야 했다. 그 파도가 내 영혼의 잃어버린 한 조각을 쥐고 있는 것 같으니까."(2권, p.12)
우여곡절 끝에 제일리 일행은 오리샤 왕국에 마법을 다시 가져온다. 그런데 마법을 부릴 수 없었던 사람들도 마자이 조상이 있는 경우 이 힘을 갖게 되어 일명 ‘티탄’이 된다. 왕족들은 마자이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제일리와 아마리는 반란군 ‘이위카’에 들어간다. 제일리는 부족을 지키려는 열망 속에서도 원로라는 막중한 책임감과 소중한 사람을 또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마자이를 혐오하던 사란 왕의 아들, 이난은 아버지의 통치 방식에 의구심을 품으면서도 왕세자로서 주입받은 가치관과 자신의 신념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렇듯 작중 주인공과 그 건너편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긴장감을 불어넣는 안타고니스트(반동 인물)는 선과 악, 그 경계가 모호한 입체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독자는 등장인물의 상황에 더욱 몰입하고 그들의 심리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이난과 연인 관계였던 제일리, 그리고 이난의 동생 아마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각자 지향하는 오리샤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배신과 화해, 대립과 협력, 정의 실현과 복수 등 다양한 형태를 띠며 이어지는 플롯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개로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마법 판타지 세계관이 등장하는 작품들 사이에서 이 시리즈는 핵심 주역이 흑인 여성이다. 다른 등장인물 또한 모두 흑인 캐릭터라는 점에 차별성이 있다. 저자가 집필하면서 미국의 흑인 탄압 역사를 염두에 두었다고 밝힌 만큼 소설에서 일어나는 장면들은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인종 차별 사건과 흑인 민권 운동을 상기시킨다. 이는 비단 미국의 상황에만 국한된 비유가 아니다. 힘없는 민족, 소수자에 대한 박해와 차별은 공동체를 분열시키며, 많은 재력을 가진 자, 권력자가 저지르는 무법적 횡포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아데예미는 이 책에서 허구와 현실이라는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상호 연관성을 강조한다. 문학이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내어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는 물론, 의미를 곱씹으며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해리포터, 신비한 동물사전, 반지의 제왕…… 왜 유명한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백인 남성인가?’
저자 토미 아데예미는 이러한 의문 속에서 ‘블랙 걸 판타지’를 탄생시켰다. ‘유럽(배경)-백인(인물)’ 구성의 기존 판타지물들이 만들어 낼 수 없었던 것을 보여 주기 위한 치열한 시도인 셈이다. 블랙 걸 판타지는 단순한 역할 전복에 그치지 않는다. 서아프리카 문화권으로 판타지 세계를 확장한다. 작열하는 아프리카의 태양 아래 펼쳐지는 검은 마법사들의 왕국. 용맹한 사자와 백표범을 타고 어슬렁거리는 아름답고 불온한 전사들. 그들의 대규모 전투와 한층 역동적인 마법. 블랙 걸 판타지의 등장은, 언제나 가능했지만 미처 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 준다.
우리는 언제까지고 두려움에 떨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싸우는 것이다. 싸워 이기는 것.
그리고 이기기 위해선 마법이 필요하다.(1권, p.502)
“네가 저지른 실수가 너의 전부는 아니란다.” 마마 아그바가 어깨를 잡자 아마리의 울음소리가 더욱 애절해진다. “한순간으로 자신을 단정 지어서는 안 돼. 그로 인해 무너져서도 안 되고. 신들의 방식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단다. 그분들에게는 더 원대한 계획이 있을 거라고 믿어야 해.”(2권, p.545)
저자 : 토미 아데예미
미국 타임지에서 ‘2020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 나이지리아계 미국인 작가.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수상했으며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작가 겸 문예창작 교사로 활동 중이다. 하버드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브라질 사우바도르에서 서아프리카의 신화와 종교, 문화를 공부했다. 소설을 쓰거나 BTS 뮤직비디오를 보지 않을 때에는 tomiadeyemi.com에 문예창작에 대한 글을 올린다. @tomi_adeyemi에서도 소식을 접할 수 있다.
역자 : 박아람
전문 번역가. 주로 문학을 번역하며 KBS 더빙 번역 작가로도 활동했다. 『마션』, 『이카보그』, 『아우슈비츠의 문신가』, 『아이 러브 딕』, 『내 아내에 대하여』, 『맨디블 가족』,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 『12월 10일』 등의 소설 외에도 『슬픔의 해석』, 『작가의 시작』, 『내 옷장 속의 미니멀리즘』을 비롯하여 50권이 넘는 다양한 분야의 영미 도서를 번역했다. 2018 GKL 문학번역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