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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구하기
김설아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2년 11월
평점 :
독자는 한때 소설 등 문학작품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거쳐오면서 주 독서 장르가 바뀌었다. 소설보다는 에세이, 감수성 높은 미술, 음악 등 예술 서적을 많이 읽는다. 물론 중년을 넘어선 나이에 특별한 목적 없이 읽고 싶은 책을 그때 그때 선정해서 읽기 때문에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의 작품들에 집중한다. 그러나 소설도 그렇지만 많은 책이 SF로 넘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문학에서뿐만 아니라 과학 서적도 우주, 천체 등에 관한 서적이 많이 출판돼 나온다. 가끔씩 들르는 서점에는 늘 과학, 의학 등에 관한 서적이 자리잡고 있고, 베스트 셀러 판매대에는 에세이가 압도적이다. 예전에는 자기계발서가 가장 잘 팔리는 책이었지만 코로나 이후 에세이가 훨씬 많이 팔린다는 서점 주인의 귀띔이다.
가끔 읽는 신문의 문학/출판 란에도 과학과 에세이가 많다. 그만큼 요즘에는 SF가 대세인 듯하다. 지구는 더 이상 인간들의 천국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서일까? 지구는 지금 환경오염, 기후변화에 이어 끊임없는 전쟁, 경제난, 식량 문제 등 하루도 전쟁과 기근 소식이 안 들리는 날이 없다. 그래도 과학의 발전이 그나마 지구를 아직까지는 잘 지탱하지만 언젠가는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에서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현실적으로 닥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은 책이 우주시대를 겨냥하고 있다. 이젠 시간이라는 개념과 공간의 개념이 물리학 깊은 곳에서는 별로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물리학자들의 말은 현실적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말을 어느 날 하루아침에 대두될 수 있다는 긴장감마저 감돈다. 상상력을 '먹고사는' 문학 등 예술의 영역에서는 당연히 앞서간다.
우주시대를 겨냥한 것만 아니다. SF 세계는 시공간을 초월한 세상을 다루기에도 좋다. 이때문에 코미디에서 미스터리와 호러, 스릴러까지,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문학 작품에서 쏟아져 나오고, 독자들의 굉장한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영상 제작의 발달로 도저히 실제 만들어내지 못할 상상의 물체도 실제처럼 민들어 영화 등 영상으로 제작돼 나오는 것을 보면 곧 닥칠 현실일 것 같은 위기감과 함께 인간으로서의 자긍심도 커진다. 독자만의 느낌이 아닐 것이다.
이 책 『안드로메다 구하기』는 억압에 저항하는 이야기를 자신만의 화법으로 펼쳐 온 작가 김설아의 환상소설집이다. 단편 8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저자 김설아의 소설은 비일상적이고 초자연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현실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는 소설가다. 그렇기 때문인지 신비에 가득 찬 환상적 이야기는 성인들을 위한 우화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저자 작품의 절대적인 매력이라고 독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 책은 호러, SF, 미스터리, 스릴러, 코미디의 믹스다. 소재는 오컬트에서 신화의 영역까지 자유롭고 다양하다. 권력과 제도의 지배로부터 저항하는 이야기를 즐겨 다루는 저자의 이번 소설집은 여성의 시각에서 펼쳐지는 ‘여성 장르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장르 소설의 종합 선물 같은 소설집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여성들의 삶이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이야기들을 흥미롭고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 소설집에는, 낯선 땅에서 고생하는 여성 노동자, 결혼이라는 속박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여성, 친구 문제로 고민하는 사춘기 소녀, 타인에 의해 결정된 삶에서 자유의지를 펼치려는 여고생 등,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편향적이지 않은 담론을 담고 있다. 이제부터 외계인, 드래곤, 몬스터라는 장르적 메타포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정체성과 자유의지를 탐구하는 흥미롭고 기묘한 이야기들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게 펼쳐져 있다.
첫 소설은 「과자와 고기」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정하나는 스무 살의 여자 사람이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하나는 여기 도착해서 20년이 흐른 지금까지 인간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그래서 누군가 말을 걸 때마다 긴장했다. 같은 조에서 작업하는 한 살 많은 언니 이정신이 다가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정신을 한국인 치고 색소가 옅은 눈과 갈색 머리에 살갗은 혈관이 비칠 정도로 하얀, 등급을 매기자면 빌혈로 보여 피와 살이 될 것 같지 않은 질 낮은 고기다. 말라서 지방은 모자라도 피부는 결도 좋고 깨끗하니 내장 쪽은 싱싱할까나." 소설 발단 부분에 주인공 장하나의 모습을 묘사한 작가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의 모습에, 정상적인 직장인이 아님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실 뒤에 드러나지만 장하나는 식인 외계인에게 몸을 강탈당한 과자 공장 노동자다. 식량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기대했던 지구에서의 삶은 가혹하기만 하다. 주인공은 가축처럼 외계인의 식량이 되기도 하고, 살아 있는 동안 노예상태로 강제노동에 동원되고 있는 느낌을 준다. 지구는 인간들의 세상이 아닌 이미 외계인에 의해 정복당한 후의 디스토피아로 저자는 접근하고 있다.
두 번째 소설 「안드로메다 구하기」는 이 소설의 표제어가 된 작품이다. 안드로메다는 고대 에티오피아의 공주다. 아름다운 여성으로 성장하면서 어머니 카시오페이아로부터 결혼의 압박을 받는다. 답답한 마음에 바다로 나온 안드로메다는 엄청난 사실에 눈을 뜨게 된다. 어머니로서 카시오페이아와 딸로서의 안드로메다는 너무 다르다. "안드로메다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어머니가 말하는 외모 꾸미기가 아니라 바로 이런 것이었다. 충만한 에너지로 가득한 대자연! 너무 아름다워 안드로메다는 여기까지 오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에서도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했다. 철썩철썩 파도가 치고 포말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안드로메다는 가슴 가득 짠 공기를 들이마셨다.(p.53)
이에 비해 왕비 카시오페이아는 짙은 갈색 피부를 가진 여인이었다. 이 여인은 "매일같이 자신을 단장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카시오페이아의 길고 유연한 몸에서는 부드럽고 달콤한 향내가 났다. 검은 눈에 이목구비는 시원시원했고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한 모습은 멀리서도 눈에 띌 만큼 화려했다. 시녀들이 금빛 깃털 부채를 부치는 가운데 카시오페이아는 아침 식사 후 응접실에서 '카웨'를 기다리고 있었다.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희고 얇은 장막이 쳐진 드넓은 응접실은 사방에서 바람이 통해 시원했다." 독자에게는 아프리카 한 왕국의 모습으로 비쳐진다. 어떤 갈등을 겪을지 궁금해진다.
네 번째 작품 「데빌라」는 독자의 관심을 크게 끌었다. 쌍둥이 자매지만 서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산다. 배경은 14세기 중세 이탈리아다. 갓 태어난 자매를 환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유한 가죽 염색업자인 야고보는 주저하면서 딸들을 데리고 성당으로 간다. 세레명은 안젤라와 카타리나. 토마스 신부는 잠든 두 아이의 부드러운 이마에 십자가를 긋더니 흠칫 놀란다. 쌍둥이를 확인하며 말끝을 흐린다. "쌍둥이···로군요." 노신부는 탐탁지 않은 얼굴로 돌아섰다. 야고보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여태 딸만 22명을 낳은 아내가 이번에는 쌍둥이 자매를 낳았다. 야고보는 입맛이 없다. 야고보는 고아원에 들러 돈 몇 푼을 찔러 주며 안젤라를 버렸다. 안젤라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막연히 둘 중 하나를 버렸다고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다. 아이들이 차고 넘치는 집이라 어머니 몬나조차도 안젤라를 금세 잊어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독자는 제목에서 하나의 힌트를 발견한다. 「데빌라」는 영어로 데빌(devel)에서 따온 듯하다. 그냥 우리가 아는 대로 남성이면 제목이 '데빌'이나 '데비루스' 정도로 불렸을 것 같다. 이탈리아어(로마어)에서는 이름이나 여성을 지칭하는 것은 '~아' 혹은 '~이아'를 붙인다고 들은 바 있다.(율리어스〈줄리어스〉가 남자라면 율리아〈줄리아〉는 여성이다) 그렇다면 데빌라는 여성 악마를 뜻한다.
쌍둥이 자매는 한쪽은 성녀로 추앙받지만, 버림받은 쪽은 최악의 삶을 살면서 어느 새 머리에 악마의 뿔까지 자란다. 이들에게 앞으로 펼쳐질 운명은 무엇일까. 독자들의 궁금증은 더해간다. "찢어지는 비명에 잠옷 바람으로 달려간 실베스트로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소녀의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뾰족하고 거무스름한 뿔이 두 개 솟아 있었다. 두 손에는 뿔이 살을 찢고 나오면서 흐른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초록색으로 빛나는 두 눈은 고통과 환희로 번쩍거렸다.(p.174)
「값비싼 사랑」도 무척 재미 있게 읽었다. 소설의 시작은 매우 잔잔하다. "밤거리는 밝았다. 효정의 표정은 어두웠다. 재민과 효정은 아파트 단지의 인도로 걸었다. 오토바이나 승용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뿐, 사방은 조용했다. 얼음 같은 바람이 불어 둘의 볼과 귀를 문지르고 갔다. 둘은 귀가 발갛게 달아오른 것 외에는 닮지 않았다. 재민은 밝게 염색해 파마를 한 쇼트커트 머리에 눈이 부리부리하고 코가 높은 서구적인 얼굴에 단단한 체구였고, 효정은 등까지 오는 검은 머리에 길고 큰 눈과 햐얀 얼굴이 히나 인형과 비슷했고, 마른 체구였다."(p.296)
자살시도를 했다고 오해하는 엄마의 권유로 댄스 학원에 다니게 된 효정은 아름다운 루비를 보고 반한다. 꿈속에서 루비와 은밀한 시간을 보내던 효정은 현실 같은 자극을 느낀다. "역시 머릿속으로는 ‘그게 무슨 짓이야!’ 싶었지만 효정은 루비의 손가락을 입 안에다 넣고 빨았다. 루비의 차갑고 가느다란 손가락에서는 거의 아무 맛이 안 났고 길고 매끄러운 손톱은 비늘처럼 얇았지만 피에서는 달콤한 맛이 났다. 세상에, 피마저 달콤하다니.(p.310)
저자 : 김설아
1980년 부산 출생. 2004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 단편소설 부문으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는 장편소설 『공작새에게 먹이 주는 소녀』, 단편소설집 『고양이 대왕』이 있다. 그 외에 앤솔러지 『피크』, 『캣캣캣』, 『당신의 떡볶이로부터』, 『환상의 책방 골목』, 『마이너스 스쿨』, 『은하환담』에 참여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